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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137화 (137/185)

137화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Islamabad)에 위치한 호텔.

방에서 노트북 두 개와 분할된 여러 개의 화면을 확인하던 지안드로가 마른세수를 하듯 얼굴을 쓸어내렸다.

벌써 여러 번이었다.

저격이 시작될 즈음에는 미간을 찌푸리거나 탄식을 뱉었는데, 이제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다 못해 머리를 쥐어뜯기까지 했다.

노트북 화면에 표시된 바디캠 현장 영상이 벌써 절반 이상 중단된 탓이었다.

신호 장애 따위의 이유가 아니었다.

죄다 사망해서 엎어지거나 눕는 바람에 화면이 깜깜한 땅이나 비바람 치는 하늘만 찍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상 멈춘 상태.

이내 지안드로의 입에서 한숨이 섞인 신음이 흘러나왔다.

“후으으…….”

보고 있음에도 여전히 믿기지가 않았다.

근거리가 아닌 초장거리 저격 매복과 박격포 포격이면 가능성이 있다고 본 건데, 그것마저 강태가 막아 냈었다.

아니, 미리 예방했다.

물론 위치 파악은 미군의 도움을 받았겠지만, 중요한 건 제압 과정에서 강태만 혼자 움직였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그걸 직접 목격한 건 아니지만, 다른 가능성은 없었다.

근방에 타격대가 있었다면 습격해서 죄다 체포하거나 사살했을 테니까.

거기에 죽어 가던 박격포병의 증언도 있었다.

포격 지점에 있던 한 사람.

그것도 관측수에게 노출될 정도라면, 제대로 된 사격 자세를 잡았을 터.

아무리 봐도 강태밖에 없었다.

물론 미군 1티어 특수부대 정도면 미친 짓을 할 만한 이들이 적잖게 있겠지만, 교전 상황에서는 그것도 엄격하게 제한됐었다.

특히 2.5㎞ 바깥에 위치한 박격포 앞에서는 더더욱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었다.

지안드로도 이탈리아 특수부대 출신이라서 잘 알았다.

특수전을 수행하는 군인들은 평소에 나사가 하나 빠져 있어도, 교전 상황에서는 기계처럼 훈련된 대로 움직이는 이들이었다.

‘그렇다면…….’

지안드로가 벌어질 일을 예상했다.

화면 속에서 용병들이 자신의 성을 불러가면서 욕을 하고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중요한 건 현재와 미래였다.

‘박격포와 반대 지점으로 빠져나가고 있을 가능성이 크겠어. 미군에서도 퇴출을 지원하기 위해 움직일 거고, 박격포까지 노출됐으니 작전이 전면적으로 변경되겠지.’

입가의 주름이 깊어지기를 잠시.

결론이 금세 나왔다.

‘작전 취소. 그리고 전원 퇴출하겠군…….’

여기서 강태를 사살하겠다는 계획이 완전히 물거품이 된다는 뜻.

다만,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었다.

작전은 끝나지 않았고, 노트북 화면 속에서 생존한 용병들도 움직이고 있었다.

장비 이동에 사용했던 사륜구동 ATV에 탑승해서 추격하려는 것이었다.

이를 보던 지안드로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사전에 수립한 적 없는 계획이고, 논의된 적 없는 일이어서 그랬다.

쉽게 말해 독단적인 행동.

이는 암시장에서 수 년씩 버텨 온 용병들과 어울리지 않는 짓이었다.

당연히 해서도 안 됐고.

그러나 지안드로는 화면만 바라봤다.

남은 잔금을 걸고 용병들을 통제할 수 있었으나, 그대로 놔뒀다.

이해가 됐기 때문이었다.

작전을 총괄하는 그리고 바디캠을 보며 상황을 파악한 자신마저 납득을 못 하고 있었으니까.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을 것이었다.

물론 정상적인 이들이라면 두려워하거나 겁먹겠지만, 화면 속의 용병들은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이 바닥에서 오래 버텼을 뿐만 아니라, 이름도 날린 이들이었다.

그만한 실력과 성질이 있다는 소리.

또한 굳이 멈추라고 지시할 이유가 없었다.

용병들의 목숨값을 진작에 거금으로 치러 줬었고, 이번 작전도 이렇게 끝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뭐라도 해야만 했다.

그 판단에 놔두고 있었으나, 성공할 확률을 높게 보진 않았다.

실패할 가능성이 더 컸다.

사전에 준비했던 것조차 실패했으니, 저 추격의 끝은 몰살로 끝난다고 봐야 했다.

비바람 치는 날, 2.5㎞ 밖의 표적을 맞추는 게 강태였으니까.

다 죽을 게 분명했다.

달리면서 발생하는 엔진 소음 때문에 위치는 노출될 거고, 정지하고 포격을 재준비하는 과정에서 당할 터.

만약 근거리까지 추격해서 총이라도 쏴 대면 집중 사격을 맞아 죽어 나갈 게 분명했다.

결론은 간단했다.

실패.

그 끝에 지안드로의 표정이 변했다.

‘뭐라도 해내야 한다, 뭐라도…….’

북한에 돈까지 퍼 주고 만든 기회를 이렇게 날릴 순 없었다.

지안드로가 충격 먹었던 정신을 수습했다.

준비한 모든 것이 실패했으나, 아직 남아 있는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핵 개발 연구원.

핵심 개발 인력이 아니라서 표면적인 작전 대상으로 정했던 그를 정말로 데려와야만 했다.

그것조차 못하면 이번 작전이 통째로 끝장날 테니까.

다행히 기회는 있었다.

미군이 퇴각하는 바로 지금.

어수선한 틈을 타서 해상에서 하선한 뒤, 모터 보트를 타고 움직여야 했다.

목적지는 기존의 작전 지역인 타릴 제도의 반대편.

중국발 화물선이 오는 방향이었다.

원래 접선하기로 했던, 중국 화물선에 먼저 접근하려는 의도였다.

그들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순 없었으니까.

남중국해를 이탈하게 되면 아예 항로가 달라져서 화물선을 갈아탈 수도 없었다.

가능한 지점은 남중국해 부근밖에 없었다.

그래서 좀 무리해야만 했다.

아니면 이러다가 정말 다 죽게 생겼으니까.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적이 추적할 가능성이 없진 않았으나, 그렇게 악착같이 따라 붙진 않을 것이었다.

아마 드론 정도만 보낼 터.

그래도 어쩌지는 못할 게 분명했다. 매복 사실이 노출된 상태고, 포격을 당할 뻔했으니까.

강태와 미군은 예정대로 퇴출할 것이었다.

그게 상식적인 작전 결과였고, 계속해서 빠져나갈 게 분명했다.

결론적으로 핵 개발 연구원 확보는 어렵지 않았다.

지안드로가 결심과 함께 선불폰을 꺼내어 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암호 코드를 읊고, 바로 지시했다.

“일어나자마자 선물 재포장하세요.”

연구원의 즉각적인 화물선 갈아타기를 지시하는 통신 음어였다.

대답이 빠르게 넘어왔다.

- 알겠습니다.

* * *

남중국해, 타릴 제도.

- 에코 10, 여기는 범고래. 현재 상황은 어떤지?

현장 지휘관의 목소리가 무전을 타고 넘어오기에, 반사적으로 뒤를 확인하며 답했다.

“여기는 에코 10, 육안으로 파악 불가함.”

- 수신 양호. 확인될 경우에 자의적 판단으로 선제적 조치한 뒤에 후 보고 하기 바람. 추가로 특이 사항이나 요청 사안 있는지?

“행군 속도 올리기 바람.”

- 조금 올리도록 하겠음.

지휘관의 답을 들으면서, 다시금 뒤를 살폈다.

최후미에 위치했기 때문에, 경계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보는 게 아니었다.

드론 운용 팀으로부터 새 정보가 들어온 탓이었다.

바로 박격포 운용 병력의 이동.

그것도 사륜구동 ATV, 일명 사발이를 타고 출발했다고 했었다.

최소 인원은 7명.

나머지는 반대편으로 도망갔는데, 중요한 건 지금 접근 중인 놈들이었다.

드론이 추적 중이라고는 하는데, 중간에 나무 따위에 가려져서 모든 경로를 따라붙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무전이 올 때마다 정보가 조금씩 빠져 있었다.

예컨대 확인된 ATV의 갯수라던가, 탑승 인원들의 무장이나 행동 상태 등등.

개중 확인된 것들만 알려 주는 것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치직.

무전음 뒤로 드론 운용 팀의 목소리가 전파됐다.

- 화물선 정지 후 타깃 하선 중!

“……?!”

눈이 확 뜨였다.

이동 중일 ATV에 대한 소식일 줄 알았더니, 한쪽으로 미뤄 놨던 단어들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화물선과 타깃, 하선.

섬에 들어와서 밤새 대기하게 만든 이유였고, 또한 원인이었다.

정확히는 북한의 핵 개발 연구원 사살 및 체포.

가능하다면 잡아가야 하지만, 어렵다면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여야만 했다.

상황이 어려워도 시도해야만 했다.

무사히 보내선 안 됐다.

단순히 임무라서, 주어진 목표라서 집착하는 게 아니었다.

연구원이 무사히 가게 되면, 피칼의 핵전쟁도 속도가 붙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애써서 고생하고 노력한 보람이 없었다.

결국에 죽게 될 테니까.

그걸 조금이라도 늦춰야 하는 만큼, 저 북한 연구원을 잡아야만 했다.

고조되는 감정을 추스르며 무전했다.

“거리 및 위치, 상세한 상태 전달 바람.”

- 잠시 대기 바람.

드론 운용 팀의 답변 뒤로 바로 현장 지휘관을 호출했다.

“…요청 사안 있음. 기존 타깃 제거 보조 가능한지?”

- …잠시 대기 바람.

주춤하는 듯한 그리고 드론 운용 팀과 같은 대답이 넘어 온 뒤.

잠시 뒤 원하던 정보가 들려왔다.

죽여야만 하는 타깃에 대한 구체적인 소식이었다.

- 아군 위치에서 북동쪽 4㎞ 해상에 위치해 있고, 모터 보트로 하선하고 있음. 예상 목적지는 북북동에 위치한 중국발 화물선으로 보임.

그 말에 지휘관에게 빠르게 무전했다.

“에코 10, 일시 정지. 타깃 확인하겠음.”

거의 동시에 저격 소총을 들어서 드론 운용 팀이 알려 준 지점을 확인했다.

북동쪽 4㎞ 지점.

살피는 사이에 목 끝까지 욕이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보면서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너무 멀어서 저격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물론 모르진 않았다.

스코프의 렌즈를 통해 직접 확인한 결과가 크게 와닿았을 뿐.

한계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MK.20의 부품을 몇 번 바꿀 정도로 사격을 해 봤기 때문이었다.

오늘 쏜 2.5㎞가 한계였다.

거기서는 1~2M를 늘리는 것조차 아주 어려웠다.

애초에 내가 개인적으로 정해 둔 2.5㎞라는 한계부터 총기 유효 사거리를 한참이나 넘어갔다.

총기 설명서에 나온 적정한 유효 사거리는 1,000M에 불과했으니까.

결론적으로 나는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면 바로 조준하고 사격했겠지만, 4㎞ 바깥의 타깃은 초고배율 스코프로도 확인하기 어려웠다.

화물선만 간신히 보일 뿐.

결론은 하나였다.

사정거리 안에 들어올 때까지 따라가서 죽여야 한다는 것.

결심과 함께 재빨리 무전했다.

“범고래, 여기는 에코 10. 퇴출 과정에서 따로 타깃 추적 가능한지, 혹은 제거 계획 있는지 답변 바람.”

그리고 대답을 기다리면서 다시금 후방을 살필 무렵.

예상치 못한 말이 들려왔다.

- 에코 10, 여기는 서재입니다.

“……?”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서재는 오늘 작전 중에 한 번도 말해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던 통신 음어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모르진 않았다.

투입 전에 모든 통신 음어를 확인했었으니까.

그래서 무엇인지도 금세 깨달았다.

지휘부였다.

현장 지휘관이 아닌, 미국 본토,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미합중국 합동 특수전 사령부(Joint Special Operations Command).

서재는 내가 말할 필요가 없는, 그래서 말하지 않았던 음어였다.

그리고 지금, 내가 그곳과 직통으로 연결된 것이었다.

왜 그런지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그럴 만한 이유는 충분히 있었고, 지금 중요한 건 하선 중인 타깃이기 때문이었다.

- 에코 10, 지금부터 에코 팀을 분리하며, 현장 작전 팀이 에코 팀을 보조하겠습니다. 에코 팀 팀장은 기존대로 에코 1이 하겠습니까, 아니면 에코 10이 갖겠습니까?

“…….”

뒤를 경계하다가도 주춤하고 말았다.

데브그루 1개 스쿼드론이 우리를 보조하고, 우리가 주가 된다는 뜻으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나한테는 제이크의 팀장 자리까지 갖겠냐고 묻고 있었다.

사뭇 신기했으나, 그럴 생각은 없었다.

악조건을 내 특성으로 극복할 뿐, 현장 판단이 제이크만큼 뛰어나진 못한 탓이었다.

물론 작전 내용이나 맵을 다 알고 있긴 해도, 산전수전을 다 겪은 델타포스의 베테랑을 대신하는 건 불가능했다.

경험 면에서 나는 햇병아리에 불과했고, 그도 나 못지않게 실력이 뛰어났다.

지금도 나한테 가려져서 조용할 뿐, 상황만 벌어지면 괴물 같은 실력을 보일 사람이었다.

현역 데브그루 팀을 씹어 먹고 남을 정도로.

이에 늦기 전에 얼른 대답했다.

“그건 기존대로 하고, 일단 타깃부터 잡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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