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역시 이 녀석은 진짜다······!
8 역시 이 녀석은 진짜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후에도 꽤나 정신없이 흘러갔다.
다름 아닌 기숙사 배정 때문이었다.
1학년은 2인 1실이 기본인 만큼, 기숙사와 함께 룸메이트를 배정받고 입주까지 끝마쳤다.
여담으로, 2학년 때부터 1인 1실을 배정받게 되는데 그 이유가 골 때렸다.
‘1학년 땐 생도 수가 많지만, 그만큼 쫓겨나는 이들도 많아서 2학년 때부턴 자리가 남는다니.’
살벌하게 짝이 없다.
무튼, 그런 이유로 나는 4층의 402호실.
“일한이! 앞으로 1년간 잘 부탁한다!”
룸메이트인 임강철과 같은 방을 쓰게 됐다.
처음엔 이마를 짚었지만.
‘······그래도 생판 모르는 사람보단 나으려나.’
생각을 내려놓고 그냥 받아들였다.
이후 그와 함께 짐을 풀고, 저녁 식사까지 마쳤다.
그러고는 기숙사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임강철이 나를 채근해 왔다.
“빨리 가자!”
“어딜.”
“스텟 단련실! 근육이 근질거린다고!”
“아, 맞다.”
스텟 단련실.
의도치 않게 검사는 끝냈으나, 아직 개인적인 용무가 남아 있었다.
‘정말 내가 축복받은 자질을 타고났는지.’
내게 자질이 있는지, 없는지.
만일 존재한다면 그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드디어 확인해 볼 시간이 된 것이다.
판단에 필요한 기준은 이미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통해 숙지해 뒀다.
‘무려 교관이 제시해 준 기준이니, 공식이라 봐도 무방하겠지?’
정보의 출저가 ‘육성의 귀재’, 진태진 교관인 만큼 신뢰성은 충분하다.
그러니 남은 건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자질을 검증하기만 하면.’
앞으로의 아카데미 생활이 한결 수월해진다.
스텟이야말로 모든 초인 활동의 근간이 되는 까닭이다.
“가자고, 일한이!”
“어.”
전의를 불태우며 임강철과 함께 기숙사를 나섰다.
*
‘와, 사람 엄청 많네.’
스텟 단련실은 생각 이상으로 붐볐다.
더욱이 OT 때 보지 못한 이들도 보였다.
아무래도 1학년 전체가 사용해서 그런 듯했다.
첫날인 만큼 서먹서먹한 분위기 속에.
‘······쟤네들은.’
몇몇이 소란스러웠다.
게다가 그쪽으로 주변의 시선도 집중되어 있었다.
자연스레 확인해 보니, 익숙한 면면이 눈에 들어왔다.
“심인욱, 왜 하필 네가 같은 반인 거야!”
“나도 오윤서, 너보단 유진이가 났다.”
“아하하, 둘 다 그만해. 수업 끝나고 다 같이 다니면 되잖아. 응?”
오윤서, 심인욱, 그리고 백유진.
입학시험 때부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3인방이다.
벌써 친해진 건지, 아니면 원래 알던 사이인지, 저들끼리 대화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유진, 입학시험 이후로 스텟은 얼마나 올렸지?”
“나? 음, 민첩하고 체력으로 6스텟?”
“그럼 벌써 총합 38스텟인가.”
“인욱이 너는?”
“근력, 체력으로 4스텟 올라 31스텟. F+급을 찍었지.”
“오, 대단한데?”
쾌활한 백유진의 대답에 심인욱은 진중하게 고개를 저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역시, 네가 B반이라 다행이다. 덕분에 나도 C반에서 1등을 노릴 수 있을 테니까.”
“아하하, 그런 거야?”
백유진이 넉살 좋게 대꾸하는 순간.
“잠깐, 심인욱. 네가 1등? 꿈 깨셔! 내가 있는데 무슨!”
여태 가만히 듣고 있던 오윤서가 별안간 발끈했다.
그러자 심인욱은 눈을 흘기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조용히 해라, F급.”
“이익! 난 이번에 7스텟 올렸거든?”
“그만큼 총합이 낮아서 그런 거겠지.”
“뭐?! 마력도 쥐뿔만 한 게!”
“근력이 높으니 괜찮다. 하지만 너는 마력 스텟도 다른 입시생한테 지지 않았나? 분명 차은월······.”
“너, 한마디만 더 해 봐! 콱 그냥!”
덩치에 맞지 않게 말솜씨가 제법 현란한 심인욱.
분에 겨운 듯 얼굴이 시뻘게지는 오윤서.
한결같이 웃는 낯으로 간간이 대화에 참여하는 백유진까지.
저절로 눈이 가는 3인방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스텟 총합 20대 후반을 무시할 정도라니. 난 총합 17스텟으로도 엄청 기뻤는데.’
스텟 총합부터 스텟의 성장 폭까지.
과연 사는 세상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찰나.
‘가만, 나도 이번에 7스텟 정도 올랐으니까.’
문득 나의 성장 폭이 떠올랐다.
성장 속도만 놓고 보면 저들에게 뒤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스스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데. 그보다 지금 이런 거에 신경 쓸 때가 아니지.’
슬슬 움직이려는 찰나, 임강철이 별안간 내 소매를 잡아끌었다.
“왜.”
“일한이, 근력이다! 근력부터 하자!”
“이유는?”
“그것이 ‘남자’니까······!”
“······.”
괜히 물어봤다.
‘뭐, 상관없나.’
현재 축복받은 자질이라 추정되는 스텟은 마력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가지 스텟이다.
그러니 마력만 아니라면 딱히 확인하는 데 별 문제없을 터였다.
“그래, 가자.”
“오우!”
임강철과 함께 근력 전용 단련실로 이동하는 순간.
근처에서 소란이 일었다.
이번에도 역시 익숙한 사람이었다.
‘윤설하도 있네, 당연한 건가?’
수석 입학생이자 같은 A반 소속인 윤설하.
딱히 의식한 건 아니었으나 앞선 3인방과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시선이 갔다.
미모도 미모지만 그보다는.
“와, 윤설하 진심 오지게 예쁘다.”
“진짜 연예인급이야. 오윤서보다 더 예쁜 것 같은데?”
“후, 언젠가 반드시 말 걸어본다!”
“저렇게 차갑고 도도해 보이는 여자애한테? 크, 강진솔이! 남잔데?!”
그녀를 둘러싼 소란 때문이었다.
‘첫날부터 치근거릴 생각을 하다니, 여유 넘치네.’
딱 그 정도의 감상을 끝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윤설하, 그녀가 나와 연이 있을 것 같진 않은 까닭이었다.
근처의 근력 기구에 적당히 자리를 잡은 다음, 교관이 알려 준 판단 기준을 다시금 떠올렸다.
‘F급 기준, 1스텟을 올리는 데 평균 하루에서 이틀. 그중에서 자질이 뛰어난 이들은 대략 2, 3시간이었지.’
그러니 넉넉잡아 4시간.
그 안에 스텟이 오르는지를 보면 된다.
“해 보자고, 일한이!”
“어.”
파이팅 넘치는 임강철과 함께 나는 자질 파악을 위한 테스트를 시작했다.
···
···
···
4시간 동안 단련에 매진한 결과, 나는 깨달았다.
교관이 말해 준 판단 기준이 틀리지 않았음을 말이다.
그 결과, 정말로 스텟이 올랐다.
다만 아주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으하하! 일한이, 나 방금 근력이 올라 8스텟이 됐어! 너는 어때?!”
내가 아니라 임강철. 그의 스텟이 올랐다는 점.
그의 자질이 우수하다는 걸 파악했다는 점이다.
반면 나는?
“······어, 나는 그대로인데.”
일말의 변화조차 없다.
벌써 4시간째인데 오를 기미조차 안 보이는 것이다.
더욱이 바로 옆에 임강철이라는 비교 대상까지 있으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축복받은 자질은 개뿔······.’
내게 그런 형편 좋은 재능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른 스텟도 해 봐야······. 아니지, 의미 없으려나.’
세 가지 스텟이 전부 이상한 성장을 보였는데 근력만 꽝이다?
그럴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다. 차라리 세 개 다 축복받은 자질이 아닐 거란 생각이 현실적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오른 거지.’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먼저 간다.”
“아직 밤 10시밖에 안 됐는데?! 단련실은 24시간 이용 가능하다고!”
“힘들어.”
맨몸으로 하는 운동과 단련실에서의 단련은 여러모로 천지 차이였다.
몇 번 안 했음에도 금방 한계가 찾아오는 까닭에 꽤나 고단했다.
‘그래도 꾸준히 하면 늘긴 하겠네.’
그 점이 그나마 위안이 됐다.
그렇게 나는.
“일한이, 이건 배신이야! 일한이-!”
임강철의 만류를 뿌리치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온 즉시 침대에 몸을 내던졌다.
‘대체 스텟이 왜 올라 있는 거지? 누가 나 대신 내 몸으로 운동이라도 하나?’
내가 떠올리고도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를 지었다.
“하아, 좋다 말았네.”
한숨과 함께 베개에 머리를 묻었다.
의문은 여전히 한 가득이고, 기대했던 자질은 꽝이다.
마음이 심란해서 잠을 잘 수 있을까 싶었지만.
“······쿠울.”
거짓말처럼 잠들어 버렸다.
잠시 후.
-대상의 무의식 상태를 확인.
-대상의 주도권이 [????의 그림자]에게로 넘어갑니다!
-대상과의 동기화율을 확인.
-현재 동기화율······ [4%]
-동기화율이 현저히 낮습니다!
-[????의 그림자]가 아주 미약한 분별력이 깃든 의식에 따라 행동합니다!
-의식에 각인된 [스킬]이 활성화됐습니다!
···
···
···
어김없이 안일한의 눈꺼풀이 열렸다.
가장 먼저 그는 방의 풍경을 한번 둘러봤다.
그러고는 손목에 감긴 스마트 워치를 확인했다.
“······.”
그는 마치 현 상황을 파악하려는 양, 방 안을 두리번거렸다.
그렇게 대략 1분가량을 우두커니 서 있던 그는.
끼이익-
과감하게 기숙사를 박차고 나갔다.
*
비슷한 시각.
“후욱, 후욱! 남자는, 근력! 근력은, 남자!”
임강철은 힘찬 구호와 함께 근력 단련에 매진했다.
입학 전, 산에서 들에서 수련하던 때와는 비교조차 안 되는 속도와 강도에 매료되어 버린 것이다.
쾌감으로 가슴이 벅찬 한편, 진한 아쉬움이 몰려왔다.
‘쩝, 일한이도 함께 했으면 좋았을걸.’
입학시험 때 인정한 호적수이자, 룸메이트 안일한.
그의 부재 때문이었다.
컨디션 난조를 이유로 먼저 기숙사로 돌아간 것이다.
‘그래도 다시 돌아올 거야!’
임강철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녀석의 가슴 속에는 나를 능가하는 열정이 활화산처럼 타오르고 있으니까!’
입학시험 당시 안일한, 그의 첫인상은 비실이 그 자체였다.
하나 그의 남자다운 근력 수치를 보는 순간, 임강철은 깨달았다.
안일한, 이 녀석은 ‘진짜’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두 달도 안되는 시간 만에 근력을 1스텟에서 7스텟까지 올릴 순 없을 테니까!’
게다가 그는 입학시험 이후에도 정진한 듯했다.
그 점이 더더욱 임강철을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질 수 없지! 흐앗! 흐엣!”
유일한 호적수를 떠올리며 기합을 넣는 임강철!
한층 더 단련에 박차를 가하려는 찰나.
입구 쪽에서 문득 익숙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체를 확인한 순간 임강철의 입꼬리가 쭉 올라갔다.
“젠장, 일한이! 믿고 있었다고-!”
다름 아닌 안일한이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다시 돌아온 것이다.
임강철은 그를 향해 한달음에 다가갔다.
“왔구나, 나의 호적수!”
안일한은 다가온 그를 대답 없이 응시했다.
“······.”
반응 없는 태도, 어딘가 경직되어 있는 자세, 마지막으로 그림자처럼 일렁이는 눈빛까지.
충분히 이상함을 느낄 법도 하건만.
“음, 변함없이 무심한 걸 보니 컨디션이 괜찮나 보네!”
임강철은 터럭만큼의 의문도 없이 안일한을 맞이했다.
심지어 그는.
“일한이, 어떤 스텟을 단련할 거지?!”
정말로 아무런 이상도 느끼지 못했는지, 되레 질문을 던지기까지 했다.
임강철의 물음에 안일한은 말없이 오른손을 들었다.
스윽-
그의 손가락 끝이 민첩 전용 단련실을 가리켰다.
임강철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민첩이라고? 때마침 근력을 15세트 끝낸 참이었는데, 바로 가지!”
끄덕-
짧게 고개를 끄덕이는 안일한.
그와 함께 단숨에 민첩 단련실을 향했다.
저녁 11시가 다 되어 가는 만큼 단련실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임강철은 곧장 안일한과 나란히 자리를 잡으며 힘차게 외쳤다.
“자, 민첩도 달려 볼까?”
“······.”
“오, 그래! 승부를 하는 건 어때?! 먼저 떨어져나가는 사람이 지는 거지!”
“······.”
“역시 응할 줄 알았어! 그럼 가 보자고!”
“······.”
임강철은 대답조차 없는 안일한과 함께 불꽃 튀는 경쟁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네 시간 후, 새벽 3시 무렵.
“여, 역시 내 호적수! 내가 졌······.”
털썩-
임강철의 거체가 허물어졌다.
마치 기계와도 같은 안일한의 페이스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안일한은 땀이 비 오듯 흐를 뿐, 그 자신과는 달리 멀쩡해 보였다.
‘역시 이 녀석은 진짜다······!’
감탄과 더불어 임강철은 속으로 다짐했다.
‘내일 꼭 지치지 않는 강철 체력의 비결을 물어보자!’
그 생각을 끝으로.
“······드르렁.”
임강철은 까무룩 잠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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