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161화 (161/185)

161화

워싱턴 D.C, 펜타곤.

국방부 장관에게 노먼 존스에 대한 보고가 속속들이 올라왔다.

근무자 아이디 여러 개를 도용하여 파트별로 정보를 촬영하거나 출력하여 기밀을 빼간 데다가, 미국에서 위조 여권을 통해 출국했으며,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Hanoi)에 도착해서 하이퐁(Haiphong)으로 이동했다는 사실까지.

기본적인 보고 끝에 현지에서 수집한 정보가 추가로 덧붙었다.

“노먼 존스가 인사를 건넸던, 사각지대의 인물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목격자 진술에 따르면 30대나 40대의 백인 남성이고, 관광객 차림으로 이동했으며…….”

이어진 자질구레한 설명 뒤로 국방부 장관이 핵심을 물었다.

“몽타주는?”

“현재 제작 중에 있습니다. 보고가 시급하다고 판단되어 몽타주 없이…….”

“괜찮습니다. 마저 이어하세요.”

국방부 장관이 보고자의 사과를 물리고, 계속해서 하라고 손짓했다.

중요한 건 절차나 예절 같은 게 아니었다.

시간이었다.

베트남에 있을 노먼 존스가 중국으로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잡아야 했다.

못 한다면 일이 커질 터.

그래서 보고 역시 절차를 최소화해서 현장에서 거의 직보할 수 있도록 조정해 뒀었다.

그렇게 현지 정보를 파악할 무렵.

띠리리리─

인터폰 벨 소리가 울렸다.

국방부 장관이 반사적으로 수화기를 들면서 LCD 패널을 바라봤다.

예고 없는 통화를 수십 번이나 한 탓이었다.

이에 목소리를 내려던 그가 조그만 화면에 뜬 번호를 보다가 멈칫했다.

국방부 내 CIA로 불리는 정보 기관 NSA(National Security Agency: 국가안보국)의 핫라인 번호가 표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전화가 왔으니, 보통 일이 아닐 것이었다.

아마 이번 일과 관련이 있을 터.

- 장관님?

“아… 전화받았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그를 부르고, 국방부 장관이 멈칫하며 목소리를 냈을 때였다.

이어지는 말에 얼어붙고 말았다.

“뭐, 뭐라고……?”

그가 반사적으로 되묻고 말았다.

예상했던 노먼 존스의 사건이 아니라,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 넘어왔기 때문이었다.

- 현재 게시자와 접촉을 시도 중입니다만, 파악한 정보는 아직…….

“자, 잠깐!”

국방부 장관이 소리치자, 보고하던 장성과 비서들이 멈칫하면서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다시 오겠다며 떠난 뒤.

숨을 고른 국방부 장관이 다시금 목소리를 냈다.

분명한 발음으로.

“수배가 내려졌다는 거요? 미스터 리에게?”

- 그렇습니다.

“허위 여부나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 겁니까?”

- 접촉을 시도하면서 사실 여부를 파악 중에 있습니다만, 거짓이라기에는 게시된 정보가 너무 많습니다. 강태 리의 각종 신체 정보와 근무처, 현재 위치가 기재되어 있고, 동료들 역시 현상금이 걸려 있습니다.

“얼마입니까?”

- 강태 리는 5,000만 달러. 그 외의 동료는 각 1,000만 달러로 6인 총합 1억 달러입니다.

“……!”

국방부 장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수백만 달러도 아닌, 도합 1억 달러라니?

주춤한 그가 금세 깨달았다.

진실과 거짓을 따지기 전에, 누구라도 눈이 돌아갈 액수라는 것을.

수백, 수천 달러에도 폭행을 사주하고 살인을 행하는 이들이라면 일단 행동하고 볼 가능성이 컸다.

심지어 현지 군경도 마음이 동할지 몰랐다.

특히 현지 마피아나 카르텔, 갱단 등 지역을 지배한 암흑가와 연관된 이들이라면 더더욱 쉽게 움직일 것이었다.

미국인이라는 국적도 별 소용이 없을 것이었다.

기껏해야 수백, 수천, 수만 달러의 돈은 감옥 생활이나 남겨진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지만, 1억 달러라면 감옥을 지배하고도 남을 정도로 많은 액수기 때문이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마을이 통째로 강태를 집어삼키려 들 수도 있었다.

“처리 가능하겠습니까?”

- 시간이 걸릴 뿐 충분히 가능합니다.

“시간이라… 알겠습니다. 추가 정보 들어오면 바로 연락하도록 하세요.”

뚝, 전화를 끊은 국방부 장관은 서둘러 다시 번호를 눌렀다.

얼마 전에 암기한 장교의 연락처였다.

볼리비아에 파견 중이고, 지금은 브라질에서 작전 중인 육군 연락 장교인 필립 애드먼.

다행히 금세 통화가 연결됐고, 기합이 들어간 필립의 음성을 들은 직후.

국방부 장관이 간결하게 물었다.

“스페셜포스와 접촉했습니까?”

- 곧 책임자와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럼 찰리 팀을 데리고 즉시 스페셜포스와 합류하세요. 현지 군경에게 관련 내용 통보하지 말고, 지금 즉시 움직이도록 하세요.”

- 네? 지금 말씀이십니까? 갑자기 왜…….

“찰리 팀 전원에게 수배가 걸렸습니다. 매우 위험한 상황이므로 현지 군경도 믿어선 안 되고, 반드시 스페셜포스와 합류하고 함께 움직이도록 하세요.”

그 말에 수화기 너머가 주춤하는 기색이 풍겼고, 이어서 당황하고 놀란 듯한 음성이 넘어왔다.

- 수, 수배는 누가 내린 겁니까? 브라질 마피아입니까?

“다크 웹입니다. 브라질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퍼졌습니다. 그러니 지금 즉시, 당장 찰리 팀을 데리고 이동하세요.”

- 그럼 작전은 취소되는 겁니까?

“일시 중단입니다. 위험이 확인된 이후에 움직이도록 하세요. 구체적인 내용은 NSA 통해서 바로 전파하도록 하지요.”

통화를 마친 국방부 장관이 서둘러 비서들을 호출했고, 추가적인 명령을 하달했다.

그리고 일어서려던 찰나, 휘청하며 테이블을 짚었다.

“장관님!”

놀란 비서가 소리치며 달려오자, 국방부 장관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업무부터 수행하고… 들어올 때 커피 부탁합니다.”

그러고서 털썩, 일어나려던 자리에 다시 주저앉았다.

이틀 내내 한숨도 못 잔 탓이었다.

대서양을 비행할 때 그리고 몇 시간 전에 틈이 생겨서 쪽잠을 잔 게 전부였다.

이틀간 4시간 정도 잤을까?

피로가 몰려오고 있었으나, 잠잘 여유는 없었다.

전쟁만 벌어지지 않았을 뿐, 사실상 그에 준할 만큼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자폭한 월터 그레이슨이 소지했던 기밀을 파악해야 하고, 노먼 존스의 행방을 찾아야 하며, 브라질로 넘어가는 강태를 보호해야 했다.

그야말로 동시다발적으로 온갖 일들이 발생하는 상황.

“미쳐도 이상할 게 없을 지경이군…….”

대통령에게 사임 의사를 내비쳤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정말 기절했을지도 몰랐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으니까.

그가 길게 한숨을 내쉴 무렵, 비서 대신에 별을 단 장성이 커피와 함께 서류철을 갖고 들어왔다.

일거리가 또 왔다고 생각할 때였다.

“노먼 존스와 접촉한 인물의 몽타주입니다.”

이를 보던 국방부 장관이 멈칫했다.

몽타주의 얼굴이 상당히 낯익어서, 익숙하게 보인 탓이었다.

흔한 얼굴이라 그런 게 아니었다.

분명 아는 얼굴이었고, 돋보기 안경까지 써 가면서 다시 바라보던 순간.

국방부 장관의 시선이 떨리듯 멈췄다.

일순, 몽타주에 맞는 이름까지 떠오른 것이었다.

“지안드로 바시카날…….”

“네? 아는 사람입니까?”

장성이 영문을 모르고 묻는 사이, 국방부 장관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빌어먹을…….”

강태 덕분에 알게 된, 대외협력국 공공의 적이었다.

브리핑을 듣거나 관련 자료를 받진 못했으나, 볼리비아에 간 이유도 그의 흔적을 찾기 위함일 터.

한데, 그 지안드로가 지금 베트남에 있었다.

* * *

브라질, 과룰류스(Guarulhos) 북동쪽 외곽.

공항에서 내린 직후, 장비 수령과 더불어 스페셜포스와 접촉하기 위해 아루자 골프 클럽(Arujá Golf Club)과 맞닿은 주거 구역으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특이 사항은 없었다.

약속한 지점까지의 거리도 약 3~4㎞ 정도로 아주 짧은 데다가, 거리에도 특별한 위험 요소가 없었다.

볼리비아 산타크루즈처럼 카르텔이나 마피아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사람이 붐비는 쪽은 번잡하면서도 평화롭고, 아닌 곳은 한가하고 조용해 보였다.

그러나 거기까지.

필립이 갑자기 전화 한 통을 받더니, 상황이 바뀌고 말았다.

차량과 함께 인수받은, 별로 쓰고 싶지 않았던 브라질산 폴리머 계열 9㎜ 반자동 권총을 꺼내 쥐고 말았다.

“…차, 찰리 팀 전원에게 현상금이 걸렸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했는데, 이어지는 설명에 총기를 품에서 꺼내 쥐고 슬라이드를 당겨 약실을 확인했다.

“…팀장, 좀 빨리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 총도 결함 많다면서요?”

유일한 호신용품을 쥔 채 묻자, 제이크도 슬라이드를 몇 번이나 당기다가 말했다.

“…해리, 밟아.”

그도 브라질산 권총이 못 미더운 모양이었다.

동시에 해리가 기다렸다는 듯 액셀을 밟자, 어느새 제이크가 뒷차에도 무전을 쳤다.

“속도 올릴 테니까, 빠르게 따라붙어.”

- 알겠습니다, 찰리 1.

뒷 차 조수석에 앉았을 마커스의 대답이 들려오길 잠시.

출시한 지 10년이 훌쩍 넘은 토요타 하이럭스가 크게 덜컹대면서도 빠르게 치고 나갔다.

차체에서 전달되는 떨림이 불안함으로 느껴질 무렵.

드디어 사진으로 본 지역이 드러났다.

스페셜포스와 접촉하기로 했던, 공사 중인 건물 여러 채가 있는 조그만 마을이었다.

이곳 역시 안전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담벼락을 쌓고 철창을 올리고, 대문이나 차고지를 꽉 틀어막은 모습은 치안이 불안한 지역의 대표적인 모습이었다.

눈앞에 총기를 든 마피아만 없을 뿐.

이내 차의 속력이 줄어들고, 제이크와 창 너머를 내다보다가 지시했다.

“정지해.”

그렇게 빈 건물로 들어간 사이.

곧 건물 안에 그림자 같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

스페셜포스, 미국의 특전사들이었다.

현역 시절에 1년에 한 번씩, 혹은 2년에 한 번 정도 한미 연합 훈련을 하면서 만났던 2티어 특수부대.

그들이 청바지 위에 티셔츠, 방탄복과 돌격 소총 차림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몇몇이 선글라스를 꼈는데,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프로페셔널 한 자세나 모습 때문에 그런 것만이 아니었다.

작전지가 브라질인 점을 고려한 듯, 대원 대다수가 호세 같은 히스패닉 계열이었기 때문이었다.

누가 봐도 미군으로 보이는 백인과 흑인도 끼어 있었는데, 그들도 브라질에서 쓰이는 포르투갈어 정도는 충분히 구사할 것이었다.

분명 든든하기 그지없는데, 내심 여러모로 걱정이 됐다.

숫자가 적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선발대 겸 먼저 와 있는 이들만 봐도 적잖이 많았다.

내가 우려하는 건 따로 있었다.

‘우리를 지킨다고 하다가 괜히 다치고 그러면… 안 되는데……?’

우리가 수배되었다고 해서, 버리고 도망갈 이들이 아니었다.

교전이 발생하면, 오히려 앞서 나갈 터.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운전석에서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해리가 바짝 긴장한 모양이었다.

측면에서 보이는 얼굴 옆으로 갑자기 땀방울이 맺힐 정도로.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 옆자리의 필립도 불안한 듯 시선을 여기저기 옮기고 있었다.

제이크만 평소처럼 조용할 뿐.

‘하기는… 멀쩡한 게 비정상이지…….’

그 생각을 하는 사이, 제이크의 두 번째 지시가 떨어졌다.

전원 하차.

아직 갖고 있던 싸구려 브라질산 권총을 쥔 채로 내리자, 스페셜포스 대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다가와 박스를 내밀었다.

볼리비아에서 재차 전달된 우리 무장이었다.

총기와 방탄복, 헬멧, 그 외의 장비까지.

쥐고 있던 브라질산 총기를 버리고, 내 개인 무장을 착용하는 사이, 옆에서 대화가 들려왔다.

정확히는 제이크를 향한 스페셜포스 대원들의 말소리였다.

“당신이 그 유명한 전설이군요.”

“제이크, 나 기억합니까? 당신 밑에서 6개월 정도 있었는데.”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러셀. 이렇게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스페셜포스를 거쳐간 제이크를 향한 반가움의 말이었다.

그렇게 짧은 해후의 시간이 지나길 잠시.

곧 제이크의 걸걸한 목소리가 깔렸다.

“이제 일 얘기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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