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퇴출은 계속되었다.
애초에 쉽게 끝날 것도 아니었다.
미군 지원은커녕, 오히려 까딱 잘못하면 잡힐 만한 나라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었다.
허울뿐인 2체제가 있는, 사실상 중국이 지배한 홍콩.
한참은 더 움직여야만 했다.
짝퉁 아파치인 WZ-10을 피해서 타이모산을 내려간다고 해서 이 상황을 마무리 짓는 건 불가능한 탓이었다.
물론 이게 비밀리에 잘 해결됐으면 조용히 내려와서 호텔에서 쉬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추가로 들어오는 위성 정보만 봐도 그랬다.
- 여기는 1-0-2. 현재 미 영사관 인근에 경찰력 증원되었고, 검문 검색 실시 중.
다행히 지금 영사관으로 갈 계획은 없었으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피칼의 의도가 확실해졌다는 사실이었다.
이건 마중과도 같은 일이었다.
일종의 대비책.
쉽게 말해서, 놈은 우리가 올 걸 알고 있었고, 또 대처할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추측이라고 보기에는 피칼의 조치가 확실하고 신속하기까지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노먼 존스가 안전하다고 볼 순 없었지만, 어쨌든 피칼은 우리를 죽이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었다.
정부, 군대, 경찰까지 움직였으니까.
이에 묵묵히 움직이고 있던 와중에 또다른 위성 정보가 들어왔다.
- 경찰력과 중국군이 산을 포위하려는 것으로 보임. 북쪽으로 진입했고, 남쪽에서도 일부 도로를 차단 중. 침투로 위험.
역시하는 말이 떠오르면서도 아차 싶었다.
현재 우리 팀의 진행 방향이 타이모 산의 남쪽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침투로 인근.
한데, 그곳의 도로 일부를 군경 이 차단하고 있다고 한다.
고로, 위험 구역으로 향하는 셈.
그 생각을 하는 사이, 금세 제이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퇴출 목적지 시에라 탱고 3으로 변경하겠음. 1-0-2 시에라 탱고 3 주변 확인 바람.
동시에 이동 방향이 바뀌었다.
남쪽에서 서쪽으로.
방금 말했던 시에라 탱고 3의 퇴출로가 그쪽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 위치에서 약 4㎞ 정도 떨어진, 타이모산의 서쪽에 위치한 타이 람(Tai Lam) 터널.
그곳 비상구로 들어가서 차량에 탑승하고 빠져나오는 작전이었다.
준비한 여러 가지 퇴출 과정 중의 하나.
그러나 대기 중인 TF-235 요원의 협조는 물론이고, 차량 이동 타이밍과 현지 군경의 위치까지 눈치를 봐야 하는 쉽지 않은 계획이었다.
여러모로 복잡하고 산악 행군도 적잖게 강행해야 했으니까.
그러나 현재로서는 덜 힘든 계획이었다.
원래 가려던 가까운 남쪽이 위험해서 갈 순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답을 기다리는데, 위성 정보가 다른 답을 내놨다.
- 현재로서는 시에라 위스키 1을 권장함.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제이크의 목소리가 전달됐다.
- 이유는?
- 시뮬레이션 결과 실패 가능성이 76%로, 성공 가능성이 저조하고, 시에라 위스키 1의 가능성이 가장 높음.
- 시에라 위스키 1로 진행하겠음.
어쩔 수 없다는 듯 제이크가 말하고서, 우리에게 재차 전파했다.
시에라 위스키 1 작전으로 돌입한다고.
동시에 내 앞에 있는 호세에게서 헛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흐, 정말 좆 됐군.”
그럴 만도 했다.
시에라 위스키 1은 급속 산악 행군으로 9㎞를 이동하고, 드보크(비밀 매설 장소)에 있는 잠수복으로 갈아입은 뒤, 수중으로 다시 5㎞를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최고 난이도.
물론 훈련 중이라면 그냥 주어진 일이니까 하겠지만, 지금은 실전이었다.
극도의 긴장 속에서 실수를 범하지 않고 나아가야 했다.
심리적 불안이나 체력적 부담이 없는 나와 다른 동료들은 상황이 달랐다.
“정 힘들면 내가 좀 도와줄게.”
속도를 높여 호세에게 말을 붙이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그 정도는 아냐, 나보다는 저놈이 더 걱정이지.”
“누구… 마커스?”
“그래. 오늘따라 상태가 안 좋아 보여.”
그의 말을 들으면서 야투경 너머로 집중해서 바라보다가 멈칫했다.
‘그러네……?’
티가 잘 나지 않았는데, 뚫어져라 쳐다보니까 묘한 흔들림이 보였다.
지친 것 같으면서도 유독 몸이 무거워 보이는 모습.
이걸 호세가 알아본 모양이었다.
괜히 단짝이 아니구나 싶으면서도, 내심 걱정이 됐다.
다행히 그냥 봐서는 모를 정도로 멀쩡해 보였고, 아직 속도가 쳐지진 않았으나, 확실히 문제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에 후방을 경계하면서도 마커스를 몇 번이나 들여다볼 무렵.
점차 이상한 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시간이 꽤 지나서 타이모산에 전차와 군용 트럭이 올라왔다는 소식이 전파됐을 때였다.
“후우, 후욱……!”
호세의 숨소리까지 거칠어지던 무렵에 마커스의 뒷모습은 그보다 더욱 힘들어 보였다.
속도가 처지는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눈여겨봐야 알 만한 것이지만, 호세가 더는 안 되겠다는 듯 무전을 했다.
- 2-1-1, 여기는 2-2-2.
통신음으로 제이크를 부른 것이었고, 이어서 요구 사항을 말했다.
행군 속도 조절과 자리 배치 변경.
그러자 다행히 물음이나 다른 말 대신 빠른 회신이 돌아왔다.
- 2-2-2. 자리 변경하되, 속도는 계속해서 유지한다.
“알겠습니다.”
짧은 답 뒤로 내가 호세 앞으로 갔다.
이중에서 체력이 가장 좋은 게 나였으므로, 그를 받쳐 줄 수 있는 사람도 나밖에 없었다.
이어서 속도를 높여서 마커스에게 다가갔고, 그의 배낭 위로 손을 얹었다.
“좀 밀어줄게.”
“어? 어, 후우우… 알았어.”
마커스도 별 설명 없이 내 도움을 받을 무렵.
- 정지.
조용하고 낮은 지시가 떨어졌다.
일순 걸음을 멈췄고, 총구를 들어 사주경계에 들어갔다.
야투경 너머로 달빛을 받은 초록색의 산악 풍경만 들어오는 사이, 명령이 바뀌었다.
- 이상 없음, 출발.
“으……!”
마커스의 옅은 신음이 나왔고, 내가 그의 뒤를 받쳐 주면서 움직였다.
확실히 힘이 빠진 게 느껴지기에 물었다.
“왜 그래? 부상은 없잖아?”
그의 귀에만 들리게 속삭이듯 말을 건네자, 거친 숨소리와 함께 답이 돌아왔다.
“후욱… 정말 은퇴할 때가 온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야?”
은퇴라는 말에 주춤했다.
라레플 속에서의 마커스는 분명 배신자 때문에 죽거나 크게 다쳐서 팀에서 이탈했던 사람이었다.
즉,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행군하다가 지치거나 은퇴 얘기를 꺼낼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재수술을 했거든.”
“뭐?”
“후우, 그게… 카마르니아 공화국 일이 끝나고서…….”
“그건… 아!”
무슨 소린가 대꾸하려다가 주춤했다.
카마르니아 공화국에서 육군특전대를 데리고 함께 전투하던 그날.
세르게이가 안전벨트 미착용으로 몸속이 다 작살나서 죽었고, 내 허벅지가 크게 다쳐 피를 많이 흘렸던 때, 마커스도 총상을 입고 쓰러졌었다.
카마르니아에서 응급수술을 한 뒤, 독일에서 재차 수술하고, 미국에서 재활을 한참이나 했었고.
상처는 내 부상보다 훨씬 심각했지만, 나는 마커스가 이겨 내리라 믿었다.
그리고 마커스 역시 결국에 극복해 냈었다.
이후로 임무도 꾸준히 해 왔고, 별 이상이 없어서 거의 잊고 있었다.
한데, 그 카마르니아가 다시금 나온 것이었다.
이내 지친 듯한 말이 이어졌다.
“여기 오기 전에 재수술을 잠깐… 후우, 잠깐 했는데, 안 맞는 모양이야. 몸이… 후욱, 망가진 것 같아.”
“…….”
“미안하게 됐어, 리… 후우, 이 정도는 거뜬할 줄 알았는데…….”
아니라고 차마 답할 수가 없었다.
내가 밀고 있는 그의 배낭이 생각보다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는 마커스가 무게를 제대로 부담하지 못한다는 뜻.
말인즉슨, 마커스는 정상적으로 작전을 수행하기 힘든 몸 상태였다.
올 때까지만 해도 멀쩡한 줄 알았는데, 체력적인 부담이 결국 겉으로 표현이 된 모양이었다.
당연히 그래도 함께하고 싶었지만, 그러자고 말할 순 없었다.
작전에 차질을 줄 정도면, 작전을 실패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우리 중 누군가를 죽게 만들 수도 있었으니까.
그게 그 자신일 수도 있었고, 어쩌면 나일 수도 있었다.
여러 감정이 흔들릴 무렵.
마커스가 화제를 돌리듯 목소리를 냈다.
“후임도 생각해 뒀는데…….”
“후임?”
“그래… 델타도 좋지만, 널 제대로 보조할… 후욱…… 안드레이 어때?”
작전을 여러 번 함께한 용병, 안드레이의 이름에 피식 웃었다.
내가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도 그뿐이었다.
물론 다른 델타들도 수두룩하겠지만, 그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이였다.
속이라도 들여다봤나 싶을 무렵.
마커스의 목소리가 금세 덧붙어 나왔다.
“다행히 도착했군.”
그 말에 전방을 바라보자, 수백 미터 아래 산 아랫마을이 보이고 있었다.
산악 행군 9㎞를 다 끝냈다는 뜻이었다.
“수영은 가능하겠어?”
“그래, 물속은 좀 나아… 걱정 안 해도 돼.”
“…힘들면 말해.”
“그래, 최선을 다하지…….”
대답 뒤로 몰아쉬는 숨을 듣길 잠시, 어느새 드보크 장소에 도달했다.
사람 흔적이 없는 부서진 보트 아래.
어느새 다들 경계 자세에 들어가고, 제이크가 보트를 들어서 큼직한 스포츠백 여러 개를 꺼냈다.
잠수복과 산소 탱크가 있었는데, 각자에게 배분된 것을 입다가 괜히 마커스에게 시선이 갔다.
퇴출하던 와중에 들었던 은퇴라는 단어가 내심 걸린 탓이었다.
물론 직접적으로 함께해 온 시간은 1년을 좀 넘어가고 있었지만, 몇 안 되는 동료인 데다가 라레플을 할 때부터 봐 왔던 사람이라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진짜 은퇴하겠는데…….’
붙잡을 수도 없고, 보내기에도 아쉬운 마음이 들 무렵에 라레플의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마커스가 팀에서 이탈하던 때.
‘가만… 마커스가 팀에서 빠지는 게…….’
배신자에 의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고 임무 수행을 할 수 없어서 마커스가 팀에서 제외됐었는데, 그때의 장면이 걸렸다.
끔찍하거나 충격적이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 시점 때문이었다.
게임 중후반부.
클라이맥스로 다가가는 시점에서 마커스가 팀에서 나왔고, 우리 팀은 생고생을 하다가 결국 세계 멸망을 직접 목도했었다.
‘그럼 지금이 중후반부라고 봐야 하나…….’
라레플과 상황이 완전히 다르긴 하나, 생각을 안 할 수는 없었다.
그것 말고는 비교할 게 없기도 했고.
딴생각 끝에 마커스에 대한 쌉싸래한 감정이 다시금 들이칠 무렵이었다.
“집합.”
제이크가 복장 착용을 마친 우리를 불러 모았고, 간단하게 이동 과정과 순서를 언급했다.
지상으로 이동할 때와 같았는데, 가벼운 말이 덧붙었다.
마커스를 향해서.
“움직일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그래, 일단 퇴출부터 하고, 얘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지.”
언질이라도 들은 것처럼 보였다.
아마 팀장인 제이크에게는 미리 보고를 했던 모양.
그러니 대열 바꾼다고 할 때도 별말 없이 허가를 했을 것이었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이, 제이크가 수신호를 했다.
이동 그리고 잠수를 뜻하는 손짓.
그렇게 노먼 존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마커스가 은퇴한다는 얘기를 꺼낸 가운데, 차가운 11월의 홍콩 바다로 입수했다.
한기가 전신을 엄습하고, 수압이 옥죄듯 몸을 감쌌다.
이 상태로 앞으로 5㎞를 더 가야 했다.
‘…이번 거 쉽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