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혹시 나, 재능충인 거 아니야?
5 혹시 나, 재능충인 거 아니야?
“근력 테스트를 마치고 온 입시생들을 위해 다시 한번 민첩 스텟 측정 방법을 설명하겠다, 잘 들어라!”
민첩을 측정하기 위해 이동하자, 때마침 담당 교관이 설명을 시작했다.
“다들 알다시피 민첩은 반응 속도, 동체 시력과 연관된 스텟이다. 측정 또한 두 요소를 중점으로 본다. 먼저 이곳을 주목해라.”
교관이 가리키는 곳에는 일종의 세트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실내 스크린 야구장’을 연상케 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준비된 글러브를 착용하고, 저기 앞쪽에 있는 기계가 쏘는 공을 잡으면 된다.”
이를테면 캐치볼이라고 할까?
방식도 비슷했다.
공을 쏘는 기계가 민첩 스텟에 따라 단계별로 책정된 속도로 공을 쏜다.
한 단계당 3회.
공 세 개를 다 잡아야만 속도의 단계를 올릴 수 있고, 측정 결과로 나오는 민첩 스텟도 올라갔다.
한 번이라도 놓치는 순간 측정은 끝나고, 그전에 성공한 단계로 스텟이 매겨지는 식이었다.
‘일단 방식은 어렵지는 않은데.’
앞선 응시생들의 측정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11번 응시생, 초기 1, 최종 민첩 1스텟이다.”
“36번 응시생, 초기 2 최종 2스텟이군.”
“79번 응시생, 초기 1 최종 1스텟이다.”
근력 측정 때와 비슷하게 처참한 결과가 주를 이었다.
초기 스텟과 최종 결과 간의 차이는 되레 근력 때보다 심했다.
차이가 거의 없다시피 나오는 것이다.
원인은 명확했다.
‘역시 민첩 스텟인가.’
반응 속도와 동체 시력 등과 관련된 민첩 스텟.
관여하는 능력의 특수성 때문에 민간인의 신분으로는 단련 자체가 어려웠다.
눈앞의 민첩 측정만을 위해 마련된 전용 세트장이 바로 그 증거였다.
‘괜히 어렵다는 게 아니었네, 쩝.’
물론 초기 스텟이나, 성장 속도에 관한 자질을 타고난 이들은 조금 달랐다.
이를테면.
“98번 임강철, 초기 민첩 3스텟, 최종 5스텟이다!”
초기 3스텟, 최종 5스텟.
앞선 이들과는 달리 그는 2스텟이나 올린 것이다.
그럼에도 임강철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글러브를 빼고 세트장을 빠져나왔다.
이내 나를 슬쩍 돌아보더니.
척-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에는 마치, ‘좋은 승부, 기대하지!’ 같은 의미가 담긴 눈빛이었다.
애써 외면하는 순간.
“99번! 위치로!”
교관이 나를 호출했다.
“네. 안일한입니다.”
“안일한이라. 초기 민첩은 1스텟이군.”
근력 측정 때와는 살짝 다른 반응이다.
아무래도 민첩은 나처럼 초기 스텟이 밑바닥인 응시생들이 더러 있어서 그런 듯했다.
“그럼 1단계부터 시작하지.”
“네. 준비됐습니다.”
나는 걱정을 잠시 미뤄 두기로 했다.
‘어차피 민첩과 마력은 처음부터 기대도 안 했으니까.’
준비조차 안 했으니, 결과를 기대하는 건 욕심이다.
게다가 근력이 예상을 박살 내는 수준의 결과가 나오기도 했고.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측정에 임했다.
“그럼 시작!”
쉬익- 파팡!
1단계는 당연히 클리어했다.
바닥일지언정 민첩도 1스텟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2단계부터가 진짜다.
“준비됐으면, 2단계 시작하지.”
“네.”
막상 결과가 처참하면 서글플 것 같아 괜히 떨렸다.
하지만 이게 웬걸?
쉬익- 팡! 쉬익- 팡! 쉬익– 팡!
은근히 할 만하다?
손쉽게 2단계를 해치운 것이다.
‘······어?’
예상치 못한 나 자신의 활약에 당혹스러울 때.
“다음, 3단계!”
3단계가 시작됐다.
2단계는 그렇다 쳐도, 3단계는 진짜 모르겠다.
후웅-! 파앙! 팡! 파아앙!
······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다 잡았다.
뭐지, 나?
“다음은 4단계다.”
“네.”
얼떨떨한 표정으로 답하며 자세를 잡았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스멀스멀 차올랐으나.
휘잉-!
4단계 속도의 공은 엄청난 기세로 내 오른쪽 어깨를 스쳐 갔다.
첫 구부터 실패한 것이다.
“99번, 안일한. 민첩 초기 스텟 1, 최종 결과는 3스텟이다.”
“······감사합니다.”
초기 민첩 1스텟, 최종 결과 3스텟.
이번에도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다.
하나 근력과는 근본적으로 의미가 달랐다.
근력은 체력과 더불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반면.
‘민첩은 진짜 대비조차 한 적 없는데······?’
민첩은 아예 처음부터 포기했던 스텟이니까.
대체 무슨 조화인 거지?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의문 때문일까.
“너도 2스텟 상승했나? 역시 넌 나의 호적수······.”
임강철의 말이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곧장 체력 테스트로 이동했다.
“체력 테스트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지. 명칭은 체력이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마력 저항력과 내구성을 측정하는 테스트다.”
설명과 함께 교관은 근처에 준비된 탁상을 가리켰다.
“저쪽에 있는 특수 제작 조끼를 입은 채로 지칠 때까지 25m 좌우 뛰기를 하면 된다.”
교관이 두 번째로 가리키는 곳에는 대략 25m쯤 되는 간격으로 달리기 영역이 표시되어 있었다.
“1분당 체력 1스텟으로 간주하고, 초 단위 기록은 포함하지 않는다.”
1분 30초가 됐든, 1분 45초가 됐든.
초 단위는 생략하고, 분 단위로 스텟이 기록된다는 뜻이었다.
그다지 어려운 개념은 아닌 까닭에 바로 이해했다.
그러고는 설레는 마음으로 차례를 기다렸다.
‘대비조차 하지 않은 민첩이 오르고, 2스텟만 올라도 소원이 없겠다 여겼던 근력이 6스텟이나 올랐어.’
그렇다면 과연 근력과 더불어 단련에 올인한 체력은 어떨까.
‘자, 과연.’
체력 스텟은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대 반, 떨림 반으로 기다리고 있자.
“다음, 99번 응시생!”
내 차례가 다가왔다.
“네, 안일한입니다.”
“그래, 초기 체력은 2스텟이군. 그럼 시작해라.”
나는 교관이 건네는 조끼를 걸치고는 곧바로 뜀박질을 시작했다.
체력은 초기 스텟이 2스텟인 만큼, 첫 2분은 가뿐히 넘겼다.
그렇게 3분, 4분, 5분이 넘어가자 호흡이 제법 거칠어졌다.
“허억, 허억, 허억!”
이윽고 도저히 못 움직이겠다 싶을 무렵, 다리가 자연스럽게 멈춰 섰다.
그 순간 교관이 소리쳤다.
“99번 안일한, 6분 49초로 최종 체력 6스텟이다.”
초기 체력 2스텟, 최종 결과 6스텟.
듣는 순간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근력만큼은 아니지만, 체력 또한 예상을 아득히 상회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쯤 되니 얼마 전까진 감히 상상조차 못 하던 생각까지 절로 떠올랐다.
‘혹시 나, 재능충인 거 아니야?’
사실 나는 스텟 성장에 관해 자질을 타고난 게 아닐까.
새로운 가능성에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다.
동시에 고개를 돌려 단상의 끝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스텟 측정의 마지막 종목.
마력 스텟을 위한 ‘마력 측정기’가 자리했다.
‘남은 스텟은 마력인가.’
본래대로라면 마력은 민첩 이상으로 기대하지 않았을 스텟이다.
다름 아닌 민첩과는 또 다른 마력만의 특수성, ‘마나’ 때문이었다.
[마나]
초인 시대의 도래와 함께 발견된 새로운 원소.
마나를 바탕으로 한 힘, [마력]이야말로 초인들의 초월적인 힘과 이능 발현의 원천이었다.
그런 마력이 성장하는 조건에는 총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방법은 타고난 자질.’
자질을 타고난 이들은 과장 조금 보태서 숨만 쉬어도 마력 스텟이 오른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 정도 수준의 자질을 타고난 이들은 지극히 드물었다.
‘두 번째는 스킬.’
[스킬]
[마나 심법] 내지는 [마나 연공법]과 같은 스킬로부터 파생된 ‘마나 호흡법’을 활용한 단련이었다.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지만, 이는 결코 민간인의 신분으론 접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길드나 가문, 마탑 등과 같은 배경이 있거나, 아카데미에서 지원을 받거나.
둘 중 하나라도 해당되어야만 가능한 선택지였다.
‘하지만 나에겐 둘 다 해당 사항이 없지.’
아니, 정확히는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타고난 자질’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이 생겼으니까.
때마침 마력 테스트를 맡은 교관이 설명을 시작했다.
“마력 측정은 간단하다! 여기 보이는 구체에 손을 올리면, 옆쪽에 계기판에 스텟이 뜬다. 질문은 없겠지?”
보이는 것만큼이나 간단한 측정 방식이었다.
그래서일까, 측정 또한 앞선 스텟들보다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 결과.
“다음, 99번!”
어느새 내 차례가 다가왔다.
“99번 응시생인가? 이름은?”
“안일한입니다.”
“그래, 초기 마력은 1스텟이군. 측정하도록.”
“넵.”
조심스럽게 오른손을 올려 구체를 감싸 쥐었다.
‘과연 어떻게 나올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기를 수 초.
삐빅-!
이내 측정이 끝났음을 알리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측정 결과는 1스텟, 최종 마력 1스텟이다.”
“······네.”
초기 마력 1스텟, 최종 마력 1스텟.
이변은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든든한 배경도 없고, 따로 단련한 적도 없으니까.’
따지고 보면 앞선 스텟들의 성장 폭이 이상한 거다.
하지만.
‘당연한 결과이기는 한데······.’
여전히 의문은 남았다.
일단 내게 마력에 관한 자질은 없는 건 알겠다.
그렇다면 앞선 스텟들의 결과는 대체 뭘까.
‘세 가지 스텟에 관한 자질만 타고난 걸까?’
참으로 이상하다.
의문에 한창 골몰하고 있을 때.
“좋은 승부였다! 다음에 만날 땐 입학식이겠군! 아카데미에서도 멋진 경쟁 펼쳐 보자!”
임강철이 불쑥 손을 내밀었다.
‘승부? 나랑?’
그런 기억은 없지만, 일단 손을 맞잡으며 속으로 측정 결과를 정리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합격은 충분하겠지?’
근력 7스텟, 민첩 3스텟, 체력 6스텟에 마력 1스텟.
총합 17스텟.
작년의 커트라인을 감안하면 통과는 이미 떼놓은 당상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일까.
“어, 그래.”
기꺼이 그와 악수를 했다.
이후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대강당을 빠져나왔다.
···
···
···
인파는 시험 시작 전에 비해 상당히 줄어 있었다.
덕분에 금방 아버지를 찾을 수 있었다.
“아버지.”
“잘 봤냐?”
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일순 말문이 막혔다.
‘물론 결과가 잘 나온 게 맞지만.’
그걸 내 힘으로 이뤄낸 건지는 잘 모르겠다.
때문에 묘한 기색으로 답했다.
“······네, 일단은.”
“붙을 것 같냐?”
“네, 이제 필기하고 면접이 남아 있지만요.”
“그래, 나머지도 준비 잘 해 봐라. 배고프다. 가자.”
희소식에도 변함없이 건조한 반응을 보이는 아버지.
나 역시 아랑곳하지 않고는 함께 중국집으로 향했다.
*
입학시험으로부터 일주일 후.
나는 예상대로 실기 합격 메일을 받았다.
이어서 필기도 제법 준수하게 쳤고, 면접까지 무난하게 치렀다.
그 결과.
발신인 [국립 초인 아카데미]
-축하합니다, 귀하는 제51회······
1월 말엔 최종 합격 메일까지 받을 수 있었다.
“역시나.”
어느 정도 예상했음에도 내심 기뻤다.
그토록 꿈꿔 왔던 초인 아카데미 생활이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다.
더욱이 아카데미에 가면 입학시험 이후 줄곧 내게 남아 있던 의문도 풀 수 있다.
‘진정 내게 자질이 있는지, 없는지.’
아카데미의 전문적인 설비와 시스템이라면 충분히 파악이 가능할 터.
때문에 가슴이 뛰었다.
“입학식은 2월 말이니까.”
앞으로 대략 한 달.
달력의 입학식 날짜를 동그라미로 표시했다.
‘이제 곧 시작이다.’
그러고는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들었다.
완전히 잠이 든 순간.
-대상의 무의식 상태를 확인.
-대상의 주도권이 [????의 그림자]에게로 넘어갑니다!
-대상과의 동기화율을 확인.
-현재 동기화율······ [1%]
-동기화율이 현저히 낮습니다!
-[????의 그림자]가 아주 미약한 분별력이 깃든 의식으로 행동에 임하게 됩니다!
-의식에 각인된 [스킬]이 활성화됐습니다!
···
···
···
안일한의 두 눈이 번뜩 떠졌다.
그는 이내 고개를 내려 제 몸을 바라봤다.
그림자처럼 일렁이는 눈빛으로 전신을 살피고, 곳곳을 만져 보더니.
“······.”
불만스러운 듯 미간을 찡그렸다.
이내 고개를 돌려 책상 위를.
달력에 표시된 동그라미를 한동안 바라봤다.
마치 셈을 하듯 날짜를 체크하고, 자연스럽게 운동에 임했다.
스윽- 스윽-
온갖 종류의 운동으로 신체를 단련하길 4시간.
안일한은 문득 운동을 멈추고는 자세를 바로 했다.
비 오듯 흐르는 땀을 닦을 생각도 없이 그는.
털썩-
별안간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내 ‘호흡’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들숨과 날숨. 동시에 오감을 생생하게 일깨웠다.
깊고 잔잔한 숨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새어 나오는 가운데.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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