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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159화 (159/185)

159화

이튿날, 볼리비아 산타크루즈주(州) 특급 호텔 객실.

6시 정각에 기상했다.

평소에 일어나는 시각과 같았는데,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

오전에 하던 운동 대신에 상부에서 내려온 작전을 검토하고 준비한 탓이었다.

거기다 찰리 팀뿐만 아니라, 케니스와 필립까지 모였다.

목적은 어제 말했던 브라질 갱단과의 접촉 계획.

케니스가 알려 주고 동의를 구했던 새로운 시나리오가 구체적인 작전이 되어 나타난 것이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나 들을 무렵.

시작부터 주춤하고 말았다.

작전 목적이 어제 들었던 것과 딴판으로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적 사살 및 체포.

“……?!”

다들 당황한 듯 주춤한 기색이 흐르는 가운데, 마커스의 입이 열렸다.

“혹시 함정이었습니까?”

어제 나왔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릴 무렵.

제이크가 고개를 저었다.

“상부의 결정일 뿐이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케니스가 설명을 달았다.

“그렇습니다. 단순 접촉하는 것보다 사살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그 말에 호세가 불쑥 끼어들었다.

“이유가 뭐랍니까? 카르텔 간부를 풀어 준 걸로 봐서는 놈들이 악당이라 처리하는 건 아닐 텐데?”

“네, 맞습니다. 악당들이야 치워도 치워도 생기죠, 늘 청소해도 쌓이는 먼지처럼.”

“그럼 이번에는 왜 소탕하려는 겁니까?”

“그 편이 이익입니다. 저도 자세한 바는 다 알지 못하지만, 브라질 군경과도 합동작전을 펼치기로 한 만큼…….”

“브라질 군경?”

이번에는 레이첼이 묻자, 케니스가 양해를 구하듯 제이크를 바라봤다.

“아, 작전 설명하면 나올 얘기인데… 제가 구체적으로 설명해도 되겠습니까?”

제이크가 대꾸 대신 고개만 끄덕이자, 잘됐다는 듯한 음성이 바로 이어졌다.

“…그럼 계속해서 말씀드리죠. 이번 작전에는 브라질 군경도 함께할 예정입니다. 최소 1개 대대, 많으면 2개 대대 이상의 군경이 투입될 겁니다. 그들이 주력이죠.”

“우린 미끼 역할을 하는 건가?”

호세가 끼어들 듯 묻자, 케니스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엊그제처럼 위험하겠군.”

“아… 그 파이프 폭탄이라면, 저 역시도 유감입니다. 이번에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할 겁니다.”

“그건 CIA에서 해 주는 거요?”

“저는 공식적으로 영사 대리 사무소 서기관입니다만, 필요한 조치는 모두 이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CIA라는 신분을 감추는 모습에 호세가 피식 웃다가 연이어 물었다.

“그래서 놈들을 처리하는 이유는 브라질과 협상한 결과라는 건가? 미국의 뒷마당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표현이 좀 아쉽네요. 뭐, 저 역시 상부의 모든 의견을 다 알진 못합니다만, 핵심은 그렇습니다. 그게 아니어도… 제거해야 마땅한 부류입니다.”

“그럼 타깃 자료나 좀 봅시다.”

“각자 PDA로 관련 자료 전송하겠습니다. 확인해 보십시오.”

“…….”

호세가 눈매를 좁히며 개인 PDA 화면을 봤고, 나 역시도 화면을 눌러 가면서 새로 전달된 자료를 받았다.

그리고 주춤했다.

“이건 또 뭐야……?”

상상 이상이었다.

산타크루즈주(州)를 지배하는 산타크루즈 카르텔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번 상대는 브라질 최대 마피아 조직의 간부였다.

PCC(Primeiro Comando da Capital: 제1수도군사령부) 상파울루 지부의 지배자, 파울로.

악마나 다름없는 인간이었다.

브라질 남부로 도망간다던 산타크루즈 카르텔의 미겔이 어린애처럼 느껴질 정도.

파울로의 4대 강력 범죄의 사이즈가 압도적으로 컸다.

마약 유통의 규모나 폭행과 살인의 횟수가 전쟁이 났나 싶을 만큼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이게 가능한 건가 싶었는데, 남은 내용을 읽다 보니 납득이 갔다.

직접적인 PCC 조직원만 수만 명이고, 간접적인 동조자와 협력자를 더하면 수십만 명이 넘었기 때문이었다.

숫자가 많으니, 저지르는 범죄 역시 많아졌을 터.

심지어 PCC 조직원들은 브라질뿐만 아니라, 중남미의 여러 국가에서 영향력을 퍼뜨리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산타크루즈 카르텔과도 관계된 상황.

“…이건 제대로 미친 새끼겠네.”

한국말이 절로 나오자, 케니스의 웃음이 덧붙었다.

“잘은 몰라도 아마 욕설 같군요. 이해합니다. PCC와 관련된 내용을 읽고 있는 모양이죠.”

“아… 네, 어마어마하네요.”

“죽어 마땅한 인간이죠, 그는 중남미의 테러리스트와도 같습니다.”

그러면서 케니스가 나를 바라보는 사이.

어느새 제이크가 입을 열었다.

“타깃 확인했으면, 작전 설명 하지.”

이어서 걸걸한 목소리로 이뤄진 문장 몇 개가 툭툭 튀어나왔다.

그만큼 내용도 간단했다.

작전 지역으로 타깃을 유인하면, 타깃이 이동하는 중간에 브라질 군경이 습격한다는 것.

쉽게 말해서 우리는 입간판처럼 서 있다가 돌아간다는 얘기였다.

위험할 것도 없었다.

습격이고 뭐고 다 브라질에서 알아서 할 테니까.

한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2안이 있었다.

그 부분을 살피며 고개를 들자, 제이크의 목소리가 덧붙었다.

“작전 내용이 유출되거나 작전이 실패하여 1안을 폐기할 경우, 2안으로 즉각 전환하여 타깃을 추격하고, 제거하거나 생포하여 증거물을 획득한다.”

“어, 이거……?”

화면에 시선을 둔 해리의 중얼거림이 들리는 사이.

나도 멈칫했다.

PDA 화면에 떠 있는 구체적인 작전 내용 때문이었다.

바로 미군 투입.

그것도 그린베레로 유명한, 마커스와 제이크가 거쳐 온 스페셜포스가 투입될 예정이었다.

나한테도 특히 익숙한 미군 부대였다.

한미 연합 훈련을 하면서 그나마 자주 만난 특수부대가 미 스페셜포스였고, 나름 합이 잘 맞았기 때문이었다.

“스페셜포스하고 같이하는 겁니까?”

“그래, 1안이 폐기될 경우.”

“잠깐만요, 그러면… 1안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겁니까?”

“그것도 위에서 판단했겠지.”

그의 말에 케니스의 목소리가 덧붙었다.

“제가 부연 설명을 드리자면, 미스터 리가 말했던 것처럼 1안이 폐기될 가능성이 큽니다. PCC는 본래 교도소에서 결성된 조직으로, 교도소와 경찰서를 대상으로 범죄를 벌이는 악질의 갱단이지만… 그 규모가 점점 브라질 최대에 이르러서는 군경과의 유착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마 관련 내용이 새어 나갈 가능성이 크고, 실패할 확률 역시 높습니다. 상대가 말단 조직원들이 아닌, 상파울루의 지배자라면… 이미 절반은 실패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위에서도 아마 그 점을 염두에 뒀을 겁니다.”

“결국에는 스페셜포스하고 합동작전을 하게 된다는 소리네요.”

“물론 1안이 성공할 경우에는 폐기될 예정입니다만, 2안이 진행될 경우에는 그렇습니다. 그때의 주축은 미군이 될 겁니다.”

스페셜포스와의 작전이 내심 기대되는 사이.

호세가 고개를 기울였다.

“브라질에 이렇게 많은 미군이 들어와도 된다는 겁니까? 반미 성향이 꽤 센 동네인데?”

“그만큼 PCC가 무섭다는 뜻이겠죠.”

“그 정도면 선발대도 미군이 맞는 겁니까?”

동시에 케니스 대신 필립이 목소리를 냈다.

“그렇습니다. 선발대나 주력부대, 저격 등 특수 임무도 전부 스페셜포스에서 맡아 진행할 겁니다. 찰리 팀은 타깃과의 연락을 맡을 뿐,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지켜보는 맛이 쏠쏠하겠다고 생각할 무렵, 제이크의 말이 덧붙었다.

“12페이지에 D 항목에 교전 시 위치가 표시되어 있으니까 다들 확인해.”

그 말에 화면을 보자, 많이 가 봐야 중간에 있었고, 대개 후방에 위치하도록 짜여 있었다.

어떻게 흘러갈지는 몰라도, 전방에는 세우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나마 낫네요. 폭탄 테러 때문에 그런 겁니까?”

“그런 셈이지.”

“아…….”

고개가 끄덕여질 무렵.

제이크가 말을 매듭지었다.

“오늘부터 볼리비아 파견 팀은 순차적으로 복귀할 거고, 우리도 작전 직후에 바로 복귀한다.”

“오, 잘하면 오늘 돌아갈 수도 있겠군요.”

호세가 대꾸하기에, 작전 일시를 바라봤다.

앞으로 10시간이 남아 있었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정도면 뭐… 준비할 시간은 충분하겠네.’

10시간이면 사실상 준비할 시간이 부족할 만큼 바쁜 일정인데, 그보다 급한 일들을 많이 하다 보니 면역이 생긴 것이었다.

오히려 다른 게 신경 쓰였다.

현역 시절에 한미 연합 훈련을 함께했던 스페셜포스가 온다고 한 탓이었다.

내가 델타포스 다음으로 좋아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이 미국의 특전사였으니까.

‘현역은 오랜만이네, 거의 11년 정도 됐나…….’

상념이 스쳐 가는 사이, 작전 설명이 마무리되고 재집합 지시가 떨어졌다.

어느덧 한 시간이나 지나 아침밥 먹을 때가 된 탓이었다.

동시에 내쪽으로 목소리 몇 개가 달려들었다.

“선배님, 식사하시죠.”

“리, 나도 함께 가도 되겠죠?”

“그럼 4인 탁자를 마저 채울 겸, 제가 앉아도 되겠군요.”

해리부터 필립, 케니스까지 차례로 동석을 권해 온 것이었다.

개중 필립과 케니스가 서로를 쳐다봤다.

흡사 경쟁자를 노려보듯.

왜 그러는지도 알 만했다.

용병 일을 그만둔 이후에 데려가기 위한 포석일 테니까.

물밑에서 얼마나 다투고 있을지 알 만했다. 여기뿐만이 아니라, 미 본토에서도 CIA나 펜타곤이 여러모로 바쁠 터.

김칫국 마시는 꼴이지만, 나쁘진 않았다.

미국 최대 그리고 최강의 조직인 두 곳에서 자발적으로 날 돕고 있었으니까.

이에 가볍게 손짓했다.

“자, 갑시다.”

* * *

같은 시각, 미국, 버지니아주, 펜타곤.

30시간 넘게 숙면을 취하지 못한 국방부 장관이 집무실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잠깐 눈을 붙일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고, 장관이 눈을 떴을 때였다.

“장관님!”

어느새 문을 연 비서실 직원이 소리치며 달려왔고, 그 뒤로 영관급 장교 한 명도 태블릿 PC를 갖고 뛰어 들어왔다.

동시에 국방부 장관이 급하게 상체를 세웠다.

큰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고, 영관급 장교가 함께 들어올 이유는 하나뿐이기 때문이었다.

월터 그레이슨의 내부 기밀 유출에 따른, 추가적인 기밀 유출자 색출.

곧 집무 책상 위로 서류도 올라왔다.

국방부 장관이 반사적으로 펼치는 사이, 영관급 장교의 입이 자동으로 열렸다.

“정무 담당 노먼 존스의 유출 혐의가 확인됐습니다.”

“……!”

국방부 장관이 멈칫했다.

노먼은 백악관에서 배정된 주요 스태프 중 한 명으로 자신의 차도 몇 번이나 탔던 요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국방부 장관이 지나가듯 정체 따위를 염려했던 인물.

그런 사람이 서류에 나와 있었다.

정확하게는 노먼의 행적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반출된 것으로 의심되는 각종 대외비 리스트가 기재된 것이었다.

그의 눈이 빼곡한 활자들을 모두 지나쳐서 밑으로 내려갔다.

현재 위치와 예상 목적지.

베트남과 중국이라는 두 나라를 확인한 국방부 장관이 기어코 욕설을 뱉고 말았다.

“이런 개자식이……!”

명예로운 사임은 물 건너갔다.

군 책임자로서, 또한 대통령의 가까운 조언자로서 책임을 지고 떠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감정은 다른 이유로 격화되고 있었다.

백악관과 펜타곤을 오갔던 미국인이 정보를 빼다 팔았고, 그를 당장 잡아오지 못한 탓이었다.

눈을 질끈 감고 우선순위를 정리하던 그가 아직 대기 중인 비서를 쳐다봤다.

“…대통령님께 전화 연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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