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제이크의 손가락이 PDA 화면 위로 선을 긋듯 움직였다.
본관이 위치한 건물 평면도에서 시작해 따로 지어진 조그만 사무실을 잇는 모습.
동시에 제이크의 걸걸한 목소리가 깔려 나왔다.
“이쪽 방향으로 하나, 길이는 약 40여 미터짜리가 있을 거라고 추측되고, 산 방향으로 더 있을 가능성이 크다더군.”
“두 개나 있다고요?”
“최소 두 개 이상, 그것도 터널 너비 같은 내부 구조는 정확하지 않아.”
“아… 이런…….”
인상이 절로 쓰여지는데, 옆에서 해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2팀은 어떻게 합니까? 접촉해서 다시 준비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 두 시간 당겼어.”
“그럼 작전은 그대로 진행하는 겁니까?”
“그대로 진행한다.”
“추가 파악이나 대비는…….”
“두 시간 안에 해야지. 위에서도 분석 중이라고 하니, 터널 관련된 자료가 그 전에 도착할 거야.”
“그래도 쉽지 않은데… 이대로 진행해도 괜찮겠습니까? 따로 지원받기는 어렵잖습니까?”
해리가 계속해서 묻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결국 움직일 수 있는 건 우리뿐인 데다가, 터널을 대비하기 위해 작전을 새로 준비하는 건 벅찬 일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준비 시간이 짧은 경우는 비일비재했으나, 그렇다고 전과 비교하긴 어려웠다.
지금 우리가 상대하는 건 피칼의 수하였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미국의 배반자, 노먼 존스.
더 공을 들여도 모자란 판인 만큼, 해리가 계속해서 묻고, 나 역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해리가 깨달았다는 듯 물었다.
“혹시 놈이 도망간다는 첩보라도 있는 겁니까? 그래서 강행하는 거군요?!”
그럴싸한 말이었다.
중국 국경 앞에서 잡힌 지안드로만 해도 도망의 귀재였기 때문이었다.
밤낮으로 추적해도 무려 1년에 가까운 시간을 따라잡지 못했었고, 갖가지 일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한 뒤에야 생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보면 노먼 존스도 퇴출 중일 가능성이 있었다.
한데, 제이크가 고개를 저었다.
“위에서는 다른 확률을 보고 있더군.”
“다른 확률이라면 어떤…….”
“테러.”
짧은 말끝에 정적이 깔리는 사이, 금세 걸걸한 목소리가 덧붙었다.
“본토를 노린 대규모 테러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더군.”
“…이런 제기랄.”
해리가 욕설을 흘리는 사이.
나는 라레플에서 터진 미 본토에서의 테러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 테러는 핵미사일 발사 직전에나 했었는데…….’
시나리오에서는 일종의 눈속임용으로 핵미사일을 발사하기 직전에 미 본토를 공격했었다.
총기는 물론이고, IED 같은 폭탄이나 작은 미사일 따위로.
그 과정에서 월터 그레이슨이 발각되어 사망했었고, 곧바로 핵미사일까지 발사됐었다.
이후 핵우산 시스템에 의해 반격이 이뤄지면서 핵전쟁으로 번졌고.
즉, 스토리대로 흘러간다면, 핵미사일 개발이 원활하게 진행되어 거의 끝났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수긍하긴 어려웠다.
일선에서 활약하던 세르게이가 죽었고, 뒤이어 나온 지안드로는 생포되어 아직도 갇혀 있었고, 미 본토에서 테러를 돕고 자행했던 월터 그레이슨은 자폭으로 사망한 탓이었다.
그 과정에서 핵 개발과 관련된 연구원들도 체포하거나 사살했었다.
쉽게 말해서 피칼의 손발이 여러 개 잘려 나간 셈.
물론 위르겐이나 노먼 존스처럼 게임에는 없던, 내가 모르던 놈들이 여전히 곁을 지키겠지만, 그래도 일이 제대로 풀렸을 리 없었다.
엄청 꼬였을 게 분명하고, 핵 개발도 지연됐을 가능성이 컸다.
이내 나름의 결론이 나왔다.
‘그럼 테러도 스토리하고는 관련이 없다는 건데… 무슨 목적으로 테러를 저지른다는 거지? 그럼 미국이 열받아서, 백 프로 타깃으로 삼을 텐데…….’
의문 여러 개가 동시에 떠올라 고심하는 사이, 해리가 입을 열었다.
“일단 추가 정보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겠군요. 빌어먹을 터널을 파악해야 침투를 하든 말든 할 테니…….”
“2팀과 합류 전에 보내 준다고 했어, 기다려 봐.”
“알겠습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 45분. 각자 장비 점검하고, 이동할 준비들 해.”
제이크의 말에 상념을 걷어 내면서 시간을 봤고, 어느새 들여온 장비를 착용했다.
새로 받은 플레이트 아머와 전신 맞춤 방탄복.
물론 다 착용할 순 없었다.
어깨나 팔뚝까지는 괜찮은데, 개머리판을 대거나 몸에 쓸리는 상완근 부분은 간섭이 심해서 미처 감쌀 수 없었다.
서로 맞닿는 허벅지도 마찬가지.
결과적으로 기존의 방탄복에 어깨, 복부, 팔뚝과 정강이 정도만 가려졌다.
그사이, 해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벅지가 아쉽군요. 그쪽을 보호하면 치명적인 출혈을 막을 수 있을 텐데…….”
진작에 준비를 마친 그가 내 차림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어깨를 가린 건 괜찮아 보입니다. 선배님 왼쪽 어깨는 같은 자리만 세 번 꿰매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알아?”
“제가 선배님에 대해서 모르는 게 있겠습니까? 전에 샤워할 때 보니까, 무슨 바느질 연습한 것처럼 자국이 있던데요.”
“역시… 눈썰미도 좋네.”
“뭘요. 당연히 알아야죠. 다른 누구도 아니고, 선배님인데.”
해리의 주접에 시선을 돌리는 사이.
어느새 제이크가 전화를 받더니, 나와 해리에게 손짓했다.
얼른 다가가자, 전화를 끊은 그가 PDA 화면을 켜면서 목소리를 냈다.
“터널은 대략적으로 파악됐어. 지하에 2개. 하나는 예측한 대로 40여 미터, 다른 하나는 약 800미터.”
“예?! 800미터요?”
내가 되묻고, 뒤로 해리가 욕을 뱉었다.
“멕시코 카르텔보다 더 미친 또라이 새끼들! 무슨 800미터짜리 터널을 팠답니까?!”
상상도 못 한 길이에 나와 해리 모두 놀라는 사이.
제이크가 처음과 같은 어조로 말했다.
“다행히 터널 크기는 밀입국용처럼 작은 편이야. 문제는 800미터짜리 터널에다가 출입구가 최소 4개 이상은 있다는 점이지. 공사 후에 비상문으로 놔두고 사용하지 않았다면… 노출되지 않은 곳이 더 있을 가능성이 크다더군.”
“와아, 이거… 완전 개미굴인데…….”
다시금 감탄이 절로 나오는 사이.
PDA 화면을 보던 해리가 제이크를 향해 물었다.
“정석으로 진행하려면 출입구마다 병력을 배정해야 할 텐데… 가능하겠습니까? 혹시 없다던 지원이라도 있는 겁니까?”
“그건 여전히 없어.”
“아니, 그러면 작전이 취소되는 겁니까?”
“취소되진 않아.”
“…그러면 더 어려워지겠군요. 선배님께 더 의지해야 될 것 같은데… 혹시 희망적인 내용은 없는 겁니까?”
“있어.”
“어떤 겁니까?”
“위에서 작전을 시뮬레이션하고, 결과를 말해 줬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요? 말해 준 걸 보면 결과가 좋은 모양이죠?”
해리가 마치 희망이라도 담은 듯 눈을 깜빡이며 제이크를 바라보는 사이.
덤덤한 답이 들려왔다.
“그래, 91퍼센트.”
“…네?”
해리가 눈을 껌뻑거렸고, 나도 주춤했다.
“아니, 내용은 말도 안 되는데… 어떻게 91퍼센트가 나온 답니까? 그거 신빙성이 있는 겁니까? 터널 발견이 반영된 겁니까?”
생각보다 너무 높은 수치였다.
한 70% 정도만 되도 좋다고 여길 텐데, 아예 91%라니?
제이크를 쳐다보는데, 곧 답이 들려왔다.
“그래, 반영해서 91%. 그 전에는 99%였어.”
“아니… 무슨…….”
더한 숫자에 주춤했다.
말이 채 안 나오는데, 제이크가 입을 열었다.
“네 능력을 반영한 결과라더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91%가 나온 겁니까? 800미터짜리 터널에다가 출입구도 많아서 변수가 좀 있을 텐데…….”
“나도 같은 말을 했지. 현장에는 변수가 있다고.”
“근데 뭐랍니까?”
“그것까지 다 고려했다더군. 그게 처음에는 1%였고, 지금은 9%로 늘어난 거지.”
“허… 저를 슈퍼맨으로 오해하는 것 같은데…….”
“그게 작전을 진행하는 근거라더군.”
내 능력이 과대평가된 건지, 내가 나를 과소평가했던 건지, 아니면 다른 뭔가가 있는 건지 몰라서 물었다.
“시뮬레이션이라는 거, 복귀하면 저도 좀 볼 수 있겠습니까? 뭘 어떻게 했길래…….”
“안 그래도 말해 놨어. 나도 볼 생각이야.”
같은 판단을 내린 제이크의 대답 뒤로 해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제가 함께 있다 보니까 무뎌진 것 같습니다, 선배님.”
“뭐?”
“간과했다고 봐도 되겠네요. 선배님의 실력은 작전 성공의 근거로 삼아도 충분한…….”
“…또 주접떠네.”
해리의 말을 대충 자르고 화두를 돌렸다.
“어쨌든 작전은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거고… 그럼 인력 말고 딴거라도 지원 좀 받아 주십쇼.”
“그것도 요청했어.”
“오, 뭘 지원해 준답니까?”
“휴대할 수 있는 건 접선지에 갖다 놓을 거고, 그 외에는 위성이나 통신망을 통해서 정보로 전달한다더군.”
“다른 건 없고요?”
“이게 전부야.”
“적 머릿수는 어떻습니까? 터널 안에 더 없는 겁니까?”
기존에 확보한 정보는 대략 30~40명이었다.
물론 이것도 원래는 많은 숫자지만, 내가 상대했던 규모에 비하면 부담될 만한 규모는 아니었다.
노출된 개활지라면 몰라도, 침투할 곳이 산간이라 크게 우려되진 않았다.
포위되기 전에 전열을 붕괴시킬 자신이 있었다.
충분히 그럴 능력도 있었고.
근데 인원이 이것보다 더 많아지만, 2배에서 3배 정도로 늘어나면 나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에 제이크를 바라봤는데, 다행스러운 답이 돌아왔다.
“그건 변함없어. 터널은 비어 있다고 하더군.”
“음, 그나마 낫네요. 머릿수는 그대로라니… 그럼 일단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마저 장비를 착용하고, 총기를 확인했다.
정석대로 하면 추가 정보를 확보하고 확실한 지원을 받아야 되겠지만, 지금은 달리 방법이 없었다.
여긴 몰래 들어온 홍콩이었으니까.
작전을 수행해야만 했다.
91%라는 작전 성공률도 그렇지만, 본토 테러 첩보까지 무시할 순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얼른 좀 잡아 넣고 싶었다.
노먼 존스든, 뭐든.
그래야 피칼에게 한 걸음 더 가까워질 테니까.
그 끝에 걸걸한 제이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출발 5분 전.”
“예, 준비 다 됐습니다.”
일어나면서 다시금 약실을 들여다봤다.
홍콩에 들어온 이후로 만나지 못한 마커스와 호세, 레이첼로 이뤄진 2-2팀과 합류할 차례였다.
* * *
홍콩, 타이모산(大帽山), 남쪽 방면 사찰 근처 마을.
현지에서 흔히 볼 법한 혼다 승용차 한 대가 골목으로 들어섰다.
주차된 다른 차량과 골목을 늘어서 있는 주택을 지나친 뒤, 어느새 콘크리트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량과 주택, 인적마저 드물어질 무렵.
슬레이트 지붕이 올라간 단층짜리 건물 앞에서 완전히 정차했다.
안 할 수도 없었다.
길이 거기서 끊어지고, 뒤로는 차량이 올라갈 수 없는 수풀이 우거진, 좁디좁은 흙길이었으므로.
그렇게 시동까지 꺼진 뒤, 혼다 차량에서 사람들이 내렸다.
홍콩에 단체 관광객의 일원으로 왔던 호세와 마커스, 레이첼이었다.
입국할 때와 마찬가지로 여행객처럼 입고 배낭을 맨 그들이 주변을 둘러보면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동시에 착용한 인이어 무전기를 통해 정보가 전달됐다.
- 신속하게 이동하기 바람. 6시 방향 130미터 거리에서 거주민 움직임 확인됨.
위성 정보였다.
이를 들은 세 사람이 빠르게 움직였고, 현관에 도착하기 무섭게 문이 열렸다.
덜컹.
동시에 굳게 닫혀 있던 마커스의 입이 가볍게 벌어졌다.
“드디어 만나는군요, 팀장.”
“들어와.”
“사업은 잘됐습니까?”
“아니, 문제가 하나 생겼어.”
“뭡니까?”
들어와서 가방을 내려놓던 마커스가 물었고, 마찬가지로 짐을 풀던 레이첼과 호세가 제이크를 바라봤다.
“사전 정보에 없던 터널이 확인됐어.”
“그게 무슨…….”
“마저 준비하면서 들어.”
제이크가 턱짓과 함께 설명을 이어 갔고, 장비 착용과 총기 확인을 하던 호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 이런…….”
그러나 레이첼도 해리가 그랬듯 납득하고 있었다.
“91퍼센트라는 게… 틀린 말은 아닐 거예요. 시뮬레이션은 정확도가 높아요. 각종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드는데… 암암리에 취득한 첩보로도 상당한 정확도를 자랑하거든요. 리가 제공했던 그간의 정보라면… 틀릴 가능성은 없을 겁니다. 아마 맞을 겁니다. 최초에 나왔던 1%의 실패 가능성은… 폭격 정도가 될 겁니다.”
“그래도 현장은 CIA가 만든 표처럼 돌아가진 않아.”
“그게 아니어도 저는 리를 믿어요. 그에게는 터널이 800미터가 아니라, 8,000미터라도 큰 걸림돌이 되진 않을 거라고 봐요.”
“나도 동감해.”
마커스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이자, 해리가 잘됐다는 듯 말을 받았다.
“역시! 거봐요, 선배님.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선배님의 능력은…….”
“모였으니까 작전이나 듣지. 아, 팀장님?”
강태가 말꼬리를 돌렸고, 듣던 제이크가 피식 웃고서는 입을 열었다.
“그래, PDA 화면부터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