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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143화 (143/185)

143화

워싱턴 D.C, 해리 S. 트루먼 빌딩의 대외협력국.

국장실로 복귀해서 이틀 넘게 서류 작업 중이던 로버트의 귀에 아주 짧은, 그러나 중요한 말이 전해졌다.

대통령이 이번 작전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언질.

구두로 전달된 것이어서 구체적인 내용까지 알 순 없으나, 그렇다고 가볍게 넘길 만한 말은 아니었다.

말의 주체가 다름 아닌 미 대통령이기 때문이었다.

로버트도 직접 보고했던 게 한 번밖에 없는, 대면조차 어려운 인물.

그런 사람이 직접 대면 보고 하는 과정에서 물은 것도 아니고, 먼저 말을 꺼내어 백악관의 지인이 이를 전달해 준 것이었다.

로버트가 멈칫할 정도로 놀랐다.

그러나 그것도 금세 가라앉고, 상황도 어렵지 않게 납득했다.

근래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용병 소탕 작전을 거쳐, 타릴 제도에서의 교전에서 독보적으로 존재감을 떨친 인물이 대외협력국에 있었으니까.

바로 강태.

‘…리를 주목하는 모양이지.’

물론 다른 이유도 있겠으나, 개중 강태가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할 것이었다.

총 한번 안 쏴 봐도 놀랄 만큼 대단한 업적이었으니까.

이에 로버트의 입꼬리에 쓴웃음이 맺혔다.

대통령까지 강태에게 적잖은 관심을 두기 시작했는데, 그게 마냥 좋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로버트가 바라지 않은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 수도 있었다.

예컨대 국장 교체, 조직 변화 따위들.

강태를 강제로 주무를 수 없으니 그런 식으로 이뤄지는 건데, 충분히 현실성이 있었다.

당장 국방부가 바라는 것도 그런 거였고.

사실상 그게 최악인 상황인데, 그렇다고 단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장점도 있었다.

강태 개인에게는 과하다고 할 정도로 좋은 지원이나 후속 조치가 이뤄진다는 것.

뭐든 간에 미국이 도와줄 게 분명했다.

국익에 있어서 만큼은 그 어느 나라보다 최선을 다하는 곳이 미국이고, 강태는 국익이라는 단어에 부합하는 인재였으니까.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도, 서류 정리를 이어 갈 때였다.

띠링-

모니터 구석에서 알림이 하나 표시됐다.

[보안 메일 도착(1)]

바로 마우스를 잡은 로버트가 암호를 풀고 전자 메일을 확인하면서 눈매를 좁혔다.

대통령이 신경 쓴다던 그 작전이 방금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이제 막 출국한 상태였다.

목적지는 남미의 내륙 국가인 볼리비아(Bolivia).

대외협력국에서 조사했던 지안드로의 과거 행적이 나온 나라이면서, 이번에 미 국방부가 파악한 위성 전화 기록과 생포한 불법 용병의 심문 결과가 가리키는 나라였다.

이를 떠올리던 로버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많은 작전 지역이 그랬지만, 볼리비아도 마찬가지로 적잖게 위험한 탓이었다.

남미의 최약체이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정변이 일어난 국가. 그리고 콜롬비아 다음으로 코카인 사업이 활발한, 그래서 마약 카르텔 역시 활개를 치는 곳.

그의 입이 절로 중얼거리며 소리를 내고 말았다.

“험지만 골라 보내는 꼴이 됐군…….”

무엇보다 미국과의 관계가 그리 원만하지 못했다.

국경을 인접한 브라질이나 파라과이, 칠레, 페루, 아르헨티나에 비해 미국과 특히 사이가 좋지 못했다.

DEA(Drug Enforcement Administration: 마약단속국)의 활동을 금지하고, USAID(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 미합중국 국제개발처) 직원들을 내쫓고, 주미대사를 추방한 전례가 고작 10여 년 전에 있을 정도.

그래서 이번 작전 역시 다소 까다로웠다.

친미 정치인들이나 우호 고위 공무원들과 접촉해서 군사 자문 계약을 따냈는데, 실전 투입 지역과 외출 반경까지 제약이 걸린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중간에서 매개체 역할을 한 CIA가 작전 팀에 담당자를 붙여 놨었다.

현장에서 혹시 모를 불상사를 방지할 가교 역할 겸 통역관을 맡았다고 했으나, 로버트는 그 담당자의 실제 업무가 뭔지 잘 알았다.

강태를 관찰하고 회유하는 일.

이번에 국방부에서 연락 장교로 붙인 필립과 같은 역할일 것이었다.

거슬리긴 해도, 나쁘진 않았다.

현지에서 작전이 어그러진다면, 그 두 개의 카드로 좀 더 나은 쪽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어도 강태를 비롯한 G&G Corp 팀의 안전도 좀 더 나아질 것이었다.

CIA가 현장에서 드론을 운영하고 도감청을 실시하는 데다가, 국경을 비롯한 위험지역 곳곳에 미군이 순찰 목적으로 배치되었고 외교적으로는 대통령까지 간선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만큼 신경을 써야만 했다.

이번에는 강태를 비롯한 TF 6명만 가는 게 아니라, 군사 자문과 훈련 때문에 3개 팀이 추가로 더해지고, 관리 감독을 위한 직원들과 TF 담당이자 대외협력국의 협조 인물인 론 마이어스도 직접 현지로 가는 탓이었다.

쉽게 말해서 살아 돌아와야 할 목숨이 많아졌다는 뜻.

그래서 더욱 안전해야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완전하게 배제할 순 없었다.

작정하고 함정을 파면 쉽게 막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변수도 있어서 사상자가 나올 가능성은 여전히 조금은 있었다.

특히나 상대해야 할 적이 일개 반군이나 민병대도 아닌 마약에 취해 눈이 돌아 버린 카르텔이라면 좀 더 위험할 터.

줄줄이 나쁜 것만 있었으나, 마냥 그런 건 아니었다.

그가 서명하던 보고서 중의 하나가 이로운 소식을 갖고 왔기 때문이었다.

바로 지안드로와 관련된 것.

정확히는 암시장의 불법 용병들이 대거 사망하면서, 지안드로의 제안을 꺼리는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물론 그리 심각한 일은 아니었다.

사람을 데려다 쓸 만한 인력시장은 전 세계 곳곳에 많으므로, 애초에 큰 피해를 주긴 어려웠다.

무엇보다 입을 통해서 전해지는 소문이나 분위기에 불과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떠올리던 로버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려 있었다.

‘…반응이 오겠군.’

매번 잘 쓰던 암시장 대신 다른 곳을 이용하면 분명 티가 나기 때문이었다.

그게 크든, 작든 증거로서 작용할 거고.

그리고 혹시 모를 사태가 있더라도, 걱정을 덜 만한 요소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강태.

그는 볼리비아에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있더라도, 충분히 무마해 줄 만한 존재였다.

미군도, CIA도 위험을 놓치면 그가 막아 줄 것이었다.

그 끝에 로버트가 한숨을 흘렸다.

강태는 뭐가 됐든 잘 해내겠지만, 그 일의 결과물도 걱정이 됐기 때문이었다.

“후, 이제 그만 좀 쫓아다니고, 놈을 따라잡아야 할 텐데…….”

그의 말끝이 흐려졌다.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만큼 결과물도 있어야 하는 탓이었다.

이에 염려하면서도, 로버트는 반사적으로 전자메일을 파기하고 손에 들린 서류로 시선을 옮겼다.

상념은 잠깐이면 됐다.

그는 그의 일을 하고, 현장에서는 현장의 일을 해야 했다.

* * *

“볼리비아요?”

비행기 탑승 직전에 들은 행선지에 눈을 껌뻑이며 되물었다.

전혀 모르는 나라라서 그랬다.

게임에서도 가 볼 수 없는 나라라서, 그저 남미에 있다는 상식만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략적인 위치도 몰랐다.

동쪽에 있는지, 서쪽에 있는지.

무엇보다 내가 잘 아는 타릴 제도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볼리비아라는 이름 자체가 더더욱 낯선 단어로 들렸다.

이에 쳐다만 보는 사이, 목적지를 알려 줬던 제이크의 입이 재차 열렸다.

“PDA 확인해, 방금 정보가 들어왔으니까.”

“아… 예.”

멈칫하다가도 얼른 PDA를 켜서 작전과 관련된 정보를 확인했다.

주로 국방력, 치안력, 현지 기후, 지리, 토양, 동식물 등등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모든 것을 읽고 암기하는 것이었다.

보면서 탄식이 나오고 말았다.

“마약 카르텔……?”

환각성 식물을 씹고 미친놈처럼 덤벼드는 아덴만의 해적이 떠오를 무렵.

옆에서 해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전에는 미국으로 직접 코카인까지 수출했던 나라고, 지금도 코카인이 국가 주요 산업 중의 하나죠. 대통령도 마약 사업 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요.”

“와… 그럼 카르텔하고 싸운다고? 걔들도 눈깔이 돌았겠네?”

“으음,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와… 빡세겠네.”

차라리 숫자가 많을지언정 민병대 같은 적이 훨씬 나았다.

정신이 멀쩡해서 총 맞으면 아파하고 도망가며, 동료가 죽으면 공포를 느끼니까.

그러나 약은 달랐다.

아덴만에서도 봤지만, 옆에서 머리가 터져 나가는 데도 AK 시리즈를 갈겨 대는 부류가 바로 약쟁이들이었다.

코카인은 심각한 환각제라고 나와 있으니 더 위험할 터.

이를 떠올릴 무렵,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빌어먹게 오랜만이야, 친구들.”

제이크만큼이나 묵직하고 걸걸한 음성.

G&G Corp 동유럽 지부에 있었으나, 내가 선택하면서 아프리카까지 함께 갔던 안드레이 모루스였다.

그가 구겨진 인상으로 말을 이었다.

“씨발, 하필이면 볼리비아를 가게 됐군.”

“흐흐, 나는 함께 가서 다행인데?”

웃으며 대꾸하자,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도 네 솜씨는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한 번이면 족해. 이제 그만 만나고 싶군. 너하고 함께 가면 좆같은 지역만 걸리잖아?”

“아… 그건 미안하게 됐어.”

말하면서 쓰게 웃어 보였다.

그의 말마따나 내가 힘든 지역만 가게 고른 거라서, 미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고를 사람도 그밖에 없었다.

우리 팀이 아님에도 아주 믿음직한 동료였으니까.

이에 어깨를 치자, 옆에서 제이크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려 퍼졌다.

“준비는 다 됐나?”

“그래, 다 됐지. 누구 때문에 어깨가 존나게 욱씬거리긴 하지만.”

제이크가 주먹 한 방으로 어깨뼈를 부숴 놨다는 얘기가 떠오르고, 안드레이의 눈에 다시금 불이 붙는 듯 보일 무렵.

그 뒤로 다른 사람이 등장했다.

“해묵은 감정은 여전한 모양이군.”

너무나도 익숙한, 그러나 오랜만에 보는 사람이었다.

알 자마쉬에서 우리를 총괄했던 그리고 TF 담당으로 빠져서 본사인 버지니아로 갔던 론 마이어스였다.

그가 제이크와 안드레이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서열을 모르는 건가?”

그리고 태연히 물으면서도 차가운 눈초리로 바라보자, 안드레이가 한 수 물러섰다.

“…압니다.”

그러면서 딴 곳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이유는 잘 알았다.

론이 볼리비아 작전을 총괄한다면, 제이크가 현장에서는 총책임자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었다.

같은 팀장급이 아니라는 뜻.

론의 말이 이어졌다.

“안드레이 모루스, 뭐가 됐든 간에 작전 끝나고 해결해. 작전 중에는 허튼짓 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외인부대 출신의 간부답게 그리고 프로페셔널한 용병답게 안드레이가 답했다.

그렇게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한 론이 날 바라봤다.

“리, 얘기는 들었네. 더욱 위대해졌던데.”

“예? 아, 하하… 감사합니다.”

웃으면서 대꾸하고 말았다.

위대해졌다는 게 무얼 말하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타릴 제도에서의 용오름 작전.

그도 대외협력국의 관계인이니, 관련 내용을 어느 정도는 아는 모양이었다.

한데 칭찬 뒤로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지워졌다.

“그러니 더 조심해야 하네. 위대한 만큼 위험할 수 있으니.”

“아… 알겠습니다.”

답하면서도 내심 긴장됐다.

남미는 처음이었고, 또한 마약 카르텔은 더더욱 생각도 못 해 봤기 때문이었다.

그저 내 선에서 해결이 가능하길 바랄 뿐.

이윽고 론이 게이트를 보며 말했다.

“자, 이제 들어가세.”

목울대가 절로 꿀렁였다.

이제 볼리비아로 날아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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