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늦은 저녁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프 필드(Pope Field), 미합중국 합동특수전사령부(Joint Special Operations Command).
회의실의 분위기가 크게 흔들렸다.
전투복에 박음질된 지휘관의 별도 호흡을 따라 오르내리길 잠시.
곧이어 목소리가 무겁게 내리 깔렸다.
“…장관님께 연락드리고 상황 보고하게.”
별을 단 지휘관조차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스크린 속에 펼쳐진 상황이 그의 재량을 벗어나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기 때문이었다.
바로 적 저격수 매복과 박격포의 등장.
그것도 갑작스러운 조우가 아닌, 군사 위성과 고고도 무인 정찰기를 피할 정도로 꼼꼼한 위장 속에 있었다.
한마디로 함정이라는 의미.
그 가운데 있던 작전 팀은 전멸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아니, 상황만 보면 죽는 게 자연스러웠다.
당연히 몰살당해서 1분 안에 모든 통신이 두절되어야 했다.
즉, 지금 작전 팀이 살아 있는 건 신의 은총이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는 기적이었다.
‘하느님께서 리를 보내 주셨군…….’
냉담 신자였던 지휘관이 오랜만에 신을 찾는 사이.
지시를 받아서 급하게 연락했던, 펜타곤에서 파견되어 온 영관급 장교가 목소리를 냈다.
“장관님께서 제13안을 명령하셨습니다!”
“…진행하게.”
지휘관이 주춤했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제13안을 하게 될 줄 몰랐을 뿐.
그러나저러나 어쨌든 진행되어야만 했다.
애초에 발각, 실패, 퇴출, 사망 등의 안 좋은 단어들이 언급될 때 실행하도록 수립된 작전이기 때문이었다.
목적과 내용은 간단했다.
이중 작전의 변환. 그리고 아군 구출 및 적 섬멸을 위한 필요한 모든 자원 가용.
굳이 국방부 장관이 지시할 만큼 무거운 내용은 아니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그렇지 못했다.
상세한 자원 중 하나가 제7함대인 탓이었다.
이건 별을 달고 있는 지휘관이 함부로 언급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 안에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등 우호 국가의 자원을 대여 및 운용하는 방안이 있고, 어선으로 위장하거나 포섭한 보트를 다루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으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타릴 제도를 지도상에서 지워 버릴 만한 전력이 움직인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정말로 섬 몇 개를 지워 버릴지도 몰랐다.
명분은 충분했다.
테러범과 북한 핵 개발 연구원의 접촉.
그 두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혐오감은 미국 여론을 휘어잡을 정도로 대단했다.
실제로 핵 개발에 관여한 인력인지, 단순 잡부인지 구체적으로 파악하진 못했으나, 그런 것까지 고려할 이유는 없었다.
죽은 자는 말을 못 하니까.
진실 확인이 불가능한 만큼 반전론을 주장하는 언론사도 크게 떠들진 못할 것이었다.
말 잘못하면 시위대에게 사옥의 유리창이 죄다 깨질 테니까.
이윽고 지휘관의 눈밑이 거멓게 변했다.
마치 그림자가 앉듯.
‘일이 커지는군…….’
인도네시아의 공군기 F-5를 출격시키라고 명령할 때만 해도, 수습이 가능할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때만 해도 저격수만 몇 명 있는 줄 알았으니까.
한데, 오판이었다.
추가로 박격포가 드러나면서부터는 사타구니가 축축해질 정도로 식은땀이 났었다.
미래가 훤히 그려진 탓이었다.
이중 작전의 대상인 강태가 죽고, 거기다가 투입한 1개 스쿼드론의 데브그루 대원들이 전멸하는 장면이 상영되는 것 같았다.
강태만 아니었다면, 아마 그렇게 됐을 것이었다.
늘어지는 생각 뒤로 어느새 지휘관의 입꼬리에 미미한 헛웃음이 걸렸다.
작전의 근본을 돌아봤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이중 작전을 할 필요가 있나……?’
그의 고개가 좌우로 절레절레 저어졌다.
데려올 필요가 없다는 게 아니었다.
강태를 회유하기 위해서, 미군의 힘을 보여 주려는 발상이 틀렸다는 뜻이었다.
이미 강태는 인간을 초월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미군과 비교할 대상이 아니었다.
방금 언급된 제7함대가 일개 국가의 해군력을 넘어설 만큼 강력하다고는 해도, 강태만큼은 아니었다.
7함대든, 뭐든 과학과 자본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데, 강태는 아니었으니까.
그는 불가사의한 존재였다.
51구역이 아니라, 우주에서 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
스크린으로 송출된, 연락장교인 필립의 몸에 달린 초소형 보디 캠에 담긴 영상이 그 증거였다.
다시 떠올려 봐도 믿기지가 않았다.
비바람 속에서 서서쏴 자세를 취하더니 속사처럼 연달아 쐈었다.
마치 근거리 훈련용 마네킹을 쏘듯.
코앞의 적이라면 모르겠는데, 심지어 상대는 1.5㎞ 내외의 거리에 있던 저격수들이었다.
이것도 믿기지 않는데, 그다음이 더했다.
박격포병 6명 사살.
그보다 1㎞ 더 떨어진, 거의 2.5㎞ 내외의 적들을 사살한 것이었다.
보고하기로는 여섯 명을 제거했다고 했는데, 심지어 그 모든 게 주어진 30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
정확히는 15초 동안 격발하고, 나머지 15초는 확인 겸 대기했었다.
지휘관이 처음으로 신을 찾았던 순간이었다.
옆에 있던 영관급 장교도 마찬가지.
지금도 ‘신이시여.’ 하는 중얼거림이 어디선가 들려올 때였다.
“드론 팀에서 적 영상과 음성 탐지했습니다! 동시 송출 하겠습니다!”
상황병의 보고에 커다란 스크린이 분할되었고, 낮게 깔린 위장막과 박격포, 사람 몇 명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에 지휘관을 비롯한 인원들이 상체를 세우며 집중하다가 멈칫했다.
언어가 익숙지 못한 말이기 때문이었다.
영어도, 스페인어도 아니었다.
“…포르투갈어?”
“토, 통역병 데려오겠습니다!”
“전 부대에 긴급 전파해, 포르투갈어 사용자 당장 오라고.”
“알겠습니다!”
영관급 장교가 뛰어갈 무렵.
여태 조용히 있던, 목에 출입증을 걸고 있던 대외협력국장 로버트가 멈칫했다.
“……?!”
그 역시 포르투갈어를 알아듣진 못했는데, 중간에 나온 단어 하나를 알아들었기 때문이었다.
기본 회화 같은 게 아닌, 그가 가장 예민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였다.
‘바시카날!’
현재 대외협력국이 추적 중인, 지안드로 바시카날의 성이었다.
로버트의 눈매가 좁혀졌다.
‘장거리 무전이나 위성 전화를 하고 있는 건가?’
상황 여러 개가 그려졌다.
지안드로가 여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으니, 근거리에서 무전을 하고 있을 가능성은 적었다.
정보도 흘러나왔으니, 더 조심했을 게 분명했다.
고로 다른 지역에서 통화 중일 가능성이 높았으나, 추적한다고 해서 잡기는 어려웠다.
남미나 아프리카 따위를 거치도록 중계기를 조작하거나 전화 두 대를 맞대어 통화하는 아날로그적인 수법도 자주 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계산하는 사이.
“데려왔습니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고함 같은 목소리가 들이쳤다.
방금 뛰쳐나갔던 장교가 포르투갈 출신의 하사 한 명을 급히 데리고 온 것이었다.
동시에 지휘관이 그의 경례를 생략하듯 손짓하며 말했다.
“나오는 말부터 우선 통역해, 상황 설명은 사후에 해 주지.”
그 말에 들어왔던 하사가 주춤하며 목소리를 냈다.
“…씨발, 이게 무슨 개같은 경우야?”
“……?!”
갑작스러운 욕설에 그를 데려왔던 영관급 장교가 주춤하길 잠시.
하사의 말이 이어졌다.
“포격 방향에서 쏜 건 확실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빌어먹을 미군들이 땅굴을 뚫고 등장하기라도 했나?!”
지휘관의 말마따나 적의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었다.
하사의 입이 점점 더 바빠지기 시작했다.
“잠깐! 로드리고가 뭘 봤다던대?!”
“로드리고? 아직 살아 있나?”
“어, 아직 살아 있어. 방금 정신을 차렸어.”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포격 지점의 누군가가 이쪽으로 총을 겨눴다고…….”
“씨발, 무슨 개소리야? 투입 전에 약이라도 처먹은 거야? 아니면 뒈지기 직전에 환각이라도 보는 거야?! 저격수 부대라도 데려왔대? 말이 되는 소릴 해!”
“제기랄… 로드리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다시 말해 봐. 포격 지점에서 여길 쐈다고? 몇 명이… 한 명? 한 명이라고?!”
“씨발, 좆같은 소린 못 듣겠어. 그냥 내가 봐야 되겠어. 관측경 어디에 있어?”
“젠장, 안 그래도 죽었어. 빌어먹을 로드리고…….”
“그래서 관측경은?”
“네 쪽에서 3시 방향으로 6미터 앞에 보여? 머리 잠깐 들어 봐.”
“씨발… 나 죽으면, 내 몫은 둘째에게 줘라.”
“지랄하지 말고 갔다 오기나 해.”
그와 동시에 스크린 속에서 위장 전투복 차림의 사내가 다급하게 뛰었고, 흙바닥에 엎어지듯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몇 초간 잠잠하다가 다시금 포르투갈어가 나오고, 하사가 동시 통역을 이어 갔다.
“젠장! 포격 지점이 텅 비었어.”
“그거 말고 이 근처는? 저격수든, 타격대든, 뭐 보이는 거 없어?”
“없어! 아무것도 없다고! 이 씨발!”
“그럼 여섯 명이 어떻게 죽은 건데? 진짜 로드리고의 말이 사실이라고?”
“몰라, 씨발. 난 복수해야겠으니까, 같이 움직일 새끼들은 따라와.”
그 말에 지휘관의 미간이 구겨졌다.
“저 빌어먹을 새끼들이… 당장 관련 내용 작전 팀에 전파해! F5는 어디까지 왔어?!”
“도착 8분 전입니다.”
“8분… 생각보다 긴 시간일지도 모르겠어.”
중얼거리듯 말을 뱉은 지휘관의 얼굴이 흐려졌다.
화면 속의 위장막 아래서 사륜 ATV가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었다.
이번 작전을 위해 준비한 듯, 박격포를 실을 만한 적재함까지 달려 있었다.
지휘관이 새 명령을 내렸다.
“드론 팀에 전달해, 현장 지휘관 거치지 말고 리와 직접 소통하라고.”
“알겠습니다.”
상황병이 대답하고 움직일 무렵.
덩달아 로버트의 미간도 깊게 파였다.
그들이 아군을, 강태를 추적해서 그런 것만이 아니었다.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장비 때문이었다.
방금 등장한 ATV부터 이상했다.
단순 레저용을 개조한 게 아니라, 군용으로 쓰이는 전술용 ATV에 박격포 적재함을 설치한 것으로 보였다.
무엇보다 미군에서 쓰는 것 중 하나였다.
물론 테러범들도 미군 장비를 많이들 사서 쓰고 있긴 하지만, 그건 대부분 구형이었다.
영상 속의 최신 장비와는 달랐다.
설령 거래된다고 해도 어마어마한 고가에 거래되고, 그 과정에서 휴민트(Human Intelligence: 인적 정보)나 시긴트(Signal Intelligence: 신호 정보) 등의 수단을 거쳐서, 어떤 식으로든 관련 정보가 취득되어야만 했다.
테러의 징조였으므로.
한데 저만한 물건들이 적잖이 빠져나갔음에도, 로버트는 들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 작전도 일부 내용이 누설되듯 흘러와서 알아차린 게 더 많았고.
그리고 문제는 더 있었다.
장비의 유통.
그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장비를 취급하는 내부자의 침묵 혹은 용인이 필요했다.
즉, 어딘가에 또 배신자가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드러나지 않은 이들이 어떤 식으로든 반응할 것이라 예상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만한 함정을 파 놓고 강태를 잡지 못했고, 오히려 역으로 당했으니까.
내부자의 노출을 감수할 가능성이 있었다.
대개의 테러범이 그랬다.
수단이 안 통하면, 더한 수단을 쓰곤 했었다.
핵미사일도 같은 이유일 것이고.
이에 로버트의 미간에 더 깊게 주름이 새겨지는 사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이 추가로 들어왔다.
“타깃이 화물선에서 하선하고 있습니다!”
배를 갈아타기로 했던 핵 개발 연구원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지휘관이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빌어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