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176화 (176/185)

176화

사다리를 미끄러지듯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깊이는 대략 3미터 정도.

왼손으로 야투경을 내려쓰면서, 오른손으로는 HK416을 들어 겨누었다.

특별한 건 없었다.

흙과 돌이 다 드러났고, 상당히 좁은 데다가 지지대가 얼기설기 설치됐을 뿐.

이에 녹색의 영상을 보며 터널 코너 부분을 경계했는데, 시선을 잠깐 움직이다가 얼른 개머리판을 휘둘렀다.

휙― 빠각!

머리맡에 CCTV 카메라를 냅다 갈긴 것이었다.

좁은 천장 구석을 따라 전선이 따라와 있었는데, 그게 머리맡의 카메라에 연결되어 있었다.

당연하게도 작동 중이었고.

그렇게 다른 위험 요소를 다시 살피고, 빠르게 무전했다.

“여기는 2-1-2, 내부 양호함.”

그와 동시에 위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곧 사람 한 명이 더 내려왔다.

“괜찮아요?”

레이첼이었다.

아직 전방을 경계하면서 말했다.

“예, 레이첼은요?”

“저도 괜찮아요.”

대답한 그녀는 나처럼 총구를 겨누는 대신, 매고 온 가방에서 RC카를 하나 꺼내어 작동했다.

그러고는 조종기에 달린 패드를 보면서 말했다.

“여기는 2-2-2 내부 공기 이상 없고, 부비 트랩이나 이상 신호도 없음. 내부 양호함.”

그렇게 코너 부분까지 RC카를 전진 시킬 무렵, 남은 인원도 차례로 들어왔다.

해리, 마커스, 호세, 마지막으로 제이크까지.

이내 안을 둘러본 호세가 기가 차다는 듯 말을 늘어놨다.

“오, 터널을 아주 좆같이도 뚫었군. 빌어먹을 멕시코 카르텔이 롤 모델인가? 왜 이딴 걸 홍콩에 만들었는지…….”

“근사하게 뚫었다면, 장갑차가 우릴 맞이했을 수도 있어.”

마커스가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 답했는데, 애석하게도 지상은 여전히 대화할 여유가 없었다.

투다다다다다다다당─! 파바바박!

기관총에서 나오는 연발음과 함께 사무 집기가 아작 나는 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진 탓이었다.

다들 한숨 돌리는 가운데, 새 무전 내용이 들려왔다.

- 야외 전등 작동되었고, 본관에서 8명이 나와 접근하고 있음.

위성 정보였다.

그 뒤로 생각지 않은 추가 정보가 하달됐다.

- TF 235, 현재 4인 투입 준비 중. 요청 시 본관 쪽으로 침투하겠음.

레이저로 카메라를 무력화했던 그리고 내내 여기 숨어서 정보를 전달했던 이들이었다.

좋은 소식이지만, 그러라고 할 순 없었다.

죽을 게 뻔했다.

그들의 실력은 모르지만, 무장 상태는 잘 알기 때문이었다.

권총 혹은 같은 9㎜탄을 사용하는 소형 사이즈의 SMG 정도. 수류탄이나 제대로 된 돌격 소총은 없을 것이었다.

애초에 목적이 침투가 아니라, 정찰과 정보 전달, 지원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제이크에게 말하려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나와 의견이 같은 모양이었다.

어느새 터널 내부를 훑은 그가 고개를 저은 것이었다.

“TF 235 대기 바람, 현장에서 해결하겠음.”

그러더니 계산을 끝냈다는 듯 지시를 내렸다.

“리, 사다리 끝에서 대기하다가 사격 멈추면 신속하게 올라가서 제압해. 해리는 날 따라붙고, 2-2 팀은 부비 트랩 설치 후에 경계하고 올라오도록.”

내가 선두에 서면, 제이크와 해리가 따라와서 함께 교전하고, 남은 2-2 팀인 마커스와 호세, 레이첼은 폭탄을 설치해서 지하를 봉쇄한다는 의미.

굳이 들어와 놓고 막아 두는 꼴이지만, 이 역시 사전에 얘기된 것들이라 언급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곳도 의도해서 들어온 게 아니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기관총 세례를 피해 어쩔 수 없이 들어와서 숨어 있는 게 다였다.

그리고 나가야만 했다.

이유는 하나.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기관총이 빗발치는 지상보다 지하에 위험 요소가 더 많았다.

RC카 같은 걸로 상황을 파악하는 것과는 별개였다.

설계도에도 없는 곳인만큼 정확한 데이터가 없는 데다가, 지하가 붕괴할 경우, 반격하거나 소생하기 어려운 탓이었다.

물론 따지자면 지상의 건물이나, 전사한 시체와 서 있는 지면도 폭발할 수도 있지만, 그건 좁은 길목이 있는 지하와 비교할 게 아니었다.

좀 넓었으면 고려할 게 달라지겠지만,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좁디좁은 토끼 굴이었다.

사람 한 명 간신히 지나갈 수준.

앞, 뒤, 중간, 어디든 폭발로 붕괴된 뒤에, 빈 공간으로 수류탄 하나만 굴러 들어와도 우리 팀은 끝장날 것이었다.

반격의 ‘ㅂ’도 시도하기 어려웠다.

살아날 가능성은 지상과 비교하면 극악으로 낮고, 숫자로 따져도 ‘0’에 가까웠다.

이에 대답하고, 사다리를 몇 칸 올라가서 대기할 무렵.

제이크가 말했듯 사격이 멎었다.

이유는 뻔했다.

이 사무실에 가까이 접근한 이들이 맞을 수도 있으니까.

그 예상처럼 무전이 도달했다.

- 별관에 적 접근 중, 약 12미터 거리. 본관에서 7명 추가로 출현. 공터에 총 15명 산개함.

가까이 온 것뿐만이 아니라, 추가로 몇 명이 더 등장했으나, 조금도 걱정되진 않았다.

다 해 봐야 15명.

이미 그만한 숫자의 전현직 델타포스와 모의 교전을 치뤄서 이긴 전적이 있었다.

거기다 내게는 시간차가 거의 없는, 실시간 위성 정보가 귓속으로 곧장 전달되고 있었다.

- 출입문 기준, 반원 모양으로 적 대기 중. 우측에 8명, 좌측 7명. 좌우에서 각각 한 명씩 문쪽으로 이동 중.

야투경을 올리고, 박살 난 창가 옆으로 다가가면서 바로 총구를 겨눴다.

동시에 눈가가 살짝 찌푸려졌다.

바깥에서부터 쏟아지듯 들어오는 전조등이 역광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었다.

그걸 등진 적은 윤곽만 간신히 보였고.

조준하기에 불편했다.

반면에 적은 건물이 새하얘질 정도로 밝은 데다가, 기관총 난사로 창문과 문짝을 죄다 박살 냈으니, 그 사이로 드러난 표적을 조준하긴 더 쉬울 터.

하지만 나는 보통의 사람이나 표적이 아니었다.

윤곽만 있어도 충분했다.

눈살을 찌푸리면서 조준경을 들여다보며 한참 조준할 필요가 없었다.

보이기만 하면 됐다.

그러면 명사수 특성이 총끝을 잡아 줄 것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텅! 터더더덩! 터더더더덩!

내 HK416이 총성을 뿜었다.

흡사 속사로 갈기듯 격발했고, 적 윤곽이 허물어졌다.

단 한 발도 내쪽으로 날아오지 않았다.

그럴 시간도 없었으니까.

그야말로 한 발자국 정도, 창가 쪽으로 내미는 순간 바로 맞췄으니까.

그것도 내 각도에서 보이는 순서대로.

한 발도 아니었다.

물론 아쉬운 게 없진 않았다.

시야가 온전했다면 머리만 깔끔하게 맞췄을 텐데, 눈이 부신 바람에 두어 발씩 박아 넣은 탓이었다.

그래도 늦지 않게 반원의 절반인 8명을 정리했다.

이어서 반대쪽으로 쏘려다가 주춤했다.

투다다다다다다다당──!

기관총 탄환이 쏟아진 탓었다.

그것도 50구경으로 된, 손가락만 한 탄두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콰가가가각!

파바박!

다시금 집기가 갈리고 터져 나가면서, 어느새 올라왔던 제이크는 납작 엎드렸다.

머리를 내밀던 해리는 다시 들어갔고.

“씹……!”

입밖으로 나오는 욕설을 씹듯 흘리면서, 창가 구석으로 조심스럽게 총을 내밀었다.

불을 뿜는 기관총을 무력화하기 위해서였다.

정확하게 견착하지 않아도 쏠 순 있고, 보이기만 하면 맞출 순 있을 테니까.

물론 거리가 멀수록 효과가 없지만, 다행히 건물 간의 거리가 가까웠다.

25미터 정도.

중간에 주차된 차량 몇 대가 있었는데, 기관총이 3층에서 찍어 누르듯 쏜 탓에 은폐의 기능조차 못했다.

즉, 창가에서 맞추는 수밖에 없었고, 이에 총을 내민 순간.

투다다다다다다다당!

카앙―!

기관총의 연발음 끝에 날카로운 파열음이 울렸다.

HK416이 맞은 것이었다.

이어서 찡하는 진동이 손바닥을 타고 전신에 끼쳤다.

“……!”

급하게 HK416을 회수했고, 상태를 확인한 뒤에 바로 멜빵을 벗었다.

몸체가 훼손된 탓이었다.

대신 글록19를 꺼내 들어서 약실을 확인했다.

사격이 창문에만 집중되고, 어느새 문쪽으로 적이 접근하고 있다는 무전이 들어온 탓이었다.

다른 총을 바꾸거나 받아 들 틈이 없었다.

- 문 기준으로 좌측 벽면에 적 8명 도열함.

바로 망가진 문틈을 겨누었다.

아직 각도 때문에 조명을 켠 바깥만 보였으나, 곧 접근하는 이가 보일 것이었다.

그 정도면 기관총의 제압사격도 멈출 터.

사격하기에 나쁘지 않았다.

물론 배운 놈들이라면 안으로 뭐든 집어 넣을 게 분명하고 그만큼 위험하겠지마는, 그것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수류탄이든, 섬광탄이든, 꺼내 들거나 넣기 전에 쏘면 그만이었다.

열린 문 각도로 봐서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격이 멎은 순간.

문틈으로 경비복 따위가 보이기에 방아쇠를 당겼다.

탕탕탕탕!

연속으로 네 발.

따로 뭘 조준하진 않았다.

문틈에 뭔가 보여서 바로 격발했을 뿐이고, 그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이어서 바로 창가를 조준했다.

기관총 세례가 이어지기 전에, 조치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기관총 사수 사살.

비록 5.56㎜탄이 아닌, 글록19의 9㎜짜리 탄이지만, 이걸로도 충분히 맞출 순 있었다.

거리가 멀지 않았으니까.

수백 미터면 몰라도 고작해야 25미터의 간격에 불과했다.

그리고 기관총의 위치도 꿰고 있는 상황.

탕탕탕탕탕!

다섯 발을 쐈는데, 그사이에 제이크가 문옆으로 달라붙어 있었다.

동시에 내게 시선을 보냈고, 짧게 말했다.

- 수류탄 투척.

걸걸하고도 묵직한 목소리가 나직하게 깔리는 사이.

어느새 그의 손에 수류탄이 들렸다.

핀이 뽑혔고, 이어서 문틈으로 툭 집어 던졌다.

보통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때 하는 짓인데, 그걸 반대로 한 것이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상대방의 위치를 상공에서 보고 있었고, 그걸 제이크가 알고 있었으니까.

그 위치로 수류탄이 정확하게 굴러간 것이었다.

“수류탄이다!”

“피해!”

놀란 중국어가 들려오는 순간.

콰아아아아아앙―!

폭발과 함께 굉음이 울렸고, 진동이 사무실을 흔들었다.

가건물이 아닌, 벽돌 건물이라 다행이었다.

제이크의 시선을 받아서 빠르게 문 밖으로 나갔고, 바로 글록19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탕탕탕!

엎어지거나 꿈틀거리던 이들의 머리통을 날렸고, 엎어져 있던 주변의 다른 적도 모두 사격했다.

훈련받은 대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주차된 차량 타이어 쪽에 몸을 감춰 가면서.

마지막으로는 공사장에서 쓸 법한 커다란 스탠딩 조명을 향해 쐈다.

탕탕탕탕탕탕!

쨍그랑! 파앙─!

깨지고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빛이 쓸려 가듯 사라졌다.

금세 어둠이 채워질 무렵.

“리, 괜찮나?”

제이크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주차된 차에 쭈그리듯 엄폐한 것이었다.

그 옆에 있는 차에는 해리도 있었고.

이에 고개를 끄덕여 답하는데, 이어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 여기는 2-2. 부비 트랩 설치 완료했고, 바로 합류하겠음.

늦게 올라온 2-2 팀의 팀장인 마커스의 목소리였다.

이에 야투경을 쓰고 사무실 쪽을 바라보자, 수신호와 함께 호세, 레이첼, 마커스 순으로 모습이 드러났다.

신속하게 주차된 차량 틈으로 움직였고, 그 끝에 제이크도 짧게 지시했다.

- 리, 3시 방향으로 이동해.

“알겠습니다.”

그의 말을 받아 움직였고, 금세 본관에 다다랐을 때였다.

어느새 뒤로 남은 인원이 모두 집결했고, 레이첼은 가방에서 웬 기계까지 꺼내고 있었다.

아마 내부 인원을 파악하려는 것일 터.

이어서 레이첼이 매고 있던 HK416을 넘겨 받아 약실을 확인할 때였다.

- 터널 미확인 출입구에서 타깃 출현.

위성 정보였다.

생각지도 못해서 주춤한 사이, 목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 터널 출발지에서 약 700미터 지난 지점, 현재 인근 TF 235 요원 이동 중이며… 추가로 터널 1번 출구로 다수의 적 도주 중.

“뭐라고……?!”

터널 1번 출구라면, 여기서 딱 100M 거리에 있는, 발견된 출입구였다.

즉, 건물에 있던 놈들이 방금 다 도망갔다는 소리.

거기에 레이첼의 말까지 더해졌다.

“생체 반응이 없어요. 본관이 비었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