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부아아아앙―!
사륜 ATV가 산길을 거칠게 내달리는 사이, 나는 뒷자리에서 먼 곳을 내다보며 총을 겨누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것처럼.
그러나 손은 여전히 방아쇠울 위에 올라가 있을 뿐, 방아쇠를 움직이진 못했다.
타깃이 당최 안 보인 탓이었다.
방금 전까지 두어 번 쏘긴 했지만, 그건 제대로 된 사격이라고 볼 수 없었다.
빽빽한 나무 사이로 차체가 보이길래, 반사적으로 손가락이 움직인, 일종의 조건반사 같은 행위에 불과했다.
그러니 제대로 맞혔을 가능성은 적었다.
해 봐야 차체에 몇 발 박혔을 거고, 운이 좋으면 탑승자나 차량에 손상을 줬을 터.
‘운 좋게 한 명쯤 뒤지면 좋은데… 그건 어렵겠고…….’
생각을 좀 해 봐도, 다른 수를 찾긴 어려웠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상황이 너무나도 나빴기 때문이었다.
야간 상황, 빽빽한 나무, 흔들리는 산길 그리고 500~600M에 달하는 타깃과의 거리까지.
하나씩 보면 별거 아니지만, 다 합쳐지니까 그야말로 난코스였다.
내가 1순위로 맞히고 싶은 타이어나 운전사의 머리통은 물론이고, 차량도 울창한 나무와 수풀 따위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는데, 그마저도 거리가 멀어서 쏴도 바로 맞힐 수 없었다.
거기다 타깃은 물론이고 내 몸도 움직여서 쏴도 바로 맞힐 수 없었다.
최소 0.5초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직선거리로 도망가는 거면 쏘는 데 별 무리가 없었는데, 산길이라 그게 아니었다.
구불구불했고, 노면도 심각하게 울퉁불퉁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뭐가 보여야 쏠 수 있는데, 제대로 보이는 게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사격 준비를 마친 채로 기다리는데, 마침 제이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각도 확보해 주지, 잠깐 기다려 봐.
“알겠습니다.”
그렇게 방향을 틀어서 산비탈로 들어가려던 순간.
- 여기는 1-0-2.
위성 정보를 하달해 주는 통신 음어가 왔고, 그 뒤로 빠른 설명이 덧붙었다.
- 선진시 경계에서 군용 차량 6대, 전차 3대, 헬리콥터 2대 출현.
“……!”
절로 움찔할 만한 말이었다.
경찰차나 트럭 몇 대가 아니라, 군부대가 통째로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차량에 전차, 헬기라니?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헬기였다.
차량은 해 봐야 시속 100㎞, 전차는 시속 70~80㎞밖에 안 되는 반면에 헬기는 낙후된 기종조차 시속 200㎞의 속도로 날아다니기 때문이었다.
산길이라는 지형 장애물도 소용없는 건 당연했고.
한마디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같은 생각인지, 이내 제이크의 목소리가 헤드셋을 타고 전파됐다.
- 여기는 2-1-1. 헬기 기종 확인 가능한지?
- WZ10으로 예상되며, 공대지 무기까지 장착한 것으로 보임.
“…니미.”
욕설이 절로 나왔다.
WZ-10이라는 기종을 제대로 공부하진 않았으나, 작전 준비 과정에서 주요 내용을 파악해 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는 욕이 나올 만한 수준이었다.
사람은 물론이고 차량까지 갈아 버릴 기관포와 전차까지 박살 낼 공대지 미사일이 달린 공격 헬기로, 기본적인 소총 방호 기능은 물론이고, 조종사의 탑승석은 50구경 탄까지 막아 낼 수 있는 방탄유리가 달려 있는, 일종의 중국제 짝퉁 아파치.
심지어 시속 300㎞를 낼 수 있는, 더럽게 빠른 최신 기종이었다.
중국산답게 이륙하지 못하거나 이륙하다가 폭발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그건 내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위성 정보까지 전달됐다면, 놈들은 곧 여기까지 올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WZ-10은 내가 기억한 내용이 그렇듯, HK416 한 자루로 어쩔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물론 그걸 상대할 가능성을 따지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고작 500M 앞에 타깃이 있었으니까.
조금만 따라가면 그리고 제이크가 각만 잘 봐 주면 뭐라도 맞힐 수 있으니, 쉽게 포기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내 생각은 금세 끊어졌다.
무전 내용을 받은 제이크가 추가 정보를 물었기 때문이었다.
- 적 최초 도착 시간은?
- 현재 헬기 이륙 중이므로, 도착까지 약 1분 55초 소모될 것으로 예상됨.
30초라도 따라붙으면 좀 낫지 않을까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놈을 죽이거나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었으므로.
결론은 하나였다.
- 여기는 2-1-1. 현 시간부로 2팀 전원 퇴출하겠음. 다시 한번 반복한다, 현 시간부로 2팀 전원 퇴출하겠음.
아쉽지만,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크의 판단이 옳았다.
나 혼자 쫓아가는 거면 몰라도, 팀은 물론이고, 작전이 통째로 우리와 얽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황상 놈들이 우리를 노렸을 가능성이 컸다.
기다렸다는 듯 도망간 노먼 존스나 때맞춰서 나타난 전차와 헬기가 그 증거였다.
물론 함정은 아니더라도, 어쨌든 대비한 건 분명했다.
그동안 내가 한 게 있으니까.
생각보다 무서운 헬기라서 좀 당황하긴 했지만, 우리도 작전이 없는 건 아니었다.
충분히 있었다. 용병 때와는 달랐다.
무슨 특별 활동(Special Activities)이라고 분류하더니, 상·하원 정보 위원회에 사전 보고되었고, 대통령에게도 서면으로 결재가 올라갔다 내려온, 아주 튼튼한 계획이었다.
타당성 조사에 수행력 파악, 위험성 검토, 최종 점검과 테스트, 각종 대처 방안까지 온갖 것들을 진행했었고.
이내 그 결과가 제이크의 목소리로 바뀌어 헤드셋을 타고 전파됐다.
- 팀 전원 즉시 오스카 2로 돌입하도록.
그렇게 사륜 ATV가 커브를 돌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때까지도 총을 들고 나무 뒤에서 달리고 있을 타깃을 겨냥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버티고 있었다.
불안정한 자세로, 4㎏에 달하는 총을 내내 쏠 것처럼 들고, 한 번도 내리지 않았다.
다행히 그간 운동한 덕분에 아직 팔은 당기진 않았다.
차라리 팔이 당기면 모르겠는데, 다른 이유로 사격을 포기한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래서 더 버티고 있었다.
사륜 오토바이가 완전히 돌아서기 전까지.
그리고 순간, 차가 보였다.
나무 틈 사이로 지나가던 헤드 라이트가 유독 밝고 진하게 보이더니, 차체가 드러난 것이었다.
야투경과 광학 조준경으로 보이는 건 고작 손톱만 한 틈이지만, 나한테는 달랐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아까는 그것보다 더 좁았는데, 그때도 몇 발인가 박아 넣었으니까.
심지어 차량 앞부분이 꽤 많이 노출됐다.
그것도 운전석 쪽은 대략 1M 내외.
그 찰나의 순간에, 내 총구는 명사수 특성을 받아 흔들림이 사라졌고, 검지는 방아쇠에 힘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정 압력이 넘어간 순간.
레이첼이 내게 주었던 HK416이 불을 뿜었다.
터더덩! 터더더덩! 텅텅! 텅텅텅!
철컥.
탄창의 모든 탄을 소모하면서, 약실이 비었고, 노리쇠가 후퇴 고정됐다.
그리고 마침 사륜 ATV가 완전히 돌아섰다.
사격을 못 할 정도로.
습관적으로 탄창을 교환하는데, 제이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명중했나?
“예, 차는 멈췄습니다.”
답하면서 다시 돌아봤는데, 나무 사이로 언뜻 비치는 헤드 라이트에 움직임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것은 어디 처박거나 급정지를 했다는 소리였고, 어떻게든 피해를 입었다는 말이었다.
즉 노먼의 도주가 끝났고, 몇 분의 시간이 더 있었다면, 우리 작전은 완벽하게 성공했을 터.
노먼은 죽거나 생포됐을 게 분명했다.
달아나던 차가 멈췄고, 우리는 쫓고 있었으니까.
다만, 현 상황에서 몇 분이 지나면, 내 머리 위로 공격 헬기의 기관포나 미사일이 떨어질 거라서 아깝다는 말을 괜히 입밖으로 소리 내진 않았다.
어쨌든 중요한 건 가정이 아닌, 현재였으니까.
어느새 제이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놈이 병신이 됐거나 뒈졌기를 기도하자고.
“근데… 이런 기도도 들어줍니까?”
- 놈은 사탄이잖나?
“아… 그럼 들어주겠군요, 기도 한번 해 보겠습니다.”
우스갯소리 같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부아아아앙─!
사륜 ATV가 잠깐을 더 달렸고, 뒤를 따라오던 동료들과의 거리도 좁혀진 뒤.
어느새 약속 지점에 도달했다.
산 중턱 아래쪽.
그저 삼림 한복판처럼 보이지만, 선발대인 TF-235가 만든 비트(개인호)가 있는 장소였다.
그거도 ATV까지 집어넣을 수 있는 크기였고, 위장막까지 완벽한 공간이었다.
물론 여기 숨진 않을 것이었다.
계획이 잠적이 아닌 퇴출인 데다가, 이어서 도착한 무전이 제법 섬뜩했기 때문이었다.
- 현지 경찰력 증원되어 타이모산 포위할 것으로 보이며, 미 영사관 인근에도 경찰차 배치됨.
이 정도면 예상한 것 중에서도 최악에 속하는 나쁜 수준이었다.
적의 대처가 강력하고, 또한 빨랐으니까.
그러나 우리라고 약하고 느린 건 아니었으므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다.
“다 넣었나? 위장막은?”
어느새 ATV를 넣은 제이크가 팀원들을 보며 말했고, 답을 듣자마자 바로 지시를 내렸다.
“지금부터 호텔 1로 퇴출한다. 퇴출 대열은 내가 선두, 2번에 레이첼, 3번에 해리, 4번에 마커스, 5번에 호세, 6번에 리가 선다.”
“알겠습니다.”
나를 비롯해 다들 대답하면서 알아서 위치를 잡자, 금세 추가 지시가 떨어졌다.
“열 반사 천 꺼내서 덮고, 간격 유지하면서 따라와.”
공중에서 열 반응으로 추적하지 못하게끔 덮는, 침투할 때부터 갖고 왔던 물건 중의 하나였다.
주섬주섬 얼굴만 빼놓고 뒤집어쓰는 사이.
두두두두두―
멀찍이서 로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머리맡에 있는 건 아니지만, 분명 놈들도 위성을 봤을 테니 근방까지 올 터.
힘든 퇴출을 생각하는 사이, 대열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의 뜀뛰기 수준으로.
이 정도면 그래도 10~20분 안에 산을 완전히 벗어날 것이었다.
물론 그 시간이면 산에 차량은 물론이고 전차까지 들어오겠지만, 그건 우려되지 않았다.
우리도 발로만 퇴출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번쩍.
신호탄이 터졌다.
우리 쪽이 아닌, 반대편이라고 봐도 될 만큼 먼 곳에서.
교란용이었다.
그저 새까맣던 하늘에 붉은 빛깔이 스쳐 가길 잠시, 근처에서 들리던 헬기 로터 소리가 멀어져 갔다.
동시에 앞쪽에서부터 지친 숨소리가 넘어오기 시작했다.
이제 더욱 힘껏 뛰어야 했다.
* * *
“으으…….”
노먼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통증으로 소리조차 제대로 내기 힘들었는데, 눈을 끔뻑거리던 그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피탄됐고, 갑자기 차가 충돌했다.
뭐에 부딪혔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산중이니 나무에 박았을 것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하길 잠시.
차량 뒷좌석이 아니라, 레그룸 바닥에 엎어져 있다는 걸 알아챈 그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앞을 보다가 주춤했다.
“어……?”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의 눈앞에 상상도 못 한 장면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운전석과 조수석이 텅 비었고, 전면 유리가 박살 나서 뚫려 있었으며, 앞에 있는 나무에 사람 같은 게 얼핏 걸려 있는 광경이었다.
추론은 간단했다.
사고 충격으로 사람들이 유리를 뚫고 나갔고, 나무와 재차 부딪혔으며, 그로 인해 죽거나 중상을 입었을 터.
벨트를 맸어야 했다.
세르게이 역시 어떻게 죽었는지 잘 알았지만, 노먼은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 겪는 현장 상황에 심리적으로도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논리와 별개였다.
오직 자료로만 상황을 봐 왔던 노먼은 감정이 요동치고 있었다.
동시에 강태에게 당했다는 공포감이 밀려왔으나, 그것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몸속에 있어야 할 게, 몸 밖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
이번에는 소리도 안 나왔다.
와이셔츠 팔 부분에 옷을 뚫고서, 새하얗고 날카로운 뼈가 드러난 탓이었다.
당연하게도 이 역시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자신의 뼈뿐만이 아니었다. 남의 것이든 뭐든, 실제로 겪고 보는 건 마찬가지로 최초였다.
전쟁터에 한번 가 본 적도 없는, 정보로만 모든 것을 파악했었으니까.
“아… 으아…….”
말 대신 놀란 소리가 나오길 잠시.
철퍼덕.
충격을 받은 뇌가 꺼지듯 몸이 허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