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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185화 (185/185)

185화

늦은 저녁의 워싱턴 D.C, 버지니아주 알링턴, 펜타곤.

여러 번의 검문검색을 거친 로버트가 방문증을 받은 뒤, 기다리고 있던 병사의 안내를 받아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국방부 내에 위치한 한 회의실.

이번에 로버트의 산하에서 구성된 TF-288과 TF-290 그리고 강태가 포함된 TF-300의 훈련 브리핑을 듣기 위한 방문이었는데, 움직이고 있던 로버트의 얼굴은 좋지 못했다.

좋을 수가 없었다.

방금 막 대만 전쟁의 가능성에 대한 백악관 공식 브리핑이 있었고, 그 와중에 로버트의 휘하의 대원 여럿이 군사시설에 입소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강태를 비롯해서 전 대외협력국 요원으로 다른 나라에서 활약했던 정보원들까지.

지금은 모두 군사시설에 도착해서 짐까지 푼 상황이었다.

한데, 그 와중에 로버트는 아는 게 없었다.

위에서부터 명령이 내려왔고, 시행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뒤늦게서야 브리핑을 받는 셈.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병사의 발이 한 문 앞에서 멈췄다.

“여깁니다.”

짧게 말한 그가 노크한 뒤,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가서 경례를 했다.

로버트가 고개를 기울여 안을 보다가 주춤했다.

‘……?’

국방부 장관인 토머스 그랜든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례를 마치고 병사가 자리를 떠나자, 정복을 입은 토머스의 모습이 온전하게 드러났다.

“어서 오시오, 엔더슨 씨. 여기 앉으면 됩니다.”

이어서 태연하게 자리를 안내하는데, 묵례를 하고 들어서던 로버트의 표정은 전보다 더 딱딱해졌다.

국방부 장관이 불편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지금 마주한 토머스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사람이었고, 그런 만큼 쉽게 만나기 어려운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휘하 실무진은 자주 보겠지만, 바깥 사람인 로버트는 달랐다.

정말 중요한 일이 있거나 의무적으로, 혹은 필요에 의해 만나는 게 아니라면 쉬이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한데, 그런 국방부 장관을 일주일 새에 또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단독으로 그와 대면하는 게 아니었다.

정복을 입은 장성이 여럿 있었는데, 그 틈에 검은색 정장을 입은 중장년의 사내들도 있었다.

당연하게도 단순한 공무원처럼 보이진 않았다.

체격이나 시선, 앉아 있는 자세까지 모두 현장 요원의 분위기가 풍겼기 때문이었다.

로버트 역시 현장에서 뛰었던 인물인만큼, 그런 이들을 모를 수가 없었다.

위험 임무를 수행하는 공작조거나 그들을 지원하는 팀일 터.

그 끝에 결론이 나왔다.

‘보통 일이 아니겠군…….’

브리핑 전부터 막무가내로 군사시설에 보낼 때도 그랬으나, 지금 더더욱 확신하고 있었다.

폭풍의 소용돌이 한복판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로버트가 자리에 앉자, 가장 상석에 앉은 토머스가 태연하게 참석자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장관 비서실의 보좌관을 시작으로 JSOC(Joint Special Operations Command: 합동특수작전사령부)와 UCC(Unified Combatant Command: 통합작전사령부)를 비롯한 주요 시설에서 온 장성들.

소속과 관등 성명이 쭈욱 나열되는 가운데, 말의 형식이 중간에 바뀌었다.

바로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었다.

로버트가 현장 요원들이라고 예상했던 이들이었는데, 들려온 짧은 말에 멈칫하고 말았다.

“이쪽은 시리아에서 온 맥입니다.”

출발지와 짧은 이름 하나.

그러나 로버트는 그 안에 들어 있는 뜻을 모두 알 수 있었다.

시리아는 미국의 고문 시설이 있기로 유명한 나라이면서, 또한 지안드로가 수용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그와 관련된 말을 무언가 할 터.

이를 염두에 두는 사이, 생각보다 빠르게 용건이 나왔다.

“맥은 시간이 없으니까, 필요한 말을 하고 떠나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장관님.”

그렇게 답한 뒤, 맥이라고 불린 사내가 로버트를 향해 곧장 용건부터 꺼냈다.

예상했듯 지안드로와 관련된 일이었다.

“현재까지 가능한 방법은 전부 동원해서 심문을 진행 중인데, 수감자가 며칠 전부터 새로운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

무슨 말을 하려나 싶을 무렵, 빠르게 말이 이어졌다.

“그 아시안을 찾더군요.”

“……?!”

아시안이라는 단어에 로버트가 움찔하고 말았다.

지안드로와 관련된 건 단 한 명이고, 그게 바로 강태였기 때문이었다.

생각도 못 했었다.

지안드로가 잡혀간 이후로 할 일을 하나 마무리했다고 생각했었으니까.

한데, 취조는 아직도 진행 중이었고, 심지어 지안드로는 강태를 찾고 있었다.

로버트의 입이 빠르게 열렸다.

“놈이 그를 찾는 이유는 확인했습니까?”

“그걸 말하지 않아서 며칠 간 확인하다가 오게 된 겁니다.”

“그럼 지금도 모른다는 겁니까?”

“네, 모릅니다.”

“그럼 굳이 그를 만나야 합니까? 중요한 훈련 중이라 말이지요.”

“물론 무의미할 수도 있습니다만, 적어도 그가 아시안을 부른 이유는 알게 될 겁니다. 지난 5일 동안 총 100회 이상, 반복해서 아시안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근 한 달 만에 나온 새로운 반응이라, 저희로서는 부득이하게 찾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답을 들은 로버트가 얕게 숨을 내쉬었다.

‘목적이 뭔지 도저히 모르겠군…….’

그러다가 염려를 담아 물었다.

“그럼 그를 만나게 된다면, 위험하진 않겠습니까?”

“하하, 그럴 리가요. 지난 한 달 동안 그의 내장 속까지 빠짐없이 모두 들여다봤습니다. 위험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방문해야 하는 특정한 날짜나 시간이 있습니까?”

“없습니다만, 가능한 빨리 오면 좋습니다. 아시다시피, 점점 쇠약해지기 때문에 늦으면 기회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쇠약해졌다는 건…….”

“더 이상 추가적인 심문이 어려울 정도죠. 그래서 수감자가 아시안을 부르는 이유도 확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로버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리아라면 악독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중요한 심문을 할 때는 요르단으로, 제거할 때는 이집트로, 고문을 해야 한다면 시리아로 가라는 암묵적인 룰이 오래전부터 구전되어 왔을 정도.

아마도 지안드로의 몸속을 말 그대로 들여다봤을지도 몰랐다.

정말 심문이 어려울 정도로.

“그럼 최대한 빨리 가 봐야 되겠군요. 다만 확답은 못 하고,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엔더슨 씨. 잘 부탁합니다.”

그렇게 회의실 테이블 자리가 금세 빈 뒤.

브리핑이 시작됐는데, 로버트의 굳은 표정은 당최 펴지질 않았다.

오히려 점점 어두워졌다.

입장할 때 마주한 토머스를 봤고, 심지어 시리아에서 온 인물을 만났는데, 이어지는 브리핑도 가볍지 않은 탓이었다.

‘침투라…….’

보안 때문에 일부가 비공개 처리됐으나, 필요한 훈련 내용은 모두 언급되고 있었다.

건물 침투, 타깃 확보 혹은 사살 그리고 퇴출.

문제는 그 지역에서 침투한 델타포스나 지원 팀 외의 다른 도움을 받기가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홍콩 때와 비슷했다.

문제는 홍콩 때보다 훨씬 많은, 그것도 정규군인 델타포스가 투입된다는 사실이었다.

장소와 지명, 건물이 정확히 나오진 않았으나, 대만 전쟁과 피칼에 대해 들은 만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장소나 타깃 모두 결코 처리하기 쉽지 않을 거라고.

‘어쩌면 홍콩보다 더 힘들겠는데, 괜찮으려나…….’

로버트가 반사적으로 강태를 떠올렸다.

원래 목표였던 노먼 존스를 놓쳤고, 그 과정에서 교전을 했었는데, 강태가 입었던 새로운 전신 방탄복 여기저기에 피탄된 흔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탄이 부딪혀서 박힌 쇳조각과 콘크리트 돌조각 따위가 방탄복 곳곳에 박혀 있었다.

만약 착용하지 않았다면, 그 부위를 꿰멨어야 했을 터.

다행히 가슴팍에 제대로 박힌 총알 같은 건 없었으나, 그렇다고 자잘한 상처를 무시할 순 없었다.

상처가 덧나 염증이 나서 그런 게 아니었다.

운이 없게 근육이나 신경이 손상되어 큰 수술을 하거나 후유증으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바로 은퇴하게 될 터.

그런 이유로 부위별로 착용 가능한 전신 방탄복을 지급했었다.

공관에서 사는 것도 단순히 기밀 때문만이 아니라, 혹시 모를 공격을 예방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과하다고 볼 순 있으나,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미국 내에 있는 흑색 요원이나 각종 공작 팀, 특수부대 대원들은 많지만, 강태는 유일하기 때문이었다.

근거리에서는 델타포스 대원 16명으로 이뤄진 편제보다 강력했고, 장거리에서는 박격포나 전차 같은 무기보다도 효율적이었다.

아무도 비교할 수 없는 존재.

불리는 이름조차 없이, 사무실이 바뀌는 로버트의 기밀 조직이 그래서 가치 있었다.

모든 게 강태 위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번에 신설한 TF-288과 TF-290의 역할 역시 강태의 팀인 TF-300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형식상 현장 지원을 목표로 했으나, 결국에는 강태를 돕기 위해서였다.

흡사 아이를 물가에 내놓은 아빠처럼 로버트가 강태를 떠올리면서 임시로 만들어진 야외 훈련장의 가건물을 보다가 멈칫했다.

‘저건 군사시설과는 다른…….’

그의 눈썰미가 예리하게 빛났다.

“병원?”

격실의 모양과 배치, 복도, 창문 등의 위치를 통해 추론해 낸 것이었다.

동시에 토머스가 입을 열었다.

“오, 알아보셨군. 역시, 현장에 있었다더니, 그 감각이 여전한 모양이오.”

“…정말 병원에 침투하는 겁니까?”

로버트가 믿기지 않는 듯 말했다.

군사시설이 아니라, 병원에서 작전하는 건 그의 40여 년 인생에서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비인도적이었다.

타깃이 있다고 해도 함부로 할 순 없었다.

한데 거기에 델타포스 수십 명과 공작조 십수 명을 집어넣다니?

이해를 못 한 가운데 토머스의 입이 열렸다.

“그래서 훈련 내용이 좀 까다롭소. 훈련 기간도 길게 잡았고.”

“그래도 그렇지, 병원에는…….”

“다행히 민간인은 없소.”

“군 병원이라는 소립니까?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로버트가 재차 반응하자, 토머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목소리를 냈다.

“거긴 그냥 병원이 아니오. 온갖 빌어먹을 개새끼들을 치료해 주고, 정 안 되면 시체를 갖고 노는 곳이지.”

“……!”

로버트의 눈이 커지는 순간, 말이 덧붙었다.

“당신도 잘 알잖소? 현장 생활하다 보면 말도 안 되는 곳들이 있다는걸.”

“…네.”

로버트가 짧게 답했다.

그의 말마따나 믿기지 않는 시설 같은 게 종종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 적은 드물지만, 들은 게 적잖았다.

이에 로버트가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이, 토머스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가장 중요한 건… 거기에 반드시 잡아야 할 개새끼가 있고, 난 그 개새끼를 죽이기 위해서는 지옥까지 갈 거라는 사실입니다.”

흡사 불독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 줄 무렵.

로버트의 입이 작게 열렸다.

“…혹시 노먼 존스입니까?”

그러면서 토머스를 바라봤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대신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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