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호텔 내에서 무장한 채로 경계하던 우리 G&G Corp 팀은 그 상태 그대로 차량에 올라 이동했다.
목적지는 산타크루즈 동남 쪽에 위치한 코카잎 농장.
론과 케니스가 경찰을 만나고 온 직후에 가지고 온 단서였다.
갑작스러운 데다가 명령도 아니었지만, 다들 자발적으로 움직였었다. 그래야만 했다.
수모를 당하고도 태연하게 넘길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전원 자원했으나, 다 갈 순 없었다.
시신을 지키고, 부상자를 간호해야 했으며, 상황 총괄 및 연락 등을 이유로 일부가 남아야 하는 탓이었다.
결국 두 개의 팀으로 나뉘었다.
총괄인 론을 포함한 브라보와 델타가 병원 등에서 대기하고, 알파와 찰리가 출동하는 것으로.
6명씩 2개 팀, 거기에 케니스와 경호 팀 2명을 더해서 총 15명이 움직였다.
우리가 타던 미니버스와 SUV가 아닌, 현지에서 공수한 미쯔비시와 마츠다 로고가 박힌 10년은 더 된 차량을 타고서.
비포장 흙길을, 그것도 어느덧 내려앉은 어둠을 헤치며 내달렸다.
그 과정에서 난관은 없었다.
론이 농장의 위치를 알아내어 알려 주기도 했지만,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던 CIA와 국방부가 함께 도와준 덕분이었다.
정확하게는 케니스가 구체적인 현지 정보를 알려 주고, 머리 위에 떠 있는 위성이 실시간으로 현지 상황을 전달해 주는 것이었다.
그 결과, 호텔에서 농장까지 40㎞에 가까운 거리를 30분 만에 주파했고, 근처에 헤드라이트를 끈 채 대기할 수 있었다.
이내 케니스가 차창 전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오두막 같은 게 코카 농장의 초소입니다. 상시 경계 중인 조직원이 2명 이상 있습니다.”
그러자 기계처럼 해리가 관측경을 꺼내들어서 확인하며 말했다.
“맞습니다. 육안으로 2명 확인되고, 추가 인원이 숨을 수 있는 구조물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 초소 제압 후 계획대로 진행하지.”
제이크가 바로 말을 받았다.
차를 타고 오면서 바깥을 경계한 게 아니라, 내부에서 침투 작전을 다 짜 놨었기 때문이었다.
다소 급하게 수립한 작전이지만, 흠이 될 건 없었다.
CIA와 국방부 덕분에 자료 수급이 금세 이뤄졌고, 제이크 역시 계획 수립에 일가견이 있어서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나온 작전은 간단했다.
정해진 루트를 따라 외곽 경계부터 차근차근 그리고 신속하게 침투하는 게 다였으니까.
어려울 것도 없었다.
실전도 그렇고, 훈련도 늘 해 왔던 방식이라 오히려 쉬웠다.
거기다 케니스가 참고할 정보를 공유해 주고, 위성이 계속해서 적의 동향을 전파한 덕분에 걸림돌이 될 만한 것도 거의 없었고.
신경 쓰이는 게 있다면 파이프 폭탄 테러처럼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였다.
CIA도, 국방부도 미리 차단할 수 없는 거라서, 그런 변수는 결국 현장에서 우리가 직접 수습해야만 했다.
악영향을 최소한으로 끼치게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할 무렵, 제이크의 입에서 작전의 시작을 알리는 명령이 떨어졌다.
“전원 하차.”
그와 동시에 제이크가 바로 조수석 문을 열고 내렸고, 내 옆의 케니스도 경계하면서 재빠르게 내렸다.
서기관이라는 직책과 어울리지 않는, 빠릿빠릿한 모습.
단순 사무직이 보일 모습이 아니었다.
군 출신인지는 모르겠으나, 해리나 레이첼처럼 현장직으로 활약한 모양이었다.
‘신경 쓸 게 하나 줄었네.’
그렇게 4안 야투경을 내려 쓰고, 마지막으로 총기 약실을 확인한 뒤.
헤드셋을 통해 제이크의 목소리가 전파됐다.
- 여기는 찰리 1. 알파 이동해.
곧 야투경 속 녹색 화면의 동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시작되고, 한참이나 이어졌다.
도보로 800M를 걸어서 접근해야 했고, 침투 후에도 사무실이 있는 농장 안쪽까지 500M 정도를 더 들어가야 했다.
그것도 어둠 속에서 적과 교전하면서.
그렇게 한참을 걸을 때였다.
내 뒤쪽에서 주춤하는 소리가 들렸고, 돌아보자, 케니스가 전화를 받고 있었다.
뭐 하는 짓이냐고 물으려다, 몇 초를 마저 바라봤다.
어쨌든 CIA 요원이니까.
작전 중에 전화를 받았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물론 사무직 같은 사람이 그랬다면 성질이 났겠지만, 케니스는 어느 정도 자세가 나오는 사람이었다.
실작전을 여러 번 해 보거나 훈련을 그 이상으로 받았을 터.
이에 케니스를 지켜보며 기다리자, 다행스럽게도 내가 바라던 대로 좋은 소식을 가져왔다.
- 찰리 1, 여기는 에코 1. 현 시간부로 작전 범위 내 기지국 통신망 차단됨.
“오…….”
감탄하면서 케니스에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저러면 핸드폰을 못 쓰게 될 것이다.
아마 수신, 발신 전부 어렵게 되고, 여기서 총격전이 벌어져도 보고하지 못할 터.
‘확실히 이런 쪽으로는 좀 낫네.’
케니스가 새삼 다시 보일 무렵.
수신했다는 제이크의 목소리 뒤로 새 무전이 도착했다.
안드레이의 목소리였다.
- 여기는 알파 1. 초소와의 거리 200미터, 적 제거하겠음.
그 말에 나도 H416을 들어서 오두막처럼 생긴 초소를 겨누었다.
알파 팀이 제거하지 못하면, 나라도 쏘기 위해서였는데, 당연하게도 그럴 일은 없었다.
안드레이가 속한 알파 팀도 베테랑 중의 베테랑들이었다.
퉁─ 퉁─!
소음기를 거친 묵직한 총성이 울려 퍼지고, 사람 두 명이 그대로 넘어갔다.
- 여기는 알파 1. 적 제거 완료. 계속 진행하겠음.
- 여기는 찰리 1. 수신 양호.
결과 보고와 수신에 대한 답이 간결하고 빠르게 오갔다.
쉬는 시간에 만나면 서로 간에 으르렁거리는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작전 중에는 역시나 프로페셔널한 모습.
마음이 좀 더 놓일 즈음, 속도를 올렸다.
초소를 거쳤으니 농장 안으로 진입해야 하고, 그때부터는 내가 선두에 서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희생자를 최소화하고, 빠르게 돌파하기 위해서.
스슥.
수신호를 받아 움직이자, 호세가 내 어깨를 툭 쳤고, 마커스가 고갯짓을 했으며, 마지막으로 제이크가 내 등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헤드셋 사이로 제이크의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측후방은 조금도 신경 쓰지 말고, 수립한 계획대로 움직이도록 해, 리. 우리도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어.”
내가 팀원들을 걱정하고 신경 쓴다는 사실을 잘 아는 모양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고 말았다.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해리나 많은 대화를 하는 호세, 종종 취기 섞인 진담을 나누는 레이첼이 했으면 몰라도, 묵직한 제이크가 한 말이라서 그랬다.
라레플에 들어온 직후에 좀 붙어 있긴 했으나, 근래에는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신입으로 들어온 해리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으니까.
근데 제이크가 내 속을 알아본 것이었다.
혹시라도 내가 전진하다가 돌아보거나 누군가 총탄을 맞는 소리에 주춤할까 봐.
안 그러리라 생각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그간 함께해 왔던 그리고 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이에 생각을 정리하였고, 야투경 속의 녹색 화면에 다시금 집중하면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팀장.”
그 뒤로 무전이 떨어졌다.
- 이동하도록.
바로 허리춤까지 오는 코카밭으로 발을 내디뎠다.
낮이었다면 훤히 드러났겠지만, 밤이라서 오히려 밭 가운데에 있는 게 나았다.
육안으로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플래시를 비추면 주저앉거나 엎드리면 은폐 역시 손쉽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밭 둘레와 농장 건물은 빛이 나와서 조심히 접근해야 했다.
불빛으로 인해 모습이 드러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밭을 가로질러 이동하는 사이, 어디선가 당황한 듯한 말소리와 함께 스페인어 욕설이 들려왔다.
통신망이 끊긴 효과가 나오는 모양이었다.
이를 직감하고 발을 내딛는데, 근처에서 차량 엔진 소리까지 들렸다.
누군가 나가려고 차에 탄 모양이었다.
이를 깨닫는 사이, 귓속에서는 간결한 무전이 오갔다.
- 알파, 차량 무력화해.
- 알파 1, 차량 무력화하겠음.
제이크와 안드레이의 목소리가 잇따라 들린 뒤.
투두두둥─
묵직한 총성이 내리깔리듯 퍼졌다.
일순, 카르텔 조직원들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당황스러운 상황에 짜증을 내는 게 아니라, 놀라거나 겁먹은 듯 주춤한 모습.
아까처럼 농장 밖에서 쐈으면 덜할 텐데, 이번에는 농장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서 격발한 탓이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분명했다.
내 시야에 잡힌 그리고 총성이 들린 방향을 쳐다보는 적들을 제거하는 것.
텅─ 텅텅─!
방아쇠를 당겼다.
내 총열에 달린 IR(Infrared Ray: 적외선) 레이저가 적을 스쳐 가듯 움직였고, 표적은 확실하게 무너졌다.
다해서 셋, 탄착지는 얼굴 한가운데.
거리가 멀었다면 몸통을 쐈거나 여러 발을 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끽해야 150M 내외.
이 정도는 그냥 쏘면 맞는 거리였다.
다시금 총구를 겨누고 움직이는 사이, 곳곳에서 총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다당! 타다다당!
투두두두─
개중 태반은 우리 근처에도 닿지 못했지만, 아닌 것도 있었다.
- 2시 방향! 넷!
- 후방에 일꾼들, 사격 주의해!
- 8시 방향! 적 오토바이 빠져나간다. 격발해!
총성과 함께 무전기의 소음이 바쁘게 들리는 사이, 나는 몇 명을 더 사살하고 첫 번째 목적지에 닿았다.
후진국에서 주로 쓰는 가솔린 발전기 앞.
바로 조준 사격으로 날렸다.
텅! 텅!
“여기는 찰리 3. 타깃 1 무력화 완료.”
보고하는 사이, 발전기 엔진 소리가 완전히 멈췄고, 중간에 박힌 전등을 비롯해 건물 틈으로 삐져나오던 불빛도 꺼졌다.
총성 틈으로 당황한 스페인어 욕설 따위가 몇 번 더 들려오는 사이.
- 수신 양호. 이동해.
제이크의 답을 들으면서 나도 빠르게 움직였다.
아직 처리할 발전기가 하나 더 있고, 그곳에 농장 관리인이 머물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그곳에 가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생각보다 편했다.
누가 다치거나 죽을 걱정을 좀 덜어도 될 정도.
처음 상대하는 코카인 카르텔 조직이라 내심 신경이 쓰였는데, 막상 상대해 보니 별거 없었기 때문이었다.
머릿수가 좀 많은 게 전부였다.
아덴만 인근에서 상대한 정신 나간 해적들이나 광적인 무슬림보다 무서울 것도 없었다.
따지자면 아프리카에서 상대한 민병대와 비슷한 수준.
그래서인지 탄알집 하나를 다 비우기도 전에, 타깃으로 삼은 두 번째 발전기를 파괴했고, 동시에 관리인의 문앞으로 갔다.
안에서 분주한 발소리가 들리길 잠시.
빠루를 꺼내어 걸던 제이크가 내게 눈짓을 했다.
정확히는 내 손에 들린 섬광탄으로.
이내 제이크가 빠루를 젖혔고, 문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틈이 열렸다.
안쪽에서 의미 없는 총성이 들리길 잠시.
텅─ 데구르르.
섬광탄을 던져 넣었다.
펑, 하는 터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들려오고, 제이크가 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바로 총구를 들어 예정된 방향으로 움직였다.
제압은 금세 이뤄졌다.
내부에 있던 5명이 전부.
그나마도 2명은 비무장한 여성이어서 3명만 처리하면 됐는데, 그것도 두 번째 섬광탄으로 금방 해결했다.
섬광탄 맛을 본, 눈을 감싼 채 화상을 입은 관리인을 체포한 것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예상치 못한 무전이 들려왔다.
- 여기는 에코 1. 카르텔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케니스였다.
그가 무전과 함께 나와 제이크가 있는 방으로 왔고, 위성 전화를 내밀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묻기도 전에 케니스가 미소를 지었다.
“놈들의 보스입니다. 미겔을 넘기겠다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