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리마 4! 어떻게 됐습니까?!”
대외협력국장 로버트가 무전기에 대고 소리 지르듯 물었다.
아직 현장에 도착하지 못했는데도, 차량이 흔들릴 만한 어마어마한 폭발이 발생한 탓이었다.
이 정도면 안전거리를 지켰어도, 누군가 죽거나 다쳤을 가능성이 있었다.
더구나 총책임자인 로버트는 아직도 이동 중인 상황.
이에 전면 차창으로 보이는 시커먼 연기를 바라보면서, 재차 물으려던 때였다.
- 여, 여기는 리마 4. 정차시킨 차량이 폭발했고… 현재 사상자는 확인 후 보고하겠습니다.
“사상자가 있는 겁니까?”
- 폭발이 너무 커서… 저도 뇌진탕 증세가 있는 것 같습니다.
“……!”
로버트의 이가 꽉 다물렸다.
차량에 접근하지 않고 뒤에 있었을 책임자까지 다쳤다면, 그보다 앞에 있을 경찰관들도 분명 다쳤을 터.
“…보고는 나중에 하고, 필요시 응급조치부터 하십시오. 현장은 직접 가서 확인하겠습니다.”
새 지시를 내린 로버트가 운전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규정 다 무시하고 밟아, 차량 대열이나 거리, 경호 같은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리고 바로 뒷좌석에 탄 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응급 차량 즉시 호출하고, 차량에 배치된 구급 배낭 준비해.”
“알겠습니다.”
일시에 들려오는 대답에 고개만 끄덕인 로버트가 글록 19를 꺼내 약실을 재확인하고, 플레이트 캐리어에 붙은 지혈대를 뜯어내 손에 잡았다.
원래였으면 총기를 먼저 쥐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내리자마자 부상자들에게 달려가야 했다.
멀리 있던 차량이 흔들릴 정도면, 근방에 있던 경찰관들도 크게 다쳤을 테니까.
‘사망자만 없기를…….’
가장 먼저 움직였을 EOD 대원들을 걱정할 무렵.
새까만 연기만 보이던 현장이 점점 구체적으로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화물차의 흔적으로 보이는 파편들, 불 붙은 유류 그리고 포탄이라도 맞은 듯 깨지고 파인 도로까지.
“이 개자식…….”
위성 영상보다 참혹한 현장에 로버트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폭발 장소가 지원 왔던 경찰 인력과 상당히 멀리 있다는 점이었다.
육안으로 봤을 때, 최소 70M 이상.
보통 경찰들이 하는 도로 차단이나 검문 검색 방법과 큰 차이가 있었는데도, 로버트의 요구를 잘 이행한 것이었다.
이 정도면 155㎜ 고폭탄이 떨어져도 다치지 않았을 것이었다.
살상 반경 뒤에서 대기 중이었으니까.
한데, 지금 터진 것은 그보다 더 강력해 보였다.
“멈춰!”
로버트가 소리치고, 차가 서자마자 바로 뛰어갔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약 50미터 거리에 쓰러져 있는 EOD 대원을 발견한 것이었다.
폭발을 염두에 두고 완전 무장한 모습.
그러나 충격을 완전히 상쇄하지 못했는지, 황무지를 구르다 멈춘 덤불처럼 맥없이 쓰러져 있었다.
타다다닥!
서둘러 달려간 로버트가 안면 보호구부터 벗겼고, 호흡을 확인하고서 소리쳤다.
“소리가 들리나?! 이봐!”
그리고 출혈이나 외부 상처를 살피는 사이.
“이쪽에 사망자는 없습니다, 리마 1.”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전까지 로버트와 무전을 했던 국무부 측 인물이 다가온 것이었다.
텍사스 고위 간부와 경찰들과 함께.
“중상자는?”
“약간의 경상자들만 있고, 나머지는 괜찮습니다. 다들 헬멧을 써서 뇌진탕은 저만 겪었고, 자잘한 파편에 상처 입은 게 전부입니다.”
“…그럼 이 사람만 빠르게 병원으로 후송 부탁합니다.”
EOD 대원도 다행히 외상은 없었지만, 의식을 잃은 만큼 병원에 가 봐야 했다.
이에 로버트가 부탁하고서 길게 한숨을 흘려 냈다.
“후우우…….”
이 폭발로 사상자가 났을까 봐, 적잖게 긴장하고 있었다.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미국 내에서 국무부 고위 관료가 자살 폭탄을 하고, 거기에 휘말려서 경찰들이 여럿 죽어 나간다는 건 로버트에게는 종말이나 다름없었다.
심지어 그가 지난 6개월 이상 꾸준하게 감시하던 인물.
책임이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고 휘청였을 것이었다.
심지어 그간 작전했던 동료들도 아닌, 지원 온 텍사스의 경찰관들이 아니던가?
그들은 상대가 누군지도 몰랐다.
월터 그레이슨이 도주 중이고, 그를 추격 중이라는 건 여기 있는 국무부 사람 몇몇만 아는 사실이었다.
이에 양 무릎을 꿇고서 EOD 대원을 봤던 로버트가 털썩 주저앉았다.
동시에 뺨에 상처가 난 SWAT 대원이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나보다는 당신에게 물어야 할 말 같군요. 볼을 꿰매야 하지 않겠습니까?”
“구멍이 안 나서 괜찮습니다.”
로버트가 그간 봐 왔던 그리고 함께 작전하는 특수부대 군인들과 다름없는 말과 행동이었다.
로버트가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혹시 군인이었습니까?”
“네, 레인저 출신입니다. 아프가니스탄에도 다녀왔었죠.”
“그렇군요. 당신의 복무에 감사합니다.”
답하는 로버트가 이내 고개를 떨어트렸다.
눈앞의 SWAT 대원과 같은 그리고 이름 없이 죽어 간 계약직 요원들이 떠오른 탓이었다.
그것도 발목에 무겁게 감겨 있는 족쇄처럼.
‘…나도 진행하던 것만 정리되면, 그만둬야겠군.’
그리 생각했으나, 은퇴는 요원해 보였다.
지안드로를 추적하는 일이 성과를 보이고는 있으나, 그와 관련된 피칼은 여전히 암막 뒤에 있어서 쫓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분노로 마음을 다스리는 무렵.
전화가 걸려 왔다.
G&G Corp TF 담당이자, 현 볼리비아 파견 책임자인 론 마이어스.
번호를 확인한 로버트가 바로 전화를 수신했다.
별거 아닌 걸로 전화했을 리는 없고, 더불어 강태와 관련된 볼리비아 일을 알려 올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게 안 좋은 내용을 담은 긴급 소식일지도 몰라 사뭇 긴장하는 사이.
다행스러운 론의 음성이 들려왔다.
- 구두 보고 해야 할 사안이 있어서 먼저 말씀드립니다.
“말하게.”
- 인계받은 타깃에게서 유의미한 증거를 확보했습니다.
“유의미한 증거?”
- 지안드로 바시카날과의 구체적인 연락 방법과 관련 암호입니다. 약물 효과를 받았음에도 반복적으로, 구체적으로 진술하여 신뢰도가 높습니다.
“……!”
그 말에 로버트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멀다고 생각한 은퇴에 한발 가까워진 덕분이었다.
그러다가 이어진 말에 주춤하고 말았다.
- 문제는 바시카날이 급하게 이동 중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위치는?”
자연스레 표정이 굳은 로버트가 묻기를 잠시.
안 좋은 답이 넘어왔다.
- 아마도 중국으로 들어갈 것 같습니다.
중국은 미국이 설정한 가상의 적국 중 하나이지만,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활동하기 힘들다는 사실.
가상의 적국이라도 외교적으로 무마하거나 압력을 넣어서 상황을 조정할 수 있는데, 중국은 그게 쉽지 않았다.
그들도 강대국이었으니까.
또한 국가만이 아니라, 여론 기조까지 완벽하게 반미를 지향하는 나라였다.
거길 지안드로가 들어간다고 하니, 충분히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육로 추적이 상당히 어려워질 테니까.
로버트가 그런 판단을 하는 사이, 론이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 이 역시 약물 효과로 얻어 낸 진술인데, 정확하진 못합니다. 타깃이 진술할 때부터 ‘아마도’라는 단서를 붙이면서 설명했었습니다. 암호나 통화 방식을 설명했던 것보다 신뢰도가 많이 낮습니다.
그 말에 로버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그의 말을 수긍한 게 아니라, 이 사실을 굳이 전화로 알린 이유를 깨달은 것이었다.
“…증거부터 최우선으로 분석해야 되겠군. 늦었다가는 놈이 중국으로 들어갈 테니.”
보고서로 올리고, 결재를 받을 일이 아니라는 의미.
론 역시 간결하게 답했다.
- 그렇습니다.
그 뒤로 폭탄 테러로 인한 부상자나 산타크루즈의 동향 등을 알리는 추가적인 보고가 이어진 뒤.
통화를 종료하려던 로버트가 급히 한마디를 덧붙였다.
“리는?”
- 특이 사항 없습니다.
“…그럼 수고하게.”
뚝, 전화를 끊은 로버트가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핵심 자원인 강태가 멀쩡했으니까.
볼리비아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는 보고가 올라왔을 때, 심장이 멎을 뻔했었다.
그가 대단하긴 해도, 죽지 않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더구나 방탄복으로도 막을 수 없는 폭탄은 한번 휘말리면 쉽게 불구가 될 것이었다.
그 증거로 G&G Corp 소속 용병 한 명이 사망했고, 두 명은 중상을 입고 장시간의 수술을 진행한 데다가, 강태를 감쌌던 필립도 파편을 제거하는 치료를 받았었다.
만약 그 폭탄이 오늘처럼 큰 규모였다면?
로버트의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 2층짜리 관광호텔이 통째로 박살 나고 붕괴했을 것이었다.
사상자 수십 명이 났을 거고.
‘이번에 리가 돌아오면, 안전을 더 확실하게 해야겠어…….’
그렇게 계산하던 로버트가 현장 책임자인 국무부 요원을 불러 말했다.
“상황 정리 부탁합니다. 감독관과 함께 진행하도록 하세요.”
론이 전화로 먼저 보고했듯, 해야 할 급한 일이 있었다.
짧게 인사를 나눈 로버트는 차에 올라서 전자메일을 확인했고, 동시에 직속상관인 국무부 차관에게 전화로 구두 보고를 했고, 이어서 국방부 장관에게도 현 상황을 대략적으로 알렸다.
그리고 전화를 끊은 그가 노트북 보고서에 집중하면서 미간을 좁혔다.
‘머지않아 보겠군…….’
* * *
네팔, 카트만두, 트리부반(Tribhuvan) 국제공항.
힘든 행색의 트래커가 아닌, 부유한 사업가 복장을 한 지안드로가 국제선 출발 대기석에 앉아 핸드폰 하나를 꺼냈다.
이 공항에서 사용하고 버릴 목적으로 구입한 물건이었다.
수신자는 월터에게 받은 전화번호.
노먼 존스의 연락처였다.
띡.
번호를 입력하고 통화 버튼을 누른 뒤.
이어지는 통화 연결음 끝에 핸드폰 너머에서 아주 젊은 목소리가 건너왔다.
20대를 증명하는 듯 힘 있는 음성.
- 때마침 전화를 주셨군요. 암호를 말하면 됩니까?
“노먼 존스?”
- 그렇습니다. 암호는 양키, 델타, 호텔, 파파, 에코, 델타입니다.
“정확하군.”
- 지금 어디십니까?
“네게 질문할 권리는 없어. 그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뿐이야.”
- 아… 그분도 알고 있습니다, 보스라고…….
“안다고?”
- 안다기보다는 들었습니다. 선지자이시자 구원자이신…….
“혹시 신학도인가? 아니면 기독교인?”
- 세례를 받긴 했습니다만, 지금은 냉담 신자입니다.
“그래서 종교적으로 접근하는군. 나쁘진 않아. 세상을 혁명하는 건, 선지자나 구원자와 다를 게 없지. 그럼 그분의 존함도 알고 있나?”
- 피칼.
“그것까지 말했다면… 그레이슨은 어떻게 됐지? 죽었나?”
지안드로가 한쪽 눈썹을 휜 채 물었다.
제대로 된 이름이나 성이 아니지만, 피칼을 언급했다는 것 자체가 가벼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함부로 발설해서는 안 됐다.
만약 죽기를 각오하고, 그의 본분을 승계했다면 모를까.
짐작과 함께 담담한 목소리가 넘어왔다.
- 그런 것 같습니다. 아마도 뉴스로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망자의 신분을 밝힐지 모르겠지만…….
“무슨 소리지?”
- 나오기 전까지 내부 상황을 염탐했는데, 텍사스에서 제법 큰 폭발이 발생했더군요.
“정말 남미로 넘어가려던 모양이군.”
멕시코와 접경 도시인 텍사스를 떠올리는 사이, 짧은 답이 돌아왔다.
- 네, 추적을 따돌리고 합류하려는 것도 계획 중 하나였습니다. 확률이 가장 낮았지만…….
“그럼 자폭이 가장 높았나?”
- 그렇습니다.
“그렇군…….”
상황을 이해하던 지안드로가 본론을 꺼냈다.
“이제 일 얘기를 해야겠는데… 지금 어디에 있나?”
- 공항입니다.
“나쁘지 않군, 목적지는?”
- 베트남입니다. 거기서 중국 남부로 넘어갈 예정입니다.
노먼의 말에 지안드로가 피식 웃고 말았다.
마침 같은 루트를 준비한 탓이었다.
“잘됐군. 가는 길에 만나면 되겠어.”
- 그럼 당신도……?
“그래, 내가 다시 연락하지. 베트남에서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