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늦은 오후였다.
서쪽 부근이 붉게 번지고, 해가 떴던 동쪽은 어둠으로 덮이던 무렵.
나는 미니버스에서 하차한 뒤 숙소로 향했다.
입구까지 거리는 고작 10M 안쪽.
보도블록처럼 깔린 판석을 좀 밟다 보면 어느새 호텔 로비로 들어갈 것이었다.
지난 일주일간 그랬듯.
그런데 옆에서 뭔가 움직였다.
심지어 뭔지 확인하기도 전에 내 쪽으로 날아들었다.
적이나 위험한 건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가까이 있는 건 우리 찰리 팀뿐이고, 그중에서도 내 옆자리에 앉았던 해리나 버스에서 바로 뒤따라 내린 필립이었으니까.
그래서 고개를 돌리던 순간, 웬 고함이 들렸었다.
“거수자 2이이이이이인!”
그 말에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고함도 고함이지만, 안에 담긴 말이 흠칫할 만한 단어였기 때문이었다.
거수자 2인.
사건 사고와 관련될 만한 말이었기에, 주변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진입로 좌우에 있는 이들을 발견했다.
필립의 말처럼 두 사람이었다.
현지인 중에서도 깔끔한 차림으로 용병이나 테러리스트처럼 보이진 않았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그들이 뭔가를 들고 있었고, 그걸 집어 던질 것처럼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원통형의 무언가.
찰나의 순간에 목격했기에 정확하진 않았으나, 그게 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파이프로 제조한 사설 폭발물, 일명 파이프 폭탄.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필립이 고함을 지르면서 몸을 내던질 이유가 없었다.
또한, 나한테 달려들기 전에 전화를 받았었다.
내용도 예상이 됐다.
거수자와 관련된 정보를 전달했을 터.
그러니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거수자 2인이라고 소리를 지르고 뛰어들었을 것이었다.
이윽고 필립의 몸뚱이와 부딪혔다.
퍼억─
당연히 밀려나다 못해서 뒤로 넘어지기 시작한 순간.
멀쩡하게 버틸 순 없었다.
필립도 나 못지않게 건장한 남성인 데다가, 걸어가던 와중이라 어떤 대비도 못한 탓이었다.
그래서 넘어갈 무렵.
한 가지를 더 깨달았다.
내 손은 훈련한 대로 그리고 본능이 이끄는 대로 옆구리에 있던 글록 19를 뽑아 들고 있었다.
적을 무력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나를?!’
파이프 폭탄을 던지려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 것이었다.
시선만이 아니었다.
투척 자세 역시 날 향해 있었다. 생각해 보면, 투척 타이밍도 내가 하차한 직후였다.
먼저 내린 알파 팀은 전부 호텔 안으로 들어갔고, 브라보 팀도 거의 다 지나가던 상황.
즉, 내가 타깃이라는 뜻이었다.
이에 본능적으로 그리고 지독하게 훈련하고 연습한 대로 손이 움직였다.
가는 곳은 우측 허리 벨트에 달린 글록 19.
그것도 약실에 한 발이 들어가 있었다.
장전할 필요는 없었다.
총손잡이를 쥐고 꺼내 들면서, 슬라이드 멈치를 눌러 안전장치를 해제했고, 동시에 방아쇠울을 스쳐 가듯 검지를 움직였다.
모든 행동은 자연스럽고도 완벽하게 이뤄졌다.
필립이 날 덮치는 바람에 두 손으로 총을 잡을 순 없었지만, 한 손도 나쁘진 않았다.
상대방이 파이프 폭탄을 투척해야 할 만큼 거리가 가까운 덕분이었다.
나하고의 직선거리가 대략 20M 정도.
세열수류탄을 투척할 때의 최소 안전 거리로 두 손으로 반동이나 흔들림을 잡지 않아도, 한 손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범위였다.
그렇게 손끝에 차가운 방아쇠의 감촉이 닿는 순간.
검지에 압력을 가했다.
마침 소형 도트 사이트 안에 손 위에 들린 파이프 폭탄이 보였다.
더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격발했다.
타앙!
그리고 격발과 동시에 시야와 조준선을 옮겼고, 연달아서 바로 쐈다.
소수점 이하의 찰나 같은 시간이었다.
조금 급한 감이 없잖아 있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첫 발에 폭탄이 터지면서 풍압과 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두 번째 탄을 쏜 순간.
쿠웅─
등이 땅에 닿음과 동시에 굉음이 울려 퍼졌다.
펑! 퍼어어엉─!
열기와 함께 압력이 느껴졌다.
파이프 폭탄의 파편 따위가 박힌 듯 욱신거리는 느낌도 드는 순간.
매캐한 연기가 풍기며 시야를 덮쳐 왔고, 동시에 귀에서는 날카로운 이명이 들렸다.
삐이이이이─
헤드셋을 목에 걸어 둔 상태라서 그랬다. 차마 쓸 틈이 없었다.
방탄 헬멧은 쓰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가 깨졌을지도 몰랐다.
이윽고 먼지 때문에 감았던 눈을 뜰 무렵, 내 몸이 뒤쪽으로 확 끌려갔다.
순식간에 몇 미터가 끌려갔다.
정확히는 방탄복 윗부분을 잡아끄는 듯한 느낌.
급히 고개를 들자, 허벅지 같은 목둘레와 풍성한 금빛 수염 그리고 분노한 듯 입을 벌리는 제이크의 얼굴이 보였다.
그 옆에서 총기를 들고 경계하는 해리의 모습도 보였다.
“…팀장! 전 괜찮습니다!”
소리쳤으나, 제이크의 답은 들리지 않았다.
분명 침을 튀기면서까지 말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명으로 인해 제대로 된 내용이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목소리만 얼핏 먹먹하게 들릴 뿐.
말이 안 들린다고 답하려던 찰나, 상태를 알아본 듯 제이크가 손을 놓더니 수신호를 했다.
적의 숫자, 방향을 묻는 의미.
그걸 보자마자, 바로 손가락으로 적 방향을 찍으면서 답했다.
“숙소 진입로 좌우에 있던 적 2명의 폭탄을 맞춰서 터뜨렸습니다. 아마 둘 다 사망했을 겁니다.”
제이크가 필립을 마저 잡아당기면서 손짓했다.
‘해리와 함께 버스 뒤편으로 이동, 측면 경계.’
역시나 빠르고 명확한 지시였다.
얼른 버스 뒤쪽으로 뛰어갔는데, 다행히 그때부터 목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쇳소리 같은 이명이 여전히 귓바퀴에 남아 있는 듯했으나, 그 정도는 괜찮았다.
안 그래도 군 생활 할 때 많이 겪어 봤었다.
낯설지도 않았다.
이에 헤드셋을 착용하고 무전을 듣자, 선명해진 말이 들려왔다.
- 브라보! 사상자 보고해!
- 브라보 1 사망! 브라보 1 사망, 부상자 확인 중……!
- 주변 파악해! 델타! 어떻게 됐어?!
- 여기는 델타! 골목 및 건물 특이 사항 없음!
그 뒤로 우리 G&G Corp 팀이 아닌,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 케니스 영입니다. 호텔 내부는 안전하니, 즉시 안으로 이동하길 바랍니다. 우리 경호 팀과 알파가 함께 엄호하러 나가겠습니다.
영사 대리 사무소의 케니스 영이었다.
그의 말이 끝나고, 제이크의 허락과 함께 지시가 떨어졌다.
- 델타! 알파하고 사무소 경호 팀 나오면 브라보 부상자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 델타 1 알겠습니다!
- 찰리는 사주경계하면서 대기해!
그러자 호텔 입구에서 케니스가 말한 대로 알파 팀과 경호 팀이 나왔고, 우리 반대편을 경호하던 G&G Corp 델타 팀이 움직였다.
동시에 제이크가 상황을 보며 명령을 내렸다.
레이첼이나 마커스, 호세가 맡은 경계 위치 변경, 이동 그리고 알파와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최대한 안전하게 이동한 것이었다.
가장 뒤에서 제이크가 우리를 모두 보호하듯 움직였고, 그렇게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덜컥.
문까지 걸어 잠그면서 안전을 확보했는데, 그렇다고 늘어지게 안도한 사람은 없었다.
그럴 수도 없었다.
여기저기서 소리치는 말들로 혼잡한 탓이었다.
“당장 구조대 호출해!”
“모르핀! 빌어먹을 모르핀 없어?!”
“호텔 안에 이송 침대 있을 거 아냐? 없으면 만들어서 가져와!”
나도 손을 거들었다.
그래야만 했다. 내가 폭탄을 터뜨리는 바람에 근처를 지나던 브라보 팀의 후미가 크게 다쳤기 때문이었다.
브라보 팀장은 즉사, 그의 팀원 두 명은 중상.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필립이 나를 감싸다가 파편을 대신 맞은 탓이었다.
다행히 치명상은 없었다.
플레이트 캐리어를 입은 덕분에 등판이 뚫리지 않았고, 허리 아래로만 좀 다친 것이었다.
물론 상처가 가볍진 않았다.
통증이 꽤 심한지 기절까지 했으니까.
“…….”
여러모로 암담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이게 최선이었다.
폭탄을 늦게 맞춰서 중간에서 터졌다면 피해가 더 컸을 거고, 그것이 아예 내 쪽으로 떨어져서 터졌다면, 테러리스트들은 살상 범위 밖에서 다음 활동을 진행할 가능성이 컸다.
폭발물 추가 투척이나 총기 난사 등등.
그게 아니어도 살아남아서 달아났을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죽는 바람에 어떻게 된 것인지 확인하고 따져 물을 수 없게 됐지만, 두 사람이 살아남는 것까지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었다.
호텔 정문의 깨진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2구의 시신만 봐도 죽었을 게 확실했다.
대충 봐도 신체 부위 여러 군데가 사라진 데다가 그 아래로 피가 웅덩이처럼 고여 있었으니까.
그렇게 대강의 응급조치를 끝내고, 의식을 잃은 필립 옆에 털썩 주저앉을 때였다.
“리.”
옆에서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처리했나?”
이번에 알파 팀의 팀장으로 선발되어 온 안드레이였다.
인상을 잔뜩 구긴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한숨과 함께 답이 돌아왔다.
“잘했어. 빌어먹을 개새끼들이 병신으로 살아남아서 평생을 감옥에 처박혀 있었다면 더 좋겠지만, 너 아니었으면 찰리가 다 죽었을 거야. 브라보도 몇 명은 다쳤을 거고… 아마 제이크의 거구도 폭약에 쓸려 갔겠지.”
그러고서는 날 살피듯 쳐다보며 물었다.
“넌 다친 데 없나? 귀가 좀 안들렸다면서?”
“그건 괜찮아. 아마 좀 쉬면 낫겠지.”
“팔다리는? 손가락도 다 붙어 있나? 총을 쏘기 위해서는 그게 제일 중요할 텐데.”
“아, 멀쩡해. 필립이 내쪽으로 쏟아진 파편을 막아 줬어.”
상의를 벗기고 붕대를 감아 둔 필립에게 턱짓하자, 안드레이가 히죽 웃어 보였다.
“멀대 같은 육군 장교인 줄 알았더니… 아주 쓸 만한 짓을 했군.”
그 말 뒤로 다른 팀원들도 내게 수고했다는 얘기를 전해 왔다.
그럴 만했다.
브라보 팀장이 사망하긴 했으나, 그 외에 죽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중상자가 2명이나 더 있었지만, 그들은 끈질기게 버티고 있었다.
아마 살아남을 것이었다.
해리를 비롯한 다른 의무 대원의 의견도 그랬다.
20M 안팎의 거리에서 2개의 파이프 폭탄이 터진 것치고는 천만다행인 결과였다.
심지어 폭약의 양도 꽤 많아 보였었다.
벽돌 바닥이 터져 나간 흔적이나 그을음이 그랬다.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 듯한 모습.
그걸 보는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버스를 날리려던 걸지도 모르겠어…….’
사람이 아니라, 미니 버스를 향해 던졌다면 아마 100% 맞았을 것이었다.
물론 내 죽음까지 확신하긴 어렵겠지만, 어디가 부러지거나 크게 다칠 가능성이 컸다.
폭발이 제법 셌으니까.
그렇게 나름 가늠하는 사이, 바깥에서 사이렌과 함께 육중한 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볼리비아 경찰이 도착한 것이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려던 찰나, 제이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목! 델타 외에 움직일 수 있는 인원은 모두 경계 상태로 대기하도록! 볼리비아 경찰의 허가 없는 접근 시에 발포를 허가한다!”
“……?!”
생각지도 못한 소리에 주춤하고 말았다.
전원 경계에 발포 허가라니?
이건 경찰을 적으로 간주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설마……?’
그러고 보니 제이크의 옆에서 밖을 내다보는 케니스의 시선이 유독 날카로웠다.
공식적으로는 영사 대리 사무소 서기관이나, 실제로는 CIA 요원인 인물.
그가 적이라도 보듯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저러고 있다는 건, 볼리비아 경찰에게서 수상한 냄새를 맡았다는 의미.
‘경찰이 엮였다고……?’
돌아보니 폭발 테러도 따지고 보면 경찰이 만들어 준 기회였다.
현지 마약 카르텔인 산타크루즈 카르텔이 움직였다고 하지만, 결국에 경찰이 우릴 불렀다가 돌려보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협상을 끝냈다면서.
여러 생각이 얽힐 무렵, 케니스의 입이 열렸다.
“제가 경호 팀과 함께 다녀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