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무전으로 알려 준 5시 방향을 쳐다보는 사이, 상세한 무전 내용이 이어졌다.
드론의 예상 높이, 크기, 속도까지.
정리하면 육안으로 식별 가능할 정도로 낮은 높이로 접근해 오고 있었는데, 아직 시야에 들어오진 않은 상황이었다.
즉, 거리가 좁혀지면 뭔가 보일 터.
이에 조수석에서 몸을 돌리면서 뒤를 확인하자, 내 뒷자리에 앉은 필립과 눈이 마주쳤다.
차량 간의 교전을 막 끝낸 그가 움찔하며 입을 열었다.
“…자, 자리를 바꿔 줄까요?”
“상체만 숙여요.”
짧게 말하면서 의자를 뒤로 젖히고, 거기에 팔꿈치를 대며 사격 자세를 잡았다.
자세가 제법 불편해서 자리를 바꿔야 할까 싶었으나, 그냥 그대로 총구를 측면 뒤쪽을 겨누었다.
건장한 성인 남성 두 사람이 플레이트 캐리어를 입은 채로 자리를 바꾸는 것도 불편하고, 드론만 해결되면 다시 조수석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에 조준하는 사이, 스페셜포스와 제이크 사이에 무전이 오갔다.
전자 기기 무력화 장치가 있는지, 혹은 드론 추적을 방어할 수단이 있는지를 확인한 것인데,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했다.
원래 상대하려던 건 드론이 아니라, 브라질의 갱단이었으니까.
작전에 맞게 효율적인 장비 구성을 하는 스페셜포스는 오직 갱을 처리하기 위한 살상 무기 정도만 챙겼을 것이었다.
테크니컬(Technical: 민간 무장 차량) 처리를 위한 AT4 무반동포 정도나 추가했을 터.
그 끝에 무전이 추가됐다.
제이크가 아닌, 무인 정찰기 운용병으로부터.
- 미식별 물체와의 거리 약 50야드(약 45M)!
달리기로 6초면 도착할 거리였다.
정말 코앞까지 와 있다는 소리였고, 웬만한 골목에서도 보일 정도로 가깝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에 드론 방향을 다시금 살피는 순간.
그제야 도트 사이트에 점처럼 보이는 형체 하나가 들어왔다.
이어서 두 개, 세 개, 네 개까지.
건물 사이사이로 움직이고 있었으나, 형태나 크기도 대략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거리를 감안하면 크기는 내 손바닥과 비슷한 사이즈였고, 군용이나 특수 목적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민간에서 판매되는 흔한 디자인이었다.
프로펠러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 걸로 봐서는 힘이 센 것도 아닌 것으로 보였고.
그러나 보통 드론과는 확연히 달랐다.
자폭 드론답게 몸체에 폭탄으로 보이는 뭔가가 결박되듯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건물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드론을 확인하려는 순간.
텅! 텅! 텅! 터더더덩!
총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내가 격발한 게 아니었다.
뒤차에서 시작된 사격이었고, 이어서 폭발음도 들렸다.
콰아앙―!
폭음과 진동이 동시에 느껴지는 순간.
- 여기는 5호 차! 미상체 1기 명중!
힘이 들어간 호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상황 대부분을 정리한 탓에 그간 실력을 드러내지 못했어도, 과연 네이비 씰 저격수다운 솜씨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콰앙!
연이은 사격 끝에 한 번의 폭발이 더 일었고, 스페셜포스 대원의 목소리가 덧붙었다.
- 여기는 5호 차, 미상체 1기 격추!
그렇게 화염을 뚫고 나온 드론 2대는 내가 처리했다.
터엉! 터어어엉―!
동시에 공중에서 두 번의 폭발이 발생했다.
뜨끈한 열기와 함께 진동이 차량을 한차례 덮치는 사이.
무전이 이어졌다.
- 전방에서 차량 8대 접근 중, 즉시 우측으로 우회할 것!
앞차부터 줄줄이 커브를 돌았고, 우리 3호 차를 운전 중인 해리 역시 핸들을 잡아 돌렸다.
문짝 손잡이를 잡고 버티기를 잠시.
고고도 무인정찰기로부터 비슷한 무전이 몇 번이나 도착했다.
우회하거나 비켜 가라는 내용이었는데, 그 안에는 다행스러운 말도 있었다.
- 좌회전 후 20야드(약 18M) 앞에 접선지.
방탄 차량을 갖고 있는 CIA와의 만남이었다.
속도를 올린 차량이 주거지 골목으로 들어갔고, 곧 셔터가 올라간 단독주택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순식간이었다.
체중이 앞으로 쏠리며 멈췄고, 어느새 체크무늬 복장을 한 히스패닉 계열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설마 하는 순간, 레이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지 요원이네요.”
이에 눈여겨보며 차에서 내린 순간, 먼저 다가갔던 제이크가 말 몇 마디를 주고받고서 우리를 쳐다봤다.
“집안으로 들어가, 우선 도보 이동부터 한다.”
“……?”
무슨 말인가 싶어서 바라보면서도, 일단 시키는 대로 움직일 때였다.
현관문에서 문을 열어 준, 다른 CIA 요원의 목소리가 의구심을 해결하듯 들려왔다.
“이쪽입니다. 그 아래로 내려가면 됩니다.”
내려가라는 말에 설마하는데, 예상한 것들이 드러났다.
터널.
콘크리트를 부수고 흙을 파내었고, 그 안으로 철제 사다리가 들어가 있었다.
동시에 마당에서는 우리가 타고 온 차량을 방수포로 뒤덮고 있었다. 상공에서 확인할 수 없게끔.
그렇게 창문을 바라보다가, 사다리를 내려다봤다.
내 차례였다.
“내려오십시오, 선배님.”
먼저 들어간 해리의 말을 들으면서 사다리를 밟으며 아래로 내려갔다.
쿰쿰한 냄새와 수분이 많은 냉기가 동시에 느껴지길 잠시, 금세 터널 지면에 도달했다.
깊이는 대략 3미터 정도.
대충 건물 1층 높이를 내려온 셈이었는데, 도착하자마자 바로 라이트를 켰다.
사다리가 내려온 지점까지는 불빛이 닿는데, 수평으로 뻗는 구멍부터는 암흑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중간중간에 라이트를 켠 이들이 있긴 하지만, 그 불빛마저도 시커먼 흙 때문에 반사되거나 퍼지질 않고 있었다.
비춘 곳만 보일 뿐.
이에 나 역시도 시커먼 어둠 속으로 걸음을 옮겨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후로는 특별할 게 없었다.
제이크가 말한 대로 도보로 먼저 움직였고, 바꿔 탄 방탄 차량을 통해 추적 없이 안전 가옥에 도달한 것이었다.
우회하는 일이나 경고도 없이.
‘이런 건 역시… 괜히 CIA가 아니지.’
새삼 감탄했다. 또한 하차하며 본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외관은 접선지와 같은 주거 구역의 주택이었는데, 들어간 내부는 겉보기와 크게 달랐다.
전에 테스트받는다고 가 봤던 대외협력국 시설과 유사했다.
브라질에서 볼 수 없는 철제 방화문과 비밀번호 패드, 천장 구석에 달린 감시 카메라까지.
그사이 안에 있던 CIA 요원이 제이크와 인사를 나눴고, 그 뒤로 내게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당신이 리군요. 관련 정보는 확인했습니다만… 혹시 치료가 필요하거나 따로 요구할 사항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나중에라도 생기면, 언제든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무엇이든 최대한 빠르게 조치하겠습니다.”
볼리비아에 남은 케니스와 마찬가지로 정중하고 협조적인 모습이었다.
분위기나 태도도 둘 다 비슷했고.
그렇게 요원이 물러가고, 빈방으로 들어가 쉴 때였다.
해리와 레이첼, 스페셜포스 대원 몇 명과 짧은 대화를 나누면서 장비를 재차 점검하며 만지작거릴 무렵.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방문이 열렸고, 계속 자리를 비웠던 제이크가 등장했다.
손에 두꺼운 위성 전화기를 들고서.
무슨 일인가 바라보자, 제이크가 내게 불쑥 전화기를 내밀었다.
“리, 전화 받아.”
“앗, 예.”
누군지 묻지도 못하고 전화를 받았는데, 다행히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 리?
볼리비아에서 우리 작전을 총괄한 G&G Corp의 론 마이어스였다.
“예, 접니다.”
- 몸은 괜찮나? 정보가 벌써 노출됐다던데.
“괜찮습니다.”
- 다행이군, 그럼 준비는 됐나?
그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예, 새 임무라도 생긴 겁니까? 듣기로는 더 나은 소식이 있다고 하던데…….”
- 그래, 방금 확인 작업이 끝나서 이제 알려 주려던 참이었네.
“확인 작업이요?”
- 지안드로 바시카날.
되물음 뒤에 나온 이름에 멈칫했다.
제이크가 말했던 것처럼 정말 더 나은 소식이 코앞에 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곧이어 론의 말이 덧붙었다.
- 놈의 현 위치가 파악됐어.
“잘됐군요, 증거가 아니라, 놈을 아예 잡을 기회가 왔으니. 어디랍니까?”
- 잘됐군, 자네가 필요해서 권하려던 참인데.
“뭐든 좋습니다. 남미에 있는 겁니까?”
- 베트남일세.
“예? 수배가 내려졌는데, 거기까지 갈 수 있는 겁니까?”
근처인 줄 알고 일어나려다가 멈칫했다.
베트남이면 비행기를 타야 했고, 경유지까지 들렀다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게 뻔했다.
수배가 내려진 만큼, 동네 잡범들까지 우리를 노릴 가능성이 있으니까.
특히나 비행기 안에서는 사격도 불가능했다.
안에서 덤벼든다면 답이 없었다.
이에 다음 말을 기다리자, 다행히 해답이 넘어왔다.
- CIA의 도움을 받으면 가능하네.
“위장 말입니까?”
- 그래, 새로운 신분과 비자를 갖고 움직이게 될 걸세. 원하지 않는다면 거부해도 되네. 어쨌든 현지로 흑색 요원들을 투입할 예정이니… 다만, 자네만큼 뛰어난 사람이 없어서 요청하려던 참이었지.
“그건 안 되죠. 제가 가겠습니다.”
칼같이 답했다.
여태 위장 신분을 싫어해서 안 한 게 아니었다.
대외협력국이 세르게이를 그리고 지안드로를 쫓기 때문에 그저 지금의 신분을 유지하고, 용병 역할을 해 왔을 뿐.
필요하다면 위장 신분이든 뭐든 활용해야만 했다.
특히나 지금은 세르게이가 죽고, 그의 뒤를 이어 피칼의 오른팔이 된 지안드로까지 잡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연하게도 게임에는 전혀 나오지 않은 스토리였고.
기회가 왔으니, 잡아야 마땅했다.
- 알겠네. 그럼 준비하게. 현지 CIA 요원에게 곧 지시가 내려갈걸세.
“참, 저희 팀은요?”
팀이 걱정되지만, 이런 상황에서 혼자 갈 순 없었다.
호흡이 잘 맞기도 하거니와, 내 뒤를 맡길 수 있는 동료들은 그들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이면 혼자 가겠지만, 상대는 지안드로였다.
여태 숨어 있던 만큼 무슨 수작을 벌일지 알 수 없었다.
이에 팀을 찾자, 물음이 돌아왔다.
- 그 팀에 필립 애드먼도 포함되나?
“예?”
생각지도 못한 이름에 주춤하며 되물었다.
- 그가 자네의 부상을 막지 않았나? 볼리비아는 물론이고, 본토에서부터 함께했고.
“아… 그래도 아직은 아닙니다.”
필립이 못미더웠다.
신뢰 문제가 아니라, 호흡이나 실력이 부족한 탓이었다.
방금 차 안에서도 그랬다.
교전 직후에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고, 감정적으로 과잉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단순 경계와 방어 사격이 그 모양이었으니, 침투 과정에서는 더더욱 문제가 될 확률이 높았다.
그 과정에서 사고가 날 터.
빼는 게 당연했다.
이에 답을 마치자마자, 전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건너왔다.
- 현명한 선택이네. 그럼 제이크에게 전화를 바꿔 주게.
“알겠습니다.”
답하며 제이크에게 전화기를 돌려주자, 그가 다시금 통화를 이어 가더니 다시금 자리를 비웠다.
동시에 옆에 있던 해리가 날 쳐다봤다.
“무슨 일입니까? 선배님.”
“곧 지시 내려올 거야, 기다려 봐.”
“아, 넵. 알겠습니다.”
해리가 눈치껏 답했다.
이 안에는 우리 팀뿐만 아니라, 내가 팀에서 빼라고 요청한 필립과 스페셜포스도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잠시.
방문이 열리면서 제이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짧게 턱짓했다.
“나와.”
그 말에 필립과 스페셜포스를 놔두고 방을 나왔는데, 새 명령에 앞서 웬 봉투를 받았다.
무언가 싶어서 열어 보자, 헛웃음이 나왔다.
“와…….”
새 여권이 손에 들려 있었다.
심지어 출입국 도장까지 찍혀 있는, 누가 사용한 흔적이 역력한 물건이었다.
거기에 적힌 새로운 이름을 읽다가 멈칫했다.
일반 여권이 아닌 탓이었다.
표지를 재차 확인하는 사이, 레이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외교관 여권이군요.”
“그래, 군 공항으로 바로 들어가게 될 거야.”
제이크의 설명 뒤로 기다렸다는 듯 CIA 요원이 다가왔다.
“헬리콥터가 이륙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쪽 통로로 나가시면 바로 탑승할 수 있습니다.”
“…어휴, 장난 아니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사이, 제이크가 바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즉시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