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151화 (151/185)

151화

산타크루즈 카르텔의 고위 간부, 미겔 알바레즈가 샤워 가운을 입은 채로 핸드폰 화면을 바라봤다.

전화가 걸려 왔고, 벨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진 탓이었다.

발신자는 그의 수족 중 한 명.

이를 보던 미겔의 눈썹 하나가 휘었다.

“…짜증이 나려 하는군.”

퇴근해서 쉬던 와중에 걸려 온 전화라서 그랬다.

별거 아닌 통화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전무했다.

당연히 일과 관련됐을 것이었다.

그것도 부하가 처리하지 못할 정도로 번거롭거나 어려운 상황.

아니면 자신에게 전화할 리가 없었다.

부하와 그는 퇴근 후에 가벼운 안부 전화나 하는, 친구 같은 사이가 아니었으니까.

한쪽은 명령하고, 다른 한쪽은 충성하는 관계였다.

그 사이에 신뢰나 유대감 따위도 있으나, 가장 중요한 건 상하 간의 서열이었다.

그게 카르텔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기초기도 했고.

이에 어떤 불편하고 번거로운 연락일지, 구겨진 인상으로 전화를 받아 용건을 물었을 때였다.

그가 예상치도 못한 말이 들려왔다.

- 경찰들이 저희를 찾고 있습니다. 근데 알바레즈한테 지시받은 게 없어서 어떻게 말해 줘야 할지…….

“그게 무슨 소리야?”

미겔이 인상을 구긴 채 물었다.

산타크루즈 경찰이 그들을 찾을 이유가 없으므로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탓이었다.

이에 답을 기다리자, 주춤하며 말이 넘어왔다.

- 죄, 죄송합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놈들도 명령만 받았는지 무턱대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다만, 확실하진 않지만, 알바레즈의 위치를 찾는 것 같습니다.

“…나를? 산타크루즈의 경찰들이?”

구겨지던 미겔의 표정이 그대로 얼어붙듯 멈췄다.

더더욱 이해하지 못할 상황.

당황한 그를 향해 부하가 단서를 하나 달았다.

- 네, 그렇습니다. 아마 부청장의 지시로 보입니다.

“…넌 당장 이유가 뭔지 알아봐. 아니, 경찰 쪽에 무슨 일이 있는지 뒤엎어서라도 알아내. 네 부하들을 다 움직여서라도.”

- 알겠습니다.

뚝.

전화를 끊은 미겔이 핸드폰 연락처를 찾아서 부청장의 번호를 찍었다.

그리고 바로 전화를 걸려다가 멈췄다.

이내 얕게 숨도 흘러나왔다.

상황 때문에 무턱대고 전화를 걸려고 했는데, 돌아보니 모든 게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부청장.

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독단적으로 내렸을 가능성은 없었다.

분명 뭔가 있었다.

그는 상당히 겁이 많은 인간이라서, 위험한 짓을 하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기껏 돈 주고 부른 용병들에게 교육도 받지 않고, 그냥 시간만 때우고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

조직원 좀 모았다고 겁을 집어먹고 용병들을 불렀으나, 정작 아무것도 못 한 채 협상을 진행했었다.

그게 전부였다.

부청장은 경찰청장이 되기 위해 버티는 그리고 살기 위해서 위험을 피하는 인간이었다.

즉, 무슨 일이 생겼다면 즉각 알렸어야 한다는 뜻.

직접 연락하지 못하더라도, 퇴근 이후라서 눈치가 보인다고 해도, 부하를 통해서라도 용건을 알렸어야만 했다.

아니면 보복을 당할 테니까.

한데, 지시했다던 부청장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의 부하들이 먼저 경찰의 움직임을 알린 상황에서도 조용했다.

이윽고 미겔이 얕은 숨을 흘렸다.

‘혹시 놈이 말한 그 CIA가 접근했나……? 그래서 날 팔아먹으려고? 아니지, CIA가 나를 왜? 내 위에 몇 명이나 있는데…….’

그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갈 무렵.

몇 분도 채 안 되어 핸드폰이 울기 시작했고, 화면에는 기다리던 번호를 띄웠다.

방금 연락했던 그의 부하였다.

어떻게 된 건지 묻자마자, 섬찟한 답을 내놨다.

- 조금 전에 미국 용병들이 머물던 호텔 앞에서 폭탄이 터졌다고 합니다.

“폭탄?! 씨발! 뭘 어떻게 터뜨린 건데?”

- 던졌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폭탄인지 아직 알아내진 못했지만…….

“던져? 사람이 했다는 소린데? 누구야?”

- 아직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경찰들의 반응으로 봐서는 저희가 한 짓으로 아는 것 같은…….

“씨발, 미쳤군! 우리가?! 이 미친 새끼가 누굴 엿 먹이려고……!”

말하던 그가 멈칫했다.

미국과 폭탄이라는 말이 얽히면서 뭔가가 뇌리를 스쳐 간 것이었다.

이내 미겔이 짚고 넘어가듯 물었다.

“잠깐… 호텔 앞에서 방금 터졌다는 건… 용병들이 들어갈 시점에 맞춰서 터뜨렸다는 소리냐? 그럼 죽은 놈들도 있나? 폭탄 던진 놈은?”

- 아, 네. 들어갈 때 던졌고, 던진 놈들은 다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국 쪽도 듣기로 죽거나 다친 사람들이 있다고…….

“얼마나 죽었어?”

- 몇 명인지 파악 중입니다만… 한 명 이상은 죽었다고 합니다. 현장에 피가 좀 많았습니다. 다친 건 몇 명인지 아직은…….

“던진 놈이 누군지는 당연히 모르겠군. 혹시 우리 쪽 시체라도 갖다 놨나?”

- 그것도 파악 중입니다만, 저희 쪽 얼굴은 없었습니다. 연락 다 돌려봤는데, 전부 모르는 일입니다. 아예 외부인 같습니다.

그 말에 미겔의 눈에서 안광이 번뜩이듯 돌기를 잠시.

그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계속 알아보도록 하고… 그 개새끼는 지금 어디 있지?”

- 아, 데려올까요?

이름이 아닌 욕설을 뱉었는데도, 핸드폰 건너편에서 재빠르게 알아듣고 반응했다.

지금 미겔이 그렇게 부를 만한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바로 지안드로 바시카날의 부하.

보스의 조카인 디에고가 불법 용병 건으로 망신을 당하면서, 화풀이용으로 잡아다 팼던. 그리고 지금은 감시까지 붙여서 내보낸 인물이었다.

위치는 물론이거니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도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이에 미겔이 짧게 답했다.

“데려와.”

-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알아보고 다시 전화해.”

전화를 끊은 미겔은 통화가 종료됨과 동시에 다시 표시된 산타크루즈 경찰청 부청장의 연락처를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내려놨다.

그의 상대는 산타크루즈의 부패한 경찰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지안드로.

그가 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었으나, 이번 일에 관련된 건 분명했다.

돌아가는 상황이 그랬다.

지안드로가 요청한 짧은 무력시위 와중에 폭탄이 터졌다는 사실과 경찰이 자신 몰래 수소문을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범인들이 외지인으로 추정된다는 정보 등등.

직접적으로 연결된 증거만 없을 뿐, 모든 게 지안드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부하를 데려오라고 한 것이었다.

뭐든 확인해 볼 요량으로.

이에 연락처 목록을 마저 살피면서 접촉할 만한 사람을 살필 무렵이었다.

삐리리리─ 삐리리리─

핸드폰이 울었다.

조금 전과 같이 전화를 받으려던 미겔이 멈칫했다.

화면에 낯선 번호가 떠 있었기 때문이었다.

등록되지 않은, 처음 보는 번호.

분명 지금 상황과 연관이 되어 있을 터, 미겔이 곧 통화를 수락했다.

“여보세요?”

- 미겔 알바레즈.

지안드로의 목소리였다.

방금까지 미겔이 의심하고 있던 그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그것도 그의 핸드폰으로 직접.

“이 번호는 어떻게 알았지?”

- 내가 경고했을 텐데, 알선한 용병에게 총 맞아 죽기 싫으면 내 부하에게 손대지 말라고.

물음과 다른 답이 나오자, 미겔의 물음이 변했다.

“…씨발, 그건 또 어떻게 알았지?”

-내가 그 일을 겪고도 아무런 조치도 안 했을 것 같나?

“우리 모르게 수를 썼다는 소리군.”

아마도 소형 무전기나 발신기 따위를 가지고 있을 터.

바로 옆에서 지켜본 게 아닌 만큼, 수상한 짓은 안 들키고 넘어갔을 것이었다.

그 생각과 함께 미겔이 말을 이었다.

“아직 손을 대진 않았는데, 네 대답에 따라 달라지게 될 거야. 토막 쳐서 개 먹이로 주든지, 아니면 곱게 갈아서 코카 농장에 비료로 뿌릴지.”

- 닥치고 약속이나 이행해, 내 부하에게서 손 떼.

“아니지, 약속은 이미 어그러졌어.”

- 내가 준 정보… 확인 안 해 봤나? 해 봤으니까, 풀어 준 거 아니었나?

지안드로의 말끝에 힘이 들어갔다.

얼마 전에 펜타곤과 CIA가 용병들과 함께 있다는 정보를 알려 줬었고, 그걸 미겔이 직접 확인해 봤기 때문이었다.

물론 확신할 만한 직접적인 사실은 없었다.

펜타곤과 CIA가 있다는 전제를 깔고, 정치권과 경찰이 가진 정보를 들춰 가며 여러 자료를 확인해서 짐작했을 뿐.

이에 미겔도 고개를 끄덕거렸으나, 그게 다였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아니지, 여기서 내가 모르는 일이 터졌어. 그것 때문에 경찰들이 날 찾는다더군.”

- 아, 그거. 들었군.

“이 개자식이……! 닥치고 답이나 해! 경찰들이 왜 나를 찾지?!”

미겔이 묻자, 지안드로의 웃음이 건너왔다.

- 흐흐, 왜? 무섭나? 경찰들이 널 잡으러 올까 봐?

“너야말로 입 닥치고 대답이나 해. 무슨 짓을 어떻게 한 거지? 목적은 뭐야?”

미겔이 이를 갈듯 물었고, 이내 웃음이 넘어왔다.

- 흐흐… 알면 뭐가 달라지나?

“무슨 개소리야?”

- 내가 뭘 했든… 그걸 볼리비아 경찰 통해서 미국에 알려 주게? CIA의 정보원이라도 되어 볼 생각인가?

“이 씨발! 입 안 닥쳐?!”

미겔이 왈칵 소리를 내지르자, 그 뒤로 지안드로의 음성이 깔려 나왔다.

- 그래, 그 바닥의 생리가 그렇지. 무슨 짓을 해도 미국이나 CIA 같은 놈들과 손을 잡을 순 없어. 안 그래? 뭐… 네가 죽는다면 모를까.

다시금 소리를 지르려던 미겔이 가까스로 흥분을 삼켰다.

더 화를 내서는 안 됐다.

성질을 주체하지 못했다면, 이 자리까지 올 수 없었다.

필요할 때는 냉철하게 계산해야만 했다.

그리고 지안드로는 부하가 끌려오고 있음에도, 자신을 도발하듯 거칠 게 없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쥐고 있는 카드가 있다는 뜻.

“내가 죽어?”

- 아마도, 내가 도우면 살 가능성이 커지겠지.

“설마 그 펜타곤과 CIA 때문이냐? 그러니까 네가 싼 똥을 내가 치우라는 소리냐?”

- 그렇진 않아, 네게서 흔적이 나왔으니, 우선 너부터 털어 보는 거지. 네가 잡혀서 고문을 당하고 내 이름을 뱉으면 날 쫓겠지.

“지랄하고 있군. 돌려 말하지 말고 제대로 말해. 이제 뭘 어떻게 하겠다는 소리야?”

미겔이 험상궂게 인상을 구기면서도, 분노를 참으며 물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답이 나왔다.

- 이렇게 말해도 모르는 모양이군? 네 구역, 털리기 직전이야.

“뭐……?”

- 드론이라는 거 알고 있나?

“이 개새끼가 아까부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제대로 말하라고, 이 빌어먹을 새끼야!”

- 산타크루즈 동남 쪽, 산 미구엘 성당 근처 농장.

“……?!”

그 말에 미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산 미구엘 성당 아래에 미겔이 관리하는 코카 잎 농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지안드로에게는 말한 적이 없었다.

굳이 언급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서류상 합법적 시설이지, 사실은 코카인 원료를 생산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한데 지안드로가 그 농장을 언급한 것이었다.

미겔이 멈칫한 사이, 그의 목소리가 연달아서 이어졌다.

- 지금 거기로 가는 것 같군. 화가 난 용병들이 도착하기 직전이야.

“그럼…….”

미겔의 눈알이 바쁘게 움직이길 잠시.

“군경이 같이 오나? 특수부대나 전차는?”

그렇게 되면 경우에 따라 협상할 가능성이 있었다.

미국은 몰라도, 볼리비아 정부는 말이 통하는 동족이었으니까.

그러나 예상을 깨는 말이 돌아왔다.

- 협상할 가능성을 보는 모양인데, 정부군이나 경찰은 없어.

“그럼 용병들만 다 몰려오는 건가?”

그의 머리가 입국한 용병들의 규모를 다급하게 떠올렸다.

6개 팀이 4개로 총 24명.

행정 및 사무를 보는 인원까지 더하면 총 30명에 달하는 규모였다.

많진 않으나, 그렇다고 적은 숫자도 아니었다.

정확히는 알지 못해도, 볼리비아 군경 출신과는 다른, 미군 엘리트 출신들일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농장에 있는 병력으로는 방어하기 어려울지도 몰랐다.

그들보다 훨씬 많은 60~70명의 조직원이 상시 대기 중이긴 해도, 상대는 제대로 교육받은 군인들이었으니까.

미겔의 미간이 구겨질 무렵.

- 숫자는 알려 주지. 다해서 10명 내외.

“10명?”

- 아, 그렇다고 방심하면 안 돼. 혼자서도 갱단을 초토화시킬 만한 인간이 하나 있거든.

“…미국 특수부대겠군.”

조금은 마음을 놓으려던 미겔이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지안드로가 정확하게 정정했다.

- 아니, 아시안. 그놈은 죽일 기회가 있으면 꼭 죽여야 해. 나도 그렇게 할 거고. 그러니… 부하부터 풀어 줘, 당장. 그래야 내가 돕든 말든 할 거 아냐?

미겔이 그러겠다고 답하려다가 주춤했다.

“잠깐, 미국인이 여기서 죽으면 온전히 우리 책임이 되는데? 그걸 나보고 전부 감당하라고? 네가 알려 줬잖아? 빌어먹을 CIA와 펜타곤이 있다고 말이야.”

- 그럼 어쩌려고? 항복이라도 하게? 나가서 미국 놈들하고 티타임이라도 가지려고?

“…….”

미겔이 입술을 씹었다.

말한 두 조직이 두렵긴 하나, 그렇다고 지안드로의 말처럼 항복하긴 어려운 탓이었다.

만나는 것도 모양이 빠졌다.

그랬다가는 이 바닥에서 고개도 못 들 것이었다.

카르텔은 혈통과 공포, 자본으로 이뤄진, 그 어느 곳보다도 서열이 직관적인 곳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고민하는 사이, 그를 어르고 달래는 듯한 말이 건너왔다.

- 대신 전에 보냈던 계좌로 입금하지. 미국 놈 머리 하나에 10만 달러, 아시안은 100만 달러.

“양키가 아시안보다 싸다니… 그놈이 그렇게 대단한가?”

- 그래, 남미에는 아직 소문이 안 난 모양인데… 방심한 너희 조직이 다 털리고 소문이 날 수도 있겠지.

“지랄하지 말고, 돈이나 확실히 보내.”

- 이건 선금이 없어, 네 신용도가 떨어졌거든.

“뭐?”

- 후불, 대신 내 신용도는 여전하잖아? 정보는 확실하고.

“…….”

미겔이 다시금 이를 갈았으나, 더 대꾸하진 않았다.

그의 농장이 급했다.

“끊어.”

그리고 바로 농장으로 전화를 걸었다.

용병들이 접근하고 있음을 알려 주고, 대비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통화 연결음을 기다릴 즈음, 미겔의 얼굴이 점점 굳어 가기 시작했다.

전화 연결이 아직도 안 되고 있었다.

아무도 받지 않아서 통화 연결이 끊어질 때까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핸드폰에 건 게 아니라, 직원들이 상주하는 사무실로 연락했기 때문이었다.

이내 미겔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이런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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