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터엉―! 철컥! 터―엉! 철컥!
연달아 두 번을 쏜 뒤, 남은 탄도 연달아서 쐈다.
금세 10발들이 탄창이 텅 비었다.
노리쇠를 후퇴시키자, 탄피가 빠져나가면서 빈 약실이 드러났다.
물론 그때까지도 스코프 너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탄이 도달하려면 9~10초가 걸리는데, 내가 10발을 다 쏘는데 6초가 채 안 걸렸으므로.
이에 마저 지켜보던 때였다.
“……!”
나도 모르게 움찔하고 말았다.
비바람이 치는 흐릿한 시계 속에서도 옆구리가 터져 나가는 광경이 선명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첫 타깃에 명중한 것이었다.
원래 조준했던 상체 한가운데에서 살짝 엇나간 셈이지만, 치명상이라서 괜찮았다.
살 만한 상처가 아니었다.
그리고 소수점 이하의 초가 지나가는 순간, 연달아 다음 탄이 도착했다.
두 번째 타깃을 향해.
“…됐다.”
말이 절로 나왔다.
이번에는 오조준한 효과를 봤는지, 정확히 가슴 한가운데를 뚫은 것이었다.
그의 몸이 떨어지는 사이, 세 번째 탄이 도달했다.
아직 매달려 있던 타깃의 어깨를 향해.
한 발 빼고는 두 발 전부 조금씩 엇나간 셈이고, 나머지 탄 역시 다 화물선 선체에 때려 박히겠지만, 이만하면 만족스러웠다.
아니, 아주 성공적이었다.
저렇게 피격되고 살아날 순 없을 테니까.
화물선에 수술실 같은 의료 시설을 갖춰 놨을 리가 없겠지만, 서울대 병원이든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이든, 뭐든 그대로 옮겨 놨어도 타깃을 살리는 건 불가능했다.
한 명은 즉사했을 거고, 다른 한 명은 옆구리며 어깨가 한 움큼씩 사라졌으니까.
이를 스코프 너머로 들여다보는 때였다.
- 리? 어떻게 됐어?
저격 소총으로 차마 확인하지 못한 호세가 상황을 물어봤다.
관측경을 든 대원을 제외한 나머지도 마찬가지.
이에 돌아보면서 대답했다.
“저격 기록 경신했어.”
- 둘 다……?
호세의 밝아지는 목소리에 나도 힘줘 가며 답했다.
“그래, 둘 다.”
* * *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Islamabad)의 한 호텔.
두 대의 두꺼운 노트북 화면을 보던 지안드로가 움찔하고 말았다.
“……?!”
핵 개발 연구원에게 채워 줬던 손목 시계의 생체 신호가 급격하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기계 에러가 아닌가 싶을 정도.
그것도 한 명이 아닌, 두 명의 신호가 전부 망가졌다.
거기다 수하가 착용하고 있던, 화물선으로 올라가던 바디캠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급하게 흔들렸다.
비바람이 섞인 음성도 전달됐다.
주로 고함.
이에 반사적으로 선불 폰을 잡던 지안드로가 얼어붙었다.
어느새 노트북 화면에 떠 있던 생체 정보들이 죄다 ‘0’으로 수직 하강 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잡고만 있던 핸드폰이 먼저 진동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지안드로가 선불 폰의 액정을 보면서 이를 꽉 깨물었다.
마침 핵 개발 연구원의 에스코트를 담당하던, 바디캠을 차고 있던 그의 수하에게 전화가 걸려 왔기 때문이었다.
설마 하는 불안함이 차오르는 사이.
통화를 수락하고서, 그 예감이 맞았음을 깨달았다.
전화를 걸어온 수하가 암호로 신분을 확인한 뒤에 생체 신호와 관련된 상황을 알려 왔기 때문이었다.
- …사다리를 오르던 연구원 한 명은 가슴에, 다른 한 명은 옆구리와 어깨에 50구경 탄을 맞았습니다. 둘 다 저희가 지혈할 틈도 없이 사망했습니다.
“…….”
지안드로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이번에 준비한 작전이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을뿐더러, 완전히 박살 났기 때문이었다.
이에 잠시 숨을 고른 그가 뒤늦게 단어 하나를 끄집어내듯 가져왔다.
“50구경이라면… 기관총인가?”
미군이 개입한 만큼 시호크(Seahawk)로 불리는 UH-60 헬기 같은 게 쏜살같이 날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만한 국제적인 분쟁이 일어날 터.
이를 가늠하며 바뀔 상황을 꿈꿨으나, 돌아오는 대답에 제대로 상상하지도 못했다.
- 탄이 여러 발 박히긴 했는데, 기관총은 아닙니다. 장거리 저격 같습니다.
“…정확히 말해.”
지안드로가 이제는 힘이 빠진 듯 물었다.
돌아가는 상황이 말도 안 되는데, 전부 실제로 벌어진 탓이었다.
- 추격해 오던 적 보트 한 대가 약 4킬로미터까지 거리를 좁힌 채 정지했는데, 때맞춰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저격 방향도 일치합니다.
“…….”
지안드로가 차마 소리 내어 말하질 못했다.
할 만한 반문도 없었다.
상황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고, 그 말을 한 이는 과장하거나 허튼 말을 하는 부류가 아니었다.
현장을 총괄할 수 있도록 신임하는 수족 중의 한 명이었다.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도 있었고.
다만, 여전히 저격됐다는 걸 쉽게 믿기가 어려웠다.
너무 비현실적이었으니까.
타릴 제도의 교전도 상황은 비슷했는데, 방금 보고받은 상황과는 핵심 조건이 너무 달랐다.
지상이 아닌 해상에서의 싸움이었고, 거리도 더욱 멀었다.
심지어 바다도 풍랑이 일어서 크게 흔들리는 상황이었고, 거리도 고작 수백 미터가 아닌 킬로미터 단위로 늘어났다.
당연하게도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지안드로도 특수부대 출신으로서, 탄도학과 저격을 잘 아는 만큼 더더욱 믿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혼자서 고개를 젓고, 미간을 구기며 생각할 무렵.
선불 폰 너머의 음성에 멈칫했다.
- 지시를 내려 주십시오.
“…예정대로 퇴출하도록 해, 노고가 많았어.”
수하가 무어라 대답했으나, 지안드로는 건성으로 듣고 말았다.
더 대꾸할 생각이 없어서 그랬다.
할 말도 없었고.
이에 남아 있는 노트북 화면을 보던 지안드로가 천천히 의자 등받이에 늘어지듯 기대어 앉았다.
불가사의한 저격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추격을 용인했던 용병들도 무참하게 패배하고 있었다.
바디캠이 땅으로 엎어지거나 하늘을 비추는 경우가 늘어나더니, 아예 몇 개는 렌즈가 박살 나면서 꺼졌기 때문이었다.
굳이 전화해서 확인하지 않아도 될 만큼 패배가 분명해 보였다.
즉, 준비한 모든 작전이 어그러진 셈.
시선을 떨어트린 지안드로가 나직하게 중얼거렷다.
“멍청하게 죽어 버린 볼코프가 부러울 지경이군…….”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서. 그리고 이 책임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싶을 무렵.
띠리리리─
벨 소리가 났다.
테이블에 올려 두었던, 벽돌처럼 두꺼운 보안 처리된 위성 전화가 울리는 것이었다.
맥없이 풀리던 지안드로의 눈이 번뜩 뜨였다.
축 늘어져 있던 손이 얼른 움직여서 위성 전화를 잡았고, 늦기 전에 전화를 받았다.
저 전화기를 통해 오는 발신자는 단 한 명뿐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믿고 따르는 보스, 피칼.
지안드로가 급하게 정신을 수습하면서 입을 열었다.
“저, 전화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말을 들을지 두려워하는 사이.
이어진 피칼의 음성에 멈칫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 건너왔기 때문이었다.
수고했다는 말.
그가 수하에게 했던, ‘노고가 많았다’라는 힘없던 말과는 달랐다.
마치 지그시 바라보는 듯 묵직한 말.
지안드로의 입이 저절로 열리면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아… 아닙니다, 보스. 정말 죄송할 따름입니다.”
반사적으로 몸이 굽으며 답할 무렵.
새 지시를 받았다.
정확히는 지안드로가 알아서 진행하고 있던 그리고 이번에 실패했던 것을 직접 명령한 것이었다.
강태를 제거하라고.
“……!”
지안드로의 눈이 동그래졌다.
피칼은 여태 핵 개발이나 테러와 관련된 방향만 잡아 주고, 물적 지원만 해 주는 방임형 리더였다.
그래서 죽은 세르게이도, 아직 살아 있는 지안드로도 자유롭게 활동했었고.
한데, 처음으로 사람을 지목한 것이었다.
바로 강태를.
그 이름을 들은 지안드로가 멈칫했다가, 이윽고 깨달았다.
그럴 만했다.
타릴 제도의 저격도 놀라운데, 남중국해의 바다 위에서는 거의 기적을 발현했기 때문이었다.
지안드로가 맥을 놓을 정도로.
어느새 피칼의 목소리가 위성 전화를 통해 지안드로의 귓속으로 천천히 스며들어갔다.
- 그의 이야기를 끝낼 수 없다면, 오직 이야기만 남겨두게. 아무도 알지 못하도록. 청중을 죽이고, 이야기꾼을 죽이고, 책을 쓰는 작가를 죽이게. 많은 피를 흘리게 될지라도, 과감하게 상처를 도려내야해. 자네도 알지 않는가? 세상을 혼돈으로 몰아넣은 인물과 종교 따위가 그런 이야기에서 파생되었음을…….
* * *
같은 시각,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프 필드(Pope Field), 미합중국 합동 특수전 사령부(Joint Special Operations Command).
“…….”
스크린을 보던 이들의 눈 깜빡임이 멈추면서, 턱도 천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시간이 느려진 듯.
개중 휘둥그레진 지휘관은 머릿속에서 차오르는 생각과 감정들도 속을 가다듬지 못하고 있었다.
‘도, 도대체 어떻게……?’
영상과 음성으로 접한 강태의 저격 성과가 도저히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저격 결과와 관련 수치만 보고 놀란 게 아니었다.
그도 해 봐서 아는 것이었다.
타릴 제도에서도 그렇고, 특히 해상에서 보여 준 저격은 더더욱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이런 말도 안 되는…….”
영관급 장교 한 명도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그러나 사실은 명확했다.
강태가 저격수 3명, 박격포를 운용하려던 6명, 핵 개발 연구원인 타깃 2명을 모두 사살했다.
지상과 해상 가리지 않고, 거리는 1㎞ 내외에서 3.8㎞까지.
이윽고 정신을 차린 지휘관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예상보다도 더 훌륭한, 경이로운 인재로군. 대외협력국에서 썪게 만들어선 안 돼. 아니… 그는 국방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야만 해. 저런 인재를 어디서 품겠다고? 아시안이라는 게 좀 아쉽지만, 영웅화하는 것도 가능하겠어. 그래, 하고도 남지.’
그의 머릿속에 당장 국방부 장관에게 제출할 만한 여러 가지 제안이 떠오르고 있었다.
물론 강태 본인이 거절할 수도 있고, 대외협력국에서 격렬하게 감쌀 가능성이 높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무마할 방법이 많았다.
가장 쉬운 건 물적 지원.
돈이 됐든, 전술 장비가 됐든,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주면 흔들릴 게 분명했다.
만약에 아니라면, 그것보다 더 주면 됐다.
더, 더 많이.
오직 미국만 할 수 있는 제안이었다.
만약에 국방부 장관을 통해 대통령을 움직이면 더한 것도 줄 수 있을 터.
물론 일개 장성급 지휘관이 생각할 건 아니었지만, 위에서도 결코 거부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국방부 장관 역시 이 자료를 직접 보면 기함하리라 짐작할 무렵.
끝에 있던 대외협력국 국장, 로버트의 눈매가 좁아지고 있었다.
그들이 느낄 감정을 다 알기 때문이었다.
‘국방부가 더한 수작을 부리겠는데…….’
이미 그가 밟아 온 전철이었다.
그래서 잘 알았다.
국방부가 강태를 얼마나 원할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접근할지도 짐작이 됐다.
아마 갖은 수를 다 쓸 터.
온갖 회유를 하는 만큼, 강태의 소속이 바뀔 수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강태가 군인 체질일 뿐, 그렇다고 미 국방부를 흠모하진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정확히는 특수전 부대, 그중에서도 델타포스를 유독 좋아할 뿐.
그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노출.
세계에서 가장 큰 군사 기구에서 강태의 신변에 관심을 가졌으니, 그만한 위협이나 위험이 동반될 것도 당연했다.
걸러 내지 못한 내통자 같은 인간들도 더 많을 테니까.
‘리를 더 엄중하게 지켜야겠어. 어쩌면 팀원들로 그 범위를 넓혀야 할지도 모르겠군…….’
이윽고 로버트의 시선이 교전을 끝낸 스크린 속 G&G Corp TF에게 닿았다.
다행히 죽거나 다친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덤볐다가 부상을 입은 용병 한 명을 생포했다.
로버트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이번에도 리 덕분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