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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182화 (182/185)

182화

미국 워싱턴 D.C, 해리 S. 트루먼 빌딩.

국무부 장관실로 로버트 엔더슨이 두꺼운 서류철을 갖고 들어갔다.

선발대 겸 지원조로 파견된 TF-235와 현장 작전을 수행한 TF-242의 성과와 작전 보고서 그리고 팀 해체 등을 결재받기 위해 짧게 설명하고 서류를 내밀기를 잠시.

잘 들으면서 서류를 살피던 국무부 장관이 고개를 들었다.

“추가 일정이 있습니까?”

“네, 마커스 워싱턴을 직접 찾아가 대화를 나누려 했는데…….”

“은퇴 요청한 대원 말이지요?”

국무부 장관도 말하면서 시선을 내려 서류를 읽었다.

마커스 워싱턴의 은퇴 요청서.

작년에 입은 총상을 재수술했는데, 후유증이 심각해서 정상적인 작전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되어 있었다.

추가적인 진단서가 있진 않았으나, 국무부 장관은 쉽게 납득했다.

익숙한 일이어서 그랬다.

그가 군 출신은 아니었으나, 관련 보고서나 자료를 너무나도 많이 접해서 잘 아는 것이었다.

관련 부서에서 올리는 보고서나 결재문만이 아니라, 국무부 주관으로 벌어진 흑색 작전의 전상자가 직접 쓴 탄원서를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런 생각을 잠깐 밀어 둔 국무부 장관이 다시금 고개를 들어 로버트를 바라봤다.

“급한 일은 아닐 것 같은데, 회의에 같이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급하진 않습니다만, 어떤 회의입니까?”

로버트가 물어보면서도 국무부 장관이 들어가야 하는 그리고 자신도 같이 들어갈 수 있는 회의를 헤아릴 무렵.

곧 답이 돌아왔다.

“대통령께서 주관하시는 안보 회의입니다.”

“네? 안보 회의에 왜……?”

되묻는 로버트의 말끝이 저절로 흐려졌다.

대통령이 있는 자리에 착석해서 보고하거나 말한 적은 있는데, 애초에 초대받지 못한 안보 회의에 불려 가는 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분명 주요 인사들도 대거 올 터.

주춤한 그에게 국무부 장관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리의 이름도 회의에 나올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그에 대해서 답변하는 건, 나보다 엔더슨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참석 허가도 제가 받아 놓을 테니, 같이 들어가면 됩니다.”

“음, 혹시 리에 대한 거라면… 작전 때문에 그렇습니까?”

로버트가 조심스레 물었다.

책임자로서 이번 작전 실패의 부담을 안고 있던 탓이었다.

물론 수많은 중국군과 경찰의 포위, 전차, 공격 헬기를 대면하고도 사망자 없이 무사히 탈출했으나, 그건 첫 번째 목표가 아니었다.

첫 번째는 배신자인 노먼 존스의 사살 혹은 생포였다.

두 번째가 무사 탈출이었고.

물론 그마저도 대단한 성과여서 질책을 듣진 않았지만, 공식적으로는 작전에 실패해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이에 국무부 장관을 바라봤으나, 예상과는 다른 답이 돌아왔다.

“작전도 작전이지만, 그보다는 리 개인에 대한 질문이 있을 것 같습니다.”

“네? 그의 신분 말입니까?”

“아, 정확히 말하면 그의 능력이지요. 대외적으로 신분은 비공개 처리됐으니까, 정확히는 그의 작전 이력이나 실력에 대한 질의응답이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회의에 참석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준비해서 나갑시다.”

“지금 말입니까?”

“아, 그 말을 안 했군요.”

국무부 장관이 생각났다는 듯 말을 붙였다.

“그랜든이 당신을 찾더군요.”

“그랜든이라면… 토머스 그랜든을 말하는 겁니까?

로버트가 주춤하며 물었다.

토머스 그랜든은 신임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뒤, 저번 주에 상원에서 통과되어 새 국방부 장관이 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전역한 지 4년밖에 안 된 장성으로 아주 강경한 군인이었고, 특수부대를 지휘한 경험도 있었다.

현재 로버트의 휘하에 있던 제이크 역시 그의 아래서 작전을 수행한 적이 있었고.

그런 생각 끝에 국무부 장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가 할 말이 많은 모양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갑시다.”

국무부 장관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로버트와 함께 해리 S. 트루먼 빌딩을 나왔다.

목적지는 백악관.

검은색 대형 세단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고, 워싱턴 D.C의 풍경을 지나치던 와중이었다.

말없이 조용하던 국무부 장관이 입을 열었다.

“엔더슨.”

“네, 장관님.”

“리에 대한 대답도 좋지만… 회의에서 좋은 인상을 심어 주도록 하세요.”

갑자기 나온 말에 로버트가 주춤했다.

일 얘기를 빼고서는 사적인, 조언이 될 만한 말도 안 하던 사람이 국무부 장관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주춤하며 쳐다보는데, 국무부 장관의 말이 태연하게 이어졌다.

“특히 대통령께 잘 보여야 합니다.”

“장관님?”

무얼 말하려는 것인지 알기 위해 그를 불렀으나, 대답 대신에 얘기가 이어졌다.

“아부하라는 건 아닙니다. 당신은 당신의 자리에서 주어진 일을 잘 수행하고 있지요.”

“…….”

로버트가 재차 부르는 대신 기다리자, 국무부 장관이 천천히 말을 덧붙였다.

“좀 더 사교적이고 정치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의 출세나 성공과는 별개로, 당신의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지요. 특히… 당신이 가장 아끼는 강태 리를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

강태의 이름을 들은 로버트의 눈이 번뜩였다.

의미를 물으려 쳐다봤는데, 국무부 장관이 쓴웃음을 머금고 말았다.

“내 임기가 머지않아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새로 올 국무부 장관이 어떻게 할지 모르니, 당신 역시 리를 위해서 미리 정치적으로 움직이라고 알려 준 겁니다.”

“장관님께서 사임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로버트가 놀라 묻자, 국무부 장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에 들어가면 알겠지만, 중국의 상황이 심상치 않게, 그것도 갑자기 변했습니다. 이를 대비해야 하는데, 국무부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합니다. 아마 그 책임을 지게 될 텐데… 이르면 올해고, 늦어도 내년 초가 될 것 같더군요.”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미국의 쌍두마차 중 하나인 국방부의 수장이 최근에 바뀐 상황이었다.

한데, 남은 쌍두마차인 국무부 장관까지 바뀐다니?

이는 미국의 큰 변화를 의미했다.

물론 한번 임명한 장관들이 대통령 임기를 내내 함께하진 않지만, 이 둘이 거의 연달아 바뀌는 건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국방부 장관은 잘못을 책임지고 사임했었다.

이어서 국무부 장관도 같은 방식으로 그만두고 떠나간다는 뜻이었고.

곧 국무부 장관이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 엔더슨이 더욱 애써야 합니다.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것까지 돕고 떠나겠습니다. 늦게 갔으면 좋겠지만, 세계정세가 나를 붙잡을 것 같진 않군요.”

로버트가 명심하겠다고 짧게 답할 즈음, 차량이 백악관으로 들어가 천천히 멈춰 섰다.

“자, 내립시다.”

국무부 장관이 말하며 내렸고, 따라 내린 로버트와 함께 움직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금세 백악관 웨스트 윙의 한 회의실에 도착했을 때였다.

“드디어 오셨군!”

신임 국방부 장관이자 체격 좋은 중년의 백인 사내, 토머스 그랜든이 벌떡 일어나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아, 당신이 바로 로버트 엔더슨이겠군요.”

그렇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권하고, 미들 네임까지 넣어서 토머스가 자기 소개를 했다.

“토머스 게너 그랜든이오. 현장 요원도 겸했고, 군 출신이라 들었는데, 역시 몸이 여전히 좋군요.”

“감사합니다, 장관님.”

“그럼 이렇게 만난 김에 좀 물어봅시다.”

“네, 답변할 수 있다면,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강태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는 삭제되어서 말을 아껴야 하지만, 상호 협조의 관계이자, 동시에 경쟁자이기도 해서 말을 조심히 하는 것이었다.

안그래도 국무부 장관이 곧 사임할 것 같다고 말한 상황.

곧 토머스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요원, 실존 인물이 맞소? 아니면 외계인이거나…….”

“…네?”

“내가 접근 가능한 모든 자료를 봤는데, 아무리 봐도 말이 안 돼서 말이오. 그게 어떻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랍니까? 그건… 하, 다시 생각해도 기가 막히는군.”

봤던 기록물 하나를 떠올리던 토머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말했다.

“뭐든 한다는 해병대도 겁먹고 게이 흉내를 낼 만한 일이오. 도저히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지.”

“…그는 실존 인물입니다.”

“좋소. 그럼 좀 만나 볼 수 있겠소? 내가 직접 보고 싶은데.”

토머스가 잘됐다는 듯 웃으며 말하자, 로버트가 고개를 저었다.

“따로 일정이 생기면 가능합니다.”

“그런 공식적인 일정 말고 개인적으로, 휴가 기간에는 사격장에서 총질을 하든, 체육관에서 쇠질을 하든, 뭐든 할 거 아닙니까? 그럼 그때 나도 같이하겠다, 이 말이오. 이딴 개똥 색깔 테이블에 앉아서 얼굴 볼 생각은 없소.”

“개인적으로 보려 하는 이유가 뭡니까?”

“군인들은 화약 냄새나 땀 냄새 속에서 우정을 쌓는 법이오. 당신도 현장 출신이니 잘 알 거 아니오?”

그러면서 토머스가 자신의 가슴팍을 툭 쳤다.

미국 남부 억양이 가득한, 천생 군인다운 모습이었다.

아마 여기서 거절했다가는 더더욱 강하게 나올 터, 로버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절차대로 확인해 보고, 답변드리겠습니다.”

“여기 그 요원의 직속 상관이 있고, 최종 책임자가 있는데, 어디가서 사인을 받겠다는 거요?”

그 말에 국무부 장관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여기 엔더슨을 잘 도와주십시오, 우선 오늘 회의 때부터.”

“아, 물론이지. 걱정 마시오.”

토머스가 시원하게 답하고서 구체적인 그리고 자질구레한 능력 따위를 물어볼 무렵.

어느덧 회의실로 사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서 토머스와 대화를 나누던 로버트가 주춤하고 말았다.

국무부 장관과 토머스에 이어서, 상원 의장, CIA 국장, NSA 국장, 무슨 위원장, 센터장, 군 정보실장과 조사실장 등 미 안보와 관련된 각종 책임자가 자리를 채웠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미국을 지킬 수 있는 고위직이 다 모인 셈.

이를 보던 로버트의 목울대가 흔들렸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런 생각과 함께 좌중을 살피는 사이.

대통령이 등장했다.

늘 그렇듯 시간에 쫓기고 바쁜 모습으로.

모든 사람이 우르르 기립했고, 대통령의 착석에 의자를 당겨 바싹 앉았다.

로버트도 마찬가지.

회의가 시작되는 것을 지켜보기를 잠시, 곧 얼어붙고 말았다.

금세 회의를 주관한 이유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중국이 대만 침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로버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전쟁이라는 말이 낯설거나 이상한 건 아니었으나, 중국은 다르기 때문이었다.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군사력과 경제력에 있어서 미국의 뒤를 쫓아오는 강대국이었다.

침공하려는 대만은 미군이 주둔 중인 나라였고.

쉽게 말해, 미국이 중국과 전쟁을 벌이게 될 지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세계 1, 2위가 다툰다는 말.

“침공 시기는 빠르면 1개월 이내, 늦어도 올해 안에 이뤄질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 일주일 안에 상세한 침공 계획을 발표하고, 외교관과 주둔 중인 미군의 출국을 권고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상세 내용까지 들은 로버트가 깊게 심호흡을 했다.

생각보다 심각한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각종 보고와 의견도 마찬가지.

중국에 대한 러시아의 반응, 그 외 유럽 열강의 움직임과 동아시아 국가들에게서 얻어 온 정보까지 나열됐다.

흑색 요원 팀 몇 개를 운영 중인 로버트로서로는 할 말이 없어 대기할 무렵.

회의 말미에 로버트가 언급됐다.

이번에 수행한 고위험 작전과 중국의 반응을 엮어서 얘기가 나온 것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강태까지 언급됐다.

“그 요원은…….”

이어서 이번에 남긴 기록이 사실인지, 과장은 아닌지, 허위가 있는 건 아닌지 등등 여러 번의 질의응답이 오갈 때였다.

비서실 스태프가 급하게 들어와 대통령에게 서류를 건넸다.

이를 받아 대통령이 살피길 잠시.

곧 그의 눈살이 찌푸려졌고, 어느새 로버트에게로 향했다.

“중국에서 그 이름이 다시 나왔군요.”

“네?”

로버트가 무슨 뜻인지 몰라 바라보자, 대통령이 무겁게 말했다

“전에 보고했던 테러리스트, 피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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