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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175화 (175/185)

175화

터널이라는 변수에 맞춰 진입 방법과 대열 순서 따위를 논의하고, 기존에 세웠던 작전 내용을 재검토한 뒤.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으나, 야간이 될 때까지 기다릴 여유도 없던 탓이었다.

800미터짜리 터널을 수색하고 통과하는데 걸릴 시간을 계산해야 하고, 그게 아니어도 작전지역까지 도보로 한 시간은 족히 움직여야 해서 그랬다.

접선지인 이곳에서 작전지역인 천체관측센터까지 대략 3㎞.

그 정도면 30분 안에 주파할 수 있으나, 타이모산 중턱을 빙 둘러 가듯 이동해야 하는 데다가, 제대로 된 길도 없어서 한 시간이 족히 걸릴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노출을 피하기 위해 위성의 도움을 받아 가면서 경로를 바꿔 가며 움직였기 때문에 시간이 더 지체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도착 후에 일몰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을 터.

그런 생각과 함께 비탈진 산길을 한참이나 걸어가다가 우뚝 멈춰 섰다.

- 전방에 도로, 차량 접근 중. 잠시 대기할 것.

위성으로 파악한 정보가 헤드셋을 통해 계속해서 귓속으로 들어온 탓이었다.

- 접근 중인 하얀색 차량 통과 후 도로 넘어올 것.

그 지시대로 차량을 보내고, 빠르게 도로를 넘었다.

그리고 다시 우거진 나무 사이로 발을 디디는데, 다시금 헤드셋 안으로 정보가 도달했다.

- 적 순찰조로 보이는 차량 출발함. 경로 브라보 1, 변화 시 재전파하겠음.

위성 운용병이 우리 팀 전원에게 즉각적인 정보를 전달 중이었는데, 이게 이번에 새로 받은 지원 중의 하나였다.

시차가 거의 없을 정도로 신속하고, 내용도 군더더기 없이 효율적인 위성 정보.

대개 그렇지만, 이번에는 특히 마음에 들었다.

전달하는 이의 목소리도 침착하고 단단한 게 귀에 명료하게 들렸고.

호텔에서 나올 때부터 필요한 정보를 잘 전달해 주고 있었는데, 그뿐만이 아니라 레이첼까지 새 장비를 여러 개 받았었다.

무슨 감지 성능이 있다는 RC카와 해킹인지, 암호 해독인지 가능한 전자 기기, 벽 건너편에 있는 적의 머릿수와 위치를 알아낼 수 있다는 감청 장비까지.

침투할 때부터 위장 신분을 갖고 들어왔기에, 전에 작전할 때하고는 크게 달랐다.

마치 첩보전의 한복판에 있는 듯.

물론 정작 한 건 별로 없고, 지금도 현역 때 했던 산악 구보 중이었지만, 그렇다고 불만족스럽진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내가 늘 하던 거라서, 가장 익숙한 일이었으니까.

더욱이 강철 체력이 저절로 발휘된 덕분에 조금도 지치지 않았다.

근력 운동도 꾸준히 한 덕분에 배낭에 부위별 방탄복과 하드 케이스를 추가로 챙겨 들었음에도 크게 힘든 것도 없었고.

그렇게 사주경계까지 곁들이면서 움직일 무렵, 드디어 도착지가 눈에 들어왔다.

작전 지역과는 약 400M 거리.

언덕배기에 깔린 수풀로 은‧엄폐가 가능한, 적을 내려다보기 좋은 위치였다.

당연히 사격이나 저격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타깃이 아예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 쏠 수 없었다.

그저 적 상태를 확인하기 좋은, 잠깐 머물 만한 공간에 불과했다.

- 여기서 일몰까지 대기하고, 약속한 대로 경계 서도록.

“알겠습니다.”

내가 첫 번째였다.

시간상 가장 먼저 그리고 투입 직전에 한 번 더 경계해야 했다.

당연히 별로 번거로울 것도 없었다.

무거운 걸 들고 오느라고 근육이 펌핑되기만 했을 뿐, 체력적으로는 멀쩡한 덕분이었다.

그렇게 짧게 경계를 서고, 한 시간 정도를 쉬고, 다시 경계에 투입한 뒤.

일몰 직후에 모두 머리를 모았다.

침투 전 마지막으로 작전을 검토하는 것이었다.

작전 지역의 특이 사항부터 이동 시 대열, 적 조우 시 대처와 교전 수칙까지.

전부 언급하고서 제이크가 나를 바라봤다.

“준비해.”

이번에도 늘 그렇듯 내가 선두에 섰다.

뒤로는 제이크와 레이첼, 마커스, 해리, 호세 순으로 자리를 잡았고.

야투경을 내려쓰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수풀을 즈려밟는 발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으나, 위성 정보도 그렇고, 육안으로도 특이 사항은 없었다.

모든 게 순탄했다.

기도비닉을 유지하면서도 신속하게 걸음을 옮겼고, 빠르게 작전지역에 도달했다.

타이모산을 서쪽에 박혀 있는 천체관측센터.

널따란 3층짜리 본관 하나와 약 2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별도로 지어진 1층짜리 사무실 하나가 있는, 겉보기에는 크게 이상할 게 없는 공간이었다.

아니, 외관만 보면 우리가 오인하고 접근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

그러나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움직였다.

위성 영상과 사진, 도감청 자료 따위를 싹 다 받아서 확인한 덕분이었다.

이 안에는 분명 30~40명의 무장 병력이 있고, 건물 옥상과 중간층에는 기관총이 설치되어 있으며, 설계 도면에도 없는 터널이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접근한 건물 벽면에서 잠깐을 대기했다.

유선으로 연결된 CCTV가 코너마다 달려 있어, 안쪽부터는 차근차근 무력화시켜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기다리길 잠시, 헤드셋으로 예의 목소리가 넘어왔다.

- 셋, 둘, 하나. 레이저 발사, 진입해도 좋음.

그 말과 함께 야투경의 렌즈를 통해 굵은 레이저가 보였다.

꽤 멀리서부터 저격하듯 쏘아져 카메라를 비추는 모양새.

우리를 비출 수 있는 카메라에 레이저를 쏴서 화면을 가리는 것이었다.

이에 서둘러 걸음을 옮겼는데, 곧 해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 감시 카메라 단선 완료.

들어오면서 바로 선을 끊은 모양이었다.

동시에 나도 빠르게 움직였고, 제이크가 허벅지를 터치하자마자 신속하게 걸음을 내디뎠다.

탁.

금세 외따로 지어진 사무실 문 옆에 도착했고, 레이첼이 음파탐지기 같은 걸 작동시켜서 내부를 확인하려고 할 때였다.

철컥.

문고리가 돌아갔다.

나는 문 옆에 서 있었고, 손잡이를 잡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므로, 돌아가는 원인은 단 하나였다.

우리가 들어가려던 사무실 안에서 누군가 나오는 것.

누군지는 뻔했다.

무장 병력 중 한 명, 아니어도 관계자일 터.

예상한 만큼 당황스럽지도 않았다.

카메라가 무력화됐으니, 나올 가능성도 그만큼 높고, 작전을 준비하면서 언급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문고리가 돌아가기 시작할 무렵.

한 손으로 야투경부터 올렸다.

사무실 안에서 나오는 불빛에 눈이 망가질 수도 있기 때문인데, 이어서 글록19를 벨트 권총집에 집어 넣었고, 신속하게 대검까지 뽑았다.

적이 문 너머 어딘가에 서 있으면 몰라도, 열고 나오는 건 굳이 조준해서 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기도비닉이 중요한 상황인 만큼, 총성은 자제해야만 했다.

소음기를 꼈다고는 해도, 데시벨이 제법 높으니까.

물론 나오는 적이 두 명 이상으로 여러 명일 수도 있으나, 그건 걱정되지 않았다.

나도 뒤에 팀원들이 대기 중이었고, 정 급하면 대검을 놓으면서 글록 19를 뽑아 격발해도 됐다.

숱하게 연습해 봐서 조금도 염려되지 않았다.

그런 만큼 사무실 안에서 대기 중일 병력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무성 무기로 해결하고, 안에서 총을 격발하는 게 나았다.

그렇게 대검을 내 가슴팍 높이로 들고, 문틈을 겨눈 순간.

끼익.

문이 열렸다.

사람의 형체가 드러남과 동시에 바로 대검을 내질렀다.

목표는 방탄복이 미처 가리지 못한 그리고 경동맥이 지나가는 부위.

푸욱―!

있는 힘껏 찔러 넣었다.

신경은 물론이고, 뼈 같은 게 걸려도 그것까지 끊어 버리도록.

그제야 적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아시아인.

아마 중국인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상대의 손이 움직이기 전에 대검을 뽑았다.

촤악―

일순 피분수가 뿜어지자, 제이크의 커다란 손아귀가 그를 잡아당겼다.

이어서 드러난 공간으로 내가 들어갔다.

피에 젖은 대검은 옆구리의 대검집에 집어 넣고, 다시금 글록 19를 꺼내면서.

그리고 내가 봐 뒀던 설계 도면을 떠올리며 시선을 옮겼다.

막힌 곳과 뚫린 곳, 적이 있을 곳을 구분했고, 이내 당황한 시선 하나를 마주했다.

이번에도 아시아인이었는데, 금방 국적을 알았다.

중국어가 들린 덕분이었다.

“누, 누구야?!”

사투리 같은, 표준어와 다른 억양이 있긴 했으나, 명백한 중국어였다.

물론 더 들어 볼 이유도, 시간도 없었다.

탕―

소음기를 거친, 조금 작아진 글록 19의 총성이 깔렸고, 이어서 한 발을 더 쐈다.

한 번에 이마를 관통했으므로, 다른 적을 향한 사격이었다.

그의 뒤쪽에, CCTV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두 명의 중국인들.

타당―

돌아본 두 사람 모두 머리통이 깔끔하게 뚫렸다.

어느새 시체가 된 이들이 천천히 쓰러지고, 가리고 있던 CCTV 영상이 드러났다.

레이저 덕분에 새하얗게 빛 번짐이 된 상황.

그리고 나머지 카메라를 들여다보는데, 뒤에서 제이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지하 통로로군.”

언제 소파를 치운 것인지, 시체와 함께 한쪽으로 밀어낸 그가 바닥으로 턱짓해 보였다.

대충 봐도 출입구로 보이는 문짝이 있었다.

아마도 강철로 제작된 듯한 모습.

나도 다가가서 쳐다보는데, 어느새 레이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선 열 수 없어요. 안쪽에서만 개방할 수 있게 되어 있어요. 아마 해치 같은 구조로 보여요.”

“팀장, 감시 카메라도 모두 종료시켰습니다.”

그 뒤로 어느새 들어온 해리의 목소리로 들릴 때였다.

- 본관 옥상에서 움직임 감지.

설마 하는 순간, 목소리가 이어졌다.

- 현 상황 노출된 것으로 보임, 교전 대비할 것.

“젠장, 준비들 해.”

총을 꺼내 드는 순간, 어느새 사무실의 창가를 조심스럽게 보던 해리가 목소리를 냈다.

“초소에 불 들어왔습니다.”

기관총을 설치한 곳들에서도 반응이 있다는 소리였다.

“왠지 잘 풀린다 싶더니… 이걸 어떻게 알았지?”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으나, 그마저도 곧 고개를 끄덕이면서 넘기고 말았다.

상대가 어중이떠중이는 아니었다.

이미 웬만한 중간 보스들이 싹 다 갈려 나갔으니, 분명 그만한 조치를 취했을 터.

오히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게 더 이상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넘길 무렵, 제이크가 말했다.

“호세! 마커스! 둘 다 들어와!”

바깥에 벽에 붙어서 대기 중인 두 사람을 부른 것이었다.

왜 그러나 싶었는데, 곧 알아차렸다.

제이크가 곧장 허리춤의 소형 빠루를 집어 든 것이었다.

왜 그러는지도 알 만했다.

이미 알 자마쉬에서 그랬듯, 여기서도 같은 일을 벌이려는 것이었다.

강철이든 뭐든, 뜯어내기 위해.

그러나 전에 봤던 것보다 더 두꺼워서, 정말로 이게 가능한가 싶은 순간.

꽈드드드드득―! 덜컹!

경첩이 틀어지면서 부서졌다.

동시에 문짝이 활짝 열리면서 사다리가 내려진 지하가 드러났다.

“오, 씨발…….”

문이 열린 것이었다.

절로 감탄하면서도, 반사적으로 입구를 겨누는 사이.

레이첼이 어느새 웬 기계를 꺼내더니, 내게 괜찮다는 듯 손짓했다.

“안은 비었어요. 공기 상태하고 부비 트랩 확인하면서 들어가면 될 것 같아요.”

“그런 것도 나와요?”

“네, 일단…….”

그렇게 말을 잇던 순간.

기어코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투다다다다다다다당―!

기관총이었다.

그것도 경기관총이 아닌, 무지막지한 50구경을 사용하는 중기관총.

챙그랑! 파바바바바박―!

사방이 박살 나면서 엎드리라는 고함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제이크의 지시가 떨어졌다.

“리! 먼저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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