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130화 (130/185)

130화

7월 말, 휴가가 끝나갈 무렵.

핸드폰 화면에 저장된 연락처 중 하나가 표시됐다.

이스라엘 특수부대인 사이렛 매트칼의 지휘관, 아샤프 바리난 중령의 번호였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진행한 유대인 구출 작전 이후로 한번 만나자고 했었는데, 여태 불발되어 연락만 해 오던 상황.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아샤프의 음성이 먼저 건너왔다.

- 리, 정말 오랜만에 연락하게 됐습니다, 지금 휴가 중이죠?

“아, 중령님, 그게 그렇긴 한데… 내일까집니다.”

- 그럼… 아, 내일?! 오, 이런! 당신에게 진급 기념으로 식사라도 대접하려고 했었는데…….

“진급 기념이요? 아, 진급하신다고 하더니, 정말 진급한 겁니까?”

- 아직입니다, 그때는 내부에서 심사했던 거였고, 이번에 진급 대상자로 공문이 나왔습니다. 정말 확정된 거죠.

“와아… 그러니까, 내년에 대령을 단다는 말이죠?”

- 그렇습니다.

아샤프의 대답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놀라웠다.

어려운 진급 기회를 거머쥐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의 진급 자체가 신기했다.

게임 속의 그는 진급한 적이 없었다.

늘 중령이었다.

내게 여러 번의 퀘스트와 보상을 주고, 또한 핵전쟁이 날 때까지 대령을 단 적이 없었다.

그래서 ‘중령님’이라는 말이 쉽게 나올 정도로 익숙했었다.

한데, 대령이라니?

- 미리 말했는데도 그렇게 놀라운 겁니까? 으음, 내가 못 미더운 모습을 보였나 보군요.

“아,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지인 중에 대령은 없거든요. 그리고 정말 축하합니다.”

- 하하하, 그렇군요. 축하 인사는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리고…….

아샤프가 잠깐 말꼬리를 흐리다가 목소리를 냈다.

- 당신이 원하는 만큼 보상해 줄 용의가 있으니, 시간이 난다면 의뢰 수락도 부탁합니다.

“의뢰요?”

- 이스라엘 정부 부처 통해서 의뢰를 넣고 있는데, 하나도 통과된 게 없었습니다. 당신의 팀이 너무 바쁘다고 해서… 혹시 다음에…….

“아… 정말 바쁘긴 했습니다.”

휴가 기간을 빼고 정말 쉬지 않고 작전을 해 왔었다.

배와 비행기를 번갈아 탔고, 인도, 이탈리아, 독일을 오갔었고, 테러범 수십 명을 사살했었다.

- 아쉽군요. 알다시피 우리 이스라엘은 적이 많고, 그만큼 막아 내거나 제거해야 할 위협이 많습니다. 당신이 개인적으로 원한다면… 언제라도 연락해 주길 바랍니다. 뭐든 원하는 보상을 지급하겠습니다.

“일단 감사합니다만… 한다고는 말씀 못 드립니다, 일이 많아서.”

-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런 연락을 하게 되어 미안합니다만, 공식적인 루트가 모두 막혀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괜찮습니다.”

정중한 사과에 흐뭇하게 대답해 줬다.

안 그래도 나름 호감이 있던 인물이었다.

비록 라레플의 주요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퀘스트와 보상을 잘 주는 NPC로서 현실에서처럼 말투나 성격이 친근하고 푸근한 인물이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자, 또 핸드폰이 울렸다.

이번에도 화면에 저장된 연락처 중의 하나가 표시되어 있었다.

제24특수전술대대(24th Special Tactics Squadron) 소속 애덤 개리슨.

아프리카에서 미국 국적 기자를 구출한 이후로 휴가 중에 술을 사겠다고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여태 술을 얻어먹지 못했었다.

휴가 중에도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말에도 운영하는 MMA 체육관에 휴가 내내 방문하고, 사격하고, 거기다가 이번에는 포트 브래그까지 가게 되면서 술 마실 짬이 전혀 안 났다.

휴가 내내 같이 지내는 해리하고도 여흥이라고 할 만한 걸 해 본 적이 없었다.

훈련과 휴식만 반복했을 뿐.

물론 틈틈이 총기상에 들러서 탄약이나 총기 부품 따위를 사고, 마트에서 생필품 따위를 구입하긴 했으나, 그것 역시 루틴의 하나였다.

그래서 아샤프와 그랬듯 메시지 몇 번 주고 받은 게 전부였다.

“휴가 중에도 바쁜데, 휴가 끝날 때가 돼서야 연락들을 주네…….”

중얼거리면서 통화를 수락했고, 다음을 기약하자는 얘기로 금세 전화를 끊었다.

이후로 총기를 점검하고 장비를 준비하면서도 전화를 더 받았다.

델타포스 모임에서 알게 된 전현직 군인들과 용병 일을 하면서 연락처를 주고받은 전직 특수부대원들의 안부 인사까지.

그리고 다시금 핸드폰을 내려 두다가 멈칫했다.

“…묘하네, 이거.”

핸드폰에 있는 번호가 몇 개 안 되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았다.

거의 100여 개.

그것도 연락이 끊어진 학창 시절 동창 번호가 아닌, 세계 각국의 전현직 특수부대 출신이나 관계자들의 연락처가 대다수였다.

통화해 본 적은 없지만, 국무부 장관 비서실 직통 번호도 있었다.

‘인생 성공했네…….’

헛웃음 짓기를 잠시, 휴가를 마무리 짓고, 임무 수행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총기류와 각종 장비를 점검하고, 전투 배낭에 하나도 남김없이 챙겨 넣고 재차 검토하는 것이었다.

그게 끝날 즈음, 드디어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

대외협력국 담당장인 릴리 모건.

그녀가 늘 그렇듯 공항 소집과 최초 행선지를 알려 줬는데,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예?”

생각지도 못한 단어가 들려온 탓이었다.

이에 되묻는데, 금세 답이 돌아왔다.

- 당신의 고향, 한국이요. 티켓은 팀장이 줄 거고, 그곳에 가면 구체적인 임무와 작전을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한국에 왜… 아니, 알겠습니다.”

이유를 물으려다가 말을 매듭지었다.

어차피 통보만 해 주는 릴리도 제대로 아는 건 없을 거였다. 있어도 말해 주지 않을 거였고.

그리고 하나 더, 떠오른 게 있었다.

포트 브래그에서 안내자 역할을 맡았던 연락 장교, 필립 애드먼 중위의 연락.

갑자기 전화를 걸어서 작전과 지휘 따위를 떠들어 댔었다.

체육관에서 훈련 중이어서 그리고 되도 않는 소리라서 빠르게 거절했는데, 지금 보니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았다.

‘한국에서… 어쩌면 북한에 들어가려는 건가? 그것도 미군하고 같이?’

윤곽도 없이 어슴푸레하게 떠오르는 것들을 상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일단 가 봐야 안다.

그리고 마땅한 임무라면, 최선을 다해 수행해야만 했다.

물론 조금은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라레플에서 한국이나 북한은 갈 수 없는, 게임의 배경 정도로 언급됐었기 때문이었다.

그중 한국은 방문해 봤지만, 북한은 가 본 적도 없었고.

무엇보다 가 보고 싶지도 않았다.

구출 작전이나 명분이 따로 있다면 군말 없이 들어가겠지마는, 침투 후 정보 수집 같은 목적으로 들어가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안 그런 작전이 어디있겠냐마는, 북한은 특히 달랐다.

거주 이전이나 통행의 자유조차 없는 독재 집단.

보급이나 지원이 어려운 수준을 넘어 불가능한 경우도 있으므로 전투 지속은 물론이고 퇴출 역시 쉽지 않을 게 분명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떻게 되리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중요한 건 동료들이었다.

키보드를 눌러서 구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진짜 죽을 수도 있었다.

라레플의 세상이긴 하지만, 게임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생각만 했는데, 정말 선택의 기로에 서고 말았다.

이튿날에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을 통해 비행하고, 인천국제공항에 내려서 미군 관계자를 만났을 때였다.

“와… 진짜 이렇게 되나……?”

혼잣말이 절로 나오는 와중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려 있었다.

북한으로 갈지, 말지 골라야 하는 순간이었다.

* * *

펜타곤에서 포트 브래그로 그리고 한국까지 오게 된 필립이 맞은편의 강태를 바라봤다.

마침 현장 지휘관인 소령도 의향을 묻고 있었다.

북한으로 들어갈지, 말지.

다소 허술한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2개의 작전이 완비되어 있었다.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모두 준비되었고, 사전 협의도 진작에 다 받아 놨었다.

필립도 세세한 사항까지 알진 못하지만 대략적으로 알았다.

북한으로 침투할 경우에는 대한민국 국정원과 정보사령부의 협조를 받아 들어가게 될 거고, 그게 아니면 남중국해에서 적선을 급습할 예정이라는 것 정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차피 내부에서는 현장 지휘관의 판단과 상부의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할 테니까.

그리고 지금 시작 방법을 강태에게 묻는 것이었다.

둘 다 준비되어 있으니, 어떤 걸 원하냐고.

이내 강태의 입이 열렸다.

“둘 중에 피해가 적은 작전은 뭡니까? 시뮬레이션 돌린 거라던가, 뭐 없어요?”

다소 직설적인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말에, 지휘관이 멈칫했다가 대답했다.

“직접 침투가 좀 더 위험합니다.”

내부에서 몇 번이고 가상 작전을 시행해 본 결과였다.

차이가 그렇게까지 크진 않지만, 전장에서는 그 작은 비율로 생사가 갈리는 법인지라 다른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그리고 말할 틈도 없었다.

지휘관의 답이 나오자마자, 강태가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었다.

“공해로 가겠습니다.”

흡사 겁쟁이 같은 선택 같았으나, 그 자리에 있던 G&G Corp TF나 미군 지휘관, 연락 장교인 필립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적진에 침투하면 가장 많은 적을 죽일 수 있고, 다치거나 죽을 가능성이 가장 적은 사람이 강태라서 그랬다.

피해가 적다는 말 역시 동료를 위한 말이라는 것일 터.

지휘관도 담담하게 답했다.

“알겠습니다. 현 시간부로 계획 2안인 오퍼레이션 워터스파우트(Operation Waterspout: 용오름 작전)를 진행하겠습니다. G&G Corp TF는 미군과 정찰 계약 후 움직이게 되며, 팀장인 제이크 러셀을 통해 명령을 하달하여 임무를 부여하겠습니다.”

미군이 들어온 만큼 작전명까지 번듯하게 붙었으나, G&G Corp TF가 집중해야 하는 건 다른 데 있었다.

바로 정찰 계약.

정규 미군이 아닌 용병들의 목숨을 앞세우는 흔한 PMC 계약 방식이었다.

뭐가 어쨌든 간에 다치거나 죽을 위험이 높다는 뜻.

그러나 이는 흔한 일이고, 또한 대외협력국도 개입했을 작전이므로 아무도 군소리를 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는 테러 저지와 맞닿을 테니까.

물론 그건 대외적인 거였다.

실상은 달랐다.

그리고 그걸 아는 사람은 한국에 있는 이들 중에 단 두 명뿐이었다.

지휘관과 연락 장교인 필립.

그중 필립은 졸아드는 것만 같은 감정을 견뎌 가며 태연하게 강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스파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인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중 임무가 주어졌고, 그중 하나가 바로 강태의 회유였기 때문이다.

대략적인 방향은 아주 뚜렷하고 간단했다.

강태에게 미군과 작전하는 맛을 보게 하고, 충분하다 못해 과할 정도로 지원해서 배를 두둑하게 불려 주는 것이었다.

관련된 세부적인 방법은 다양하고도 복잡했다.

물적, 심리적, 인적 지원으로 나뉘어서 때와 상황을 봐서 다뤄야 했는데, 그걸 필립이 맞춰야만 했다.

그래서 긴장한 채로 한국까지 온 것이었다.

지금 펜타곤에서 강태와 가장 가깝고,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그였으므로.

그사이, 지휘관이 TF 팀장인 제이크를 보며 말했다.

“자, 그럼 임시 캠프로 이동하겠습니다.”

용오름 작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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