소설리스트

내 성장속도가 이상하다-23화 (23/218)

────────────────────────────────────

────────────────────────────────────

23 단 네 걸음

23 단 네 걸음

다음날, 오전 교양 수업.

“······이건 대체.”

여느 때와 같이 스텟부터 시작해서 영상, 상태창 등.

‘그림자’로 인한 변화를 확인하던 도중,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원인은 다름 아닌 영상 속의 그림자.

녀석의 평소와는 다른 행동 때문이었다.

‘책상으로 갔어······? 스텟 단련실이 아니라?’

여태 맹목적으로 스텟 단련실을 찾아갔던 그림자.

어째선지, 녀석은 기숙사를 박차고 나가는 대신 책상 앞에 앉았다.

이어지는 녀석의 행동에 나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를 보고 있다고?’

책상 앞에 마주 앉은 그림자.

녀석이 스마트 워치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녹화 중이라는 사실을 안다는 듯, 그 너머에서 지켜보고 있을 나를 바라보듯이 말이다.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설마 자의식까지 가지고 있다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행동이 나올 리가 없었다.

이를 증명하는 행동은 영상에서 이어졌다.

곧장 책상에 있던 펜과 공책을 집어 들어 뭔가를 적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 촬영 각도 때문인지 내용은 보이질 않았다.

‘점심 시간에 바로 확인해 봐야겠어.’

다짐과 함께 영상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이어서 그림자는 평소처럼 마력 단련실을 향했다.

하나 그 안에서 펼치는 행동은 또 다른 것이었다.

‘······대체 이 움직임은 뭐지?’

마력 단련실을 향했으니 호흡법을 단련하는 건 알겠다.

하나 녀석은 마력 단련과 더불어 의미 불명의 움직임을 보였다.

유심히 보자 비슷한 동작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번, 두 번······, 총 네 걸음인가?’

단 네 걸음.

그림자는 이를 끊임없이 되풀이했다.

동작은 굉장히 기괴하면서도 이질적이었다.

‘보폭도 뒤죽박죽에, 발의 앞꿈치와 뒤꿈치의 위치도 뒤틀려 있는 것 같은데.’

저렇게 움직였다간 걷기는커녕 균형을 잡고 서 있기도 힘들 터.

그럼에도.

‘······눈을 뗄 수가 없어.’

나는 빠져들었다.

도저히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갈수록 기괴하다는 감상은 간결함의 극치로 변해 갔다.

이질적인 느낌은 은밀함으로 치환됐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의문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대체 그림자의 정체가 뭐지······?’

마나 호흡법에 관한 감각과 지식, 거기에 현기(玄機)가 느껴지는 걸음걸이까지.

새삼스레 경외심을 느끼는 한편, 나는 다시금 영상에 집중했다.

하나 이후의 영상에선 네 걸음 외 특별히 주목할 만한 행동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영상을 끄며 생각했다.

‘이건 틀림없이 새로운 작용이다.’

필기, 그리고 걸음걸이.

필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내용이 적혀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하나 걸음걸이와 더불어 이는 기존의 마나 호흡법 단련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작용’의 일환으로 보였다.

나는 가설의 확인을 위해 곧장 상태창을 불러들였다.

그 결과.

[특성]

-????의 그림자

동기화율 10%

예상대로 9%였던 동기화율이 10%로 올라가 있었다.

‘······역시나!’

속으로 쾌재를 부르짖었다.

‘동기화율이 오르면 새로운 작용이 나타난다’라는 나의 생각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점심시간에 기숙사로 돌아가서 공책부터 확인하는 걸로. 그리고 걸음걸이는······.’

뾰족한 답이 안 나왔다.

의미는 물론, 정체 또한 짐작조차 못하겠다.

그럼에도 나는 무의식적으로 영상을 재생시켰다.

‘왠지 눈이 간단 말이지.’

그림자가 계속해서 반복하는 네 걸음.

나는 이를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하염없이 지켜 봤다.

···

···

···

오전 수업이 모두 끝난 순간.

“일한이, 어디가? 점심은?”

“먼저 먹고 있어, 기숙사 좀 갔다 올게.”

“알겠어!”

식당으로 질주하는 임강철을 뒤로한 채 나는 기숙사로 돌아왔다.

어젯밤, 그림자가 공책에 필기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책상 위에 여전히 널브러진 공책을 보는 순간.

꿀꺽-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과연 어떤 내용이 적혀 있을까.’

그림자의 첫 의사표현이자, 녀석이 자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내용이 담긴 공책.

곧바로 펼쳐 봤다.

녀석이 적은 걸로 추정되는 페이지를 찾아낸 순간.

“······?”

내 고개가 절로 기울어졌다.

-건틀렛

자신의 정체나 동기화율의 정체, 심지어 베일에 싸인 걸음걸이에 관한 내용도 아니었다.

다만 무기의 한 종류이자, 임강철이 그토록 부르짖었던 무기인 ‘건틀렛’.

그 세 글자만이 선명하게 적혀 있을 뿐이었다.

*

7교시.

무기 체험 수업은 교관의 강의와 함께 시작됐다.

“체험에 들어가기 앞서 어제 말했던 특성에 따른 무기 선택 요령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겠다. 집중하도록.”

교관은 먼저 특성에 관한 설명으로 말문을 열었다.

“알다시피 특성은 총 세 가지 형태로 나뉜다. ‘강화형’, ‘마력형’, ‘이능형’······.”

나는 강의를 머릿속에 적당히 담아뒀다.

‘어차피 나는 미구현 특성이니까.’

특성의 유형에 따른 최적의 무기 선택의 조언 같은 건 내겐 의미가 없는 것이다.

더욱이 의도는 아니었지만 엉겁결게 무기도 정해졌다.

다름 아닌 ‘건틀렛’, 그림자가 적어 놓은 대로 따라가려는 것이다.

‘어차피 고민 중이었으니.’

검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총기류를 택할 것인지.

각각의 효율과 이점을 두고 고민하던 차였다.

그런 와중에 그림자가 결론을 내려 줬다.

물론 조언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부실했다.

하지만.

‘여태 내게 도움이 안 되는 일을 한 적은 없으니까.’

여태까지의 그림자가 보여준 행적.

나를 성장시켜주고, 예상치 못한 능력을 안겨 준 녀석의 행동을 믿었다.

그리 생각하니 어떻게든 납득할 수 있었다.

‘뭐, 건틀렛도 따지고 보면 나쁘진 않아.’

검, 창 만큼이나 유물이 많다.

즉 관련된 스킬이 많다는 뜻이다.

거기에 아무래도 맨몸으로 전투에 임하는 만큼 위험하지만, 습득도 빠른 편이라 들었다.

임강철이 늘어놓은 되도 않는 이유를 제쳐 두고서라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이제 남은 의문은 걸음걸이 뿐인가.’

오전 내내 영상을 반복해서 시청한 덕분에 뇌리에 각인되어버린 그림자의 네 걸음.

거기에 관해선 오리무중 그 자체였다.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지만 건틀렛과 모종의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 정도로 머릿속을 정리하는 사이.

“그럼 다들 움직이도록.”

때마침 교관의 설명이 끝났다.

움직이려는 찰나, 어김없이 임강철이 달라붙었다.

“가자고, 일한이!”

“어.”

대답과 함께 나머지 팀원들도 챙겨서 무기고를 향했다.

세 사람이 각각 어제 말했던 무기를 집어드는 가운데.

나만 홀로 가만히 있자 임강철이 내게 물었다.

“일한이, 아직도 무기를 못 정한 거야?”

“아니.”

“오! 뭘 고를 거지?”

“건틀렛.”

“······일한이! 믿고 있었다구-!”

감격에 겨운 듯, 그의 육중한 거구가 내게 달려들었다.

미간을 찡그리며 충격에 대비하는 순간.

스윽-

나도 모르게 발이 움직였다.

“······어?”

“일한이?”

임강철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 내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내 임강철은 내 위치를 확인하고는 서운하다는 티를 팍팍 내며 말했다.

“서운하다, 일한이!”

나는 이를 깔끔하게 무시했다.

그 대신 나는 조금 전 무의식적으로 움직인 상황을 되짚어봤다.

‘이거 분명 그림자 녀석의······.’

생각에 잠기려는 찰나.

“야, 저리 안 비키냐?!”

익숙한, 그래서 거슬리는 목소리가 바로 등 뒤에서 터져 나왔다.

강진솔, 그의 이름 석 자를 떠올리기가 무섭게 인기척이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가 어깨에 힘을 빡 준 상태로 내게 돌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게 길을 막고 있질 말았어야지!”

속된 말로 ‘어깨빵’.

참으로 유치하게 짝이 없다.

그리 생각하며 최대한 몸을 빼려는 순간.

스윽-

또다시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이번에는 왼발이 강진솔의 두 다리 사이로 미끌어지듯 들어갔다.

“어, 어?”

앞쪽으로 쏠린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상체를 있는 힘껏 일으키는 순간.

퍼억-!

어깨가 뭔가 딱딱한 부분에 부딪혔다.

다름 아닌 강진솔의 턱.

나도 모르게 어깨로 턱주가리를 강타해 버린 것이다.

“······크헙!”

강진솔은 우스꽝스러운 소리와 함께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련의 상황에 정적이 흘렀다.

이내 임강철이 배꼽을 움켜잡더니.

“푸흡, 푸하핫! 저런 머저리 같으니라고!”

대놓고 자지러지듯 폭소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반면 나는 웃어야 할지, 당황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래도 일단 할 건 해야지.’

그런 생각으로 상당히 억울한 듯 이를 가는 강진솔을 바라 봤다.

그를 향해 입꼬리를 살살 들어올려 줬다.

히죽-

이를 본 강진솔은 당연하다는 듯 발끈했다.

“너, 너 이······!”

하지만 그는 차마 뒷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무슨 소란이지.”

강의를 마치고 지도 및 조언을 위해 훈련실 내부를 돌아다니던 교관.

그가 소란을 듣고 무기고 쪽으로 다가온 까닭이었다.

나는 곧바로 다가가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무기고를 빠져 나가려고 할 때 강진솔 생도와 부딪혀버렸습니다. 다음부턴 주의하겠습니다.”

동시에 녀석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강진솔은 울며 겨자 먹기로 내 손을 잡고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훈훈한 광경에 교관은 한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음, 다음부터는 주의하도록.”

“네.”

교관이 천천히 물러나자.

홱-!

강진솔이 내 손을 뿌리쳤다.

그러고는 씹어뱉듯 조용히 으르렁댔다.

“너, 나중에 두고 보자······!”

마치 삼류 악당과도 같은 멘트를 남기고 빠르게 물러나는 강진솔.

그의 초라한 뒷모습에 임강철은 콧방귀를 뀌었다.

“흥, 나중에 같은 소리 하네!”

“1학기 기말에 있을 실전 대련을 말하는 건가.”

“어깨빵 하나 제대로 못 치는 녀석이 대련은 개뿔.”

임강철의 신랄하게 짝이 없는 말투에 피식하는 한편.

조금 전 상황을 복기했다.

‘······이거, 아무리 봐도 그림자의 걸음걸이 같은데?’

내 의지가 아닌, 몸이 반응하여 내딛은 걸음.

발을 내디딘 타이밍부터 시작해서 보폭, 발의 앞꿈치가 향하는 방향까지.

영상 속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그래서일까.

‘아무리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데, 한번 시험해보자.’

한번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림자의 네 걸음.

이걸 의식적으로 펼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말이다.

이미 무기도 정했겠다, 이거라면 남은 시간을 알차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잠깐, 혹시 무투술과 함께 펼칠 수도 있지 않을까?’

건틀렛의 전투 방식이라 할 수 있는 무투술.

만약 거기에 걸음걸이를 더할 수 있다면?

‘꽤 괜찮을 것 같은데.’

새로운 가능성에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

···

···

3시간 후.

“그럼 수업은 여기까지다. 내일 7교시에 바로 주무기를 선택······.”

마지막 수업이 끝났다.

그때까지 계속 걸음걸이를 시험하던 나는 결국 제 풀에 지쳐 바닥에 주저앉았다.

‘전혀 안 되네.’

다름 아닌 걸음걸이의 재현 때문이었다.

무투술에 더하기는커녕, 네 걸음을 따라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영상을 보면서 느꼈던 애로사항들을 온몸으로 체감한 것이다.

‘역시 좀 더 연습을 해봐야 하는 건가?’

첫 술에 배부를 순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어느 정도 믿는 구석도 있었다.

다름 아닌 그림자.

동기화율 10% 달성과 함께 새로이 나타난 녀석의 행동을 믿는 것이다.

‘오늘 밤에도 그림자 녀석이 뭔가 적어······, 잠깐.’

녀석이 선보인 걸음걸이에 너무 심취한 탓일까.

단순하고도 명쾌한 방법을 놓치고 있었다.

‘녀석에게 정말 자의식이 존재한다면, 내가 직접 물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비단 걸음걸이 뿐만이 아니었다.

녀석과 대화가, 필담(筆談)이 가능하다면 여태 산더미처럼 쌓인 의문을 해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녀석이 대답해 줄거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나 시험해 볼 가치는 충분했다.

‘물어보자, 한번.’

대체 정체가 뭔지.

내게 무엇을 바라는지.

어디까지 해줄 수 있는지.

이젠 알아야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