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브라질, 과룰류스(Guarulhos) 아루자 골프 클럽(Arujá Golf Club) 인근 주거 구역.
스페셜포스와의 해후가 금세 끝났으나, 현장에서 대기했다.
다른 곳으로 갈 수가 없었다.
나는 물론이고, 우리 찰리 팀 전원에게 현상금이 걸린 탓이었다.
도합 1억 달러.
한화로 천억 원이 훌쩍 넘는 거금이었다.
보통 사람이면 누구나 눈이 돌아갈 만한 어마어마한 액수.
그래서 처음에 차량으로 들어온 이후로 빈집에서 나가지 못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그것도 완전 무장하고 경계하면서.
그게 명령이라 일단 따르고는 있었는데, 그렇다고 마음이 동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지안드로의 정보를 주겠다고 온 사람을 죽이려다가, 역으로 우리가 수배되어 꼼짝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러자 어느새 다가온 레이첼이 말을 붙였다.
“나가지 못해서 아쉬운가 봐요?”
“…아무래도 좀 그렇죠. 여기서 대기하겠다고 브라질로 온 게 아닌데.”
“현장 정보를 읽었잖아요. 특히 당신은 사전 준비를 더 꼼꼼히 하는 사람이구요.”
그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레이첼이 말한 사전 준비 단계에서 주어진 정보를 최대한 암기하고 체화하려고 노력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브라질이 어떤 상태인지도 잘 알았다.
특히 내가 진입할 상파울루 외곽은 평화로운 대낮처럼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림자가 진 부분은 그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PDA로 확인한 작전 지역에 대한 정보도 그랬다.
야간에 거리 한복판에서 강도 살인이 발생했는데, 동시에 그곳과 300M 떨어진 곳에서 노상강도가 벌어졌었다고.
심지어 그들은 마피아도 아니었다.
흔한 범죄자이면서, 근처에 사는 동네 주민이기도 했다.
말인즉슨, 마피아나 테러리스트만이 아니라 동네에 있는 잡범까지 주의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들까지 총을 꺼내 갈길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물론 내가 죽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중요한 건 내 목숨만이 아니었다.
우리 팀 그리고 함께 온 스페셜포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죽거나 다치게 놔둘 수가 없었다.
특히 여태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내 등을 맡길 수 있는 전우들을 어떤 식으로든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물론 작전이라는 게 전부 위험하긴 하지만, 수배가 내려진 건 말이 달랐다.
특히나 우리 대외협력국은 본래 신분이 모두 드러난 상황.
외출해서 모습을 드러내는 즉시 표적이 될 확률이 매우 높고, 까딱 잘못하면 개죽음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서 순순히 기다리고 있었다.
지안드로의 정보를 얻어 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그사이, 레이첼의 말이 따라붙었다.
“그렇다는 건… 내가 모르는 개인적인 악연이라도 있나요? 그래서 정말 목숨 바쳐서, 정말 죽기를 각오하고 뛰어드는 건가요?”
제법 진지한 그리고 호기심이 어린 듯한 말에 가볍게 웃고 말았다.
“개인적인 악연은 없죠. 레이첼도 알잖아요?”
레이첼은 CIA 출신이고, 처음에는 우리 팀을 그리고 나를 감시하고자 왔던 인물이었다.
어느새 내 등을 온전하게 맡길 동료가 됐을 뿐.
나에 대해 모르는 게 없을 것이었다.
아마 관련 자료도 빠삭하게 파악하고 있을 터.
그러나 레이첼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글쎄요, 다 안다고 생각되면서도… 가끔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리, 당신이 가진 능력만이 아니라, 사람 자체가 묘하게 다르다고 해야 하나?”
“좋은 뜻이죠?”
“나쁜 뜻은 아니에요.”
“다행입니다.”
대충 말하고 넘어가려 하자, 레이첼이 다시금 불쑥 목소리를 냈다.
“그럼 왜 그렇게까지 놈들에게 집착하는 건가요?”
“테러리스트라 잡는 거죠. 거기다 지안드로는 핵 개발하고 관련되어 있으니까, 위험하니까 잡는 거죠.”
“그게 전부예요?”
레이첼의 되물음에 확실하게 답해 주었다.
“예, 그게 전부죠.”
얼버무리면서 설명하긴 했지만,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상대가 테러리스트라서 그리고 핵 개발과 관련되어 있어서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전부였다.
아니면 내 삶이 없을 테니까.
지금도 특별히 삶은 누리는 것 같진 않지만, 그렇다고 놀 순 없었다.
더 치열하게 적을 죽여야만 했다.
기껏해야 나이 서른밖에 안 됐고,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남은 시간이 70년이었으니까.
그 남은 70년을 위해서 지금 좀 고생하는 게 전부였다.
이내 레이첼의 음성이 덧붙었다.
“그럼 이번 작전도 꼭 수행하고 싶겠네요. 수배도 지안드로 바시카날이 내렸다고 짐작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렇죠.”
처음에 1억 달러라는 액수에 당황했었으나, 오래지 않아서 누가 그랬는지 짐작했었다.
피칼.
그는 중세 유럽 왕족 출신으로 축적한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이고, 또한 우리 팀이 추적 중인 지안드로의 보스가 되는 인물이었다.
그가 직접 수배를 하진 않았어도, 지안드로 같은 아랫놈이 했을 터.
레이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당신 마음도 조금은 이해가 가네요. 나가고 싶은 아쉬움도 알겠고… 캡틴 아메리카한테 정의를 실현하지 말라고 하는 거니까, 그렇죠?”
“…….”
생각도 못한 별명에 쳐다만 보는 사이.
무전기가 반응했다.
- 전원 집합.
제법 긴 통화를 마친 제이크가 내린 명령이었다.
분명 위에서부터 지시를 받았을 터.
서둘러 움직이자, 스페셜포스 대원들도 주요 구역을 경계 중인 몇 명을 제외하고 전부 모이고 있었다.
다들 사뭇 긴장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수배가 내려졌고, 현상금이 1억 달러나 책정됐다는 사실을 그들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새 작전이 진행될지도 모르는 상황.
곧 덥수룩한 금빛 수염이 흔들리면서, 제이크의 걸걸한 목소리가 깔려 나왔다.
“우린 CIA 안전 가옥으로 이동한다.”
“……?!”
정보 요원을 꺼려 하는 스페셜포스 대원들의 눈에 주름살이 지는 사이, 제이크의 설명이 덧붙었다.
중간에 CIA 요원과 접선하고, 최단 경로로 안전 가옥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그의 말끝에 슬쩍 손을 들었다.
“그럼 파울로는 어떡합니까?”
브라질 최악의 마피아인 PCC(Primeiro Comando da Capital: 제1수도군사령부) 상파울루 지부장. 그리고 우리에게 정보를 주기로 했던 내통자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애초에 브라질에 오기로 한 이유도 파울로 때문이었다.
지안드로의 정보를 주기로 했었으므로.
한데, CIA 안전 가옥으로 들어가게 되면, 파울로의 체포나 증거 획득은 물 건너갈 터.
이에 묻자마자, 제이크가 가볍게 답했다.
“상부에서 기다리라더군, 그것보다 나은 소식이 있을 거라고.”
“나은 소식이요?”
무슨 소린가 바라봤는데, 제이크은 처음 같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진 못했고, 우선 안전 가옥으로 이동하라고 했어. 추후 구체적으로 전파하겠다고 말이야. 국방부와 CIA하고도 협의 중이라더군.”
“아… 역시…….”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말을 전달하는 제이크도 일종의 믿을 맨이지만, 그 위에 있는 론 마이어스나 국장인 로버트도 충분히 믿을 수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입이 가벼운, 헛소리를 하는 부류가 아니었다.
둘 다 현장 출신으로 확실하게 움직이는, 믿을 수 있는 이들이었다.
즉, 위에서 삽질하거나 허튼짓만 한 게 아니었다.
내가 기대한 것처럼 그들이 저마다 위치에서 걸맞는 능력을 발휘해 주고 있었다.
그러니 나은 소식을 전파해 주겠다고 했을 터.
내가 현장에서 개같이 구르거나 대기하면서 손가락을 빠는 사이에도 나름대로 상황이 전진되고 있던 것이었다.
만족하는 사이, 어느새 구체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차량 배치, 인원 탑승, 이동 경로, 각종 상황에 대비한 약속과 통신 음어 등등.
여기서 걸리적거리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상 지휘관 역할을 하는 제이크가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데다가, 우리 팀은 이미 호흡이 잘 맞고, 스페셜포스 역시 현역들로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진 참 좋은데…….’
쓴웃음을 지으면서 빈 마당에 주차된 마츠다 차량에 올랐다.
이제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차량이라도 방탄 등급이 적용됐으면 모르겠는데, 현지에서 수급한 것들이라 안전하지 못했다.
누가 7.62㎜ 소총탄을 쏴 갈기면 그대로 관통되기 때문이었다.
누구든 죽거나 다칠 수도 있는 상황.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식하게 달려 나가는 건 아니었다.
우리 차량 주변과 경로를 미리 알려 주는 무인정찰기라는 안전장치가 있었고, 중간에 접선할 CIA 요원은 최고 등급인 B6 방탄 차량을 가져오고 있다고 했었다.
아마 거기까지 가면 안전할 것이었다.
이동하지 않는 게 가장 좋긴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이 장소가 안전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군경 관계자 일부에게 노출된 장소였다.
원활한 작전 진행을 위해 사전에 몇몇에게 알린 곳이라서, 브라질 군경 관계자 일부가 이 위치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마피아나 다른 어딘가로 흘러 들어갔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옮기려는 것이었다.
당연히 브라질 군경에게는 알리지 않고.
이에 차에 탑승하고 내 HK416을 다시금 만지작거리는 사이, 새 무전이 도착했다.
- 탑승 보고해.
제이크의 목소리였고, 동시에 1호차부터 준비가 완료됐다는 음성이 건너갔다.
그리고 같은 차 탑승한 레이첼이 답했다.
“3호 차 이상 무.”
그 뒤로 총 5호 차까지 보고가 이어진 뒤.
제이크의 명령에 따라서 시동 소리가 울려 퍼지고, 차들이 줄줄이 나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이동이 시작됐고, 바로 경계에 들어갔다.
봐야 할 곳은 전면과 측면.
조수석에 앉았기 때문에, 다른 방향은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안 봐도 됐다.
뒷좌석에 앉은 레이첼 역시 실력이 좋았으니까.
특수전 교육이 부족한 필립은 좀 미덥긴 하지만, 그건 우측을 경계 중인 나와 뒷차에 있는 제이크나 호세, 마커스까지 보완해서 해결해 줄 터.
그것까진 나쁘진 않았는데, 이어진 무전에 주춤하고 말았다.
출발한 지 얼마 안 돼서 고공 감시 중인 무인정찰기를 통해 썩 나쁜 정보가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 의심 차량 좌우 측면에서 총 11대 접근 중.
우리 차량이 5대였으니, 그 두 배가 넘어가는 셈이었다.
손잡이를 꼭 쥐고, 차창 너머를 노려보는 사이에 구체적인 정보가 속속 도착했다.
차량 종류 및 모델, 우리와의 거리, 탑승 추정 인원 등등.
그것도 나쁘진 않았다.
차에 인원이 가득 찬 것도 아니었고, 다해 봐야 30명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무기 역시 AK 계열 소총으로 의심되는 게 전부.
차를 난도질할 만한 경기관총 이상, 50구경 중기관총이나 RPG-7 같은 로켓포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더 나은 건 따로 있었다.
- 전 차량에게 재전파한다. 시야에 적이 들어오는 순간 발포하도록 해.
선제공격.
적 무기 확인이나 위협 사격도 없이, 바로 쏘라고 했다.
그리고 곧 골목으로 적 차량이 보였다.
이번에도 나쁘지 않았다.
마침 내 시야에 나란히 달리는 적 차량이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거리도 고작 50미터.
이 정도면 쏘면 맞는 수준이었다.
터엉─! 텅! 텅! 텅!
먼저 방아쇠를 당겼고, 이어서 다른 차량에서도 총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소음기를 꼈다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산발적으로 수십 명이 교전 중이었으니까.
그렇게 측면에서 나란히 달리거나 골목에서 접근해 오던 차량을 가뿐하게 처리한 순간.
총성이 곧 멎었다.
내가 다 해치웠듯 우리 팀과 스페셜포스 역시 제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 것이었다.
곧 차례로 전달되는 ‘이상 무’라는 무전도 마찬가지.
가벼운 훈련 같은 상황에 얕게 숨을 내쉬는 사이, 예상치 못한 말이 들려왔다.
제이크가 아닌, 무인정찰기가 직접 뱉은 음성이었다.
- 진행 방향 기준 5시 방향, 미상의 소형 비행체 4기 이상 접근 중.
고개가 절로 돌아가는 사이, 내용이 덧붙었다.
- 자폭 드론으로 추정됨. 주의 요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