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지안드로의 미간이 구겨지는 사이, 전화기 너머에서 말이 이어졌다.
- 또한 CIA의 추적도 집요해지고 있습니다. 군 병력 역시 베트남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이미 예상한 바입니다.”
상황이 뜻한 대로 흘러가진 않았지만, 염두에 두지 않은 건 아니었다.
노먼 존스를 데려왔고, 강태에게 현상금까지 걸었으니까.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있는 위치가 대략적으로 노출될 거라고 생각했고, 또한 각오하고 있었다.
잡히지만 않으면 될 뿐이니까.
그럼에도 우려 섞인 목소리가 넘어왔다.
- 보스께서 걱정하고 계십니다, 이러다 당신까지 세르게이의 뒤를 따라갈까 봐.
“그럴 일은 없습니다, 전 세르게이와 다릅니다.”
주춤했던 지안드로가 확신하며 말했다.
자신은 늘 여러 개의 안전장치를 갖고 움직이고 있었다.
외적인 변장은 기본이고, 위조 여권과 가명을 쓰고, 도보와 차량, 스쿠터로 움직여 육상 추적을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근방에 중국과 맞닿은 국경이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중국에 도착할 터.
CIA가 자신을 추적해 온다고 해도, 중국 국경을 쉽게 넘진 못할 것이었다.
설령 넘어온다고 해도 쫓는 건 불가능했다.
그때쯤이면 이미 더 안쪽으로 들어가서 완전히 사라졌을 테니까.
이윽고 생각을 마친 지안드로가 말을 이었다.
“곧 가겠습니다.”
그렇게 통화를 끝낸 순간.
우우웅─
한차례 진동이 일었다.
그가 켜 두고 있던, 첩보용으로 사용하는 선불 폰으로 메시지가 도착한 것이었다.
정확히는 베트남의 부패한 고위 경찰에게 현지 상황을 전달받는 용도로 사용 중이었는데, 화면에 글자 대신에 사진이 있었다.
들여다보던 지안드로가 멈칫했다.
‘헬리콥터……?’
그리고 곧 글자 몇 개가 덧붙었다.
헬리콥터의 대수와 날아가는 이동 방향까지.
짧은 글자지만, 그걸 읽던 지안드로가 멈칫했다.
“……!”
동시에 시선을 들어 남쪽을 바라봤다.
아직 아무것도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쳐다본 적이었다.
그곳으로 헬리콥터가 오고 있었으니까.
* * *
베트남, 타이응우옌(Thái Nguyên)시 외곽.
노이바이(Noi Bai) 국제공항을 나와 달린 지 한참, 차량이 논밭과 주택 몇 개, 듬성듬성 펼쳐진 수풀 가운데 멈춰 섰다.
정확히는 다소 엉성한 캠핑장 앞.
그 안에 주차하고, 내리면서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공항에서 차량을 바꿔 타면서 잠깐 느꼈던 더위가 뜨거운 수분까지 머금은 채 전신을 엄습한 탓이었다.
벅찬 숨이 절로 나오는 사이, 호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 추적하기 싫게 만드는군, 빌어먹을 새끼. 왜 그놈이 여기 있는지 알 것 같아. 우리 못 따라오게 하려고, 그렇지 않아?”
“그런 이유가 없다고는 말을 못 하겠어. 하차하자마자, 차량 에어컨이 그리울 줄이야.”
마커스가 쓴웃음과 함께 대답하는 사이.
우리 쪽으로 현지인처럼 생긴 젊은 현장 요원이 다가왔다.
다소 긴장한 모습.
왜 그러나 싶었는데, 이유를 곧 알았다.
인사하고 신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조심스레 나온 물음 때문이었다.
“…랭글리에서 바로 오신 겁니까?”
지명이었다.
그것도 미국의 버지니아에 있는 도시, 더 구체적으로는 CIA 본부가 있는 땅이었다.
쉽게 말해, 우리를 CIA 본부에서 온 인물들로 착각한 것이었다.
아마 현장 요원인 만큼 아는 게 없는 듯 보였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누가 봐도 특수 요원처럼 생긴 인간들이 외교관 신분을 갖고 CIA 현장 요원과 만났으니까.
더구나 우린 미국에서 온 걸로 되어 있었다.
CIA 요원일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다고 가타부타 바로 잡진 않았다.
나는 물론이고, 우리 팀 모두가 수배된 상태였고, 이 땅에 지안드로가 있었으니까.
노출되면 안 됐다.
임무를 계속해서 이어 가야만 했다.
그사이, 전직 CIA 요원이었던 레이첼이 입을 열었다.
“사설은 됐습니다.”
“앗, 죄송합니다. 그럼 바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렇게 현장 요원이 조그만 사무실로 우리를 안내했다.
베트남에 있는 CIA 사무실인 모양이었는데, 그곳으로 안내하더니 유선 전화기를 연결해서 놓고 나갔다.
영문을 몰라 바라보자, 레이첼이 익숙한 듯 말했다.
“이곳으로 지시가 올 모양이네요.”
해리도 잘 안다는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이.
곧 벨이 울렸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LCD 창에 뜬 번호를 보던 제이크가 바로 스피커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전화 받았습니다, 크리스입니다.”
제이크가 여권에 적힌 거짓 이름을 말하자, 곧장 아는 목소리가 건너왔다.
- 국방부 장관입니다. 옆에 CIA 국장과 대외협력국장도 있습니다.
우리끼리 시선을 주고받는 사이, CIA 국장의 짧은 인사와 대외협력국장인 로버트의 음성이 넘어왔다.
그러나 회답할 틈도 없이, 국방부 장관이 말을 이었다.
- 여러분들의 위장 신분은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네?”
- 타깃의 정확한 위치가 파악됐습니다.
“……!”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여기 오면서 듣기로는 후보지가 최소 7곳이나 됐기 때문이었다.
바다로 건너갈 수 있는 도시 2곳부터 중국과 국경이 맞닿은 중소형 도시 몇몇 곳까지.
그것도 단순 추측이 아니라, CIA와 NSA가 알아낸 정보라고 했었다.
추가로 정확하게 알아내려면 시간이 더 걸릴 거였고.
쉽게 말해서 지안드로가 베트남을 빠져나가지 않은 것만 확실할 뿐, 그 외에는 정확한 게 없었다.
그래서 한참을 기다리거나 고생할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또한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었다.
한데,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다니?
심지어 다른 누구도 아닌, 국방부 장관이 직접 한 말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들 주춤한 사이.
제이크가 먼저 물었다.
“어디에 있습니까?”
- 이곳에서 약 130마일(약 200㎞) 정도 떨어져 있는 까오방이라는 도시입니다.
“출발 준비 하겠습니다. 추격 계획은 따로 있습니까?”
- 도로 사정이 좋지 못해, 차량 이동은 어려워서 헬리콥터를 준비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장소 말씀해 주십시오.”
제이크가 빠르게 상황을 마무리 지으려 하자, 말리는 듯한 음성이 끼어들었다.
- 제이크, 잠깐 기다려 봐.
로버트였다.
그의 목소리가 무겁게 이어졌다.
- 헬리콥터로 이동할 경우, 타깃에게 노출될 걸세. 로터 소리뿐만 아니라, 베트남에 미군 헬리콥터가 떴다는 소식이 타깃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겠지. 방향은 금방 알 거고, 목적지도 충분히 예상하겠지. 그 과정에서…….
로버트가 멈칫하면서 말을 이었다.
- 헬리콥터가 공격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네.
무슨 뜻인지 나도 알아들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헬리콥터가 격추되면서 전원이 전사할지도 모른다는 의미.
이건 걱정이었다.
덧붙은 음성도 마찬가지.
- 더구나 타깃은 용병 브로커고, 1억 달러의 자금을 현상금으로 걸 수 있는 인물이야. 뭘 동원하고 있을지 몰라.
“알고 있습니다.”
제이크의 답은 늘 그러듯 짧았다.
또한 힘 있었고, 분명했다.
대답만으로도 리더처럼 보이는 가운데, 로버트의 말이 이어졌다.
- 각별히 주의해야만 해. 은퇴한 전투기나 헬리콥터, 대공포를 가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어.
그 말에 제이크는 가만있었으나, 호세나 해리는 표정이 조금씩 굳어 가고 있었다.
안 그래도 1억 달러라는 현상금이 걸렸는데, 거기에 죽을 가능성이 더 불어났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지안드로는 온갖 수작은 다 벌이면서도, 전면에는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장막 뒤의 캐릭터였다.
피칼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존재.
무엇보다 내가 본 적 없는, 게임인 라레플에서도 언급된 적조차 없어서 아쉬웠다.
뭘 좀 알면 설명이라도 했을 테니까.
다들 입을 다무는 무렵, 로버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다만, 제이크가 아닌 내게로.
- 리.
“예, 국장님.”
- 그래서 당신을 불렀습니다. 타깃을 추적할 TF 구성원에 넣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었죠. 당신이라면, 팀을 모두 지켜 내고, 타깃 역시 잡을 수 있을 테니.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짤막하게 답했다.
이게 진심이고, 더 할 말도 없기 때문이었다.
펼쳐질 일이 뭔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곧 상황을 맞이해야 하니까.
그저 나와 팀을 믿는 게 전부였다.
한데, 거기에 말이 덧붙었다. 이번에는 로버트가 아닌, CIA 국장이었다.
- 미스터 리.
“아, 예.”
- 당신과 이렇게 직접 대화를 나누는 건 처음이군요. 사담을 나누고 싶지만, 용건부터 전달하죠.
“예, 말씀하십쇼.”
- 타깃을 생포해야만 합니다. 그와 접촉한 내부 유출자가 기밀을 갖고, 중국으로 넘어간 정황이 발견됐습니다. 거기다 타깃까지 놓치게 된다면, 수습이 더 어려워집니다.
그와 동시에 전화기 너머가 소란스러워졌다.
- 국장님, 지금은 생포보다 팀의 안전이 우선인데…….
- 이봐요, 국장! 그 말을 왜 이제야 하는 겁니까? 노먼 존스가 국경을 넘었다는 건 도대체 언제…….
로버트와 국방부 장관의 음성이 섞여 들려오는 것이었다.
아마 그들도 처음 듣는 모양인지, 서로 간에 몇 마디의 말을 던지듯 해 대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레이첼이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일이 빠르다 했더니…….”
CIA와 국토안보부를 거쳐 온 레이첼은 조직 간의 다툼에 질렸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틈에 내가 목소리를 냈다.
“저기요?”
- 그건 접점을 파악… 아, 리?!
변명하듯 말을 늘어놓던 CIA 국장이 다행히 말을 멈췄다.
동시에 전화기 너머도 잠잠해질 무렵.
말을 이었다.
“타깃은 생포할 겁니다. 죽일 생각 없었습니다.”
애초부터 지안드로를 제거할 마음은 없었다.
생포할 생각이었다.
다른 잡범들은 몰라도, 중간 보스나 다름없는 그는 살려 둬야만 했다.
특히 세르게이가 허망하게 죽은 바람에 피칼과 관련된 걸 알아내지 못한 게 지금까지 가슴에 남아 있었다.
마치 한(恨)처럼.
그래서 진작부터 지안드로는 살려 둘 생각이었다.
살아만 있다면, 심문이든, 고문이든, 뭐든 간에 미국이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었다.
그쪽으로는 전문가들이었으니까.
“그러니까 헬기나 빨리 준비해 주십쇼.”
나 역시 얼른 말을 매듭지었는데, 기다렸다는 듯 국방부 장관의 말이 들려왔다.
- 시호크가 이미 이륙했습니다. 곧 해당 지역으로 도착할 겁니다.
“시호크요?”
시호크는 모함에 착륙하는, 해상 작전용 함재기로 주로 쓰이는 기종이었다.
말인즉슨, 근처에 군함도 있다는 뜻.
미군이 어마어마하게 들어와 있다는 건데, 국방부 장관이 내 의문을 빠르게 해결했다.
- 그렇습니다. 시호크 4대가 출격했고, 1대는 TF를 위해 비워 뒀고, 3대에는 해병 레이더 연대가 탑승했습니다.
고개를 끄덕거리는데, 바로 CIA 국장의 목소리가 덧붙었다.
- 현 시간부터 관련 사항을 타깃이 인지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생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살, 자폭도 유의하길 바랍니다.
“그럼요.”
자살, 자폭이 아니라, 뭐든 다 막아야 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채로 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