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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등 못하면 머리 박아야지
16 1등 못하면 머리 박아야지
“교관님, 명단 제출하겠습니다.”
“그래, 건투를 빈다.”
진태진은 안일한 생도로부터 팀 명단을 받아들였다.
그러고는 곧장 명단을 확인했다.
[스텟 서킷 트레이닝 팀 명단]
-생도 안일한
-생도 윤설하
-생도 임강철
-생도 차은월
이름을 보는 순간, 진태진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공교롭게도 그가 주시하던 3명의 생도가 한 팀을 이룬 까닭이었다.
그는 속으로 한 명씩, 생도들의 평가를 떠올렸다.
‘윤설하 생도.’
그녀는 배경조차 뛰어넘는, 그야말로 완벽한 자질의 소유자다.
단, 완벽을 추구하는 성향으로 인해 교우 관계에서는 원활하지 못한 면을 보였다.
‘다음은 차은월 생도.’
그녀 역시 자질, 특히 마력 스텟에 있어 축복받은 자질을 타고났다.
하지만 나머지 세 가지 스텟과의 밸런스가 심각하고, 마력에만 너무 몰두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안일한 생도.’
그의 초기 스텟을 생각하면, 자질이 탁월하다 보기는 힘들다.
하나 성장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속도를 보이고, 마력 또한 탁월한 감각으로 진도를 따라왔다.
더욱이 성향 또한 좀처럼 평정심을 잃지 않는 걸 보아 실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줄 가능성이 컸다.
앞선 두 사람만큼 특별하진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눈이 가는 생도.
‘그러니 이 팀의 구심점은······.’
진태진은 한 명의 생도를 떠올렸다.
동시에 이들에 대한 기대감이 차올랐다.
‘게다가 나머지 한 명의 자질도 나쁘지 않았지. 임강철이었나?’
과연 이들은 수행평가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
진태진은 희미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다음 생도, 명단 제출하도록.”
*
그날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나는 임강철과 함께 곧바로 대강당을 향했다.
이유는 물론 수행평가를 대비하여 팀원끼리 합을 맞춰 보기 위해서였다.
“크으, 기대가 되는구만! 너도 그렇지?”
가는 도중 임강철이 팔꿈치로 찌르며 말을 걸어왔다.
“뭐가.”
“이제부터 뜨거운 협동 단련을 하는 거잖아?!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나, 일한이!?”
“아니.”
언제나 한결같은 임강철.
그와는 이유가 달랐지만, 기대가 되는 건 사실이었다.
‘이 정도면 A반에서 만들 수 있는 최강의 조합이니까.’
다름 아닌 팀의 조합 때문이었다.
만능에 가까운 재능을 가진 윤설하부터, 마력 스텟의 천재인 차은월.
거기에 임강철 또한 둘에 비해 자질이 처질지는 몰라도 근력과 체력만큼은 탁월한 편이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뭐, 그럭저럭 밸런스가 있으니까.’
균형 잡힌 스텟을 가진 나까지.
손에 쥔 패가 좋으니, 대책을 마련하는 일도 즐거웠다.
‘일단 마지막 코스는······.’
마음껏 생각을 전개하는 사이.
“오, 쟤네들은 벌써 와있네!”
체육관에 들어섰다.
동시에 아직은 낯선 두 사람이 우리를 맞이해 줬다.
윤설하와 차은월, 그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윤설하였다.
“통성명은 이미 했으니 넘어가고, 일단 내 목표는 1등이야. 잘 부탁할게.”
무뚝뚝한 말투, 자신감 넘치는 발언, 거기서 느껴지는 승부욕까지.
단 한마디에 불과했으나, 그것만으로 왠지 윤설하라는 사람을 알 것 같았다.
“그럼 바로 시작하자. 먼저 각자 스텟부터 알려 줄래?”
윤설하의 의욕적인 모습에 나를 포함, 나머지 두 사람도 순순히 따랐다.
그녀 또한 단순히 보고를 받는 게 아닌, 자신의 스마트 워치를 내밀어 스텟을 보여 줬다.
각각의 스텟은 다음과 같았다.
내 스텟은 근력 9, 민첩 8, 체력 9, 마력 2.
총합 29스텟.
윤설하는 근력 13, 민첩 14, 체력 13, 마력 1.
총합 41스텟.
임강철은 근력 11, 민첩 6, 체력 9, 마력 1.
총합 27스텟.
그리고 차은월은 근력 4, 민첩 6, 체력 5, 마력 15.
총합 30스텟이었다.
서로의 스텟을 확인한 순간.
“······와.”
우리는 각자 다른 의미로 탄성부터 흘렸다.
특히 윤설하와 차은월의 스텟이 서로 다른 의미로 어마어마했다.
‘윤설하는 벌써 총합 41스텟이고 차은월은 마력 스텟이 무슨, 15스텟이나 되네.’
한 명은 거의 완벽하고, 한 명은 정말 극단적이다.
특히 극단적인 스텟의 소유자, 차은월의 스텟을 확인한 윤설하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마력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가지 스텟 때문인 듯했다.
‘하기야 마력 스텟을 활용할 수 있다면 모를까, 당장 수행평가에는 나머지가 더 중요하니까.’
이는 차은월 스스로도 알고 있는 기색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었다.
그녀를 잠깐 동안 말없이 지켜보던 윤설하는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괜찮아. 잘 분배해 보자. 응, 할 수 있어.”
마치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 듯 차은월을 다독여 주고는, 곧장 화제를 돌렸다.
다름 아닌 마지막 코스의 트랙을 정하는 것이었다.
“그럼 일단 전체 스텟 트랙은 내가 맡을게.”
“괜찮겠어?”
나의 물음에 윤설하는 당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나머지 3개의 트랙을 각자의 스텟에 알맞게 분배했다.
첫 번째 ‘근력 – 체력’ 트랙은 임강철.
두 번째 ‘민첩 – 체력’ 트랙은 차은월.
그리고 세 번째 ‘근력 – 민첩’ 트랙이 나였다.
이는 내가 생각과 동일한 분배였다.
“다들 이의 없지? 그럼 한 번 해 보자.”
우리는 빠르게 첫 시도를 했다.
그 결과.
“······임강철 65점, 차은월 47점, 안일한 69점, 그리고 내가 83점.”
65점, 47점, 69점, 83점. 총 점수 264점.
총 점수의 평균이 곧 개인의 팀 성적이다.
즉, 각각 66점이 되는 것이다.
강제 전출만 고려하면 반타작 이상을 한 셈이니 썩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이걸로 만족할 순 없어.’
이대로 만족할 수는 없었다.
단순히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눈앞의 수행평가뿐 아니라 필기, 실기까지.
강제 전출의 위협은 계속해서 남아 있는 까닭이었다.
‘그걸 두고 도박을 할 순 없으니, 당연히 최선을 다해야겠지.’
그 정도로 마음을 정리하는 나와는 다르게, 윤설하는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었다.
‘······역시 1등 선언이 빈말은 아니었구나.’
특히 그녀는 표정이 어두운 게, 뭔가를 꾹 억누르고 있는 듯했다.
보는 순간 왠지 모르게 알 것 같았다.
‘범인 찾기.’
총점을 낮추는 원인을 찾아내고, 지적하는 것.
이런 상황이면 으레 나올 법한 일이었다.
동시에 팀 분위기를 망치는 주요 원인이기도 했다.
나는 윤설하를, 그리고 잔뜩 위축된 차은월을 살폈다.
그러고는 윤설하로부터 한숨이 새나오기 바로 직전에.
짝-!
손뼉을 쳤다.
화들짝 놀란 차은월을 포함, 세 사람의 이목이 내게로 쏠렸다.
나는 생각을 살짝 정리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노하우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어.”
내 말이 다소 뜬금없었는지, 세 사람은 고개를 기울였다.
나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 갔다.
“교관님의 말씀에 따르면 노하우, 자세 교정이나 태도 같은 부분으로 점수를 올릴 수 있다고 하셨어. 적어도 10점 이상. 그러니 우린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힘있게 덧붙이며 고개를 돌렸다.
‘먼저 임강철.’
그의 성격은 단순하고, 직설적이다.
이는 받아들일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임강철에게 말을 할 때는.
“일단 임강철, 너는 동작이 너무 커.”
“······그, 그런 거야?!”
문제점부터.
“근데 넌 습득 속도가 빨라.”
“오호, 습득 속도.”
“그러니 윤설하를 잘 봐 둬. 그리고 다음 주 수업도.”
해결 방법까지.
요점만 간단명료하게 말한다.
“윤설하와 수업, 알겠어!”
내 말에 임강철은 주먹을 불끈 쥐며 투지를 불태웠다.
나는 곧장 다음으로 넘어갔다.
“차은월.”
“······응.”
차은월, 그녀를 직접 겪어 본 기간은 물론 짧다.
하나 그녀가 교관과 나눈 대화, 그녀의 반응, 그리고 분위기까지. 전부 지켜봤다.
대화하는 데 있어선 그걸로 충분했다.
“어떻게 보면 지금 나온 점수는 네가 최선을 다한 결과라 생각해.”
“하지만 점수가······.”
“낮지. 하지만 아까 말했듯, 노하우만 익히면 점수는 얼마든지 올릴 수 있어.”
그녀에겐 자신감이 필요해 보였다.
이런 성향은 대개 쉽게 주눅 들고, 본 실력을 더더욱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코스에서 날아드는 공에 움츠러들었잖아? 그건 낯설기 때문이야.”
눈빛, 말투, 태도.
최대한 신경을 쓴 채로 문제점을 잘 ‘설명’해야 한다.
“일단 스텟 단련실에서 민첩을 단련해 봐. 비슷한 상황에 최대한 익숙해지게끔.”
해결책도 잘 타이르듯 제시한다.
물론 수고롭다.
하나 감수할 만한 수고로움이다.
“······응, 그렇게 해볼게.”
이렇듯, 원하는 결과가 나오니까.
차은월은 의기소침하던 여태와는 달리 내 눈을 제대로 마주 보며 답한 것이다.
그녀의 반응을 보며 확신했다.
‘지금의 수고로움은 훗날 더 좋은 성적으로 돌아온다.’
마지막으로.
‘윤설하.’
그녀에겐 사실상 대책이 필요 없다.
조금 전에 분위기를 환기시켜준 걸로 충분했다.
‘오히려 내가 얘한테 배워야 맞지.’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음?’
문득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마치 조금 전부터 나를 바라보고 있던 느낌이다.
게다가 눈빛도 왠지 묘하다.
‘점수가 나왔을 때만 해도 살벌했는데.’
다행히 지금은 한결 누그러진 것 같았다.
그리 생각하며 할 말을 꺼냈다.
“나한테는 언제든 지적해 줘.”
“······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흐름이라 그런 걸까?
윤설하는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내 의도를 깨달았는지, 조심스레 되물어왔다.
“정말 괜찮겠어?”
“어. 1등 할 거잖아, 우리.”
나 혼자라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윤설하가 있다면?
‘1등 못하면 머리 박아야지.’
그녀의 승부욕 넘치는 성향을, 뛰어난 스텟을 믿었다.
그래서 담담하게 말했건만.
그녀는 토끼처럼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왜?”
“아, 아니야 아무것도. 응, 알겠어. 해야지, 1등.”
윤설하는 또다시 스스로에게 되뇌듯 중얼거렸다.
나는 거기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게다가 우리,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잖아?”
“해야 할 일?”
“저기.”
나는 손가락을 들어 체육관의 반대편 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아까 전부터 우리 팀을 향해 조소와 아유를 일삼는 강진솔의 패거리가 있었다.
때마침 우리의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진솔아, 쟤네 점수 봤냐?”
“킥! 그러게 왜 우리를 거슬러서는. 얌전히 말 들어서 우리랑 했으면 좀 좋아?”
“이참에 진솔이, 네가 1등 갈아치워 버리자!”
일부러 들으라는 듯 볼륨을 키웠다.
한껏 띄워 주는 패거리들 덕분일까.
강진솔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 모습에 윤설하의 가느다란 눈썹이 치솟았다.
“잠깐만. 이럴 땐 좋은 수가 있어.”
내 말에 흥미가 동했는지 윤설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직접 행동으로.
나의 기다란 가운뎃손가락으로 보여 줬다.
척-
이를 보는 순간.
“야 이 개새······!”
“지, 진솔아! 참아! 그러다 정학당해!”
강진솔은 이번에도 훌륭한 반응을 보여 줬다.
‘아, 이거 중독되네.’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윤설하 또한 쿡 하고 옅게 미소 지었다.
“어쨌든, 앞으로도 잘 부탁해.”
“응, 나야말로.”
그렇게 훈훈하게 첫 피드백을 마쳤다.
이후 저녁 늦게까지 연습한 다음.
“내일부터 주말이니 오전에 바로 모이자.”
주말 약속까지 잡고 나서야 해산했다.
*
늦은 밤.
-대상의 무의식 상태를 확인.
-대상의 주도권이 [????의 그림자]에게로 넘어갑니다!
-대상과의 동기화율을 확인.
-현재 동기화율······ [6%]
-동기화율이 상당히 낮습니다!
-[????의 그림자]가 미약한 분별력과 기억의 편린이 깃든 의식에 따라 행동합니다!
-의식에 각인된 [스킬]이 활성화됐습니다!
···
···
···
언제나처럼 안일한은 눈을 떴다.
그는 자연스럽게 일어나 기숙사를 나섰다.
목적지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스텟 단련실이었다.
“오우, 일한이! 오늘은 뭐 할 거야?”
맞이하는 임강철의 반응도 똑같았으며.
“마력 단련실? 의외네? 다른 스텟을 할 줄 알았더니. 난 오늘은 근력을 좀 조질게!”
마력 단련실을 향하는 것도 동일했다.
대부분이 근래의 일과와 비슷한 가운데.
딱 한 가지가 달라졌다.
“······스으으.”
마나 호흡법의 제1단계, 2단계를 거쳐 3단계.
순식간에 마나 순환까지 도달한 그는 신체의 특정 부위로 마나를 흘려보냈다.
쏴아아-!
양팔에, 양다리에 마나를 집중한다.
팔다리에서 전에 없던 힘이 느껴질 때까지.
언제나처럼, 몸이 기억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