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8월 말, 정오 무렵의 볼리비아, 산타크루즈(Santa Cruz)주(州), 비루비루(Viru Viru) 국제공항.
여객기에서 내리자마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나쁘지 않네.”
풍경도 그렇고, 날씨도 괜찮았다.
한국과 비교하면 초여름의 날씨와 비슷했으므로, 최근에 있었던 남중국해나 인도 같은 곳과 비교하면 덥긴 해도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시설이 깔끔하니 나아 보였다.
규모가 큰 편이 아니었을 뿐, 여객기나 관련 기계가 제법 멀끔한 게 평범한 공항과 닮아 있었다.
눈에 띄는 특이점도 없었다.
코카인과 카르텔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과 함께 공항 내부로 들어간 뒤.
드디어 마중 나온 사람을 발견했다.
‘G&G Corp’가 쓰인 판넬을 든, 깔끔한 반팔 셔츠와 면바지를 입은 30대 백인 사내였다.
그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잰걸음으로 다가와 소개를 해 왔다.
“반갑습니다. 저는 산타크루즈 대리영사 사무소의 서기관 케니스 영입니다.”
쉽게 말해 외교관이란 소리.
그가 말끝에 악수를 청하듯 손을 내밀었고, 최연장자이면서 책임자인 론 마이어스가 자연스럽게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지앤지의 볼리비아 총괄 론 마이어스입니다.”
“반갑습니다, 마이어스 총괄.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마중 나와서 감사드립니다.”
“그럼 먼저 숙소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선발대로 오신 동료분들이 먼저 와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의례적인 대화를 나누는 사이.
주춤하고 말았다.
중간에 케니스와 시선이 마주쳤는데, 그냥 쳐다본 걸로는 안 보였기 때문이었다.
마치 확인하는 듯한 모양새.
그제야 케니스의 차림새와 언행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평범해 보이나, 교정된 듯한 태도.
그러고 보니 분위기도 그냥 공무원처럼 보이진 않았다.
‘…CIA?’
직감하면서 옆에 서 있던 레이첼을 쳐다보자, 그녀가 내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마치 생각하는 게 맞는다는 듯.
이어서 뒤에 있던 해리도 바라봤는데, 그도 레이첼와 똑같이 반응했다.
그러자 예전 특전사 시절 그리고 용병 시절을 거치면서 주워들었던 게 떠올랐다.
정보 요원을 침투시키기에 적당한 직업이 여러 개 있는데, 역사적으로도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가장 흔한 게 바로 외교관이라고.
기자나 사업가는 그다음이었고.
그러자 물음표로 끝나던 생각이 금세 답으로 바뀌었다.
‘맞구나, CIA.’
더군다나 연락장교로 나온, 내 곁에 바싹 붙어 있던 필립의 표정도 좋지 못했다.
정확히는 케니스를 보는 눈초리에 경계심 같은 게 보였다.
흡사 경쟁자를 바라보는 듯한 모습.
“필립, 혹시 아는 사람이에요?”
“네?”
“쳐다보는 표정이 안 좋길래.”
“아… 아닙니다, 여기 날이 덥다 보니…….”
에어컨이 잘 나오는 공항 내부와는 어울리지 않는 핑계를 들으면서 확신했다.
케니스가 CIA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거라고.
특히 필립은 그냥 미군이 아니라, 미 국방부에서 날 회유하기 위해 붙여 둔 사람이니만큼 언질을 들은 게 있을 가능성이 컸다.
CIA가 접근할 예정이니까 조심하라는 식으로.
안 들어도 알 만했다.
필립이 어느새 내 눈치를 보면서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근데… 혹시 아는 사이는 아니죠?”
“저요?”
“네, 아무래도 리가 해외 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까 혹시 마주쳤을까 싶어서… 아는 사이는 아니라는 뜻이죠?”
“모르죠.”
“아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딴생각하는 듯한 대답을 뒤로하면서 움직이자, 어느새 공항 밖의 주차된 차량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SUV와 15인승 미니버스 한 대.
거기에 올라서 바로 숙소로 향했는데, 차가 출발한 지 얼마 안 돼서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아스팔트 포장은 얼마 안 되고, 중간부터 콘크리트가 나오더니, 어느새부턴가 아무런 포장도 안 된 흙길을 달린 탓이었다.
어느새 버스 앞뒤로 흙먼지가 뿌옇게 날릴 정도.
승차감도 덩달아 아주 불편해졌는데, 다행히도 금세 정리됐다.
숙소가 인근에 있던 덕분이었다.
비루비루 국제공항에서 약 30~40분 거리에 위치한, 붉은 기와를 가진 2층짜리 관광호텔.
제법 깔끔한 외관을 보면서 버스에서 내리려는데, 론으로부터 첫 명령이 떨어졌다.
- 전원 5분 뒤 로비로 집합.
짐만 풀고 내려오라는 소리여서, 미리 와 있던 선발대와 대충 인사만 하고 내려왔을 때였다.
론 옆에 케니스가 함께 서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나와 다시금 눈이 마주칠 무렵.
곧 그가 목소리를 냈다.
공항에서 그랬듯 자기소개로 시작했는데, 이어지는 말부터는 조금 달랐다.
“…이렇게 표시한 구역을 벗어나면 안 됩니다. 만약 벗어난 사실이 볼리비아 현지 군경에게 발각될 경우에는 억류되거나 추방될 겁니다.”
케니스가 어느새 지도 한 장을 펼친 채로 설명하고 있었는데, 안드레이의 못마땅한 물음이 넘어왔다.
“작전 중에 퇴출하거나 추적하는 과정이면 어떻게 되는 거요?”
“발각되면 같은 절차를 밟습니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좆같은 변수가 얼마나 많은데?!”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볼리비아 측에서 강경하게 고집한 내용이라서, 위반할 시에는…….”
“위반 같은 소리 하고 있군, 씨발. 상대가 열두 살 먹은 민병대 같은 애송이인 줄 알아? 여기 지배하는 놈들은 볼리비아 군경도 손대지 못하는 코카인 카르텔이라고. 그런데 위반은 무슨 위반? 좆 되면 국경이라도 넘어야 한다는 걸 모르나?!”
안드레이의 언성이 확 높아졌다.
그럴 만했다.
도시 외관이 깔끔하긴 하지만, 어쨌든 간에 치안이 위험한 나라가 볼리비아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우리가 머물게 될 산타크루즈도 카르텔이 다스리는 지역 중 하나였다.
그것도 볼리비아 최대의 마약 카르텔이었다.
이름은 산타크루즈 카르텔.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가 머무는 지역이 그린 존에 해당되는, 주미 대리영사 사무소를 비롯한 서구권 요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라는 점이었는데, 그 외에는 위안으로 삼을 게 없었다.
작전은 위험했으니까.
특히 훈련과 교육 이후에 진행할 산타크루즈 카르텔이나 범죄 조직 소탕은 그린 존 바깥의 우범 지역에서 진행해야 했다.
이어서 케니스가 입을 열었다.
“압니다. 그럴 때는 귀국하면 됩니다.”
“그럼 수당은? 이틀 만에 귀국해 버리면, 수당도 다 주나?”
“그건 계획서에 적힌 대로 지급될 겁니다.”
“하, 씨발. 좆같은 소릴 하는군?”
안드레이가 욕설을 뱉자, 동시에 모여 있던 이들도 불쾌한 듯 웅성거렸다.
용병들은 일한 만큼 받게 되어 있는데, 억류되거나 쫓겨나서 일을 못 하면 그만큼 못 받기 때문이었다.
돈 벌러 온 이들이 예민해지는 건 당연한 수순.
이를 인지하고 있는 듯 케니스의 답이 늦지 않게 튀어나왔다.
“그래서 발각될 경우를 한정해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 말은…….”
어느새 당장이라도 쌍욕을 날릴 것 같던 안드레이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거요? 스트립 걸과 떡 친 것을 비밀로 하듯이?”
“제 답은 전과 같습니다.”
말인즉슨, 실전을 겸한 작전 시에는 눈치껏 걸리지 말라는 소리.
번거롭지만, 가능한 일이었다.
군사고문단으로 온 우리에게는 훈련생을 교육하고 지휘할 권한이 있으니까.
경로나 병력 분배도 알아서 정하면 됐다.
정 안 되면 현장에서 알아서 명령하고 움직이면 되는 일이었고.
그래도 쉬운 건 아니라서 여전히 몇몇이 웅성거리면서 떠들자, 케니스가 다시금 목소리를 냈다.
“그래도 혹시나 모를 억류나 추방을 예방하기 위해, 저 또한 함께 머물겠습니다. 볼리비아식 스페인어는 조금 다르니, 통역이 필요할 경우에 저를 찾아와도 좋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그럼 현장에도 간다는 거요?”
“네, 우리 영사대리 사무소 경비 팀과 함께 이동할 예정입니다.”
“경비 팀이면 용병인가? 어디 출신이요?”
그 말에 케니스의 뒤쪽에서 웬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이깨나 먹은 중후한 음성.
“씰6팀 출신.”
꽤 단단해 보이는 체격을 가진, 제이크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사내였다.
글자 몇 개를 던지듯 말한 그가 걸음을 옮겼는데, 갑자기 나한테 악수를 청하듯 불쑥 손을 내밀었다.
주춤하는데, 짧은 물음이 건너왔다.
“당신이 그 아시안인가?”
뜬금없는 물음이었으나, 뭘 묻는지는 알 것 같았다.
며칠 전 타릴 제도의 작전.
거기서 씰6팀과 작전을 했었으니, 같은 출신인 사내도 내 얘기를 전해 들었을 것이었다.
“뭐, 아마도요.”
나도 짧게 답하며 손을 마주 잡자, 이내 미소가 돌아왔다.
“만나서 반갑군. 나 또한 당신에게 감사를 표하네. 거기 내 사촌 동생이 있었거든.”
“아… 그렇군요.”
“나는 마이클일세. 여기서 머무는 동안 불편한 게 있다면 뭐든 말해도 좋아. 나도 능력껏 돕도록 하지.”
그 말에 우리 팀을 제외한 알파, 브라보, 델타 팀의 시선이 몰렸다.
영문을 모르는 얼굴들로 우리를 보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있던 안드레이가 웃으면서 목소리를 냈다.
“어디서 또 괴물 같은 실력을 보여 주고서 감동을 준 모양이군.”
나와 안면이 있는, 나를 조금이나마 아는 이들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릴 무렵.
조용히 있던 론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마저 집중하도록 해. 케니스 서기관의 말을 명심하게. 특히 작전 중만 아니라, 휴식 중에도 말일세. 아니, 휴식할 때 더 엄중하게 지키도록 해. 그때는 정부군도 곁에 없을 테니.”
그가 말끝에 놀기 좋아하는 대원들 몇몇을 훑었다.
방심이나 실수를 염두에 둔 모양이었다.
그럴 만했다.
교육 자료에 표기된 높은 범죄율이나 낮은 부패 척결 지수와 다르게, 실제로 본 산타크루즈는 멀쩡한 남미의 관광도시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볼리비아 최대 카르텔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도 헛소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도시는 평범했다.
마약 왕국으로 묘사되는 영화 속 남미의 도시하고 크게 달랐고.
물론 그럴 리가 없었다.
아니었으면 그런 자료가 PDA에 실리지도 않았을 터.
어느새 케니스의 말이 덧붙었다.
“음, 이걸 말씀드리는 게 좋겠군요.”
무슨 말인가 바라보자, 케니스가 기억을 떠올리듯 잠깐 천장을 보면서 말을 끄집어냈다.
“대략… 26시간 전에 산타크루즈 내에서 돌격 소총이 동반된 총격전이 벌어졌었습니다. 마약 판매 과정에서 벌어진 사고로 추측 중인데, 그 과정에서 산타크루즈 카르텔 조직원 2명이 사망했고, 타 지역 갱단 4명이 사망했습니다.”
“26시간 전이면… 대낮에?”
“그렇습니다. 여기서 14마일(약 22㎞) 정도 떨어진 지역이죠.”
멀끔한 도시 외관과는 딴판인 소식에 주춤하자, 안드레이의 입도 열리면서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씨발, 14마일이면 코앞인데?”
그 뒤로 론의 음성이 묵직하게 깔렸다.
“그래, 알면 됐네. 그러니 각별히 명심하고, 편하게 쉬게.”
말만 들으면 편하게 쉴 수 없는 노릇이었으나, 어쨌든 쉬어야만 했다.
시차에 적응하고, 컨디션을 회복해야 했다.
스케줄상 내일부터 산타크루즈에 위치한 볼리비아 경찰들을 교육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인데,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혹시라도 벌어질 유사시 상황을 대비하려는 것이었다.
26시간 전의 총격전처럼 우리도 갑자기 사고에 휘말리게 될 가능성이 컸다.
이곳이 위험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찾아야 하는 지안드로의 흔적이 산타크루즈 카르텔의 영역 한복판에 있기 때문이었다.
부딪힐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당연히 커질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경찰을 통해 얘기가 흘러나가면, 상대가 먼저 기습을 가해 올 확률도 있었다.
살아남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를 먼저 죽이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