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184화 (184/185)

184화

뚝.

전화를 끊은 로버트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제이크에게 델타포스와의 훈련을 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자신도 정확히 어떤 훈련을 하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위에서 내린 지시를 이행했을 따름이었다.

물론 단순히 알지 못해서 표정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본질적인 건 따로 있었다.

이유 혹은 원인.

당연히 이 역시 알지 못하지만, 로버트는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이 주관했던 안보 회의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이 언급됐고, 그 안에 피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이 감시 중이던 인물과 피칼이 접촉했었다.

바로 중앙통일전선공작부를 비롯한 여러 첩보 기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관리하는 상무위원 왕칭.

중국의 2인자, 혹은 3인자 소리를 듣는 거물이었다.

주석의 친위대가 되어 국가를 굴리는 인물이었는데, 그런 사람과 피칼이 만난 것이었다.

그 생각에 로버트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러니 잡기가 어려웠지, 제기랄…….’

중국의 2인자, 혹은 3인자와 만날 정도라면 어마어마한 힘을 갖고 있어야 했다.

그게 권력이든, 재력이든, 다른 무엇이든.

아니면 만날 수가 없었다.

중국의 최고 권력자인 주석 바로 아래에 있는 상무위원은 전 세계의 유력가들이 만나기 위해 줄 설 정도의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미국도 그런 이유로 감시 중이었고.

그러니 일개 특수부대 출신인 세르게이나 지안드로가 죽고 다쳐 나가는 와중에도 피칼은 멀쩡하게 살아서 수작을 벌일 만했었다.

물론 피칼과 왕칭이 접촉한 이유, 혹은 이후로 벌어진 상황에 대해 듣진 못했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둘이 모종의 이유로 만났고, 그게 대만 전쟁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

그 생각 끝에 로버트는 훈련의 이유를 떠올렸다.

바로 피칼과 관련된 고위험 작전.

그것도 평소 해 왔던 것보다 더 어려울 게 분명했다.

특작 TF(Task Force)를 총괄하고, 피칼과 관련된 것들을 모두 파악하는 로버트조차 이 훈련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자신보다 훨씬 더 윗선에서 작전이 결정됐을 것이었다.

최소 장관급에서 대통령까지.

그 생각을 하던 로버트의 눈가에 얕은 주름이 잡혔다.

‘이러다 은퇴하기 전에 걱정으로 앓아눕게 생겼군…….’

날이 갈수록 나아지는 게 없었다.

오히려 심해지고 있었다.

세르게이가 죽고, 지안드로가 생포되긴 했으나,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배후에 있던 피칼은 여전히 암약하고 있으며, 심지어 중국과 대만 전쟁에 끼어들었고, 그 한복판에 TF가 들어가기 직전이었으니까.

“하…….”

한숨을 뱉은 그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를 무렵.

인터폰 벨이 울리고, 동시에 켜 두었던 집무용 컴퓨터에서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음을 알렸다.

띠리리리─

띠링!

로버트가 시선을 돌리자, 이내 그의 개인 핸드폰까지 알림음을 내고 있었다.

“……?”

주춤했던 그가 마우스를 잡았다가 멈칫하고 말았다.

“아, 이런…….”

백악관의 브리핑과 함께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바로 중국의 대만 침공에 대한 발표.

그것도 단순히 경고하는 수준이 아니라, 확신하고 하는 발표였다.

중국이 대만을 흡수 통일하려고 하며, 시작은 한 달 안에 이뤄지고, 그 과정에서 테러리스트와도 결탁했었다며.

테러리스트는 피칼이겠지만, 그 이름까지 언급되진 않았다.

얼굴도, 이름도 정확히 모르는 인물을 테러리스트 주범이라고 공개할 순 없었으니까.

그리고 중요한 건 중국의 대만 침공이 정말 코앞에 도달했다는 사실이었다.

이를 보고 있던 로버트의 눈 밑이 떨렸다.

당황하고 놀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이미 설명을 들어 알고 있었다.

회의 석상에서 관련한 가이드라인이 언급됐었고, 행동 지침까지 내려왔기 때문이었다.

다만, 공식 발표도 듣는 것과는 차이가 컸다.

감정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입술을 달싹이던 로버트가 욕설을 흘려 냈다.

“빌어먹을 중국 놈들 같으니…….”

* * *

저녁 무렵.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차에서 눈 좀 붙이자, 딱 봐도 군사 구역으로 보이는 게 보였다.

가로등 빛을 받아 그림자가 진 높은 담벼락과 그 위에 설치된 가시철조망 그리고 정문 초소와 옆에 선 위병까지.

“여긴 또 어디지? 처음 보는 곳인데. 이건 무슨 시설이지? 응?”

호세가 앞 좌석을 향해 물었다.

우리를 데리러 온 운전병에게 한 말이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호세도 그런 반응에 어깨만 으쓱하고 말았다.

이미 버지니아주의 공관에서 출발할 때부터 아무 말도 없었고, 기계처럼 운전만 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대답이 없군, 빈틈이 없는 건지… 아니면 긴장한 건가? 하… 마커스가 없으니 적적하군. 젠장… 아! 이봐, 당신 혹시 마커스 알아? 몰라?”

호세가 그렇게 몇 마디를 더 떠들면서 운전병과 대화를 시도하려던 무렵.

어느새 차가 검문을 통과했고,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길을 따라 달리다가 천천히 멈추었는데, 눈앞에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호세가 말과 함께 반갑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알 자마쉬에서부터, 최근에는 남미에서도 현장을 총괄했던 론 마이어스가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 론, 여기서 이렇게 보니 반갑군요. 아… 어딘지도 모르지만. 흐흐, 어쨌든, 얼굴 본 건 오랜만이군요.”

“마커스가 빠졌다길래 우울할 줄 알았더니… 여전하군, 호세.”

“그놈 빠진 건 아쉽지만, 어쩌겠습니까? 죽은 것도 아니고, 멀쩡하게 살아서 훈련 빠지고 쉬고 있을 텐데.”

“그럼 다행이군.”

“참, 그나저나 여긴 어딥니까? 자꾸 물어보는데 알려 주질 않더군요.”

“훈련 교장이지. 나도 그 이상은 알지 못해.”

“오, 그럼 비밀 시설인가 보군요.”

“그런 셈이지.”

그렇게 호세와 인사를 마친 론이 내게도 손을 내밀며 말을 붙였다.

“으음, 얼굴은 나쁘지 않군. 후유증이나 부상은 없고, 여전히 건강하지?”

“그럼요.”

“다행이군. 미리 와서 지휘관하고 얘기를 했는데… 훈련이 좀 고될 것 같아서 말이지.”

그 말에 다시금호세가 끼어들어서 무슨 훈련이냐고 말할 무렵.

이어서 뒤차가 멈추면서 레이첼과 해리, 제이크까지 내렸고, 론이 그들에게 다가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다들 괜찮아 보이니 다행이군. 일단 이쪽으로 가지.”

그렇게 론이 우리를 사무실로 안내했고, 금세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바로 욕설이 들려왔다.

그것도 동유럽 특유의 악센트가 들어간 말투.

“이 빌어먹을 의자에서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안드레이였다.

대기석 같은 곳에서 앉아 있던 그가 듬직한 체구를 일으키며 말하기에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야, 안드레이.”

“리! 이 뻔뻔한 007 같은 새끼. 그래, 네가 특수 요원일 줄 알았지. 아니면 말이 안 되거든.”

그러면서 내 어깨를 꽉 쥔 그가 돌연 목소리를 깔았다.

“잘 들어, 리.”

“……?”

“나도 그 좆같은 계약서에 서명했어. 그러니까 이제 사실대로 얘기해 주길 바라.”

“뭘?”

무슨 소린가 싶어서 묻는데, 안드레이가 타오르는 듯한 시선으로 날 보면서 물었다.

“네 존나 대단한 그 사격술, 어떻게 한 거야? 그거 약물 실험이지? 그럼 나도 그 주사 한 대 맞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맞을 수 있는 거야?”

“뭐라고? 주사? 흐하하.”

웃음이 절로 나는 말에 고개를 젓다가 대꾸했다.

“아쉽게도 없어.”

“하… 씨발, 왠지 계약서 서명하던 놈이 날 비웃더니…….”

“흐흐흐, 설마 주사 좀 놔 달라고 했어?”

“뭐, 비슷했지.”

“대신 의사들이 검사한다고 내 피를 많이 뽑아가긴 했는데, 그걸로 뭘 만들… 순 있나?”

갑자기 든 생각이 말로 이어지자, 흐릿해지던 안드레이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오오… 그럼 그걸로 뭘 만드는 건가?”

“그러게. 그건 모르겠는데.”

“씨발, 좋았어. 연구가 된다면, 주사는 내가 제일 먼저 맞겠어.”

희망을 품은 기쁜 대꾸를 듣는 사이.

뒤에서 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약쟁이의 대화 같군.”

“아… 론, 미안합니다. 리와의 대화가 중요한 거라, 인사가 늦었군요.”

안드레이가 그렇게 답하면서 뒤늦은 인사를 했다.

호세, 레이첼, 해리 그리고 제이크까지.

“여전하군, 그 괴물 같은 모습은. 당신은 여전히 괴물이겠지?”

“내가 팀장인 걸 못 들었나?”

“아, 들었지. 팀장, 앞으로 잘 부탁해. 아니, 내가 알아서 조심하도록 하지. 남은 어깨마저 부서질 순 없으니까.”

그 말에 제이크가 짧게 고갯짓만 하는 사이.

옆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사무실 복도로 사람 여럿이 오고 있었는데, 개중 몇이 우리 쪽을 보고서는 주춤했다.

왜 그런가 했는데, 다가오는 이들의 면면을 보고서 금세 깨달았다.

“델타?”

어느새 옆에 온 레이첼도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네요.”

눈에 보이는 외관부터 우리와 동류로 보였다.

힘 좀 쓸 것 같은 탄탄해 보이는 체구에 워커와 카고 바지, 밀러터리 무늬가 있는 기능성 티셔츠까지.

델타포스가 아니더라도 1, 2티어에 이름을 올릴 만한 군인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처음에 한 생각이 정확했다.

델타포스였다.

다가오던 이들의 목적이 우리가 아닌, 제이크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이크! 이게 얼마 만이야?!”

아주 반가운 말투였는데, 이를 맞이하는 제이크의 표정도 드물게 밝아 보였다.

얼굴에 잔잔한 미소까지 띤 모습.

“오랜만이군. 잘 지냈나?”

“보다시피.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군, 간간이 소식을 듣긴 했는데…….”

그러면서 다들 제이크에게 인사를 건넸다.

중간에 모르는 사람도 있었으나, 제이크의 얘기를 들어 본 듯 반응했다.

무슨 일화를 들었다는 둥.

“역시…….”

자그맣게 감탄이 나왔다.

이어서 여기서는 대접깨나 받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무렵.

“이봐요. 당신 혹시…….”

누군가 내게 말을 붙였고, 그를 돌아봤다.

“맞죠? 네바다 모임에서 모의 교전 했던…….”

“아! 맞습니다.”

무슨 말이 이어지나 기다리다가 주춤하며 반응했다.

이름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얼굴이 어렴풋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제이크가 데리고 갔던 전현직 델타포스 모임에서 봤었고, 함께 모의 교전까지 했던 기억이 확 떠올랐다.

“반갑군요. 당신이 여기 있을 줄이야……. 내가 저놈들에게 당신 얘기를 얼마나 했는 줄 압니까?”

“제 얘기를요?”

“그럼요. 제이크보다 더한 괴물이 있다고 했었죠. 그리고 드디어 증명하게 됐군요.”

“아… 하하하…….”

칭찬을 웃어 넘기는데, 어느새 사람들이 내 쪽으로도 몰렸다.

제이크에게 갔던 이들이 두 번째 타깃을 찾았다는 듯 나한테 오는 것이었다.

“오, 당신이군요.”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이놈이 수다쟁이라서 말이죠.”

“소말리아 쪽에 실작전 나갔던 얘기를 듣긴 했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해적 수십 명을 혼자 처리했다는…….”

얘기가 많아지고 길어지는 가운데, 제이크가 딱 잘라 냈다.

“그만. 곧 보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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