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167화 (167/185)

167화

MH-60R 시호크를 타고, 베트남 상공을 날아가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헬기 로터음과 진동 따위가 전신에 전해지는 가운데, 헤드셋을 통해 조종사의 목소리가 건너왔다.

- 목적지 도착까지 28분 예상됩니다.

함께 들은 호세가 엄지를 치켜세워 보였다.

차량으로 이동하면 2배가 아니라, 족히 3~4배가 걸릴 만큼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었다.

목적지까지 거리도 멀었는데, 문제는 도로 상태였다.

도심지만 좀 포장된 아스팔트가 깔려 있을 뿐, 외곽으로 나가게 되면 대부분이 비포장길이었다.

그것도 보통 길이 아니었다.

잦은 소나기로 인해 지면이 유실되어 웅덩이가 만들어지고, 땅속에 박혀 있던 돌뿐만 아니라, 나무뿌리 같은 것도 올라오는 완전한 흙길이었다.

그래서 헬기를 탄 게 천만다행인데, 다행스러운 건 또 있었다.

바로 지안드로.

도보, 혹은 차량 따위로 이동 중일, 아직 베트남을 벗어나지 못한 그 역시도 나쁜 도로 상태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을 것이었다.

길이 아닌 곳이라면 더더욱 느릴 거고.

단순히 내 생각이 아닌, CIA를 비롯한 전문가들의 판단이었다.

그래서 지안드로가 조금이라도 더 늦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직 중국으로 건너가지 않기를 바라는 사이.

내 기대를 알아주기라도 한 듯, 새 무전이 도착했다.

- 정찰기 영상이 타깃을 파악했다더군. 영상 전송한다고 하니, 즉시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 개인용 휴대 단말기) 확인해.

제이크의 말이었다.

두꺼운 손과 커다란 덩치와 다르게 순식간에 PDA를 꺼낸 그가 화면을 들여다봤고, 나도 늦지 않게 PDA를 꺼내 화면을 들여다봤다.

그러다가 주춤했다.

안전 가옥에서 들었던 경고와 우려와는 다른, 썩 낯선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수풀 사이에 난 비포장길을 달리는 스쿠터 한 대.

- 이게 우리 타깃이라고?

- 음, 예상 밖이군.

호세와 마커스가 한마디씩 감상을 내놨고, 나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누가 봐도 테러리스트였던, 병력 수십 명을 진두지휘한 세르게이하고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우비까지 뒤집어쓰고 스쿠터를 운전하는 모습이라니?

이건 누가 봐도 흔한 배낭여행객이었다.

‘아는 얼굴이면 뭐라고 말이라도 할 텐데… 바지 세우거나 대리 맡긴 걸수도 있고…….’

마침 같은 생각인지, 해리도 의견을 뱉었다.

- 전파 교란기나 휴대용 중계기를 소유한 건 아닐까요? 영상 근거가 무엇입니까?

- 지금 듣고 있어, 기다려 봐.

제이크가 잠깐 인상을 쓴 채 가만히 있기를 잠시.

- 체격, 복장, 스쿠터, 사용한 통신망, 이동 경로 종합적으로 판단했다더군. 겉모습 역시 위장일 가능성이 크겠어.

“근데 영상에는 혼자처럼 보이는데, 추가 인원이 더 없는 건 확실합니까?”

이번에는 내가 묻자, 제이크가 고개를 저었다.

- 길 좌우로 수풀이 깔려 있어서 전부 볼 수 없다더군. 저번처럼 열 반사 비닐이라도 뒤집어썼다면, 정찰기가 놓쳤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어.

“아…….”

고고도 무인정찰기의 열 영상도 피해서 숨어 있던 타릴 제도의 용병들이 떠올랐다.

그 일이 반복되지 않을 리는 없었다.

심지어 그 일의 배후에 있던, 혹은 직접 지휘했던 인물이 지안드로라고 추측하는 상황.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러니 여태 못 잡았지, 염병할 괴도 루팡도 아니고…….”

한국말로 중얼거리자, PDA를 한참이나 들여다보던 제이크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 리.

“예, 팀장.”

무슨 말을 하려나 기다리는 무렵, 제이크가 고심하듯 목소리를 냈다.

- 이미 경고를 들었듯, 함정이 있을 수도 있어.

“각오하고 있습니다.”

- 아냐, 함정은 우리가 맡겠어. 너는 타깃을 맡아.

내가 말을 덧붙이려 하자, 그가 다 안다는 듯 짧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 중요한 건 우리와 그들의 목숨이 아니라, 중국 국경으로 움직이는 타깃이야, 리. 지금 넘어가면 놓칠지도 몰라.

틀린 말이 아니었으나, 팀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게 가족과도 같은 이들이었으니까.

고개만 주억거리는데, 한쪽에 앉아 있던 마커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 그래, 우리뿐만 아니라, 레이더스(Marine Raider Regiment: 해병 레이더 연대)까지 함께 이동 중이잖아?

- 마커스도 드디어 인정하는군그래. 씰만큼은 아니지만, 레이더스도 대단한 놈들이야. 저격수든, 기관총이든… 함정이 있어도 믿고 맡겨, 그들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거야. 거기다 우리도 있고.

연이은 호세의 말이 들릴 무렵.

레이첼이 날 보며 가볍게 미소 지어 보였고, 해리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선배님이 다른 데 신경 쓰다가 타깃 놓치게 되면, 그놈은 앞으로 더 많은 사상자를 낼 겁니다. 그러니 선배님께서 확실하게 잡아 주십시오. 안 그래도 생포하겠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래, 생포해야지.”

- 사격술로 사람을 죽이지 않고 생포할 수 있는 건 선배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팀장님 말처럼 선배님은 타깃에만 집중하십쇼. 나머지는 저희를 믿고 맡기고.

돌아가며 나온 말에 쓰게 웃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함정을 뒤로 한다는 건 아니었다.

상황이 발생하면, 타깃을 빠르게 제압하고서 손을 보태려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가운데, 제이크가 확정하듯 말했다.

- 그럼 타깃은 리가 맡고, 그 외의 사주경계와 유사시 상황은 우리 팀과 레이더스가 맡는다.

“알겠습니다. 그럼 교전 수칙은 어떻게 됩니까?”

시간 들여서 작전을 준비하지 못했고, 이제야 타깃을 확인했기에 묻는 말이었다.

제이크가 날 보더니 짤게 답했다.

- 네 판단이 곧 교전 수칙이야.

“예, 명심하죠.”

- 그러나 책임은 내가 질 테니, 네 뜻대로 해.

과연 팀장다운 든든한 말이었다.

내가 라레플을 할 때부터 가장 마음에 들어 한 인물다운 말에 웃고 말았다.

“그 전에 총부터 좀 바꾸겠습니다. 멀리서부터 쏴야 할 것 같네요.”

내심 걱정이 된 탓이었다.

본토에서도 월터 그레이슨이 폭탄을 터뜨려 자폭했다고 했었으니까.

지안드로도 그럴 가능성이 충분했으니, 그가 무슨 수작을 부리기 전에 잡으려는 생각이었다.

날아가는 헬기에서 쏘는 건 처음이지만, 자신은 있었다.

강철 멘탈 덕분에 그런 것만이 아니었다.

바다에서도 해 봤고, 또한 잘했었으니까.

어느새 잡생각까지 들었다.

‘이제 공중전까지 섭렵하겠네.’

* * *

부아아아앙―!

지안드로가 한 손으로 스로틀을 당겨 속도를 내면서도,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길이 워낙 나빠서, 생각보다 빨리 가지 못한 탓이었다.

‘잘못하면 세르게이 꼴이 나겠군.’

나무뿌리와 돌멩이, 온갖 물웅덩이 따위를 덜컹대며 지나갈 무렵.

그가 한 손으로는 허리춤의 보조 가방에서 선불 폰을 꺼내어 전화를 걸거나 받아 통화를 하고 있었다.

벌써 몇 번째.

미군 헬리콥터가 베트남 상공에 뜬 이래로 계속해서 통화하고 있었다.

상황 정리 및 전달 등등 갖은 이유로.

그 결과, 현 베트남 상태가 어떤지 알아가고 있었다.

베트남 연안에 미군 핵 항공모함인 칼빈슨호(USS Carl Vinson)가 떠 있었고, 거기서 MH-60R 시호크 4대 이상이 이륙했으며, 중간에 하노이 북부 마을에서 기착했다가 지금은 이쪽으로 날아오는 상황.

심지어 공항에서부터 바로 나온 차량이 베트남 북부 마을로 이동한 정황도 있었다.

즉, 지안드로는 확실하게 노출되었고, 쫓기는 신세였다.

추격자도 누군지 알 만했다.

‘아마 그 용병들… 아니면 그에 준하는 기밀 요원들이겠지.’

하노이 북부에서 그들을 태웠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곳으로 공항에서 나온 차량이 바로 들어가기도 했지만, 항속거리 1,000㎞가 넘는 MH-60R이 굳이 중간에 멈출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 끝에 지안드로가 조금 속도를 늦추었다.

지금껏 연락을 주고받은 선불 폰이 아니라, 위성 전화기가 울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피칼의 전화였다.

근래 들어 그의 집사인 위르겐만 연락하고 있었으나, 원래는 피칼만이 거는 전화기였다.

이에 받는 순간.

지안드로가 또 주춤했다.

이번엔도 피칼이 아닌, 위르겐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 상황은 인지하고 있습니까?

대뜸 나온 말이었으나, 그게 무슨 뜻인지는 지안드로도 잘 알고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 미 정보망에 당신의 이름과 위치가 모두 공유됐습니다. 이제 더 늦으면 안 됩니다. 국경을 넘으세요.

“거의… 거의 다 왔습니다.”

- 거리가 얼마나 남았습니까?

“대략 1킬로미터 정도, 그 정도면 도착합니다.”

- 좋습니다. 최대한 빨리 이동하세요. 보스께서 조치를 마친 덕분에 베트남 국경 수비대는 당신을 통과시킬 거고, 중국에서는 당신을 마중 나가 있을 겁니다. 당연히 관련 기록도 남지 않을 테니, 당신만 넘어오면 모든 게 해결됩니다.

지안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넘어가기만 하면 될 정도로 모든 준비가 끝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음을 놓을 순 없었다.

어느덧 헬리콥터의 로터 소리가 연하게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두두두두두―

휙, 뒤를 돌아보자, 상공에 점처럼 찍힌 헬리콥터도 보였다.

거리가 제법 멀지만 금방 좁혀질 게 분명했다.

MH-60R의 최대 속력은 시속 270㎞에 달했고, 반면에 스쿠터는 도로 상황 때문에 시속 30㎞를 간신히 내고 있던 탓이었다.

다만, 국경이 코앞이므로 잡히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중국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시호크든 뭐든 함부로 넘어오진 못할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위르겐의 목소리가 덧붙었다.

- 그리고 보스께서는…….

“그것까지 당신이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보스가 직접 말해 주는 것이라면 모를까.”

지안드로가 위르겐의 말을 잘라 냈다.

보스가 아닌 사람에게 들을 만한 말이 아닌 탓이었다.

이에 인상이 굳는데, 위르겐의 목소리가 넘어왔다.

- 그럴 수 없습니다. 보스는 내게 당신의 연락을 일임하셨습니다.

“지금 그게 무슨 뜻입니까?”

- 아, 당신을 버렸다든가 그런 건 아닙니다. 보스는 바쁘십니다, 당신보다 더욱. 이건 당신이 가장 잘 알지 않습니까?

“…….”

지안드로가 차마 답하지 못했다.

그가 세르게이가 죽고 난 이후로 일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면서, 피칼이 직접 새로운 일을 진행하고 있던 탓이었다.

다름 아닌 대만 수복.

중국을 부추겨서 아시아 지역의 현대 전쟁을 일으키려는 것이었다.

그 외에 지안드로가 제대로 아는 것은 없지만, 피칼이 진행 중이라고 하니 믿고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실행될 것이었다.

그는 그만한 능력을 갖춘 인물이었으니까.

그런 이유로 답하지 못하자, 위르겐의 목소리가 위성 전화기를 건너왔다.

- 그럼 보스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

- 혁명의 완수를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겠습니다.”

지안드로가 주춤하며 답했다.

어떻게 보면 꼭 살아와서 임무를 이어 가라는 뜻도 있지만, 적에게 잡힐 경우를 상정한 말도 포함된 탓이었다.

쉽게 말해 자결.

만에 하나, 살아남아서 포로가 되고, 심문을 받게 된다면 정보를 줄줄이 불게 될 거고, 혁명을 완수하는 데 방해가 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관련한 준비도 해 뒀었다.

사람이 폭사하기에 충분한 양의 폭약과 즉사할 만한 독약까지.

작동시키기도 어렵지 않았다.

그런 생각 뒤로 지안드로가 말을 이었다.

“그럼 하나 더 요청할 게 있습니다.”

- 뭐든 말씀하십시오.

“내가 만약 국경을 넘지 못하고 적에게 잡힌다면, 베트남 국경수비대든, 중국군이든, 누구든… 날 죽이라고 하십시오.”

이미 각오한 바였기에, 지안드로는 담담하게 말했다.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이로서 폭약, 독약, 외부 인력을 포함해 총 3중 장치를 마련한 셈이었으니까.

-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그럼 끊겠습니다. 국경이 보입니다.”

지안드로가 그렇게 전화를 끊는 순간.

팍!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스쿠터의 균형이 흔들렸고, 지안드로의 몸도 중심을 잃었다.

핸들을 세게 붙잡아도 소용없었다.

콰당탕탕―!

지안드로가 스쿠터와 함께 흙바닥에 그대로 처박히듯 구르며 넘어졌다.

“으윽……!”

부딪히고 살이 쓸린 지안드로가 고개를 들다 주춤했다.

연한 총성이 울려 퍼졌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헬기 로터음을 비집고 나오듯, 뒤쪽 상공에서 들려온 것이었다.

“……?!”

당황한 그의 두 눈에 터지다 못해 박살 난 뒷바퀴가 들어왔다.

총으로 쏜 것이었다.

들은 건 연한 총성이 전부고 총탄을 보지 못했으나,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헬기에서, 그것도 강태가 격발한 것이라고.

“이런 씨발!”

놀란 그가 서둘러 몸을 일으켰고, 점점 가까워지는 헬기를 뒤로 하고 뛰었다.

국경이 코앞이었다.

저 끝에 베트남 국경 수비대의 모습이 눈에 보였고, 그들도 자신을 보고 있었다.

충분히 뛰어갈 수 있었다.

사람 형체가 보일 만큼 가까운 거리여서 그랬다.

기껏해야 수백 미터.

이에 힘껏 달리는 때였다.

퍼억!

다시금 터지는 소리가 났다.

하나, 스쿠터는 진작에 버리고 뛰던 상황이었다.

즉, 소리가 날 곳은 한정적이고, 그의 육체밖에 없었다.

이를 깨닫는 순간, 지안드로의 몸이 쏠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의 왼쪽 종아리에 총을 맞았음을.

탁!

넘어지는 몸을 짚고 멀쩡한 오른발을 내딛으려던 때였다.

펑!

이번에도 같은 소리가 났다.

위치는 오른발.

과도한 흥분으로 통증은 없었지만, 감각이 그렇게 알려 주고 있었다.

동시에 지안드로가 앞으로 양손을 짚으며 넘어졌다.

그리고 이를 꽉 물고 서둘러 손을 움직였다.

기어 가려는 게 아니었다.

목적은 따로 있었다.

두 발이 소실됐으므로, 최악의 수단을 선택하려는 것이었다.

자폭.

손목시계 유리알을 밀고, 가운데 버튼만 누르면 됐다.

그럼 배낭에 있는 폭약과 배에 두른 보조 가방이 폭발할 것이었다.

그렇게 시계 유리알을 젖히려는 순간.

퍼엉!

오른손이 터져 나갔다. 왼팔도 마찬가지.

퍼엉―!

시계를 차고 있던 팔이 멀리 떨어져 나갔다.

순식간이었다.

핏물과 살점을 얼굴에 뒤집어쓴 지안드로의 두 눈이 떨렸다.

“……!”

고개만 가까스로 든 그가 턱밑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늘어진 목걸이.

그 안에 독약이 있었고, 꺼내어 먹으면 됐다.

그러나 양손이 다 없었다.

하나는 팔꿈치 아래로, 다른 하나는 손목 아래로.

버둥댔으나, 결과는 같았다.

결국 지안드로가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봤다.

그가 가려던 국경.

당황하고 놀랐던 베트남 군인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아마 위르겐으로부터 사살 임무를 받았을 터.

지안드로가 있는 힘껏 소리쳤다.

“쏴! 날! 날 쏘라고오오! 어서 죽여, 이 병신들아!”

동시에 베트남 군인들이 총을 든 순간.

타다다다다당―!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베트남 국경 수비대가 아닌, 지안드로의 뒤쪽 헬기로부터 들려온 것이었다.

동시에 베트남인들 몇 명이 쓰러지고, 몇 명이 도망갔다.

이 역시 눈 깜짝할 새였다.

지안드로의 동공이 그대로 멈추듯 쓰러진 시체들을 쳐다봤다.

준비한 모든 게 끝난 데다가, 어느새 헬기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어마어마한 풍압이 그의 뒤를 덮어 온 탓이었다.

두두두두두두두―

강렬한 MH-60R의 프로펠러 소리가 퍼지는 가운데, 사람들이 패스트로프로 착지하는 소리까지 들렸다.

팔다리가 다 터져 나갔음에도, 정신은 더욱 또렷해진 지안드로가 느끼는 것들이었다.

“아… 안 돼…….”

그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차라리 통증으로 인한 쇼크로 심장이 멎었으면 모르는데, 흥분과 집중으로 고통은 멀어졌으며, 정신은 멀쩡해지고 있었다.

누군가 뛰어온 것도 느껴졌다.

이내 수분을 먹은 흙이 튀더니, 가까이서 목소리도 들렸다.

그가 가장 죽이고 싶어 했던 사람의 음성.

“아니, 돼.”

강태였다.

짤막하게 말한 그가 지안드로를 살피더니 지혈대를 꺼냈다.

“안 뒤져서 다행이다, 씨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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