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새벽 무렵의 베트남 하이퐁시(海防市) 외곽.
관광객용 게스트 하우스의 독실을 대여한 지안드로가 인상을 쓴 채 현지에서 구입한 선불 폰을 쳐다봤다.
방금 통화를 마친 브라질 갱단, PCC(Primeiro Comando da Capital: 제1수도군사령부) 상파울루 지부장인 파울로와의 통화가 마뜩잖은 탓이었다.
단순히 느낌으로 치부할 만한 게 아니었다.
여러모로 찜찜한 구석이 많았다.
단어를 시작으로 말의 뉘앙스나 중간중간의 숨소리가 모두 평소와 조금 달랐다.
그걸 수치화하고 정리할 순 없으나, 지안드로가 그간 통화하고 들었던 것과 차이가 있는 건 명확했다.
확신할 수 있었다.
원격으로 각종 일을 처리하면서 얻은 경험과 능력이라서 틀렸다고 생각지도 않았다.
즉, 뭔가 잘못되었다는 뜻.
이에 핸드폰을 잠시 바라보던 지안드로가 전화를 한 통 더 했다.
수신자는 브라질 상파울루에 있는 부하 중 한 명.
통화 연결음이 몇 번 가기도 전에 착신음이 들렸고, 이어서 익숙한 코드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그 뒤로 지안드로가 곧장 용건을 꺼냈다.
“현지에 특이 사항 없나?”
- 군경의 활동을 감시 중입니다만, 아직 보고할 만한 사안은 없습니다. 제 거점 주변에 PCC 조직원들이 좀 늘어난 게 전부입니다.
“무장 상태는?”
- PCC 말씀이십니까?
“그래, 주변에 있다던 PCC 조직원. 확인해 둔 게 있나? 아니면 바로 확인이 가능하겠나?”
- 아…….
핸드폰 너머에서 짧은 탄식이 넘어오고, 지안드로가 주춤할 무렵.
곧 보고가 이어졌다.
- 권총을 주로 갖고 다니는데, 기관단총이 많이 늘었습니다. 혹시… 놈들이 저희를 배신하는 겁니까?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어.”
지안드로가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정작 배신이라고 하기 전에 제대로 된 신의를 쌓은 적도 없었지만, 중요한 건 지안드로가 모르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왜 그러는지.
납득하기 쉬운 항목이 아니었다.
지안드로는 돈거래도 확실히 하고, 신용도가 있는 편인 데다가, 만만한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값을 치를 능력이 됐다.
상대가 브라질 최대 조직인 PCC 상파울루의 보스라고 할지라도, 셈을 치를 수 있었다.
시간과 방법에 제한이 좀 있을 뿐.
그의 뒤에 피칼이 있으니, 못 할 건 없었다.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강태를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죽이려는 것도 같은 이유였다.
거리가 멀어서, 죽을 위험이 적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뒤에 피칼이 있으니까, 두려울 게 없었다.
그는 신념이 분명하고, 또한 실행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미국이나 주변 국의 방해만 없었더라면 진즉에 대업을 이룩하고도 남았을 정도로.
그 생각 끝에 지안드로가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즉각 자료 파기하고, 퇴출 준비해. 한 시간 안에 내가 연락하지 않으면… 거점 버리고 국경부터 넘어.”
피칼의 지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거나 주저해서는 안 됐다.
그러다가 볼리비아의 부하를 잃었고, 복수 대상인 미겔도 미 정부에게 넘어간 탓이었다.
브라질에서도 같은 상황을 반복할 순 없었다.
뚝, 전화를 끊은 지안드로가 이어서 연락처를 뒤져 가며 몇 군데 더 전화를 넣었다.
브라질, 주로 상파울루에 있는 정보원에게 연락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이 무의미한 답을 내어놓을 무렵.
몇 번의 통화 끝에서야 쓸모 있는 문장이 들려왔다.
- 몇몇 일선 부대의 일정이 바뀌었더군. 개인 정비가 삭제되고 전부 비공개 처리가 됐어.
퇴역한 브라질군 장성의 말이었다.
용병으로 쓸 만한 이들의 리스트를 넘겼던 사람이고, 지안드로와 꾸준히 거래 중인 인물.
그가 연이어 말을 내놨다.
- 내부가 아주 바쁜 모양이던데… 내가 좀 알아봐 줄 수 있네. 원한다면 얘기하게, 자네라면 값도 적절히 잘 치러 주겠지. 안 그런가?
“좋습니다, 30분 뒤에 다시 연락하죠.”
- 역시, 자네만 한 사람이 없어. 30분 안에 필요한 정보를 준비해 두겠네.
그렇게 여러 번의 통화 끝에 실마리를 얻어 낸 뒤.
브라질에서 가용 가능한, 믿을 만한 용병들과 접촉하려고 다시금 여러 번의 전화를 하던 때였다.
띠리리리─
묵직한 위성 전화가 울렸다.
지안드로가 재빠르게 통화 버튼을 누르면서 귀에 댔고, 동시에 그가 잘 아는 음성이 넘어왔다.
다만, 피칼이 아니었다.
오늘 정오에 만났던 피칼의 집사, 위르겐.
그의 음성이 무뚝뚝하게 넘어왔다.
- 미국이 베트남까지 추적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중국으로 이동하십시오.
“…알겠습니다.”
답하는 지안드로가 반사적으로 손목시계를 들어 확인하는 사이.
위르겐의 말이 이어졌다.
- 과업은 진행되고 있습니까?
“아…….”
지안드로가 주춤하며 답하지 못했다.
정오에 헤어지면서 물었던, 강태의 죽음과 관련된 명령이기 때문이었다.
아직 진행하지 못한 일 중의 하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위르겐이 질문한 목적이었다.
궁금해서 그런 게 아닐 터.
이는 피칼의 입김이 들어간 압력과도 같았다.
오른팔과 왼팔은 세르게이나 지안드로지만, 위르겐은 집사로서 그의 입과 같은 역할을 해 왔으니까.
거기에 지안드로가 할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진행 중입니다.”
구차하게 한 말은 아니었다.
사실이었다.
브라질에 있는 PCC를 이용해, 기회를 봐서 공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다.
50구경 기관총과 무반동포, 로켓포 등등으로.
타릴 제도에서 장거리 공격이 실패했으므로, 근‧중거리에서 화력으로 갈가리 찢어 죽이려는 것이었다.
그 생각을 하는 사이, 위르겐의 말이 추가로 도착했다.
- 추가 자금이 필요하다면 말씀하십시오.
“…아닙니다.”
지안드로가 멈칫하다가 답했다.
돈이 필요한데 눈치가 보여서 그런 게 아니었다.
뭘 더 받는다고 해서 성공할 확률이 올라갈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미 이탈리아부터 예맨 앞의 아덴만, 남중국해의 타릴 제도, 산타크루즈까지 강태의 실력이 어떤지 봐 왔기 때문이었다.
강태의 초인적인 능력이면, 어쩌면 발사할 RPG를 맞힐지도 몰랐다.
그보다 더한 일을 할 수도 있었고.
몇 명 안 되는 용병들마저 전멸할 것만 같았다.
그 생각 끝에 지안드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고, 얼굴에 그늘이 졌다.
‘제기랄… 실패에 찌들었어.’
동시에 염려가 됐다.
패배주의적인 사고 때문이 아니라, 피칼의 과업을 이행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게 가장 큰 우려였다.
내려 준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다면, 더는 그의 손발 흉내를 낼 수 없을 테니까.
평범한 정보원이나 동조자, 협력자가 될 것이었다.
피칼에게 필요한 건 일을 해낼 수 있는 유능한 사람이지, 시킨 일도 못 하는 패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세르게이가 멍청하게 죽는 덕분에 나설 기회를 얻은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어. 그 아시안이 너무 강했던 거야, 죽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런 상념과 함께 통화를 마친 뒤.
지안드로가 패배감에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사람을 죽이려고 마음먹으면, 대개 죽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반 사람은 물론이고 웬만한 고위직도 계획범죄 앞에서는 무력하게 당하기 십상이었다.
패권국의 지도자인 미 대통령도 괜히 죽은 게 아니었다.
분명 그게 상식인데, 강태는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끊임없이 시도해 봐도,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시도해서 정신적으로 몰아넣고 자살하게 만든다면 모를까…….’
그 생각을 하던 지안드로가 고개를 저었다.
그 역시도 어려웠다.
강태는 전장에서는 그 누구보다 냉철하고 담대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각종 장소에서 남긴 기록이 그랬다.
볼리비아에서도 놀라서 겁먹고 숨는 게 아니라, 필립이 덮치는 와중에도 격발했다고 했었다.
그리고 공중에서 파이프 폭탄 두 개가 연이어 터졌었고.
그게 강태가 맞혀서 그런 건지, 오작동으로 폭발한 건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지안드로는 전자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아마 강태가 맞혔을 것이라고.
보통 사람이면 불가능하겠지만, 강태는 다르기 때문이었다.
1㎞ 내외의 적을 단번에 조준해서 쏘는 인물이고, 심지어 정확하게 명중시키는 사람이었다.
파이프 폭탄 정도는 별것도 아닐 터.
그 끝에 지안드로가 쓴웃음을 지고 말았다.
“죽이려고 시도할수록… 죽이기 어렵다는 사실만 깨닫고 있군. 오히려 감탄까지 하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세르게이, 네놈이 그래서 직접 나갔었나? 이런 고민할 필요 없이, 실패하면 현장에서 죽을 수 있도록?”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감정을 조절한 그가 이윽고 선불 폰을 다시 집어 들었다.
브라질 정보원인 퇴역 장군과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번호를 누른 직후.
지안드로의 미간에 깊게 주름이 새겨졌다.
예상치 못한 말이 들려온 탓이었다.
마피아 토벌.
그것도 지안드로가 통화를 마친 상파울루에서의 작전이었다.
“…정확히 누구를 대상으로 한 겁니까?”
- 그건 나도 접근하지 못했네만… 상파울루라면 뻔하지 않나? PCC겠지.
“당신이 알 정도면, 하부 조직원 몇 놈 잡아넣는 수준이 아닐 텐데… 확실한 거 맞습니까?”
- 아무렴. 이건 확실하진 않지만… 다른 나라하고 공조까지 한다더군. 상파울루 주지사나 브라질 정부가 칼을 빼 든 모양이야.
“보복은 어떻게 하려고 그런 답니까? 상파울루에 깔린 PCC 조직원들이 수백, 수천 명인데… 거기다 처먹인 돈까지 있으니, 이 정보를 놈들이 모르겠습니까?”
지안드로가 갈수록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묻자,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넘어왔다.
- 내 후배가 부대에서 미국인을 봤다고 하더군.
“뭐요?”
- 두어 명이 전부긴 하지만… 미국놈이 엮였으면 말이 되지 않겠나?
“……?!”
지안드로의 눈이 휘둥그레지길 잠시.
이윽고 탄식이 흘러나왔다.
“더럽게 꼬였군, 제기랄…….”
정보 몇 개를 정리하자, 엉킨 것들이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지안드로 자신부터 PCC의 파울루, 강태, 미국, 브라질 군경과 정부까지.
“일단 알겠습니다. 돈은 현금으로 전달하고, 어렵다면 암호 화폐 계좌로 입금하지요.”
- 고맙네, 자네 덕분에 잘살고 있어.
뚝, 인삿말을 생략한 지안드로가 전화를 끊었고, 곧장 그의 부하에게 연락했다.
일이 이렇게 됐다면, 위험할 수도 있었다.
볼리비아에서 카르텔의 부하들이 납치해서 폭행하고 데려갔듯.
그걸 반복할 순 없었다.
무엇보다 미국이 개입하면, 사라진 미겔처럼 보복할 대상이 증발하게 될 터.
여러모로 골치 아팠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수습하는 게 제일이었다.
이제 전화하고 통화 연결음을 들으며 기다리기를 잠시, 곧 착신음이 들려왔다.
달칵.
그리고 암호 확인을 하려던 찰나.
- 이 개새끼들이… 흐어, 흐억……! PCC가 배, 배신했습니다! 저는… 으으…….
“무슨 소리야?!”
- 두세 발 피격됐고… 흐억, 아마 잡힐 것 같습니다. 이… 안 돼, 이 개새끼야!
고함 뒤로 총성이 울려 퍼졌다.
기관단총에서 격발된 것 같은 연사 소리.
그 뒤로 전화도 끊어졌다.
동시에 지안드로가 핸드폰을 집어 던졌다.
“씨발! 씨발! 씨발! 이 개새끼들이!”
그가 연달아 욕설을 뱉고 고함을 내질렀다.
단순히 일이 꼬인 수준이 아니었다.
고용한 용병들이 아니라, 그와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부하들이 죽어 나갔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볼리비아에 이어서 두 번째.
지안드로가 얼굴을 감싼 채로 침대에 주저앉았다.
모든 게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작점에는 세르게이를 죽이고, 자신을 전면에 나오게 한 강태가 있었다.
“놈이 원인이야…….”
지안드로의 머릿속에 극단적인 방법이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바로 현상 수배.
다크웹이라 불리는 음지의 온라인에 쫙 퍼지고, 암시장에서도 소문이 날 것이었다.
강태 역시 죽을 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갈 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지안드로도 강태 못지않게 노출될 확률이 커진다는 것.
만약 미국에서 킬러인 척 함정 수사를 벌이고 접촉해 온다면, 지안드로라도 속을 수밖에 없었다.
괜히 현상 수배를 안 한 게 아니었다.
위험했으니까.
그래서 지금까지 믿을 만한 브로커들과 연결해서 일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
지안드로는 이제 막다른 길에 몰려 있었다.
패배감에 젖어 들었고, 생각도 못 한 부분에서 문제가 터졌고, 수습도 못 하고 있었다.
남은 건 최악의 수단뿐.
지안드로가 접어 두었던 노트북을 꺼냈다.
이제 실행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