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일한이! 비결을 좀 가르쳐줘!
9 일한이! 비결을 좀 가르쳐줘!
“어우, 잘 잤다.”
처음 맞이하는 기숙사에서의 아침.
2시간 정도 자고 일어난 느낌이며,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일어난 점, 그로 인해 샤워부터 해야되는 부분까지.
대부분이 집에서 지낼 때와 동일한 가운데 한 가지.
귀찮은 일이 추가됐다.
“임강철, 일어나.”
다름 아닌 룸메이트, 임강철을 깨우는 것.
정확히는 몰라도, 어젯밤 그는 단련실에서 꽤나 오래 있었던 모양이다.
몇 번을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걸 보니 확실했다.
“야, 임강철. 등교해야지.”
“쿠울, 일한이 대단······, 드르렁!”
일어나기는커녕, 요상한 잠꼬대를 하는 임강철.
‘······아니, 꿈에서 왜 나를 찾아, 소름 돋네.’
버리고 혼자 등교할까 싶었지만.
‘그래도 사람은 착하니까.’
좋든 싫든 앞으로 1년간은 함께 지내야 하는 녀석이다.
룸메이트의 정을 봐서 특별한 방법으로 깨워 줬다.
“일어나.”
퍽! 퍽-! 퍼억-!
발로 차고, 두들겨 팬 끝에 임강철이 눈을 떴다.
“느에?! 어, 어우 일한이······?”
“등교해야지.”
“어우······, 고맙다!”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일어나는 임강철.
그의 거구를 이끌고 무사히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
아카데미의 수업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었다.
국어, 수학, 과학 등. 교양 과목 위주의 ‘오전 수업’.
그리고 게이트, 균열, 몬스터 등의 초인 이론 수업과 전투 초인 실기 수업을 병행하는 ‘오후 수업’.
그 중 오전 수업은 말 그대로 교양을 위한 수업이었다.
때문에 교양 과목은 중간, 기말 등의 시험이 없다.
즉, 교관이 말한 강제 전출 기준.
‘필기 20%, 수행평가 20%, 실기 60%’에 반영되는 건 오후 수업뿐으로, 오전 수업은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몇몇 생도들은 수업 시간에 퍼질러 잤다.
그중에는.
“······드르렁.”
임강철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심지어 몰래 자는 것도 아니었다.
“······쿠울-! 푸화하학!”
우렁차게 코를 골아가며 처잤다.
자면서까지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는 임강철.
옆자리에 앉은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하아, 빌어먹을 근육쟁이 같으니.”
중학교 때를 생각하면 당장 교단에서 성난 외침이 터져 나오는 것과 더불어 연좌제까지 적용됐겠지만.
“에응, 쯧! 이래서 전투 계열 초인 생도들은!”
A반의 첫 교양 수업을 맡은 지긋한 노교수는 그저 한차례 혀를 차고 말았다.
익숙한 일인 듯 그냥 넘어가는 것이다.
반응이 제법 신기했지만, 그렇다고 나까지 동참해 잠들지는 않았다.
‘자질도 꽝인데 만에 하나 전출이라도 당하면······.’
일반 고등학교 내지는 비전투 계열 초인 학부로 전출을 당할 때를 대비한 것이다.
거기선 실기가 없는 대신 교양 과목까지 시험 범위에 포함되는 까닭이었다.
다행히 오늘은 첫 수업인 만큼 4교시 내내 무난하게 흘러갔다.
그리고 임강철은······.
“푸화하학-!”
괴상한 소리를 내며 4교시 내내 처자고, 각기 다른 4명의 교수들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다.
*
오후 12시.
“일한이, 밥이다-!”
점심시간이 되기가 무섭게 임강철은 귀신같이 일어나 밥을 외쳤다.
그 모습에 나는 진지하게 고찰했다.
‘이 녀석, 짐승 새끼인가······?’
임강철은 그런 나를 이끌고 식당으로 향했다.
한숨이 나오는 것과는 별개로 나도 제법 기대가 됐다.
‘시설도 최고의 수준이니까 당연히 밥도 맛있겠지?’
그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양식과 한식, 크게 두 종류로 나뉘어 가짓수만 10개가 넘는 음식이 뷔페식으로 제공됐다.
덕분에 나는 임강철과 마찬가지로 허겁지겁 밥을 담아 배를 채웠다.
“후아, 드디어 살 것 같네!”
무려 5그릇을 넘게 리필해 먹은 임강철이 배를 팡팡 두들겼다.
그제야 정신을 좀 차린 듯했다.
그 모습에 나는 한숨과 함께 물어봤다.
“대체 어제 몇 시까지 단련을 한 거야?”
“음? 일한이, 그건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인데? 너야말로 대체 몇 시까지 단련했지?”
임강철의 질문에 나는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난 저녁 10시쯤 돌아갔잖아.”
“그리고 30분 뒤에 다시 돌아왔잖아?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말이야!”
씨익, 잇몸 미소와 함께 엄지를 들이미는 임강철.
“30분 뒤에 돌아왔다니. 뭔 말이야.”
돌아가기는커녕 기숙사를 벗어난 적이 없는데.
심지어 심란한 마음이 무색하리만큼 누운 지 1분 만에 잠들었건만.
나는 왠지 대화가 헛도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임강철은 활기차게 물어왔다.
“그보다 일한이! 비결을 좀 가르쳐 줘!”
“······또 무슨 비결.”
“어떻게 4시간이 넘게 스텟을 단련하고도 지치지 않는 거지?!”
“4시간 넘게 뭐? 스텟 단련?”
“나랑 새벽 3시까지 달렸잖아! 모르는 척하기야?!”
그게 뭔 헛소리야, 라고 쏘아붙이려는 찰나.
어째선지 입에서는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자세히 말해 줘.”
“응?”
“어젯밤, 아니 새벽에 있었던 일.”
“음? 아아, 어젯밤 말이지?”
임강철은 턱을 쓸어내리며 설명을 시작했다.
“나는 다시 돌아온 너와 함께 민첩 단련실을 향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뜨거운 승부를 나눴지!”
“물론 휴식을 병행하긴 했어도, 너는 4시간 내내 칼같이 휴식, 단련 시간을 엄수했어. 난 갈수록 휴식 시간이 길어졌는데 말이야!”
“도저히 못 버티겠더라고! 결국은 잠들어 버렸지! 일어나 보니 기숙사던데, 네가 옮겨 준 거 아니야?”
임강철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되물었다.
나는 대답을 보류한 채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문질렀다.
‘그러니까.’
정리해 보자.
잠든 내가 30분 만에 일어나서 스텟 단련실로 갔고.
거기서 임강철과 4시간 동안 민첩 스텟을 단련했으며.
마지막엔 잠든 임강철을 업고 기숙사로 돌아왔다고?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걸 꾸며 냈다는 것도 이상한데.’
장난, 거짓말이라기엔 지나치게 디테일하다.
게다가 그런 짓을 할 이유도 임강철에겐 없을 터.
그렇다는 건······
‘진짜로 내가 잠들었을 때 내가 아닌 무언가로 깨어나서 스텟을 단련한 거라고?’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어째서 나도 모르는 사이 스텟이 성장해 있는지도 설명이 된다.
전율이 이는 한편, 불현 듯 몇몇 기억이 떠올랐다.
-너답지 않게 잠도 안 자고 노력한 모양이다만, 세상살이라는 게 원래 뜻대로만 풀리진 않는 법이다.
입학시험 직전에 아버지께서 내게 건네준 위로부터.
-누가 나 대신 내 몸으로 운동이라도 하나?
어젯밤, 자기 전에 떠올렸던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대체 이게 말이나 되는······.’
상식을 벗어난 결론으로 귀결되어 가는 가운데.
딩동댕동-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거기에 임강철이 순식간에 반응했다.
“이크, 일한이! 오후 수업은 실기라서 늦으면 안 되잖아! 빨리 가자!”
그의 외침 덕분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더불어 오후에 있을 실기 수업의 내용을 떠올렸다.
‘맞아, 오늘은 스텟 검사를 한다고 했으니까.’
수업 장소는 자연스럽게 ‘스텟 단련실’이 될 터.
게다가 나는 어제 검사를 마쳤으니, 자유 시간이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임강철의 말을 다시금 떠올렸다.
‘분명 민첩이라고 했지?’
진짜로 내가 잠든 사이에 단련이 진행됐다면, 스텟에 변화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
*
“······이걸로 6교시 게이트 및 균열 이론 수업을 마치겠다. 전 생도들은 15시 10분까지 스텟 단련실로 집합해 두도록, 이상이다.”
초인 이론 수업에 해당하는 5, 6교시가 끝났다.
이제 곧 실기 수업에 해당되는 7교시가 시작된다.
즉 ‘스텟 검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수업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그리고 10분 후.
“다들 모였으면 ‘스텟 검사’를 시작하겠다.”
마침내 7교시 수업이 시작됐다.
진태진은 먼저 검사 방식부터 설명했다.
해당 사항이 없는 나는 교관의 설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교관님. 저는······.”
질문을 꺼내기도 전에.
“안일한 생도는 어제 측정과 검사를 마쳤으니 자율적으로 단련을 진행해도 좋다.”
원하는 답변을 들었다.
나직하게 대답한 후, 곧장 민첩 단련실을 향했다.
‘먼저 설비부터 세팅하는 거였지.’
어제 배운 대로 세팅을 마치고 측정에 임했다.
그 결과.
띠링!
-민첩 스텟 7 (UP!)
스텟이 성장했음을 의미하는 ‘UP!’ 표시가 떠 있었다.
믿기지 않는 결과에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진짜로 성장했어!’
설마 하는 심정으로 레벨을 조절했다.
8레벨, 즉 8스텟이다.
결과는.
띠링!
-민첩 스텟 8
8스텟에서 멈춰 섰다.
하룻밤 새 민첩이 1스텟 오른 것이다.
결과를 확인한 순간.
털썩-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버렸다.
그대로 벽에 기대어 앉은 채 중얼거렸다.
“······이쯤 되니 믿을 수밖에 없겠네.”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이상, 믿어야 했다.
정말로 나는 내가 모르는 사이 성장하는 것이다.
“진짜 미쳐 버리겠구먼.”
이로써 지금껏 남아 있던 가장 큰 의문이자 기현상.
‘이상한 성장 속도’의 비밀은 풀렸다.
하지만 아직도 자잘한 의문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게 한두 가지여야 말이지.’
그래서인지 도저히 풀어낼 엄두조차 나질 않았다.
때문에 나는 생각의 방향을 한번 틀어 봤다.
‘어차피 모든 의문을 풀어낼 수 없다면······.’
차라리 생산적인 생각을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나를 둘러싼 기현상, ‘이상한 성장 속도’의 원인.
즉, ‘어째서’에 매달리기보단 이 현상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하는 편이 훨씬 유익하지 않을까?
한창 골몰하고 있을 때.
“자, 다들 주목.”
교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스텟 검사가 끝이 난 모양이었다.
나는 단련실을 빠져나가 도열해 있는 생도들의 무리에 합류했다.
때마침 교관이 입을 열었다.
“대부분의 생도가 그간의 노력을 증명하는 결과를 보여 줬다. 하나 일부는 그렇지 않았다.”
그가 언급한 ‘일부’에 속하는 생도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경고대로 성장이 없는 생도들에겐 1학기 중간고사의 수행평가에 포함되는 태도 점수에 감점을 주겠다.”
교관으로부터 불이익에 관한 내용이 흘러나오자 해당 생도들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물론 성장이 없었다는 결과가 전부 태만 때문이라곤 생각지 않는다. 왜냐, 스텟의 자질은 평등하게 주어지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교관이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자질로써 판단하는 게 이곳의 현실이자 초인 사회의 현실이다. 왜냐고? 초인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타고난 자질로서 적성을 가려내는 것.
냉혹하지만 그게 아카데미의 현실이었다.
“단순 설명으론 자질의 중요성, 스텟 성장의 중요성이 와닿지 않겠지. 아마 내일이면 알게 될 것이다. ‘다음 수업’부터는 몸으로 직접 체감하게 될 테니 말이다.”
교관의 경고 속에 담긴 의미에 분위기는 한층 더 가라앉았다.
대부분 다음 수업을 걱정하는 기색이었다.
반면 그 속에서 나는 더더욱 확신했다.
‘역시 내 생각의 방향성은 틀리지 않았어······!’
나를 둘러싼 기현상, ‘이상한 성장 속도’의 ‘원인’보다는 ‘활용’에 집중하는 것.
즉, 기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활용해야 내게 이로울지를 고민해야 마땅한 것이다.
당장 교관이 ‘자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다음 수업만 봐도 그랬다.
‘본래라면 자질이 부족한 나로서는 따라가기 힘들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겐 기현상이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질이 부족한 나를 넘어서는 성장 속도를 지닌 또 다른 내가 있다.
이를 십분 활용하여 자질의 부족함을 메운다면?
‘충분히 다음 수업을 따라갈 수 있어.’
더불어 앞으로도 지속될 아카데미의 혹독한 평가로부터 살아남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마음을 굳힌 나는 본격적으로 기현상의 활용법에 관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 일환으로서 나는 한 가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이······. 그래, 그것부터 하는 게 좋겠어.’
당장 오늘 저녁부터 가능한 일들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