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홍콩, 타이모산(大帽山) 남서쪽 도로변의 증축 중인 천체관측센터.
방수포를 덮어쓴 화물 트럭 따위가 꾸준히 드나드는 가운데, 노먼 존스는 이를 CCTV 영상으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것도 불안한 기색이 깃듯 눈으로.
‘월터는 아무렇지도 않았나? 아니, 지안드로 그 작자는… 위르겐이나 피칼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노먼의 머릿속을 채웠다.
미국에서 들어오는 정보로 인해 여러모로 불안한 탓이었다.
정확히는 대외협력국의 해체.
이후로 관계자들의 정보를 찾으려 했으나, 그가 원하는 건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특히 사라진 대외협력국의 후신이 될 기관이 어디인지 그리고 대외협력국에 소속됐던 원년 멤버들은 어디에 있는지 등등.
그중 원년 멤버들의 거주지로 의심되는 공관 구역을 찾긴 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모든 정보가 기밀인 데다가 접근 또한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정보원으로는 그 안에 누가 있는지조차 알아낼 수 없었다.
미국에 있는 정보원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멀찍이서 공관을 드나드는 차량만 파악하는 게 다였다.
군 내부나 CIA, 미 정부에 소속된 정보원들도 힘을 못 쓰긴 마찬가지.
한데 그 와중에 불안한 소식이 들어온 것이었다.
[…평소 대비 차량 출입량 2.5배 이상 증가, 상세 차종 및 추정 무게, 차량 출발 및 도착지 별첨.]
관련 자료들을 본 노먼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바로 작전 준비.
그게 아니더라도, 실 작전에 준하는 뭔가를 진행 중이라는 뜻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게 지속됐으면 차라리 좀 나았을 텐데, 어느 순간 차량 출입이 멈추면서 조용해진 것이었다.
마치 평소처럼.
경우의 수는 여러가지지만, 노먼은 나쁜 쪽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었다.
‘작전에 돌입했거나, 그에 준하는 뭔가를 이행하고 있다고 봐야겠지.’
일이 어그러지거나 중단됐을 가능성도 있으나, 그건 노먼의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상대가 방만하고 보수적인 육군이나 만만한 주 방위군이 아닌 탓이었다.
관련 정보가 모두 기밀로 처리되고, 공관으로 옮겨질 정도로 상당한 지원을 받는 특수한 목적의 조직일 가능성이 컸다.
작전 준비든, 실행이든, 강력하고 신속하게 진행될 것이었다.
심지어 적은 전직 특수부대 출신들인 인간 병기들인 데다가, 러시아의 스페츠나츠와 FSB(Federal Security Bureau)의 알파 그룹을 나온 세르게이를 죽게 만들고, 이탈리아의 GIS(Gruppo di Intervento Speciale: 특수개입그룹) 출신인 지안드로를 생포한 이들이었다.
인간 병기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는 괴물들.
특히 그 중심에 있는 강태는 가장 강력한 화기라고 불러도 될 만한 사람이었다.
노먼의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현장에서 생존한 베트남 국경 수비대의 증언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눈 깜짝할 새 두 발, 두 손이 차례대로 터져 나갔다. 그게 총에 맞아서 터졌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말인즉슨, 자신 역시 눈에 띄는 즉시 총에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차라리 죽는 게 나았다.
지안드로처럼 팔다리가 다 터져서 강제로 생포당하면, 그 뒤는 더 감당하기 어려울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온갖 비인도적인 심문이 자행될 거고, 그 과정에서 장애가 추가될 터.
노먼이 CCTV 영상을 보면서도 불안함을 비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강태가 이미 와 있을 수도 있었다.
물론 홍콩을 비롯한 중국의 출입국 기록에 표시된 신분은 없었지만, 그것만 믿고 있을 순 없었다.
모든 게 기밀인 만큼 위장 신분을 사용했을 확률이 높았으니까.
그걸 대비해서 홍콩을 비롯한 주변 도시 공항과 항구를 통해 들어온 이들의 얼굴을 모두 살펴보고 있었는데, 위장했을 가능성이 있어서 이 역시 신뢰하기는 어려웠다.
결론적으로 모든 게 불안한 상황.
‘…빌어먹을. 본토에서 스파이 생활할 때가 백만 배는 나았어.’
그때는 적어도 표적이 되지 않았었다.
물론 발각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나, 그 정도는 사상과 업무로 상쇄시킬 수 있었다.
지금이 문제였다.
기밀 유출자로 낙인이 찍히고, 추적당하는 상황이라 불안이 배가 된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곳이 홍콩이라는 점이었다.
미국이나 미국의 동맹국이 마음껏 활약하기 어려운 땅.
더불어 노먼이 위치한 천체관측센터 옥상과 각 층마다 중국제 50구경 기관총이 배치되어 있으며, 중국 군경이 외곽부터 보호 중인 상태였다.
그래서 노먼 역시 속으로 딴생각을 하면서도, 피칼이 내린 과업을 지속하고 있었다.
미국내 정보 취합, 정리, 계획 수립, 밀입국 브로커의 역할과 테러까지.
당장 하고 있는 일이 참 많았으나, 노먼은 지금 이 순간에 다른 걸 떠올리고 있었다.
여태 해 왔던 생각의 결론.
‘정말 그놈들이 이 건물까지 멀쩡하게 온다면…….’
최악에서도 최악을 가정한 노먼이 경우의 수 몇 개를 떠올리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항복해 봐야 좋은 꼴을 보긴 어렵고, 대항해 봐야 죽을 게 뻔한 탓이었다.
특히 강태의 총구에 걸리면 안 됐다.
그의 사격술에 대한 정교한 기록은 없으나, 습득한 자료만 봐도 믿기 어려울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도망밖에 없겠어. 뒤돌아보지 않고, 최대한 빨리…….’
노먼이 뛰어 내려갈 출입구를 잠깐 바라봤다.
피칼이나 위르겐이 좋아할 것 같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배척하진 앟을 것이었다.
최후 역시 알아서 맡겼기 때문이었다.
세르게이나 지안드로, 월터가 그랬듯 노먼 자신의 결말도 스스로 정할 권리가 있었다.
‘나는 반드시 살아서 두 눈으로 피칼이 일으킬 혁명을 보겠어. 그게 전 세계의 멸망이든, 미국의 파멸이든…….’
상상만 해도 기쁜 광경을 떠올리면서, 노먼이 다시금 각오를 다졌다.
* * *
11월 초, 홍콩.
비행기에 탈 때까지 별 감정이 없었는데, 도착해서는 괜히 주변을 둘러보게 됐다.
‘진짜 여길 왔네…….’
홍콩이 아닌 다른 나라는 웬만하면 미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반면에, 여기서는 그게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자력으로 모든 걸 해결해야만 했다.
우리를 보조하기 위해서 선발대로 TF 235라는 팀이 들어와 있긴 했으나, 그들은 전투 임무까지 가담하진 않을 예정이었다.
아마 최악의 상황에서 총을 꺼내 들 가능성이 컸다.
애초에 침투와 타깃을 제거하는 임무는 우리 TF 242만 수행하도록 계획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들 외에도 정찰 위성이나 첨단 첩보 기기를 제공받았다는 거였는데, 그렇다고 해서 크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결국 일은 사람이 해야 되는 건데, 여기에 사람은 우리뿐이었으니까.
심지어 그 팀도 쪼개져 있었다.
제이크와 해리, 내가 사업가로 위장한 2-1 팀으로, 마커스와 호세, 레이첼이 단체 관광객의 일원으로 위장한 2-2 팀으로.
‘내가 사업가를……?’
사용 가능한 언어가 많아서 정장을 입게 됐는데, 그보다는 걸리는 게 따로 있었다.
바로 제이크.
2M에 달하는 키와 130㎏이 넘는 몸무게를 가진 그는 흡사 거인과 같았다.
서 있으면 단박에 눈에 띄는 표적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수염을 다듬고, 머리부터 염색을 새로 했고, 분장을 좀 했음에도 덩치가 워낙 커서 돋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입국하자마자, 택시부터 탄 그는 호텔로 직행해서 은신하듯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남은 건 나와 해리였다.
다행히 이 역시 마련한 계획 중 하나였으나, 썩 만족스러울 순 없었다.
정신적으로 그리고 신체적으로도 기댈 수 있는 지휘관이 호텔 방에 처박혀 있어야 했으니까.
“별일 없어야 할 텐데…….”
호텔을 나오며 중얼거리자, 함께 걷던 해리가 옅은 미소를 띄웠다.
“걱정 마세요, 제 출신 알잖습니까? 미스터 저우.”
말끝에 내 위장 이름이 불렸다.
브라이언 저우.
중국계 미국인이라는 설정이었는데, 그는 벌써 익숙해진 듯 나를 저우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걱정을 좀 덜어 냈다.
비록 해리가 후배를 자처하는 데다가 나이가 어리긴 하나, CIA를 거쳐 온 인재인 데다가, 능청맞아서 연기력까지 훌륭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너 잘하지.”
“자, 그럼 이쪽으로 가시죠. 여기가 포럼 장소입니다.”
내 말에 해리가 가볍게 웃으면서 길 안내를 했고, 자연스럽게 임시 패용증을 받아 목에 걸었다.
손에는 팸플릿과 서류 가방을 든 채.
그렇게 들어간 포럼 장소에서는 정말 눈만 뜬 채로, 그냥 숨만 쉬다가 나왔다.
고등학교를 그냥저냥 졸업한 이래로 군 생활만 10년을 했고, 이후로는 잡다한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 와서 사업의 ‘ㅅ’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무슨 경제 용어를 시작으로, 새로 만들어진 합성어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었다.
어쩔 수 없이 조용히 있어야 했다.
반면에 해리는 정말 참석자처럼 고개를 주억거리고, 무슨 단어도 적으면서 눈을 빛냈다.
‘역시 가방끈 긴 놈은 다르긴 다르네…….’
내심 감탄하는 사이.
포럼이 끝나고,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쪽에서 설명회까지 한답니다, 미스터 저우. 그거 듣고, 참가자 명단 서명하고, 안내문까지 받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어어, 그래.”
해리가 똘똘하게 이끌고, 나는 그저 조용한 중국계 미국인을 흉내 낼 무렵.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스케줄 변경을 알리는 회사에서 온 문자였다.
당연하게도 전부 가짜였다.
안에 들어 있는 건 몇 개의 통신 음어였고, 진짜 내용은 따로 있었다.
‘타깃 파악 완료. 장비 수령 및 계획 수정할 예정이니 복귀할 것.’
눈이 번쩍 뜨였다.
포럼 안에서 졸 뻔했던, 답답하고 지루했던 순간이 확 날아가듯.
이번에는 내가 해리의 위장 이름을 불렀다.
“크리스토퍼.”
“네.”
“회사에서 문자가 왔어.”
“아, 음… 그렇군요.”
어느새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본 그가 나와 눈을 마주했다.
“어쩔 수 없군요, 이것도 재미 있었는데.”
미친놈이라는 말이 목끝까지 나오다가, 생각을 털어 내듯 고개를 저었다.
“여기 담당자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이쪽입니다.”
해리가 여기 관계자인 것처럼 빠르게 안내했고, 담당자를 만나 얘기를 마치고 행사장을 빠르게 빠져나왔다.
바로 택시에 올라고, 호텔로 직행했다.
갑갑했던, 어울리지 않는 넥타이를 풀어내는 사이.
어느새 호텔 정문으로 들어갔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제이크가 있는 객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바로 좋은 소식부터 들었다.
“타깃의 음성을 확보했고, 예상 위치도 확인했어.”
“오, 어딥니까?”
노먼 존스가 등장한 작전 지역만 파악했을 뿐, 구체적인 장소까지 알진 못했다.
위치가 산지인 데다가, 건물도 여러 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증축을 이유로 공사 현장까지 만들어서 각종 소음과 잡음이 끼어 있었고.
“여기.”
제이크가 PDA에 표시된 맵을 짚으며 말했다.
“문제는 내부 구조야.”
“구조요? 설계도하고 뭐가 다른 겁니까?”
설마하며 물었다.
출발 전에 파악한 작전 지역 지리에는 문제가 될 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해리도 눈을 깜빡이는 가운데.
제이크의 목소리가 무겁게 내리깔렸다.
“터널이 있어.”
“아…….”
탄식이 절로 나왔다.
일이 복잡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