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어?!”
임시 캠프의 군인들을 본 호세의 눈이 동그래졌다.
전투복에 달려 있던 각종 패치를 제거했음에도 소속이 어디인지 한눈에 알아봤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제대로 된 해군 출신들을 만나는군.”
미합중국 해군특수전개발단(U.S Naval Special Warfare Development Group), 일명 데브그루(DEVGRU)로 축약해불리거나 씰6팀으로 알려진 해군에서 발로한 1티어 특수부대.
빈라덴을 사살하면서 유명세를 타고, 과거에는 호세가 지원했다가 부상으로 떨어진 부대였다.
심지어 용병 생활하면서 거의 만나지 못했던 이들.
“씰6? 이거 정말 반갑군요. 호세 페레즈입니다. 씰에 있다가 4년 전에 전역했었죠.”
호세가 자연스럽게 다가가서 장비를 점검 중인 씰6팀에 융화되듯 섞여 들었다.
이를 바라보던 강태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어린애 같네…….”
“뭐라고 한 거예요?”
곁에 있던 레이첼이 강태에게 물었고, 빈 탄창에 삽탄하던 강태가 어깨를 으쓱했다.
“별거 아닌데… 음, 아마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비슷할 겁니다.”
“호세가 아이처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맞나요?”
“예, 정확하네요.”
“푸흐흐, 호세가 많이 행복해 보이네요. 정말 동료라도 만난 것 같네요.”
“맨날 해군 해군거렸으니까…….”
“그러고 보니 G&G에 들어온 이후로 씰6팀은 처음 보는 것 같네요.”
그 말에 강태가 생각난 게 있다는 듯 물었다.
“아, CIA에서는 씰6팀하고도 작전 많이 했죠?”
“네, 여러 번 했었어요.”
“확실히 세긴 세죠?”
“언론을 유독 많이 타긴 했지만, 평가절하 하기에는 아주 강력한 무기죠. 그런 면에서 이번 작전을 미군이 꽤 신경쓴 것처럼 보여요.”
“미군이?”
“네, 공들인 흔적이 보여요. 작전이나 장비, 우리 팀에 붙은 연락 장교도 그렇고…….”
그러면서 레이첼의 시선이 총기와 탄약, 그 외의 장비를 거쳐서 필립까지 바라봤다.
말처럼 신경 쓴 모습이 보였다.
용병들에게도 일괄 지급한 장비가 최신형에 고성능이었으니까.
마찬가지로 시선을 따라가던 강태는 그만 주억거렸다.
겉보기에는 알겠다는 의사 표현과 다를 게 없었으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레이첼이 말한 공들인다는 표현이나 연락 장교인 필립의 존재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로비.
얼마 전에 필립이 전화를 걸어서 작전이니, 지휘권이니 떠들더니, 오늘은 각별히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방금 작전 선택권을 준 것도 마찬가지.
‘…작전 하는데 사바사바라도 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정확하지 않아서 확신 대신 의심하는 사이.
그쪽을 보던 필립이 멈칫했다.
이상하게 표정이 안 좋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필립의 입이 자연스레 열렸다.
“리, 오늘 좀 어때요? 괜찮습니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이중 작전의 목적 중 하나가 강태였으니, 각별히 신경 쓰는 것이었다.
필립이 여기 있는 이유도 오직 그것뿐이었고.
다행히도 강태가 괜찮다는 대답을 하긴 했으나, 필립은 그의 말과 억양을 상기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주변까지 돌아보고 있었다.
포트 브래그에서 강태만 상대했을 때와 달리, 지금은 그의 곁에 동료들이 무려 다섯이나 추가됐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들이 누구인지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공개 가능한 신상명세는 한국에 입국하기 전에 미리 암기해 뒀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건 관계였다.
예컨대 사이가 얼마나 가까운지, 강태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되는지, 별도의 관리가 필요한지 등등.
그 외에 위에서 내려온 정보가 추가되어, 필립의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 바쁘게 돌고 있었다.
많은 생각 끝에 필립이 헛웃음을 흘렸다.
‘저 여자가 CIA 출신이었다던데, 내가 CIA 같은 일을 하고 있군…….’
물론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을 맡게 돼서 이 상황이 신기했을 뿐.
물론 그 와중에도 정보를 받아들이는 눈과 귀 그리고 분석하는 머리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끝에 강태를 보던 필립이 멈칫했다.
위화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표정은 나쁘지 않은데…….’
강태의 반응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여태 포트 브래그에서의 그는 좋으면 좋다고 했던, 좋은 티를 감추지 않는 사람이었다.
특히 군사용 장비에는 지대한 관심을 보였었다.
하다못해 삽탄용 장비까지 눈여겨보고, 총포점에 없던 거라고 구입 가능 여부를 묻기도 했었다.
그것도 눈을 반짝이면서.
한데, 지금의 강태는 용병들에게도 일괄 지급한 특수부대용 고성능 장비를 보고도 그리고 지금까지 대우한 태도를 보고도 별 반응이 없었다.
긴장했다고 하기에는 말이 안 됐다.
실탄을 다루는 무거운 분위기의 훈련장에서도 태연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력도 긴장할 수준이 아니었고.
‘문제가 뭔지는 단둘이 남았을 때 은근히 물어봐야겠어…….’
그러는 것도 잠시, 작전 팀 지휘관으로부터 구체적인 지시가 내려왔다.
“3시간 뒤에 출항하니, 준비 바랍니다.”
* * *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Islamabad)의 호텔.
“불편하기 짝이 없군.”
지안드로가 낙후된 객실을 스윽 살피고서는 커다란 산악용 배낭에서 노트북과 핸드폰을 따위를 꺼내어 세팅했다.
어쩔 수 없었다.
미국에서 끈질길 정도로 신호를 따라 추적해 오고 있었고, 그걸 피하기 위해서는 틈틈이 거처를 옮겨야 했기 때문이었다.
거처도 그냥 옮긴 게 아니었다.
쉽게 탄로 나지 않게 거짓 신분과 역할을 만들었고, 그에 걸맞는 위장까지 했었다.
휴양지인 모로코에서는 휴가 나온 여행객을, 리비아의 수도에서는 출장 나온 사업가를, 이곳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는 트래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금 가져온 옷가지나 장비도 모두 트래커들이 흔히 사용하는 것들이었다.
심지어 트래커들이 자주 쓰는 등산 용품은 흔적이 역력한 중고 물품으로 마련했고, 혹시 모를 단순 불심검문을 피하기 위한 자료도 마련했었다.
예컨대 산악 여행의 거짓 시나리오나 교묘하게 합성한 이미지, 현지에서 파는 자잘한 기념 배지까지.
이 모든 건 굉장히 번거롭다 못해 짜증이 날 만한 일이고,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모를 기약 없는 상황이었으나, 지안드로는 불편하다는 말 한마디로 감정을 매듭지었다.
그의 보스인 피칼에게 투신했을 때는 목숨까지 내걸 각오를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현재의 그는 도망다니면서 숨어 있긴 했으나, 그건 죽기 싫어서, 겁이 나서 그런 게 아니었다.
죽음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 당장 죽을 수도 있었다.
벨트 미착용으로 몸이 박살 나서 죽어 버린 세르게이도 마찬가지였을 터.
다만, 그런 개죽음은 싫었다.
과업을 이루거나 최소한의 발판이 된다면 모를까, 허무하게 죽기 싫어서 버티는 것이었다.
혁명의 순간을 보기 위해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작전 진행을 위한 세팅을 마쳤을 때였다.
띠리리리―
올려 둔 선불 폰 중의 하나가 울렸고, 지안드로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북한에서 걸려 온 것이었다.
정확히는 북한의 평양 남쪽, 남포특별시의 항구에서 시작해 남미의 통화국을 거쳐서 아시아인 파키스탄으로 이어진 연락이었다.
이윽고 그의 수하가 간략하게 보고했다.
- 북한 측 핵 개발 연구원 2명이 모두 탑승했고, 준비 마치는 대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예상 시각은 현지 시각으로 20시 50분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시차를 고려하면 파키스탄 시각으로 16시 50분에 이뤄진다는 뜻.
지안드로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했다.
“킴은 만났나?”
북한의 독재자를 말하는 것이었다.
들어간 돈이 상당했기에 얼굴이라도 비췄을 줄 알고 물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을 빗나갔다.
- 못 만났습니다. 나올 생각도 안 하더군요.
“…….”
주제도 모르고 오만하다는 생각을 하던 지안드로가 바로 뒷말을 이었다.
“그 외에 특이사항은?”
- 아직까지 없습니다.
“그래, 나머지는 계획대로 진행해. 최악의 상황에서는 줄리엣 계획으로 돌입해.”
탈출을 의미하는 음어였다.
그것도 무조건적인 도망으로 운송 대상인 핵 개발 연구원이나 표적인 강태까지 전부 포기하라는 소리.
시작도 전에 불쾌해할 말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만반의 준비를 해 놨어도, 실패할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못 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미군도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이 무적이라고는 못 해도, 무적에 준할 만큼 강력한 건 사실이라 실패를 염두에 안 둘 수가 없었다.
그것도 공식적인 첫 번째 목표인 핵 개발 연구원의 이송은 거의 어그러질 가능성이 컸다.
물론 감안할 수 있었다.
북한에서도 핵심 인력 대신에 곁가지를 내어 줬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모든 계획이 다 맞아떨어지는 행운이 오면 성공할 터.
문제는 다음이었다.
‘아시안 원숭이…….’
운 좋게 세르게이를 죽인 게 아니라, 아주 걸리적거리는, 그래서 반드시 사살해야 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준비를 빡빡하게 해 놨었다.
군사위성이나 고고도 무인정찰기로 확인하지 못하게끔 열 차단 위장막을 사용했고, 인근을 지나다니는 어선을 포섭해서 자연스럽게 인력과 장비를 투입했었다.
암시장에서 내로라하는 유명한 저격수 3명과 로켓포, 박격포를 운용할 수 있는 병력 18명.
발각될 만큼 많지는 않은, 그러나 공세에 쓰기에 적지 않은 숫자였다.
물론 이탈리아에서 전멸한 수십 명의 용병에 비해 적은 숫자지만, 그들과는 질적으로 크게 달랐다.
저격수들은 부대에서도 유명했던 인물들로 지금도 아프리카에서 반군 사령관들을 쉽게 암살하는 전문가인 데다가, 로켓포와 박격포 운용병 역시 중동 파병으로 대단히 숙련된 베테랑들이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이스라엘과 영국, 미국 등에서 만든 고성능 무기로 무장했었고.
미군이 대항하겠지만, 적어도 한 사람은 죽일 수 있을 것이었다.
화력이나 실력만큼은 한 사람이 아니라, 한 개 대대를 박살 낼 정도로 강력했으니까.
물론 그 과정에서 다 죽을 순 없었다.
그 별장에서 수하를 잃었던 만큼, 이번에는 살려야 했다.
믿을 만한 사람이 흔하진 않았으니까, 그래서 시작도 전부터 줄리엣 작전을 음성을 통해 미리 전달해 둔 것이었다.
위급할 때 떠오를 수 있게끔.
이윽고 수하의 의연하고도 힘 있는 대답이 돌아왔다.
- 반드시 성공하겠습니다.
* * *
갑판에서 골프 카트나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해야 할 것 같은 큼직한 대형 화물선에 올랐다.
저번에 인도에서 탄 것과 비슷한 크기였는데, 그때하고 느낌이 달랐다.
모래 포대를 쌓은 간이 초소마다 씰6팀의 부사관들이 들어가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걸 내가 위에서 내려다봤기 때문이었다.
흡사 지휘관이나 감독관이 된 느낌.
PMC 용병 대우가 아니라서, 아까부터 해 왔던 생각을 계속해서 이어 갈 수밖에 없었다.
‘띄워 주려는 게 맞나 본데……?’
작전 진행한 지 얼마 안 됐지만, 눈에 훤했다.
승선 전후로 대우가 좋았고, 특히 나를 관리하는 게 티가 났었다.
용병으로서 어색하지만, 동시에 내 입장에서는 상당히 익숙한 일이기도 했다.
CIA에서 이미 여러 번 시도했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씰6팀은 상황을 알지 못하는 듯, 그저 임무 수행에 몰두했다는 사실이었다.
‘일단은 이대로 쭉 진행하고, 도가 지나치면 그때 강짜 한번 놓지, 뭐.’
그렇게 나름대로 계산을 하고 마음을 정하던 순간.
“…어디요?”
항해 중간에, 밤중에서야 듣게 된 단어에 주춤하고 말았다.
“남중국해의 타릴 제도입니다. 그곳에서 화물 교체가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타릴 제도라니?
중동의 알 자마쉬나 캅카스 지역의 카마르니아 공화국처럼 게임상에서 만들어진 가상의 맵 중의 한 곳이었다.
그리고 가게 되면 무조건 교전이 있을 장소였다.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진 맵이고, 피칼 역시 그런 용도로 이용한 곳이었으니까.
그래서 카마르니아에 가기 전에 한 번 즈음 가게 될 줄 알았는데, 여태 안 가다가 이제야 씰6팀과 함께 가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게임에서는 그런 설정도 없었다.
그냥 G&G Corp의 용병으로서 우리 팀만 투입되어, 국지적인 교전을 벌이며 필요한 작전을 수행했을 뿐.
그러자 조금 쎄한 느낌이 들었다.
‘교전 백 프로인데… 어떻게 될지 감이 안 오네…….’
이미 싹 다 바뀐 스토리 라인으로 벌어질 일은 짐작조차 안 됐다.
최악의 경우에는 함정일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미군이 진작부터 감시 중이니 섬을 날려 버릴 만한 무기 운용은 불가능할 터.
그러나 위험은 여전히 배제할 수 없었다.
‘내 선에서 수습이 되면 좋겠는데…….’
괜히 신경이 쓰였으나, 속을 가다듬었다.
이럴 시간에 해상 야간 저격이나 하는 게 나았다.
눈치껏 다가오는 필립에게 말했다.
“지금 사격 훈련 좀 하고 싶은데요.”
남은 시간 동안 감각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생각이었다.
상황이 어떻든 해결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