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이튿날 이른 오전의 볼리비아 산타크루즈 주(州) 외곽.
원래 가려고 했던 목적지로 쳐들어갔다.
총 두 곳.
하나는 지안드로의 부하가 머물렀던 거처였고, 다른 하나는 지안드로가 브로커 짓을 하며 살았던 장소였다.
개중 쓸모가 있는 건 전자였다.
지안드로의 부하는 얼마 전까지 직접 생활해서 관련 정보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과거에 지안드로가 있던 곳은 시간이 몇 년이나 지나는 바람에 주인이 바뀌면서 카르텔 조직원들이 쓰고 있었고.
물론 두 곳 모두 수색하는 데 무리는 없었다.
오히려 편했다.
점거하고 있던 카르텔 조직원들이 비켜 주고, 경찰이 길 안내를 도와준 덕분이었다.
그것도 아주 협조적으로.
“자자, 다들 비키세요! 공무 집행 중입니다!”
산타크루즈 경찰들이 몰려드는 구경꾼을 물리고, 우리가 들어갈 수 있게 길을 터 주었다.
원래 지역을 지배한다던 카르텔 조직원들은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다.
아주 깨끗하게 빠져나간 것이었다.
모든 걸 그대로 놔두라는 우리 요청대로, 그들이 사용하던 총기와 마약까지 수거하지 않은 채 떠났다.
방금까지 사람이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SSE가 진행 중인 가운데, 호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이 머저리들 같으니라고. 겁을 잔뜩 먹은 모양이군, 카드 게임에 쓰던 달러까지 놓고 갔어.”
호세가 테이블 위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고, 해리가 말을 덧붙였다.
“오히려 함정 같아서 무서울 지경이네요. 마약 카르텔 지역에서 에스코트 받아 가면서 증거물을 수집하다니… DEA(Drug Enforcement Administration: 마약단속국)도 이런 호사는 못 누렸을 겁니다.”
나도 좀 과하다는 생각을 할 무렵.
레이첼이 고개를 저었다.
“케니스 영이 다치기라도 했다면, 볼리비아 경찰 대신 미군이 있었을 거예요. 다치지 않았어도, 폭탄 테러가 있던 건 확실하니까. 골목에 기관총이 달린 험비와 해병들이 있어도 이상할 건 없어요. 그는 미국의 외교관이니까요.”
“아, 그건 그렇네…….”
나도 새삼 깨달았다.
케니스를 외교관보다는 CIA라고 생각했고, 폭탄이 터지거나 총탄이 쏟아지는 현장 역시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따져 보면 결국에는 외교관을 향한 테러나 다를 게 없었다.
충분히 논란이 될 정도로.
그사이, 레이첼이 증거물을 정리하면서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외교적인 분쟁으로 비화될 일을 우리가 요구 몇 개로 정리했으니, 협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을 거예요. 경찰이든, 카르텔의 수장이든… 아마 체포한 미겔 알바레즈도 그 정도 계산을 했을 거구요.”
그 말에 각종 증거물을 담은 가방을 싸다가 되묻고 말았다.
“아, 그 사람… 살려 둬도 되는 거 맞아요?”
미겔을 떠올리자 미간이 구겨졌다.
그가 우리에게 반항하거나 협상을 요구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조사가 이뤄진 새벽 내내 순종적이었다.
문제는 그의 과거 이력이었다.
마약 카르텔 간부답게 약장사를 숨 쉬듯 했는데, 거기에 4대 강력 범죄로 일컬어지는 강도, 강간, 방화, 살인도 어마어마하게 했다.
밝혀진 것만 수백 건.
그게 빙산의 일각이라고 하니, 아마 수천 건은 있을 것이었다.
한데 미겔의 요구 조건대로라면, 조사 후에 감옥에 넣는 게 아니라 풀어 줘야만 했다.
협조하는 대신 이민을 요구한 탓이었다.
브라질 남부로.
그곳에 친인척이 있다고, 내려가서 다시 마약 사업을 하겠노라 했었다.
그 전에 감옥에 잡아넣든, 어떤 식으로든 처벌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꼭 그렇진 않은 모양이었다.
레이첼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나도 같은 생각이긴 하지만, 살려 두는 게 더 이로울 수도 있어요.”
“이롭다고요?”
“미 정부가 약속을 지키면, 다른 범죄 조직이나 조직원들도 접근하거든요. 다른 내부자들이나 협력자들… 그들이 미국을 믿고 정보를 전달하면, 미국은 그 정보를 토대로 심각한 테러를 사전에 차단하거나 주요 범죄자를 잡을 수 있죠. 그래서 이로울 수도 있는 거예요.”
“아…….”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레이첼의 말에 단순히 동의한 게 아니었다.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핵전쟁 결말이 있는 라레플의 시나리오 속이 아닌, 명백한 현실이라는 것을.
미국은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아주 당연하게 자국의 이익을 봐 가면서 움직일 것이었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긴 해도, 정말 경찰은 아니었으니까.
내가 주억거리는 사이, 덤덤한 말이 이어졌다.
“만약에 그를 처벌하거나 제거한다면, 누군가 빈 자리를 꿰찰 거예요. 그냥 비어 있을 가능성은… 통계적으로 희박해요. 경험적인 측면에서 봤던 사례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그는 필요악 같은 인간이죠. 그런 면에서 CIA는 필요악을 제거하지 않고 통제하려 하는 거고, 이 역시 CIA가 주장하는 논리 중의 하나에요.”
“설명이 너무 디테일 하다 보니, CIA 놈들이 와 있는 줄 알았어. 전에 우리를 불러 놓고 작전을 설명했던 잉크쟁이 같군.”
호세가 말끝에 낄낄대며 너스레를 떨 때였다.
“정리는 끝났나?”
어느새 제이크가 다가오며 물었고, 마커스가 대신 답했다.
“완료했습니다, 팀장.”
“퇴출 준비하고, 리는 잠깐 따라 나와”
그의 말에 반사적으로 짧게 대답하고 걸음을 옮겼을 때였다.
동료들과 거리를 두자마자, 갑작스러운 말이 들려왔다.
“방금 본토에서 연락을 받았어.”
“네?”
“월터 그레이슨이 군 기밀을 팔아넘기려고 한다던데…….”
“예?!”
더 뜬금없는 말에 절로 되묻는 순간.
나직한 말이 덧붙었다.
“국장이 혹시 아는 게 더 있는지 묻더군.”
“아…….”
왜 묻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월터의 이름을 다소 갑자기 던지듯 알려 줬었으니, 아마 추가적인 정보를 원하는 것일 터.
그러나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아는 월터의 미래는 본토 공격을 위한 스파이 혐의가 전부였다.
군 기밀을 팔아넘기는 게 아니라.
“아는 게 있나?”
이어지는 제이크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없습니다.”
“그래, 관련 내용 함구하고, 퇴출할 준비해.”
“알겠습니다.”
답하고 돌아서는데, 다행히 심경이 복잡하진 않았다.
이미 스토리는 많이 바뀌어 있었고, 지금 벌어진 갑작스러운 상황이 긍정적으로 느껴진 탓이었다.
‘배신자 새끼가 똥줄이 탄 거 같은데……?’
내가 없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라서 조금은 염려가 되긴 했으나, 그래도 로버트를 믿고 기다려야 했다.
두 번이나 실수할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게임 중에서도 고위 공무원 중에 가장 믿음직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대외협력국을 운영하고, 또한 피칼의 뒤를 쫓은 인물.
놓치진 않을 것이었다.
죽인다면 몰라도.
* * *
미국, 텍사스 남서부.
도주 중인 월터가 커다란 화물차 짐칸에 주저앉은 채로 길게 숨을 내쉬웠다.
숨쉬기가 힘든 듯.
“후우…….”
벌써 여러 번 그러고 있었다.
각오하던 일이지만, 끝이 보이니 아쉬움과 두려움이 피어난 탓이었다.
다만, 그저 죽음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었다.
오랜 시간 공을 들였음에도 보스인 피칼의 과업을 완수하지 못했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더욱이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
미국 본토에 광역적인, 대량의 테러를 일으키는 것.
구체적으로는 미국의 주요 기능이 모여 있는 워싱턴 D.C를 불바다로 만들고 싶어 했었다.
세계를 좀 먹는, 부패한 최강국을 파괴하는 상징적인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꿈도 요원해지고 있었다.
여기서 설사 살아남더라도 이행하기 어려울 게 분명했다.
미국 안에서 공직자로서 존재하고 있어야, 내부자로서 길을 열어 주고 정보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남미를 통해 러시아로 빠져나가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경험과 능력으로 보스를 보좌해야 할 뿐.
“쯧…….”
그가 혀를 찼다.
옆에서 보좌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게 비약적으로 줄어드는 탓이었다.
그래서 그의 뒤를 잇게 될 노먼을 보내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화물차 짐칸에 타서 멕시코 국경을 넘어, 중남미로 내려가려는 것 역시 같은 이유였다.
그사이에 펜타곤의 감사가 중단되고, 노먼이 달아날 시간을 벌 수 있을 테니까.
이에 괴로움을 견디려는 무렵, 무전 잡음이 울려 퍼졌다.
치직─
그 뒤로 화물차를 운전하는 이의 목소리가 넘어왔다.
- …앞에 경찰 같은 게 보입니다. 한둘이 아닙니다.
“후우…….”
월터가 다시금 한숨을 내쉬면서 커다란 탱크와 유선으로 연결된 리모컨을 만지작거렸다.
‘여기서 죽게 되나…….’
* * *
같은 시각.
대외협력국장 로버트는 B6 등급(7.62㎜ 방어 가능) 방탄 SUV 차량에 선탑해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주어진 임무는 월터 그레이슨 추격과 검거 지휘.
무전을 내리고 상황을 파악하던 그의 귀에 새 정보가 들어왔다.
- 리마 1, 여기는 리마 4. 귀소 위치가 어디입니까?
“여기는 리마 1. 현재 이동 중입니다. 앞으로 10분 안에 도착합니다.”
- 알겠습니다. 당소 위치로 텍사스 DPS(Department of Public Safety: 공공안전부) 감독관과 레인저 8명이 추가로 도착했고, 인근 SWAT(Special Weapons And Tactics: 특수기동대) 소속 경관 12명과 경찰차 4대가 증원되었습니다.
그 말에 로버트가 현재까지 모인 인원을 계산했다.
국무부에서 파견되어 현장 감독 중인 이를 포함해 총 60명가량.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그것도 일반 경관들을 끌어모은 게 아니었다.
특작 팀인 레인저와 SWAT 위주로 모여 있었고, 거기에 EOD(Explosive Ordnance Disposal: 폭발물 처리반) 팀까지 있었다.
웬만한 테러가 발생해도 신속하게 제압할 수 있는 규모였다.
그럼에도 로버트는 좀처럼 마음을 놓지 못했다.
상대하는 인물이 월터였기 때문이었다.
국무부 고위공무원이면서, 군 기밀을 유출하는 혐의로 추적 중인 용의자.
그러나 표면적인 이유만 볼 순 없었다.
감사에서 발각되지 않을 정도로 철두철미한 인간이었고, 지난 6개월 이상 지속된 꾸준한 감시 과정에서도 혐의점을 감췄던 인물이 바로 월터였기 때문이었다.
한데, 갑자기 이 시기에 과거의 군 기밀을 갖고 움직인 것이었다.
그렇게 허술한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로버트가 그 생각과 함께 무전 버튼을 누르고 회신을 보냈다.
“여기는 리마 1. 작전 준비 재확인하되, 검거 및 교전 수칙은 반드시 재전파하십시오.”
- 알겠습니다.
“경찰 수칙은 조금도 용납되어선 안 됩니다. 상대는 일반적인 범죄 용의자가 아닙니다.”
- 명심하겠습니다, 리마 1.
로버트가 재차 강조하고, 대답을 들은 뒤에야 무전 버튼을 놨다.
월터가 단순히 철두철미한 인간이고, 숨겨진 목적을 갖고 있어서 그런 것만이 아니었다.
죽어 가는 세르게이가 이름 몇 개를 뱉었고, 그 안에 월터가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하나는 피칼이었고.
개중 피칼은 정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으나, 세르게이나 테러와 관련된 인물이었다.
예컨대 암막 속의 배후자.
그런 상황인 만큼 월터가 순수하게 돈 벌자고 달아났을 리는 없었다.
분명 다른 수작을 부릴 터.
- 리마 1, 여기는 리마 4. 용의 차량이 육안으로 보입니다. 계획에 따라, 최소 인력으로 먼 거리에서 정차시키겠습니다.
“여기는 리마 1. 영상 보고 있습니다. 계획대로 행동하십시오.”
답하면서 로버트가 운전사를 바라봤다.
더 빠르게 달리라고 신호하듯.
그리고 다시금 모니터를 바라보는 순간, 귓가에 옅은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타앙─
그 뒤로 몇 발의 총소리가 울려 퍼지고, 동시에 무전이 들어왔다.
- 리마 1, 여기는 리마 4. 차량 미정지로 타이어를 쐈습니다. 예정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진행하세요.”
답하는 로버트가 휴대용 모니터를 바라봤다.
위성 영상 속의 화물차가 휘청이면서 속도가 줄었고, 완전하게 멈추고 있었다.
이어서 탐지 장비를 든 EOD 대원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이 역시 같은 영상으로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
화면에 섬광이 비쳤다.
설마 하는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쳐 갈 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차체를 흔들듯 진동이 닥쳐 왔다.
월터가 자폭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