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148화 (148/185)

148화

“교육도 없이 바로 실전이라니? 이게 말이나 되나?”

“차라리 잘됐어. 저 등신들이 격차를 느껴 봐야 배울 마음이 생기지 않겠어?”

“아니지, 네 말처럼 저놈들은 등신이잖아. 격차를 보여 주기도 전에 우리 뒤통수에 오발탄을 갈기면 어떻게 하려고?”

“듣고 보니 그렇네, 제기랄. 갑자기 일하기가 싫어지는군.”

G&G Corp 팀이 미니버스로 이동하던 와중에 불만처럼 떠들어 댔다.

단순히 경찰들이 못 배워서 그런 게 아니었다.

여지껏 교육을 미뤄 오기만 했던 산타크루즈 경찰이 갑작스레 지원을 요청한 탓이었다.

미니버스 안의 분위기는 좋기가 어려웠다.

계약상 실작전을 함께 진행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그것도 충분한 교육이 선제적으로 이뤄졌어야 했다.

예컨대 최소한의 전술 실습이나 실탄 사격 훈련 등등.

첫날 진행한 시끄러운 개막 행사나 중간에 보여 주기 식으로 했던 한 번의 이론 교육으로는 턱도 없었다.

“이러니 치안이 좆같지, 제기랄.”

누군가 중얼거리고, 동조하는 목소리가 퍼졌다.

G&G Corp 팀도 일단 교육하고자, 일정에 맞게 경찰청으로 출퇴근을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막상 가도 한 건 없었다.

한 시간에서 한 나절을 대기한 게 전부였을 뿐.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오전에만 경찰청의 휴게실에서 대기했었고, 점심시간에 돌아와 내내 호텔에서 각자 개인 정비를 했었다.

그중 강태와 해리가 한 건 3시간 30분짜리 운동이었고.

개중 단축 총열형 M4를 만지작거리던 해리가 창 밖을 내다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한 시간만 있었어도 근육이 좀 회복 됐을 텐데…….”

“힘들면 말해, 팀장이 열외시켜 주겠지.”

“그런 걸로 창피당하긴 싫습니다. 운동 좀 했다고 열외라니…….”

해리가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젓는 사이.

“주목!”

어느새 경찰 측과 연락을 마친 제이크가 걸걸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조수석에서 뒤를 돌아보면서.

“중심가 외곽에 적 카르텔 조직원들이 집결 중이라고 한다! 최소 인원은 대략 100명. 권총과 돌격 소총, 유탄 따위로 무장했고, 테크니컬(Technical: 민간 무장 차량) 차량 8대를 운용 중이며…….”

이어서 확인되지 않은 폭발물 등등 관련 위험까지 이어진 뒤.

곧이어 행동 수칙이 전파됐다.

발포 조건이나 교전 시 주의 사항 등등.

늘 언급하는 거라서 팀원 모두 쉽게 알아들었는데, 그 끝에 나온 말에 바라보던 시선들이 흔들렸다.

다소 의아한 말이 붙은 탓이었다.

“…경찰 측에서 우선 카르텔과 협상 중이라고 하니, 그때까지는 안전 지역에서 대기하도록.”

“협상이요?”

“그래, 집결 이유를 확인하고, 해산을 권유한다더군.”

보통 사람이 들으면 그럴싸한 말이지만, 미니버스에 탄 이들은 달랐다.

실전을 치렀던 전직 군인 출신들.

그 안에는 마약 카르텔과 총격전을 벌였던 사람도 있었다.

“개소리! 완전 무장 한 인원 100명에 테크니컬까지 있는데, 무슨 해산을 권유한다는 겁니까?!”

그 뒤에 다른 인원이 말을 덧붙였다.

“경찰도 한패 아닙니까?!”

동시에 몇 사람이 탄식을 뱉었다.

진행하기로 했던 교육을 왜 이렇게 미뤘는지도 쉽게 납득이 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교육도 피한 모양이군! 개자식들, 어쩌면 카르텔의 명령을 받는 거 아냐?!”

언성이 확 높아졌다.

동시에 강태는 버스 복도 건너편에 앉아 있던 필립을 바라봤다.

형식상 군사 자문 및 무기 유통책을 맡아 파견되었으나, 실상은 펜타곤에서 온 연락 장교였으니까.

그라면 뭔가 알고 있을 것이었다.

이에 강태가 필립을 바라봤는데,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스윽.

그거 고개를 가로젓는 게 전부.

알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경찰과 카르텔의 유착을 마냥 헛소리로 치부할 순 없었다.

부패한 국가에서는 비교적 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역사적으로도 그랬다.

특히 중남미는 아직까지도 법제화는 물론이고, 기본적인 치안도 아쉬운 상황.

카르텔이 경찰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잘못하면 경찰과 교전해야 할지도 모를 일.

그러나 다소 과해지는 열기에, 버스 내부를 둘러보는 강태의 시선에 염려가 담겼다.

아직 드러난 건 아무것도 없던 탓이었다.

‘이러다가 내분 나겠는데…….’

최악의 경우에는 경찰과 G&G Corp 사이에서 총기가 격발되거나 폭력 사태가 유발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진행하려던 작전이 중단될 가능성도 있었다.

지나친 상상이지만, 그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실전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 온 용병들의 성질이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성질처럼 행동한다면, 필시 들불처럼 번질 터.

이를 걱정할 무렵이었다.

“그만!”

제이크가 묵직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허튼소리나 허튼짓하는 놈은 내가 직접 손봐 주지.”

“…….”

일순, 버스 안에 침묵이 깔렸다.

말을 이어 가던 용병들은 물론이고, 가만히 있던 강태마저 주춤했다.

‘와… 지리겠네…….’

스쳐 가는 제이크의 시선에 강태가 감탄을 흘렸다.

그의 체격이나 힘뿐만이 아니라, 확 뜨인 눈알마저 무시무시한 탓이었다.

흡사 야수의 눈빛.

분명 제이크는 사람이 분명한데도, 마치 사람을 찢어발길 것 같은 그런 눈을 하고 있었다.

예전에 턱을 잡아서 사람을 기절시켰던 때를 떠올릴 무렵.

고요해진 가운데 제이크가 입을 열었다.

“확인되지 않은 건, 확인된 후에 언급하도록 해. 현장에서는 내 통제에만 따른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강태가 먼저 답했고, 주춤했던 이들도 반 박자 늦게 대답했다.

그리고 곧 기다렸다는 듯 버스가 멈춰 섰다.

“도착했습니다.”

경찰 병력이 통제 중인 바리케이드 앞이었다.

제이크가 곧장 뒤쪽으로 고갯짓을 했다.

“알파부터 차례로 하차해.”

그 말에 바싹 긴장한 듯 용병들이 경계하면서 내렸으나, 크게 주의할 만한 건 없었다.

빨간 사이렌만 번뜩일 뿐.

통제 중인 경찰조차 긴장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냥 모여서 수다 떠는 듯한 모습.

“…설마 이것도 평소처럼 되려나?”

앞서 내린 용병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고, 강태도 고개를 끄덕였다.

버스 안에서 경찰과 카르텔의 유착이니 뭐니 떠들어 댔지만, 주어진 상황만 보면 다급할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G&G Corp 측은 훈련한 대로 빠릿하게 움직였을 뿐.

총격전 하나 없었고, 그저 대치 중이었으며, 경찰이 알아서 협상을 진행 중이었다.

‘탈 없으면 병풍 역할만 하다 가겠는데?’

강태가 그러면서 허벅지를 주무르는 해리를 바라봤다.

“잘하면 쉬다 가겠어.”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어쩌면 경찰 측에서 우리가 도착한 걸 협상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겠고요.”

“아? 그러네?”

강태가 멈칫했다.

미국인을 개입시켜서 협상하는 경찰을 떠올리자, 이 상황이 더욱 선명해진 덕분이었다.

이어서 그가 해리를 보는 눈에 웃음이 어렸다.

“역시… 1년짜리긴 해도, 랭글리 다녀온 티가 나는구나. 똑똑하긴 똑똑해?”

CIA 본부가 있는 도시를 언급하자, 해리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의대도 다녔었습니다, 중퇴지만.”

“이렇게 된 김에 푹 쉬면서 아까 말한 허벅지 근육 회복해 둬.”

“선배님은요? 하체 진짜 괜찮으십니까?”

같이 3시간 넘게 운동했기에 묻는 것이었고, 듣던 강태가 피식 웃고 말았다.

“나도 다 털렸어. 멀쩡한 척하는 거야. 굳이 소문나서 좋을 거 없잖아.”

“아… 그렇네요.”

해리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 안팎으로, 아군과 적을 가리지 않고, 모든 관심을 다 받는 사람이 강태였으니까.

굳이 힘든 걸 보여 줄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서로 시답잖은 잡담을 떠들면서 시간을 보낼 무렵.

해가 질 때가 돼서야 새 무전이 떨어졌다.

- 전원 복귀 준비.

거의 동시에 사방에서 탄식과 함께 중얼거리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등신 같은…….”

“경찰청에서도 그러더니, 여기서도 대기만 하는 거였어?”

“이런 씨발, 한결같은 새끼들이군. 뒷통수를 치지 않아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그 뒤로 강태가 해리의 어깨를 툭 쳤다.

“한 시간만 쉬면 좋겠다더니, 진짜 그렇게 됐네.”

“그러게 말이죠.”

그렇게 두 사람을 비롯한 G&G Corp 팀이 타고 왔던 미니버스와 SUB 차량에 알아서 몸을 실을 즈음.

“후우…….”

필립이 길게 한숨을 흘리며 걸음을 옮겼다.

갑작스러운 상황을 펜타곤에 직접 보고하고, 관련 정보와 지시를 받아 왔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한 시간 내내.

혹여 놓치는 것이 있을까, 지휘 막사에도 몇 번이나 들락날락하며 신경을 곤두세웠었다.

안 그래도 버스 안에서 경찰과 카르텔의 유착이라는 말이 나오고, 그럴 가능성도 있어서 더더욱 가슴을 졸였었다.

자칫 잘못하면 근처에 서 있는 경찰과 싸워야 할지도 모르니까.

“뒷통수를 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중얼거린 그가 차에 오르고, 올 때와 마찬가지로 강태의 건너편에 앉았다.

그리고 돌아가는 동안, 긴장을 풀고 눈을 붙였다.

안 그래도 볼리비아에서 첩자 비슷하게 활동하느라 심적으로 힘들었는데, 방금 급박한 상황까지 겪느라 더욱 피로한 것이었다.

오후에 헬스장에 가서 하체 단련까지 했었고.

그렇게 필립이 한창 잘 때였다.

버스의 속력이 천천히 줄어들었고, 2층짜리 단촐한 호텔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정차한 뒤 앞문이 열렸고, 제이크의 지시에 따라서 알파 팀부터 차례로 내리기 시작했다.

버스가 비어 가고, 찰리 팀만 남을 무렵.

띠리리리―

어느새 잠에서 깬 필립의 핸드폰이 울었다.

그가 강태를 따라 내리면서 전화를 받았다. 호텔 방에서 전화를 받았을 때만큼 당황하거나 급하게 받진 않았다.

한 시간 내내 그 핸드폰을 붙들고 보고했었고, 이제 상황이 종료된 탓이었다.

“예… 필립 애드먼 중위입니다.”

그래서 피곤함을 지워 내면서 여유롭게 전화를 받을 때였다.

- 호텔 전면에 3회 이상 재등장한 거수자 2인 발견! 무기 소지 가능성이 높으므로 즉각 현장에서 이탈하라! 반복한다……!

“……?!”

어느새 버스에서 내려와, 강태의 옆에서 나란히 걷던 필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잠결이기도 하거니와, 예상치도 못한 말 때문이었다.

‘거수자? 무기 소지?’

섣불리 납득하기 어려운 단어들이었다.

이곳은 그린 존은 아니지만, 분명 안전한 지역이기 때문이었다.

경찰 검문소가 외곽에 배치되어 있어서 이 도시에서 범죄율이 가장 낮은 지역이고, 죄다 1층이나 2층으로 이뤄진 덕에 고층 저격도 불가능한 데다가, 미군만이 아니라 CIA 요원까지 있었으니까.

한데 위험이라니?

단어들을 추스르던 필립은 이어진 두 번째 경고에 반응했다.

아니, 목격한 것이었다.

핸드폰 건너에서 말했던 거수자 2인.

“……!”

호텔 앞에 선 채로 이쪽을 보는 멀끔한 차림의 두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각각 한 손이 품에 들어가 있었다.

옷 안으로.

그 안에 무엇이 있을지, 필립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폭탄.

총기일 가능성은 없었다.

앞서서 호텔로 들어가는 십여 명의 용병들이 총기로 무장했으니까.

그걸 총으로 상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분명 폭발물일 것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필립의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마치 강태를 감싸고, 또한 덮치듯.

두 발로 지면을 박차며서 강태를 향해 몸을 틀어서 달려든 것이었다.

동시에 그의 입이 열렸다.

“거수자 2이이이이이인!”

몸이 뜨고 있었다.

본능이었다.

강태가 아무리 백발백중의 실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폭탄 앞에서는 그의 몸이 찢겨 나갈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큰 역할을 하게 될 강태는 지금 죽어서는 안 되는 인재였다.

살아야 했다.

죽지 않더라도 후유증이 남을 부상을 입어서도 안 됐다.

그는 멀쩡한 몸으로 미군에 도움이 될 만한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탈레반이나 IS 고위 간부들을 저격하고, 미국을 위협하는 반군이나 테러리스트들도 암살할 수 있을 테니까.

막연한 생각이 아니었다.

이미 타릴 제도에서 강태의 능력을 보고 크게 깨달았었다.

그는 미군의 역사를 새로 쓸 거라고.

동시에 필립의 눈에 거수자 중 한 사람이 꺼내 드는 무언가가 보였다.

파이프 모양의 물건.

IED(Improvised Explosive Device: 급조 폭발물)가 분명했다.

“……!”

눈이 확 뜨였으나, 필립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은 진작에 놓쳤고, 이미 강태와 몸이 부딪혀서 함께 넘어가고 있던 탓이었다.

그저 기도해야만 했다.

누군가 거수자 2인이라는 말을 듣고 선제 사격하거나, 폭탄이 미작동해서 터지지 않거나, 그도 아니면 이 모든 게 착각이거나 등등.

그러나 모두 헛된 꿈에 불과했다.

테러리스트를 맞혀도 폭탄은 터질 거고, 미작동할 가능성은 희망에 불과하고, 이 모든 건 착각이 아니라 현실이었으니까.

죽음을 각오하고 강태와 함께 바닥으로 쓰러질 때였다.

“……?”

그의 눈에 의아함이 스쳐 갔다.

양팔을 벌려서 강태를 덮치는 와중에 옆구리에서 겨드랑이로 무언가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착각이 아니라면, 그건 강태의 팔이었다.

주변시로 보이는 그의 얼굴도 넘어지면서 정면을 주시하는 것으로 보였다.

말인즉슨, 넘어지면서도 쏜다는 뜻.

못 할 건 아니었다.

쏴도 폭발물은 날아온다는 게 문제고, 그게 아니어도 두 명이나 된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그렇게 지면이 필립의 코앞으로 다가온 순간.

귓가로 총성이 들렸다.

탕― 타앙!

글록 19에서 발생한 연속된 격발음.

그걸 깨닫는 찰나, 어마어마한 굉음과 압력이 헤일처럼 그의 뒤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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