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격발하고 2초가 지날 무렵.
스코프 너머로 표적이 크게 흔들리면서, 머리 따위가 터져 나가는 장면이 보였다.
명중이었다.
“여기는 에코 10, 정남 쪽 1.8㎞ 타깃 다운.”
무전과 함께 반사적으로 총기를 수거하고 엄폐물 뒤로 몸부터 감췄다.
아직 적이 전부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열 차단 위장막까지 사용한다고 했으니, 저격수가 아니더라도 뭔가가 더 있을 가능성이 컸다.
고작 셋만 놔두기에는 땅이 넓었으니까.
이에 몸뚱이가 본능과 훈련으로 체득한 요령에 따라 반사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생각은 그렇지 기계적으로 반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따지자면 부정적인 쪽.
‘…이거 진짜 뒈질 뻔했네.’
나무조각인지, 탄환 파편인지, 뭔지 모를 거에 뺨이 긁혔고, 어느새 피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진 못했으나, 빗물과 다른 뜨뜻한 뭔가가 흐르는 느낌에 알 수 있었다.
피가 흐르는 거였다.
심하면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게 벌어졌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감안할 만했다.
훈련하다가도 어딘가에 쓸리고 멍이 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만큼 직접 피격되거나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지 않는 한 이런 건 부상도 아니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내가 격발하기도 전에 엄폐물로 쓰던 나무가 피격됐고, 그게 고작 한 뼘 거리에 있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상체를 든 직후, 2초 만에 파편이 얼굴로 날아왔었다.
거리상 탄이 날아오는 시간을 고려하면, 이쪽을 미리 조준하고 격발했다는 소리였다.
나처럼 즉각적인 조준 사격은 불가능할 테니까.
그 끝에 미간에 힘이 들어가고 말았다.
‘설마… 내가 타깃이라고?’
직감뿐만이 아니라, 정황 역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데브그루 요원과 영관급 지휘관 그리고 위관급 팀장들을 놔둔 채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쐈으니까.
만약 드론이 열 반응을 미리 감지하지 못했더라면, 혹은 방금 재수가 좀 없었더라면, 내 몸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을 수도 있었다.
물론 방탄복을 입고 있긴 했지만, 그것도 무적이 아닌 탓이었다.
AK 시리즈의 소총탄이 한계고, 그마저도 충격 흡수를 온전히 하지 못해서 피멍이 들거나 갈비뼈가 부러질 수도 있었다.
아니면 방탄판이 가리지 못하는 쇄골이나 옆구리, 하복부에 맞을 확률도 제법 있었고.
아마 오늘도 날씨만 좋았다면, 그랬다면 내가 피격됐을 가능성이 있었다.
아니, 아마 그렇게 됐을 것이었다.
빗나간 거리 자체가 고작 한 뼘에 불과했으니까.
급하게 격발한 것치고 솜씨가 좋았다.
말이 절로 나왔다.
“진짜 날씨가 살렸네…….”
그렇게 한숨 돌리고 다음 무전을 기다리는데, 옆에서 육성이 들려왔다.
“어, 얼굴에 피가… 괜찮습니까?”
짝꿍처럼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필립이었다.
그가 주춤하기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한번 확인 좀 해 주세요. 많이 심합니까?”
“아… 다행히 그렇진 않은데…….”
당황한 듯한 표정 뒤로 그의 음성이 조심스럽게 들려왔다.
“저기… 혹시, 진짜 다운시킨 게 맞습니까? 아, 의심하는 게 아니고… 저격 소총을 서서 쏘는 건 처음 봐서…….”
그렇게 묻는 필립의 얼굴에서 감정이 내비치는 것처럼 보였다.
놀라고 당황한 모습.
쏟아지는 빗줄기에 얼굴을 닦아 내던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가 터졌습니다.”
“머리가……?”
“아, 노리고 쏜 건 아닌데, 머리에 맞았더라고요.”
서서쏴 자세로 머리를 저격했다고 오인했을까 봐 얼른 말을 덧붙였다.
그건 나도 아직 어려운 부분이었다.
거리가 가까웠으면 아프리카에서 그랬듯이 손발을 따로 맞혀서 사로잡을 수도 있겠지만, 이곳 타릴 제도는 아니었다.
표적과 내 사이에는 무려 1.8㎞나 되는 거리가 있었다.
그건 운이 더해져야만 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머리가 아닌, 살짝 들린 사람 형체의 한가운데를 노리고 격발했었다.
탄이 바람에 흔들려도 신체 어딘가에 박히게끔.
물론 거센 돌풍이라도 중간에 만나면 빗나갈 가능성도 있어서, 그런 이유로 세 발이나 쐈었다.
다행히 세 발이 다 박혔고, 머리는 그중 하나였다.
그사이, 필립은 어느새 감탄하고 있었다.
“머리를… 역시…….”
오해하지 말라는 말을 덧붙이려는 사이, 동시에 무전이 들어왔다.
한번 전파됐던, 지휘관의 엄폐 및 대기하라는 말.
아까 들었던 내용이었는데, 그 안에 나를 지칭하는 통신 음어가 포함되어 있었다.
- …전원 엄폐하고 대기하도록, 20분 내에 지원군이 도착할 예정이며, 안전 확보 후에 퇴출한다. 에코 10도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격발하지 말도록.
“여기는 에코 10, 수신 양호.”
나를 걱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내 안위를 순수하게 염려하는 것보다는 엇나간 작전을 수습하기 위한 조치로 보였다.
그렇게 알겠다고 대답한 직후.
다시 무전 잡음이 들려오면서, 음성이 이어폰을 타고 들어왔다.
지휘관이 더 할 말이 있나 싶을 무렵.
황급히 들이치는 목소리에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예상치 못한 다른 내용이었다.
- 당장 퇴출해! 박격포 매복 확인!
“……?!”
눈이 확 뜨였다.
옆에 있던 필립도 마찬가지.
“바, 박격포?”
그의 입이 놀라 열리는 사이, 무전이 이어졌다.
- 북서쪽에서 박격포 5정, 운용 병력 15명 발견! 반대편으로 즉각 퇴출해!
“……!”
다른 의미로 눈이 뜨였다.
빗물에 젖은 목덜미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박격포 한 발의 살상 범위가 인근 수십 미터에 달하는데, 그게 무려 다섯 대나 있기 때문이었다.
탄이 몇 발인지는 몰라도, 인근 수백 미터가 초토화될 건 분명했다.
살려면 자동차 같은 운송 수단을 타고 이동하거나, 비트를 깊이 파고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개중 가능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지형에 고저가 있긴 해도, 굴곡이 완만한 데다가 주변에 산지라고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숨어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깊게 비트를 파 두진 못했었다.
적당히 필요한 만큼의 비트만 파 뒀고, 나무와 수풀을 은‧엄폐물로 삼아서 기다린 게 전부였다.
그 외에 숨을 곳은 마땅치 않았다.
방금 내가 사살한 저격수조차 조금 높은 위치에 있는 게 다였고.
즉, 정말 전사할 가능성이 코앞으로 왔다.
“씨발…….”
욕이 절로 나오는 순간.
“잠깐… 거리만 알면 박격포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갔다.
우리나라 같은 산지라면 포기할 만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박격포도 스코프에 잡힐 가능성이 있었다.
순식간이었다.
빠르게 무전을 쳐서 거리를 물었고, 드론 운용 팀으로부터 적과의 거리를 들을 수 있었다.
1.6마일, 약 2.5㎞.
아까 저격수를 죽인 것보다 무려 700M가 늘어난 어마어마한 초장거리였다.
여기 데브그루 저격수들조차 도전하지 못할 정도로.
그래서 이해도 됐다.
왜 퇴출하라고 했는지.
그러나 순순히 응할 생각은 없었다.
여기서 개같이 뛰어 봐야 포탄을 피하긴 어려우니까.
차라리 내가 해결하면 된다.
화물선에서 탄약 수백만 원어치를 소모하면서 끌어올린 감각을 여기 써먹어야 했다.
저격수를 사살할 때도 잘되긴 했지만, 중요한 건 지금이었다.
바로 스코프를 들여다봤다.
방향은 북서쪽, 거리는 약 2.5㎞ 지점.
확인하는 사이에 지휘관의 무전이 빠르고도 낮게 전파됐다.
- 전원 퇴출 준비. 기존 퇴출 루트 모두 취소하고, 남동쪽으로 즉각 이동…….
“범고래!”
퇴출을 명령하는 지휘관을 급하게 불렀고, 답이 오기 전에 말을 덧붙였다.
“여기는 에코 10, 타깃 확인! 저격하겠음!”
- 뭐라고?!
“시야에 타깃 들어오며 저격 가능함!”
- 그게 무슨… 정말 가능하다고? 전부 사살할 수 있나?!
“아마 될 겁니다.”
그 말에 제이크도 끼어들었다.
- 그는 가능합니다.
묵직한 말 뒤로, 멈칫하는 지휘관의 목소리가 건너왔다.
- 젠장… 30초! 더는 안 돼! 나머지는 퇴출 준비 지속해!
그 말을 듣는 순간.
터어엉─!
대답 대신에 바로 격발했다.
지휘관이 허락을 해 줬기도 하거니와, 드론 운용 팀이 말해 줬던 것들이 거의 다 보였기 때문이었다.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30초라는 시간이 짧아서 그런 건 아니었다.
적들이 준비하고 있던 탓이었다.
중간중간에 나무와 언덕 따위가 있어서 모든 게 보이진 않았지만, 박격포와 운용하는 병력의 발포 준비 과정이 눈에 잡혔었다.
더 간을 보거나 기다리다 쏘면 늦을지도 몰랐다.
거리가 가까우면 쏘자마자 맞겠지만, 지금 적과 내 사이에는 무려 2.5㎞의 지형이 펼쳐져 있던 탓이었다.
즉, 쏘고 나서도 3초 이상을 기다려야 된다는 소리.
터엉─ 터엉─ 터엉─ 터엉─!
빠르게 4회를 더 격발했고, 연이어 방아쇠를 더 당겼다.
아까 저격수를 쐈을 때처럼 빠르진 못했다.
한 명을 대상으로 연달아 쏘는 게 아니라, 총구를 조금씩 움직여서 10명이 넘는 인원을 조준해야 하는 탓이었다.
그렇게 잔탄을 모두 소비한 뒤.
“재장전!”
반사적으로 외치면서 탄창을 교환했다.
그리고 들여다본 스코프 안에서 드디어 반응이 보였다.
3초가 넘게 체공하며 비행한 탄이 그제야 적에게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도 다 볼 순 없었다.
쏘는 게 급했다.
내가 조준하고 쏜 것들은 절반도 채 안 됐다.
아직 쏴야 할 대상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연달아 방아쇠를 당기다가 멈추고 말았다.
“아…….”
몇 명이 피격되면서부터 나머지가 빠르게 은‧엄폐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발포를 준비하던 과정이 멈췄다.
다 죽이진 못했지만, 효과가 있었다.
이에 스코프로 다시금 훑는 사이, 밑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건너왔다.
“어, 어떻게 됐습니까?”
“30초 됐어요?”
“아, 아직… 15초 정도 남았습니다.”
“일단 15초만 더 봅시다.”
시간을 확인하고 더 살폈으나, 아무리 봐도 쏠 각이 보이질 않았다.
납작 엎드리거나 나무에 완전히 엄폐한 것이었다.
“범고래, 여기는 에코 10. 적 최소 6명 이상 사살했으며, 장전 과정 중단하고 엄폐한 것으로 확인됨.”
- …에코 10, 퇴출해도 되겠는지?
잠깐 멈칫하더니 지휘관이 내게 의견을 구해 왔다.
박격포 운용 병력이나 저격수가 사망했다는 걸 확인이라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아까와는 태도가 달라졌다.
나를 접대하려는 것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확인을 받으려는 것처럼 보여서 나도 나름의 판단을 내려서 답했다.
“일단 퇴출합시다.”
어차피 기다려 봐야 상황이 좋아질 것 같진 않았다.
물론 우리 쪽으로 지원군이 온다고는 하지만, 그 전에 적이 박격포로 기어가서 발포 준비를 마무리할 수도 있었다.
보다 중요한 건, 내 자리에서 모든 게 다 안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박격포도 두어 개는 반 정도 가려져 있었다.
그러자 곧 새로운 지시가 떨어졌다.
- 현 시간부로 모든 퇴출 루트 폐기하고, 남동쪽으로 급속 행군 실시한다. 후미에 에코 팀이 서고, 에코 10이 자의적 판단으로 저격하도록.
그 말에 쓴웃음이 났다.
타릴 제도에 올 때 스텔스 고속단정 대열의 한가운데 있던 때나 지휘부 근처에 배치한 것과 딴판이기 때문이었다.
가장 위험하고 중요한 걸 맡겨 놓은 셈.
이제야 나한테 걸맞은, 제대로 된 대우를 받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