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153화 (153/185)

153화

제이크는 위성 전화기를 받지 않았다.

야간 투시경 너머로 케니스를 잠시 바라보다가 물었다.

“보스와 아는 관계입니까?”

그의 말끝에 힘이 들어갔다.

내용은 평범하나, 속뜻은 그렇지 못한 탓이었다.

말처럼 단순히 아는 사이가 아니라, 카르텔과의 유착을 넘어 협력 관계까지 의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지국을 차단해 통신망까지 끊은 상황이었으니까.

그러나 단순히 산타크루즈주(主) 경찰을 경계하듯이 반응한 건 아니었다.

케니스에게 직접 정체를 듣진 못했으나, 단순한 외교관이 아닌 CIA 요원으로 의심하고 있던 차였다.

일이 이렇게 흘러가도록 일조했을지도 모르는 상황.

이에 제이크의 눈매가 매서워질 때였다.

케니스가 늦지 않게 답했다.

“아, 핵심만 전달하다 보니 오해를 드린 모양이군요. 원래 전화를 걸어온 건 카르텔 보스가 아니라, 산타크루즈 경찰 부청장입니다. 그리고 부청장 옆에 보스가 함께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부청장이 연락을 했고, 옆에 있던 보스를 바꿔 준 겁니다.”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겁니까?”

제이크가 되묻고, 강태도 주춤했다.

경찰과 카르텔 사이에 유착이 있을 거라고 의심했는데, 함께 있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아예 한자리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케니스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볼리비아는 처음이신 건 같지만, 비슷한 경우를 많이 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적군이 우군이 되고, 우군이 적군이 되는… 이런 곳이 아니더라도, 종종 보는 광경이죠. 안 그렇습니까?”

“…정확한 사실만 말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이크가 한 걸음 다가가며 물었다.

당장 주먹이라도 날릴 것처럼 총기에서 양손을 떼며.

케니스가 한 말의 의도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겪어 봐서 잘 아는 것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건 과거의 경험이나 일반적인 통념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동료가 죽고 다친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케니스가 멈칫하며 답했다.

“아, 음…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지금 경찰과 카르텔은 단순히 접촉한 겁니다. 물론 서로 간에 아는 사이였겠지만… 중요한 건, 평소에 친구 같은 사이는 아닙니다. 지금은 그저 농장이 모조리 파괴되고 있다는 걸 짐작하고 급하게 부청장을 찾아간 거죠. 그게 전부입니다. 저도 그렇게 예측하고 있고… 지원 중인 펜타곤도 별말이 없지 않습니까?”

“…….”

제이크가 답하지 않은 채 바라보고, 강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CIA나 국방부 모두 비슷한 시점에 테러 같은 것을 얼추 예고했을 뿐, 별다른 정보를 주진 못했었다.

이윽고 케니스의 말이 빠르게 덧붙었다.

“만약 카르텔이 움직였다면, 경찰은 물론이고, 우리 사무소나 국방부도 어느 정도는 알았을 겁니다. 지금쯤이면 직접적인 단서가 뭐라도 나왔겠죠.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건, 카르텔도 간접적으로 엮였다는 겁니다. 파이프 폭탄 테러에 대한 단서는 보스가 넘겨주겠다던 미겔에게서 얻어 낼 수 있을 겁니다. 이 전화를 받으면, 명백하게 상황이 나아질 겁니다.”

말끝에 케니스가 위성 전화를 들어 보였고, 제이크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받았다.

그리고 믿는 구석도 있었다.

병원이나 호텔에서 대기 중일 론.

그라면 제이크가 놓치고 있는 걸 충분히 잡아 줄 것이었다. 대외협력국과 연락해서 정보를 취하든, 현장에서 필요한 판단을 내리든.

그만한 능력은 있는 사람이었고, 또한 믿을 만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여보세요.”

제이크가 스페인어로 말하자, 전화기 안에서 목이 쉰 듯한 음성이 넘어왔다.

- 젠장, 무슨 짓들을 하길래 이제야 전화를 받는 거요? 어디를 얼마나 박살 냈소?

“이제부터 당신의 말에 따라 달라지겠지.”

- 이런 제기랄… 뭐가 됐든 그만두시오.

“할 말은 그게 전분가?”

- 군인인가? 존나게 급한 데다가 직설적이군… 당신들이 미겔을 찾는다 들었소.

“그래서?”

제이크가 묻고, 한숨이 넘어오길 잠시.

- 놈의 주소를 알려 줄 테니, 알아서 하시오.

“부하를 이렇게 쉽게 버리나?”

제이크가 말을 툭 뱉자, 반발하는 음성이 넘어왔다.

- 농장의 값어치가 얼만 줄 알고……?! 거기다 미겔은 내 조카에게 망신을 주고, 일을 그르친 멍청한 새끼요. 젊을 때는 충성스럽고 영리한 놈이었지만, 지금은 늙어서 정신이 빠진…….

말하던 보스가 한숨을 쉬었다.

- 빌어먹을 망신은 그만 주고, 얼른 일이나 처리합시다.

“함정은 아니라는 건가?”

-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게 함정이면 미군이 잔뜩 들이칠 텐데, 내가 미쳤다고 함정을 파겠소? 직접 잡아서 넘겨주지 못할 뿐이오. 놈이 미군에게 멍청하게 잡혀 가는 건 용납해도, 내 손으로 잡아다 넘기는 건… 이 바닥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지랄하고 있군. 둘 다 같은 짓 아닌가?”

-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요? 미겔이 필요한 거요, 이 빌어먹을 통화를 계속해야 하는 거요?!

그 말에 제이크가 대답하는 대신, 케니스에게 전화를 건네주었다.

허락하는 고갯짓과 함께.

옆에서 이 상황을 보고 있던 강태가 제이크를 바라보자, 짧은 명령이 떨어졌다.

“전 대원 SSE(Sensitive Site Exploitation: 정보 수집) 중단하고, 이동 준비해.”

전화 통화는 썩 좋게 들리진 않았으나, 어쨌든 상황은 잘 풀렸다는 의미.

강태가 힘있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이후 과정은 들어올 때보다 더 신속하게 이뤄졌다.

퇴출 루트를 미리 정해 놨기도 했거니와, 이미 들어오면서 병력 대다수를 사살하거나 제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타고 왔던 마쯔다 왜건에 찰리 팀이 탑승한 뒤.

강태의 옆자리에 앉은 케니스는 2안 야간 투시경을 올리면서, 옆자리의 강태를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 약간의 윤곽만 보이는 상황.

마찬가지로 4안 야간 투시경을 올렸던 강태가 시선을 느끼고는 멈칫했다.

“…왜 그러세요?”

“어디 다쳤거나 이상이 있는지 물어보려고 했습니다.”

“멀쩡합니다.”

“도탄이라던가, 다른 건……?”

그 말에 강태가 팔을 쓸다가 주춤했다.

“여기 뭐 좀 박히긴 했네요. 탄 파편 같기도 하고…….”

“출혈은 어떻습니까?”

“좀 나다 말았죠, 뭐.”

“자세히 좀 볼 수 있겠습니까?”

“예, 보세요.”

강태가 팔을 내밀자, 케니스가 바로 소형 라이트의 조도를 낮춰서 확인했다.

그렇게 미간을 구겨 가며 보기를 잠시.

“으음… 보통 사람과 같군요.”

“예?”

강태가 되물었다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설마 무슨 슈퍼맨으로 아는 건 아니죠?”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죠. 내가 보기에는 당신의 능력이 슈퍼맨의 것과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유, 무슨… 저도 똑같아요. 다치고 수술하고… 알잖아요? 모르세요?”

그가 CIA라는 정체를 고백했기에, 강태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분명 웬만한 정보는 갖고 있을 터.

이에 케니스를 바라보자, 그가 어둠 속에서도 안광을 빛내듯 대답했다.

“직접 목격한 것과 다르죠.”

그러면서 케니스가 라이트를 껐고, 잡고 있던 강태의 팔뚝에서 손을 뗐다.

‘피부나 상처는 일반적인 사람과 다를 게 없어.’

케니스가 강태의 팔을 잡았던 손가락을 비비면서 얕게 숨을 흘렸다.

‘한데, 어떻게 그런 능력을…….’

그가 감탄을 흘려 내듯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방금 말했듯 강태의 실력을 자료가 아닌,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더더욱 놀란 것이었다.

헬멧에 달린 야간 투시경을 내려쓴 채, 100~200M 거리에 있는 적을 잠깐 조준한 것만으로 완전하게 사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이뤄 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적을 조준하고, 총의 흔들림을 잡고, 일정한 압력을 가해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데, 그 와중에 적잖은 시간이 흐르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1초 이상, 거리가 멀면 조준하는 데 더더욱 많은 시간이 들어갔다.

더 신경 써야 하니까.

한데 강태는 코앞이 아닌, 멀리 있는 적을 1초도 안 돼서 처리했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닌 두 명씩.

‘이러니 상부에서 회유하라는 거군. 게다가 모든 지원을 약속하고…….’

그러다가 케니스가 멈칫했다.

방금 교전하면서 잊고 있었는데, 호텔 앞에서 터진 폭탄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럼… 그것들도 정말 리가 맞혀서 터뜨렸겠군.’

강태가 맞혔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그걸 100% 믿지 않고 있었다.

따지자면 절반밖에 안 믿었다.

둘 다 탄에 맞은 게 아니라, 하나만 터졌다고 본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니까.

하나를 터뜨리고, 연이어서 다른 폭탄을 터뜨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폭음도 연달아 들렸었다.

그가 막 SUV에서 내리던 순간, 총성과 폭음이 거의 동시에 들렸고, 그사이에는 어떤 간격도 없었다.

모든 게 소수점 이하의 초 단위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파이프 폭탄 중 하나는 맞혀서 터뜨렸지만, 다른 하나는 그 폭압이나 오작동으로 인해 터졌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한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니었다.

교전 현장에서 혼자 20~30명의 조직원을 간단히 사격 훈련 하듯 사살한 강태는 폭탄이 3개여도 연달아 터뜨렸을 것 같았다.

이번에는 폭탄이 아니었을 뿐, 카르텔 조직원들을 그렇게 쓰러트렸으니까.

믿을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강태를 감싸다가 파편을 맞고 다친 연락장교, 필립이 떠올랐다.

동시에 입가에 웃음까지 맺혔다.

‘…왜 그랬는지 알겠군.’

자신이 필립이었어도, 그런 상황이면 강태를 감싸기 위해 몸을 던졌을 것만 같았다.

강태는 결코 다치거나 죽어서는 안 되는 인적 자원이니까.

그 생각 끝에 케니스가 픽 웃고 말았다.

‘내가 그 역할을 맡게 될지도 모르겠어…….’

* * *

산타크루즈 동북부 외곽에 위치한 별장.

여러 곳에 전화를 돌리고, 직속 부하들로부터 보고를 받던 미겔이 괴성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 이런 씨발! 빌어먹을 개자식 같으니!”

농장이 연락 두절 된 이후, 부청장은 물론이고, 보스조차 전화가 연결되지 않은 탓이었다.

결론은 하나.

‘내가 버림받았군, 과거의 머저리들처럼…….’

미겔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더 부정하거나 의심할 수 없었다.

수용해야만 했다.

정확한 답을 듣진 못했으나, 이미 한참이나 시간을 소모한 결과가 이 모양이었으니까.

이유도 적절했다.

보스의 조카에게 망신을 주게 됐고, 미국을 끌어들였으며, 제대로 수습하지도 못하고 있었으니까.

무능함을 증명한 셈이었다.

그것도 단 한 번의 실수에 불과하고 과한 조치처럼 여겨지지만, 그것도 미겔의 판단에 불과했다.

중요한 건 보스의 결정이었다.

그가 말한 건 법이고, 그대로 집행될 것이었다.

짐작대로면 이미 그 법도 절차에 맞게 진행되고 있을 것이었다.

끝이 뭔지도 알 만했다.

죽음.

현장에서 즉사하는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체포되거나 감옥에 가더라도 결국 죽게 될 것이었다.

버림받은 카르텔의 말로가 그랬다.

그러나 미겔은 이 죽음을 받아들일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충성이나 맹세를 떠들어 대기에, 이미 미겔은 너무 많은 걸 알기 때문이었다.

20년 전, 철없고 멋모르던 10대가 아니었다.

그는 쓴맛, 단맛을 다 본 간부였다.

미겔이 입술을 씹어 가면서, 온갖 생각을 헤집듯 살아남을 방도를 떠올리다가 주춤했다.

상황을 되짚던 와중에 이질적인 게 떠오른 탓이었다.

“…지안드로 바시카날?”

미겔이 곱씹듯 이름을 중얼거렸다.

생각해 보면, 그가 이 모든 사태의 단초를 제공한 인물이었다.

그 이름만 빼면, 전과 다를 게 없었다.

이윽고 미겔의 시선이 복면을 쓰고 피범벅이 된 채 널브러진, 지안드로의 부하에게 닿았다.

‘저놈이 뭔가 알 텐데…….’

그가 생각을 잇던 찰나.

투두둥!

타다다다당─!

총성이 울려 퍼졌고, 별장에서 쓰는 무전기가 급하게 울렸다.

- 습격입니다! 미국 놈들이……!

고함이 이어지고, 미겔이 주춤하길 잠시.

몇 번의 총성이 더 터지는 사이, 그의 손이 황급히 송신 버튼을 눌렀다.

“사격 중지해! 내가 놈들과 협상하겠어, 전부 총 내려놔!”

이어서 미겔이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총성이 멎을 때까지.

살아남기 위한 미겔의 판단이었다.

여기서 협조하면 최악의 상황을 보진 않을 것이었다.

그냥 직감 같은 게 아니었다.

상대가 원하는 건 자신이 아닌, 복면을 쓴 채 쓰러진 놈이고, 동시에 지안드로일 테니까.

일이 이렇게 될 이유는 그것밖에 없었다.

협조해야만 했다.

미겔이 마음을 먹는 사이, 무전기에서 걸걸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 미겔 알바레즈?

“그렇소.”

- 무슨 협상을 할 생각이지?

“…당신들이 찾는 건 지안드로 바시카날이지, 내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무의미한 희생은 그만둡시다. 당신들이 원하는 걸 말해 주겠소.”

말하며 미겔이 마른침을 삼킬 무렵.

다행스러운 답이 돌아왔다.

- 밖으로 나와, 적법한 포로 대우를 해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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