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138화 (138/185)

138화

같은 시각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어둑한 밤이 내린 가운데, 헤드 라이트를 켜고 대기 중인 차량 문이 열렸다.

미 국방부 장관이 뒷좌석에 올랐고, 금세 묵직한 문짝이 닫혔다.

그리고 옆자리와 조수석에도 사람들이 탄 뒤.

“출발하겠습니다.”

운전석에서 정중한 말이 나오고, 차량이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소음이 차단된 차 안에서는 숨소리만 무겁게 깔렸다.

국방부 장관도 눈을 감았다.

졸려서 그런 게 아니라, 속이 복잡해서 눈으로 들어오는 시각 정보라도 차단하려는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인도네시아로부터 사용 허가를 받은 무장한 F-5 전투기 두 대가 남중국해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고, 긴급 기동 훈련을 핑계 삼아서 제7함대를 필리핀해로 이동시켰으며, 방금 관련된 사항을 대통령과 진중하게 논의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하게도 좋은 말이 나오기는 어려웠다.

작전이 잘 풀려야만 하는데, 돌아가는 상황이 썩 나빴기 때문이었다.

함정에 걸렸고, 전멸할 뻔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게 있다면 그 상황을 이중 작전의 대상인 강태가 타파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실력을 선보였었다.

대통령에게 필요성을 역설할 수 있는 증거가 된 셈.

그래서 얘기가 좀 더 무겁고 길게 늘어졌었다.

대통령이 바빠서 그것도 금세 끝나고 말았지만, 국방부 장관도 할 일이 많았다.

지금도 마찬가지.

띠리리리-

안주머니에 있던 업무용 핸드폰이 울기에 확인해 보니, 포프 필드(Pope Field)에서 추가 보고가 와 있었다.

기존 타깃인 핵 개발 연구원의 하선 소식.

퇴출 중인 아군의 계획에 붙은 이물질 같은 말이었다.

- …그럼 예정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아니, 잠깐…….”

국방부 장관이 잠깐 시간을 끌다가 목소리를 냈다.

“그가 우리를 보조하는 것보다, 우리가 그를 보조하는 쪽으로 진행하는 게 나을 것 같군요. 현장에 확인해 보고, 가능하다면 그렇게 진행하세요.”

찰나의 순간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정확히는 대통령과 담화를 나누고, 보고를 하면서 깨달은 바가 지시로 나온 것이었다.

이유는 하나.

강태의 실력을 추가로 확인하고, 남겨 두기 위함이었다.

그래야 오늘 대통령에게 필요성을 호소했듯, 어딘가에 언급할 만한 증거가 될 터.

물론 작전이 성공해서 강태가 넘어왔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미 그럴 가능성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군이 죽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그리고 강태의 실력도 예상을 훨씬 웃돌 만큼 대단했었고.

이제 남은 건 성공적인 퇴출 그리고 강태와 관련된 제대로 된 증거 확보였다.

위험 부담이 있긴 하나, 그렇다고 그냥 도망만 칠 순 없었다.

이미 작전은 실패했으니까.

얻어 낼 거라도 최대한 얻어 내야만 했고, 그게 바로 강태였다.

‘대외협력국은 이런 게 수두룩하게 쌓였겠지… 그러니 리를 감쌌던 거고…….’

그가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핸드폰 너머에서 주춤한 대답이 넘어왔다.

- 장관님? 보조한다는 게… 그럼 지휘권을 넘기라는 말씀이십니까?

사뭇 당황한 목소리.

그러나 국방부 장관은 오히려 잘됐다는 듯 대답했다.

“가능하다면, 그렇게 진행하세요. 다만, 현장 판단이 우선입니다. 안 되는 걸 억지로 하지 말고, 현장 지휘관과 상황을 봐서 진행하세요. 중요한 건 아군의 성공적인 퇴출입니다.”

- 알겠습니다.

대답을 듣던 국방부 장관이 전화를 끊었다.

이제 남은 일만 잘 마무리되면, 이번 실패 역시 어느 정도 희석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

강태라는 원 맨 아미(One Man Army)를 통해서.

그러나 표정이 밝아지긴 어려웠다.

작전이 실패해서 그런 것만이 아니었다.

그건 어차피 일이 끝나면 어느 정도 희석이 가능했다.

대통령에게도 이미 말을 잘 해 놨었다.

문제는 실패 과정이었다.

함정.

저격수를 놓고, 심지어 박격포까지 숨겨 놨었다.

물론 그러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중동에서만 해도 함정에 죽거나 다치는 미군들이 수두룩했으니까.

문제는 이곳이 타릴 제도라는 점이었다.

계획 수립 단계부터 위성 영상을 분석해서 위험을 차단하려고 했던 지역.

그리고 데브그루 1개 스쿼드론을 스텔스 고속단정을 이용해 침투시킨 곳이었다.

위험이 있다 한들, 그게 아군을 향해선 안 됐다.

한데,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함정의 한가운데 아군이 빠졌고, 저격수와 박격포가 대기 중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박격포를 먼저 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만약에 그냥 갈기고 봤다면, 강태고 뭐고 간에 시체도 찾지 못할 정도로 갈기갈기 찢어졌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이건 단순한 함정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미군의 수색망과 경계 정보를 알고서 벌인 수작이라고 봐야 마땅했다.

해병대부터 무턱대고 들이민 게 아니었으니까.

준비 과정은 허술하지 않았었다.

사람만 직접 보내지 못했을 뿐, 굉장히 샅샅이 뒤졌었다.

한데, 발견된 건 한참 지난 새벽이었다.

만약에 그것마저 좀 더 늦어졌다면은, 살점과 핏더미가 된 아군을 수습하러 갔을지도 몰랐다.

심지어 장비도 싸구려 복제품이 아니었다.

드론 영상에 확보된 것들은 최첨단이나 최신식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한 것들이었다.

그들을 가리고 있던 열 차단 위장막부터 병기인 저격 소총이나 신식 수형 박격포 그리고 숨겨 뒀던 전술 사륜구동 ATV, 레일에 달린 각종 장비까지.

그것도 미국제가 많았다.

판매는 당연하고, 어떤 식으로든 유출을 금지한 것들이 그 안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략 장비들이 암시장에 풀리는 일이 있긴 하지만, 그건 고가품이 아닌 저가품에 해당됐다.

한물간 고물 험비라던가, 탄이 자꾸 걸리는 중기관총 같은 것들.

생각 끝에 결론이 나왔다.

‘심각한 배신자가 있을 수도 있겠어. 지안드로 바시카날과 엮인 놈이…….’

그러다가 멈칫했다.

“……!”

대외협력국장 로버트가 스위스까지 감사 팀과 함께 이동했던 정보가 떠오른 것이었다.

그것도 국무부 고위 간부인 월터 그레이슨을 대상으로.

이를 상기하던 국방부 장관이 멈칫했다.

‘설마 그를 배신자로 생각했던 건가?’

상세 자료는 비공개로 처리되어 있어서 다 알진 못하지만, 드러난 것만으로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만한 고위직이 연루됐단 말이지…….’

이윽고 그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이 차 안에도 연루되지 않았다고 확신하기 어려운 외부인이 한 명 있었기 때문이었다.

몇 달 전에 백악관에서 파견 온 정무 담당 스태프, 노먼 존스.

이제야 막 20대 후반이 된, 장교로 치면 이제 중위나 되었을 법한 어린 직원이었다.

그리고 그 외에 아는 건 없었다.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바쁘기도 하거니와, 백악관에서 파견 온 스태프라 그냥 놔뒀고, 또한 펜타곤에서 따로 실시한 신원 조회까지 통과했으니까.

그래서 그냥 직원으로 대했었다.

곁에 있는, 오래전부터 알아본 장성급 장교와 달리.

그러다 문득,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꽤 오래 유학을 했었다고 했지……?’

해외에 있었다면 더더욱 믿기 어려운 게 많았다.

의심할 게 더 많았다.

국외에 있을 때는 유학이라는 단어로 무슨 일을 해도 숨기거나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좀 배웠다는 테러범들의 이력에도 유학이라는 단어가 종종 있었다.

물론 유학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굳이 해외로 나갈 필요 없이, 본토에서도 공산주의자부터 해괴한 정치론자들과 반정권 인사들이 여기저기 넘쳐나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들은 요주의 인물로 관리되고 있었다.

그리고 해외에서는 뭐가 이뤄지는지, 따로 제보가 들어오거나 CIA의 감시가 없다면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노먼이 그런 인물이라고 할 순 없지만, 의심을 피할 순 없었다.

지금 국방부 장관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리고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노먼이었으니까.

‘…내부감사를 진행해야겠군.’

작전 종료와 함께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도 이중으로.

이번 작전 실패를 이유로 들어서 관련한 인사들을 징계하려는 목적으로. 그리고 내부적으로 배신자를 찾기 위함이었다.

‘…그가 펜타곤을 흔드는군.’

국방부 장관이 리를 떠올리며 쓰게 웃고 말았다.

일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 * *

“그래, 내가 맡지.”

제이크가 시원하게 지휘권을 받았다.

내게는 더없이 좋은 일이었다.

물론 기존의 현장 지휘관이 못난 건 아니었지만, 그는 제이크와 달리 나를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는 것 같긴 한데, 잘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포트 브래그의 정보만 봤을 터.

그러나 제이크는 아니었다.

그는 이 섬에서뿐만 아니라, 라레플의 세상 속에서 내 능력을 가장 잘 아는 인물이었다.

함께한 시간도 벌써 1년이 지나서, 나도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정도.

물론 우리 팀의 막내인 해리와도 근래 함께한 시간이 제법 많긴 했지마는, 그래도 제이크와 비교될 정도는 아니었다.

곧 그의 말이 이어졌다.

“리, 일단 추격부터 해. 호세가 보조해.”

육성으로 나온 말이었다.

그가 뒤에 있던 데브그루 요원 쪽을 턱짓하며 말했다.

“보트 운전 가능한 인력 데리고 따라 붙어. 지금 따라가야 할 거야, 벌써 해상에서 이동 중일 테니.”

“알겠습니다.”

그의 말에 짧게 답하면서 바로 움직였다.

내가 남아 있어야 하는지, 혹은 괜찮겠냐고 더 물어보지 않아도 됐다.

바쁘기도 하거니와, 제이크의 판단 역시 믿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지휘부인 서재에서 들은 정보도 있어서 바로 움직일 수 있었다.

공대지 미사일을 장착한 F-5 전투기의 발진 소식.

그게 5분 안에 온다고 했었다.

추가로 현지 어선을 포섭해서 위장한 예비대가 해안에서 대기 중이고, 심지어 제7함대가 움직이고 있다고 했었다.

미군의 위용이 새삼 느껴질 만한 조치.

내가 미련 없이 바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팀이나 데브그루 대원들 역시 실력이 있으니 믿을 만했다.

매복이 다 탄로 났고, 상황이 바뀌었으니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터.

그렇게 급히 움직이자, 가까이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휘유! 도대체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군. 정신이 나갈 지경이야.”

타릴 제도에 침투한 이후로 여태 듣지 못했던 호세의 너스레였다.

“리, 너는 좀 어때? 강철 같은 멘탈에 흠집이 나진 않았어?”

“아직 멀쩡해.”

“비브라늄이나 아다만티움 멘탈이라고 불러야 되겠군.”

“아, 그것도 괜찮겠네.”

그의 말에 가볍게 대꾸한 뒤로는 어느새 대화도 멈췄다.

뛰어가는 속도가 올라가면서, 어느새 호흡이 벅찰 정도로 이동했기 때문이었다.

호세뿐만 아니라, 함께 움직이는 데브그루 요원들도 마찬가지.

숨소리가 들리길 잠시, 곧 걸음을 멈췄다.

금세 해안에서 대기 중인 아군과 조우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현지에서 포섭한 어선과 함께.

그렇게 보트에 오르는 사이, 우리 뒤쪽에서 총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군의 것이었다.

투두두두두둥― 텅텅―! 터더덩―!

소음기를 거치며 나온 소리가 유독 무겁게 들릴 무렵.

암구호 확인 끝에 어선에 올랐다.

외관은 금방 무너질 것 같았는데, 다행히 뒤쪽에는 싸구려 모터가 아닌, 군용이 달려 있었다.

“출발합니다.”

키를 잡은 이의 말 뒤로, 모터가 화악 질주하듯 나아갔다.

특전사 생활을 하면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북한의 핵 개발 연구원을 잡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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