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프 필드(Pope Field), 미합중국 합동특수전사령부(Joint Special Operations Command).
목에 방문증을 건 대외협력국장 로버트는 바쁜 국방부 장관을 대신해서 자리한 포트 브래그의 지휘관을 비롯한 소수의 영관급 실무진들과 함께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특별한 게 보이진 않았다.
그저 12시간의 시차로 인해 한밤중인 남중국해의 바다만 보여 줄 뿐.
적외선으로 촬영 중이었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비가 온 탓이었다.
그것도 추적추적 내리는 게 아니라, 높은 파고를 만드는 바닷바람까지 있는 세찬 비바람.
당연하게도 작전에 차질이 있었다.
촬영 중인 카메라만 해도 빗방울이 계속 묻어서, 그걸 닦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상태였다.
심지어 강우량도 줄어들지 않아서 소형 보트 접근까지 다시 논의됐다.
가다가 배가 전복될 가능성도 있었으니까.
‘쉽지 않겠어…….’
로버트의 시선에 염려가 묻어났다.
그러나 입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진 않았다. 보이는 것처럼 허술하지 않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화물선에 탑승한 건 미국의 일류 부대 중 하나인 데브그루였고, 컨테이너 안에는 화물 대신에 각종 전술 장비가 들어 있었으며, 배 바깥에서는 군사위성과 고고도 무인 정찰기가 작동하고 있었다.
웬만한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규모였다.
물론 장담할 순 없었다.
미군이 어디 가서 얻어맞고 다니진 않지만, 불의의 습격에 허를 찔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인은 많았다.
준비된 함정 혹은 실수 등등.
막말로 데브그루 대신에 대외협력국의 수행 팀이 사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었다.
애초에 위성과 정찰기로 못 보는 게 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에 타릴 제도로 직접 요원들을 파견해서 발로 뛰어서 찾아낸 통신 중계기가 그 증거였다.
그건 영상으로 찾아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가까이 가야만 알 수 있는 거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투입 전에 드론을 운용해서 위험 지역을 훑어보겠다는 건데, 악천후로 그것도 어려워 보였다.
로버트의 입이 금세 열렸다.
“비가 심각한데 드론 운용을 예정대로 실행할 수 있겠습니까?”
“…진행할 겁니다. 드론을 분실할 위험이 있어도 진행하라고 해 두겠습니다.”
지휘관이 잠시 멈칫하다가 대답했다.
그 역시 현장이 걱정된다는 이유로, 혹은 로버트 국장을 존중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로버트의 말을 웬만하면 들어주라고.
불가능한 수준이 아니면, 굳이 작전 진행에 차질을 빚을 이유가 없다고 했었다.
그만큼 지원도 어마어마했다.
이번 작전이 늘 진행하는 작전과는 다른, 이중 작전이기 때문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북한과 연계된 테러범의 제거라는 흑색 작전이었고, 다른 하나는 강태의 회유와 확보였다.
이 사실을 아는 건 미군에 단 네 명뿐이었다.
현장에서 팀을 지휘하는 작전 팀 지휘관과 강태를 관리하는 연락장교 필립 그리고 국방부 장관, 지휘 통제실에 있는 그 자신까지.
사람 한 명을 데리고 온다는 이유가 가당찮아 보이나, 그게 아니라는 것도 잘 알았다.
강태의 과거 영상을 보고, 실제로 참관하면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진짜 인간 병기가 실존한다는 것을.
그런 이유로 지휘관 역시 이번 이중 작전을 각별히 신경 쓰고 있었다.
심지어 그의 윗선인 국방부 장관은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다소 무리한 기밀 계획까지 세워 놨었다.
필요할 경우에는 적이 뭐든 싹 다 날려 버릴 수 있도록.
이는 지휘관만이 아니라, 강태의 책임자인 로버트까지 아는 사실이었다.
바로 F-5 출격.
인도네시아 자바섬(Pulau Jawa)에 F-5 전투기 2대가 일시에 출격할 수 있게 준비되어 있었다.
당연히 그 사실도 기밀 처리 되어 있었다.
공개된 거라고는 미국과 인도네시아가 합동 군사훈련을 앞두었고, 원활한 훈련을 위해 미 공군 F-5 전투기 조종사들이 시험 비행 하도록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뿐.
그리고 필요시에는 한계 속도인 마하 1.5의 속도로 작전 지역까지 20분 내에 도달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장전해 둔 공대지미사일 2발을 쏴서, 뭐가 됐더라도 초토화할 터.
‘최악의 상황이 되기 전이라면… 아시안이 그걸 목격해도 나쁘지 않겠어.’
미군만이 보여 줄 수 있는 위력이었다.
대외협력국 같은 작은 첩보 조직이 보여 줄 수 없는 화력일 터.
그 생각 끝에 지휘관이 말 몇 마디를 덧붙였다.
“지켜보시죠, 미군이 어떤지.”
* *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 본관.
대북, 해외 담당인 제1차장이 조범용이 제출한 이강태에 대한 보고서를 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보고서 내용이 부실하거나 틀려서 그런 게 아니었다.
불쑥, 생각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의심만 해 왔던 것들이 정리된 것이었다.
마치 퍼즐이 맞춰지듯.
‘이거 미군하고 엮였구나.’
그의 시선이 다른 파일철에 닿았다.
미군이 요청한 협조에 따라서, 신속하게 수립된 북한 침투 및 퇴출 지원에 대한 계획이었다.
국가정보원과 정보사령부가 지원하고, 미군이 주축이 될 작전.
목적은 핵 개발 관련 첩보 파악이었다.
기밀로 취급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라 그 외의 인원이나 장비, 구체적인 일시 같은 건 전혀 없었고.
있는 거라고는 협조를 요청한 날짜 그리고 폐기해 달라고 한 날이 전부였다.
한데, 그 타이밍이 너무나도 기가 막혔다.
‘마침 이강태 스케줄하고 딱 맞는다?’
이강태의 입출국 기록과 미군의 요청 날짜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러자 그간 조범용이 올렸던 보고서를 비롯해, 작년에 벌어졌던 일들까지 확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이 많아서 흐릿했기에, 아직 앞에 서 있던 조범용을 쳐다봤다.
“당신 말이야, 작년에 독일 다녀왔던 보고서에 내용 보완한 거 있지?”
“네, 있습니다.”
제1차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일단 대답부터 한 조범용이 얼른 썼던 것을 떠올렸다.
애초에 추가된 내용이 몇 줄 안 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독일에서 한 게 별로 없었으니까.
그저 강태를 만났고, 그가 미국에 귀화했다는 진술만 받아 왔을 뿐.
추가된 건 잡담이었고, 한 줄짜리 의견이었다.
“미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도 귀화를 권유했다는 것처럼 말했고… 실제로 독일인이 다녀가거나 영어로 된 전화 통화 했었다고, 그렇게 추가했습니다.”
“지미럴…….”
돌연 나온 욕설에 조범용이 움찔했다.
“진짜였어? 그 사신 어쩌고 한 게?”
아프리카에 있었던 소문을 말하자, 조범용도 그제서야 머리를 굴렸고, 뒤늦게서야 말뜻을 이해했다.
“그럼 지금, 진짜라는 말씀은 이강태가…….”
조범용이 말을 잇는 와중에 제1차장이 적절한 단어를 뱉어 냈다.
“…일기당천(一騎當千).”
제1공수특전여단 정문에 있던, 지금은 부대 안으로 옮긴 돌에 적혀 있던 말이었다.
한 사람의 기병이 천 명의 적을 능히 상대한다는 뜻.
그게 비유가 아닌, 사실이라는 소리였다.
제1차장의 눈가가 구겨지고, 조범용의 눈은 확 뜨였다.
‘인간 병기, 생체 실험, 뭐 그런 건가? 그래서 미국에 갔나?!’
너무나도 믿기 힘든 말이라서 무시했던 소문들이 뒤늦게서야 떠올랐다.
그러자 여태 놓치고 있던 아귀가 들어맞았다.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에서 강태와 관련된 첩보를 획득했고, 한국은 가장 늦게 알아챈 것이었다.
그것도 강태에 대한 실질적인 영상이나 자료 같은 것도 없이.
북한이나 국내 문제는 최고로 치지만, 국제 분야에서는 턱없이 뒤떨어지는 현실이었다.
‘그럼 방법은… 아니, 이걸 알았다고 뭘 할 수 있나? 이미 미국 놈인데? 어떻게 할 순 없고, 그냥 미국이나 이강태가 손 내밀 때까지 기다려야 하겠는데? 그럼 하던 것도 다 멈춰야 하겠고…….’
조범용이 놀라우면서도 비참할 만큼 당황스러운 상황에 고민할 무렵.
제1차장이 비슷한 답을 내놨다.
“하던 거 손 떼.”
“손 떼라는 말씀은…….”
“괜히 들쑤시지 말고, 연락처, 소재지 업데이트하고, 근황만 정기 보고 해.”
제1차장이 아직 인상을 펴지 못한 채로 말했다.
그도 나름의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강태가 대단하다는 걸 알게 됐으나, 한국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강태는 한국이 건들 수준이 아니었다.
그저 기다려야 했다.
* * *
- 전원 집합, 작전 하달하겠음.
기다리던 명령이 떨어졌는데, 조타실을 나가다가 주춤하고 말았다.
비가 때려 댈 정도로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빗방울에 맞으면 아플 정도.
심지어 한밤중이라서 시야는 당연히 확보하기 어려운 수준인데, 거기에 더해 목소리까지 잘 들리지가 않았다.
쏴아아아아아아―
그냥 빗줄기 쏟아지는 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필립이 집합 장소인 큼직한 컨테이너로 안내했다.
끼익, 비를 맞아 가면서 필립과 함께 문을 열자, 예상외의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오…….”
저절로 감탄까지 나왔다.
컨테이너를 때리는 소리가 드럼 두들기듯 들릴 텐데, 그런 게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약간의 소음만 있을 뿐.
심지어 공기 순환까지 되는지 내부는 쾌적했고, 환한 등까지 달려 있어서 도심 한가운데의 사무실에 있는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
물론 배가 흔들릴 때마다 배 속이 울렁거려서 아니라는 것도 잘 알았다.
비가 거세게 내리는 만큼 파도도 거셌다.
이에 중심을 잡으며 서는 사이, 어느새 인원이 다 모이자, 세부적인 작전 내용이 전파됐다.
예컨대 이동 일시, 침투 순서, 행동 요령 등등.
그 끝에 제이크가 입을 열었다.
“보트 운용이 가능하겠습니까?”
나도 물어보려던 거였다.
잘못하면 전복돼서 탑승 인원이 싹 다 수몰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땅에서 특화된 특전사라서 IBS 보트를 얼마 안 탔기에 다 알진 못하지만, 적어도 바다가 위험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거의 동시에 지휘관의 입이 열렸다.
“운용 가능한 소형 스텔스 고속단정을 이용할 겁니다.”
“…그게 뭡니까?”
처음 듣는 얘기였다.
내가 아는 건 IBS 보트나 RIB 고속단정 같은 한국에서 많이 쓰이는 보트가 전부여서 그랬다.
한데 소형 스텔스라니?
“마침 준비해야 하니, 직접 가서 보면 됩니다.”
그 말에 안내를 받아 움직였다가, 주춤하고 말았다.
깜깜한 화물용 컨테이너 안에 평소 보기 힘든 디자인의 보트가 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출된 부분이 없는, 모든 부분이 다 덮인 반잠수정 같은 모습.
미래형 디자인이라고 보면 될 만한 모습이었는데, 네이비씰 출신인 호세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와… 이건 정말 신기하군요. 전역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이런 게 나오는 겁니까?”
“올해부터 실전 배치가 이뤄졌습니다.”
“오, 그럼 우리가 신상을 쓰는 셈이군요?”
호세의 너스레 뒤로, 데브그루 요원들이 들어가서 결박되었던 쇠사슬을 풀었고, 유압식 이동용 크레인을 가져와 옮겼다.
그리고 보트를 내리기 위해 난간에서 다시 작업할 무렵.
다시금 작전 팀 지휘관에게서 말이 건너왔다.
나를 한 차례 쳐다보고, 팀장인 제이크를 향한 말이었다.
마치 같이 들으라는 듯한 모습.
“현재 드론 운용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현장 확인이 진행될 예정이고, 도착할 즈음에는 위험 지역의 파악이 끝날 겁니다.”
“그럼 이 날씨에 드론까지 날린다는 겁니까?”
“네, 악천후의 기상을 고려해서 운용 훈련을 했고, 기체 역시 직접 타격이 아닌 한 비행이 가능할 정도로 개발되었습니다.”
흡사 군용 장비 박람회라도 하는 듯한 말이 나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화물선에서 하선해서, 소형 스텔스 고속단정으로 갈아타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내부는 그리 낯설지 않은 디자인이었다.
군용에 알맞게 단순하고 투박한 모습.
그래도 기능성에 초점을 맞춘 듯, 앉거나 붙잡고, 총기를 거치하는 부분들이 아주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뻑 갈 정도로 좋긴 하네…….’
10년만 어렸으면 눈이 돌아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무렵.
소형 스텔스 고속단정이 출발했다.
우리 G&G Corp TF는 행렬 중간에 호위받듯 낀 상태.
접대받는 게 분명하다고 느낄 무렵, 오래지 않아서 조종하던 데브그루 대원이 도착을 알렸다.
고속단정 역시 완전하게 멈췄고.
뚜껑 같은 문을 열고 내린 뒤 새까만 타릴 제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깨달았다.
야간인 데다가 비가 내려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야투경을 통해 보이는 광경이 너무나도 익숙하단 것을.
지난 1년간 게임을 하지 못했지만, 기억과 느낌만큼은 여전했다.
바뀐 스토리에 신경 쓰지 않아서 미처 인지하지 못했을 뿐, 돌아보니 지형지물이 자연스럽게 읽히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유리한 게 하나는 더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