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미식별 열 반응에 대한 보고가 들어오자마자, 데브그루 대원들이 거의 무조건반사에 반응하듯 움직였다.
파바바밧!
순식간이었다.
5시 방향의 적에 대항하기 위해 엄폐물을 바꾸어 자리를 옮겼고, 거의 동시에 총구를 겨누어 자세까지 잡았다.
그야말로 완벽한 대처.
그러나 중요한 건 연락 장교인 필립이 맡고 있던 강태였다.
그를 확인해야만 했다.
물론 돌봐야 할 대상이 아니라 알아서 할 만한 사람이지만, 관리 감독의 의무가 있는 필립으로서는 신경을 쓸 필요가 있었다.
이번 작전은 일반적인 PMC 용병 계약과는 다른, 강태의 포섭을 위한 이중 계약이기 때문이었다.
즉, 강태가 위험해서는 안 된다는 뜻.
필립이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강태를 보호하려 할 때였다.
강태가 돌격 소총인 HK416을 놓더니, 반자동 저격 소총인 MK.20을 들었다.
이 역시 눈깜짝할 새였다.
어깨에 메고 있던 것을 어깨에 똑바로 견착하면서 조준한 것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숙련되고 빠른 움직임.
놀라울 정돈 아니었다.
훈련소인 포트 브래그에서도 기본이 탄탄하다는 걸 확인했었고, 화물선에서도 사격 외에 반복적으로 해 왔던 훈련이 적 출현에 대한 대처였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돌격 소총이나 권총을 들고 있는 상황에서 저격 소총으로 바꿔 드는 훈련 등등.
그래서 필립도 잘 아는 그리고 익숙한 동작이었다.
하나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강태가 총기를 들자마자 바로 격발했다는 사실이었다.
터엉─!
동시에 MK.20의 후덥지근한 가스압이 빗줄기를 뚫고 필립의 피부로 확 찔러 왔다.
이제야 막 총을 겨누던 그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쐈다고?’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항해 응사할 수도 있었다.
중근거리에서의 교전이라면, 적의 자유로운 사격을 방해하기 위해 응사해도 좋았다.
그러나 지금은 단순 응사할 때가 아니었다.
저격이나 포격이 필요한 초장거리의 적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 순간이었다.
강태의 손에 들린 것도 저격 소총인 MK.20이었고.
이렇게 쏴서는 안 됐다.
최소한의 준비는 필요했다.
이곳은 포트 브래그처럼 익숙한 장소가 아니라 처음 온 무인도였고, 적의 위치 역시 대략적으로 들은 게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적이 아닐 수도 있었다.
어쩌면 현지 동물을 오인해서 미식별 열 반응이라고 했을 가능성도 적잖았다.
한데 이런 상황에서 강태가 조준 사격하듯이 쏜 것이었다.
심지어 한 발도 아니었다.
터엉─! 터엉─!
연이어 두 발의 총성이 더 울려 퍼졌다.
이제야 적의 방향으로 총을 들고 있던 필립으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보이지도 않는, 5시 방향 1.6㎞의 어딘가를 향해 서서쏴 자세로 격발한 게 여전히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날씨 역시 비바람이 몰아치는 악조건이 아니던가?
물론 강태의 실력을 모르진 않았다.
4주간 포트 브래그에서 봤던 모습이 대단하다는 것도 잘 알았다.
다만, 지금 같은 장면은 필립이 전혀 본 적이 없어서, 강태가 이중 작전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당황하고 있었다.
그가 가진 상식과 통념의 벽을 넘지 못한 채 멈칫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강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타깃 다운.”
가까이 있던 필립이 강태의 육성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
그걸 무전으로 들은 작전 팀 지휘관과 넓게 포진하기 시작한 수십 명의 데브그루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반복 훈련과 본능 덕분에 시선을 돌리지 않고, 각자 맡은 방향을 수색할 뿐.
놀란 말이 여과되지 않고 터져 나왔다.
- 뭐, 뭐라고?
- 타깃?! 그게 적이었다고?
- 씨발, 무슨 소리야? 제대로 설명해 봐!
목소리가 일순간 무전을 타고 강태의 귀에 들이치고, 이에 답하려던 순간.
- 남서쪽 0.8마일 위치에서 적 발견! 반복한다. 3시 방향 0.8마일 위치 적 발견! 열 차단 위장막을 사용한 저격수로 보이며…….
드론 운용 팀의 말이 그사이로 끼어들었다.
거의 동시에 해당 방향의 데브그루 요원들이 방금 그랬듯 다시금 신속하게 움직였다.
동시에 눈에 긴장과 열기가 담겼다.
미식별 열 반응이 적, 그것도 저격수가 됐기 때문이었다.
물론 강태의 말을 다 믿진 못하면서도, 배운 대로 그리고 반사적으로 전투를 준비하는 순간.
작전 팀 지휘관이 대신 입을 열었다.
“에코 10, 타깃 다운 한 명을 의미하는 게 맞는지 답변 바람.”
이중 작전을 이끌고 있는 그도 필립과 마찬가지로 전부 믿지 못하고 있었다.
워낙에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리고 반응이 돌아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소리로.
터어엉─!
아까와는 다른 한 발의 총성이었다.
비에 젖은 전신의 근육이 잠깐 수축되는 사이, 이내 무전을 타고 강태의 음성이 돌아왔다.
- 타깃 다운. 현재까지 총 2명 사살함.
“……!”
데브그루 요원들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이중 스파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총성이 또 울려 퍼졌다.
아까와는 다른, 멀리서부터 들려온 소리였다.
터엉─
적습이었다.
“저격이다!”
“정남 쪽! 정남 쪽이야!”
“다친 사람은 없나? 각자 동료 확인해!”
누군가 외치는 소리를 기점으로, 다들 급하게 움직였다.
다행히 맞은 사람은 없었다.
빠르고 신속한 보고 끝에 작전 팀 지휘관이 명령을 하달했다.
“전원 엄폐 후 대기! 지원 요청하겠다!”
날씨나 거리 때문에 피탄될 가능성이 크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몸을 드러내선 안 됐다.
아직 적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모르는 데다가, 재수 없게 탄에 맞아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예정된 지원 병력도 있었다.
인도네시아 공군에서 소유한 F-5 전투기 2대.
그걸 가져온다고 했었다.
작전 팀 지휘관도 구체적인 얘기를 듣진 못했지만, 대략적인 방법은 짐작하고 있었다.
바로 시험 비행.
미군과 인도네시아군 간의 합동훈련이 예고되어 있고, 미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이 기체 확인차 자바섬에 들어온 만큼 이륙과 미사일 발사도 어렵지 않게 이뤄 낼 것이었다.
그 뒷수습도 번거로울 건 없었다.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미 국방부나 국무부가 쩔쩔맬 일도 없을 테니까.
‘자바섬에서 여기까지 20분 정도면 되겠지.’
시간을 가늠하며 그 역시 머리를 감춘 채 지원 요청을 할 무렵.
강태도 다르지 않은 자세로 숨어 있었다.
‘아… 거리만 알면 되는데.’
당장 일어나서 격발하고 싶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정남 쪽이라는 사실만 알려졌을 뿐, 이번에는 드론 운용병의 정보가 따로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적을 찾겠다고 일어나면, 오히려 표적이 될 가능성이 컸다.
물론 공격하고자 고개를 드는 순간 모습이 드러날 확률이 높지만, 그것도 감안할 수 있었다.
스코프로 적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쏠 수 있으니까.
물론 수풀에서 볼 수 없는 렌즈 반사광이나 총기의 이질적인 표면을 찾아내야 하는 숙제가 있긴 하나, 그것도 어렵지는 않았다.
포트 브래그를 포함해, 온갖 사격장에서 해 왔던 훈련들이 전부 그런 쪽으로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격이 완벽함에도 사격 훈련을 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이에 탄창을 갈고, 드론 정보를 기다릴 무렵.
다행히도 정남 쪽의 적까지 정확하게 알아내어 알렸고, 이번에도 강태가 총을 들면서 일어났다.
스윽.
할 일은 분명했다, 스코프를 들여다보고 쏘는 것.
이에 접안하는 때였다.
파앗─!
나무가 피격되고, 껍질 같은 게 강태의 얼굴을 할퀴고 지나갔다.
저격이었다.
뒤이어 총성이 울리고, 가까이 있던 필립이 화들짝 놀라는 사이.
스코프 너머를 내다보던 강태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찾았다.’
확인하자마자, 검지가 방아쇠를 눌렀다.
한 번이 아니었다.
터엉─ 터엉─ 터엉─!
흡사 속사 같은 3회의 사격.
혹시라도 빗맞을까 봐, 그래서 추가로 더 격발한 것이었다.
소음기를 거친 묵직한 총성이 울려 퍼지면서 강태의 눈은 스코프 너머의 표적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좀 더 멀었기 때문이었다.
약 1.8㎞.
날씨가 좋으면 쉽게 맞히겠지마는, 비바람이 거세서 완전하게 확신할 순 없었다.
조준은 완벽하더라도 돌풍 한 번에 방향이 틀어지고, 동시에 1㎜정도 몸 옆으로 스쳐 갈 가능성도 있었다.
이에 눈매를 좁히던 순간.
곧 결과가 드러났다.
* * *
욕설을 뱉은 브라질 BOPE 출신의 불법 용병 저격수가 급하게 재조준을 했다.
조금이라도 표적이 확보되면 사살하려고.
한데, 이어진 장면에 움찔하고 말았다.
죽여야 하는 아시안, 강태가 돌연 반대편으로 총구를 겨누었기 때문이었다.
몸통이나 머리가 제대로 보이진 않았으나, 나무 옆으로 선명하게 나온 팔과 총기 때문에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순, 이를 지켜보던 눈에 불안감이 스쳐 갔다.
“……!”
강태가 겨눈 곳이 동료가 매복한 위치였기 때문이었다.
설마 하는 순간.
묵직한 총성이 빗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다.
터어엉─
단 한 번이었다.
당연하게도 저 격발에 아군이 죽었을 가능성은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양각대를 펼치고, 거치해서 집중한 후에 격발해도 모자란 판에 그냥 서서 쐈으니까.
상식적으로 무모한 행위가 분명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격수는 멈칫하면서 무전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주춤하며 목소리를 내고 기다리길 잠시.
금세 깨달았다.
답은 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영영 오지 않을 것임을.
저격수의 입이 벙긋했다.
한숨도,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 바닥에서 10년이나 버틴 베테랑 용병이 저런 말도 안 되는 총알 한 발에 생을 달리한 탓이었다.
그것도 둘이나.
5초, 길어야 7초 정도 되는 틈에 다 죽었다.
남은 건 그 자신뿐.
“이… 이런 미친……!”
그가 비속어를 뱉으면서 다급하게 스코프를 들여다봤다.
어떻게든 강태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었다.
허망하게 보낸 둘의 목숨값을 받아 내야 했다.
그리고 들여다본 순간.
“……?!”
눈동자가 흔들렸다.
강태가 이쪽으로 총구를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참으로 바라던 순간이었다.
여태 나무에 가려져 있던 상체 일부와 머리가 드러났으니까.
그러나 동시에 두려워하고 있었다.
곧 죽을 것 같다는 예감이 그를 엄습한 탓이었다.
까득.
그가 이를 갈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갑작스러워서 안 맞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됐으나, 어쩔 수 없었다.
늦으면 쏘지도 못하고 죽을 테니까.
이에 황급히 탄을 재장전하는 순간, 탄이 빗맞는 걸 두 눈으로 목격했다.
여태 강태를 가리고 있던 그 나무에 맞은 것이었다.
“씨발… 포격! 포격해! 당자아아앙……!”
무전을 켜고, 박격포 운용 병력에게 고함을 지른 순간.
콰직─! 퍼억! 퍽!
부서지고 끊어지는 소리가 나면서 사내의 몸이 세 차례나 크게 흔들렸다.
어깨와 쇄골, 머리가 차례로 터져 나간 것이었다.
상체를 지지하고 있던 팔꿈치가 좌우로 벌어지면서, 살짝 떠 있던 가슴과 머리가 그대로 흙바닥 위로 떨어졌다.
철퍼덕.
그 소리를 끝으로 저격수에게서 더 이상의 움직임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