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7월 말의 미국, 버지니아주, 펜타곤.
‘결국에 여길 왔군…….’
목에 방문증을 건 대외협력국 국장 로버트가 한차례 입맛을 다셨다.
이미 오게 될 걸 짐작하고 있었다.
대통령 주재로 진행된 암시장 불법 용병 제거 작전에서 강태의 실력이 일부 드러났고, 이후로 국무부와 협의해서 별장 부지 선정에 개입했으며, 또한 포트 브래그를 개방해서 강태를 초대했고, 심지어 전담하는 장교까지 붙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조건은 전혀 나쁘지 않았다.
세계 최고라는 미군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또한 특수전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도 있는 데다가, 방문할 때만큼은 세상 어디보다도 안전할 테니까.
그러나 로버트에게는 영 불안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그 끝이 뻔한 탓이었다.
강태의 입대, 혹은 군사 계약 요구 등등.
로버트조차 모르는 수많은 방법이 동원될 가능성이 컸고, 지금도 진행 중일지도 몰랐다.
CIA도 그랬었다.
강태가 거부했음에도 여러 번이나 접근했었고, 그건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강태는 그만큼 갖고 싶은 인재일 테니까.
물론 로버트도 내어 줄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든 강태를 지켜낼 것이고, 대외협력국 임무에 투입할 생각이었다.
이에 국방부 장관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고민할 무렵.
안내하던 장교가 도착을 알리면서 회의실의 문을 열었다.
동시에 로버트가 멈칫했다.
“아, 편한 자리에 앉으세요.”
먼저 와 있던 국방부 장관이 로버트를 향해 착석을 권한 것이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여긴 국방부 청사인 펜타곤이고, 수장인 장관이 있을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대면은 쉬운 게 아니었다.
국내외로 만나려고 대기 중인 사람만 펜타콘 담벼락을 20바퀴는 너끈하게 감을 만큼 많았다.
그래서 차관 이하의 실무자급을 예상하던 상황.
그러나 국방부 장관의 옆에는 실무자 같은 장성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각각 30대 초중반에 20대 후반에 불과한, 잡일이나 할 것 같은 소령과 중위가 전부.
로버트의 입이 바로 열렸다.
“…실무자 회의가 아니었습니까?”
“정확합니다, 실무자 회의. 다만, 기밀로 처리될 일이라, 최소한으로 맞췄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일단 대답하면서 앉을 무렵, 안부 인사도 없이 바로 용건부터 나왔다.
그것도 로버트가 예상하지 못한 말.
“최근에 북한에서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
강태를 염두에 두고 있던 로버트가 주춤했다.
그리고 대꾸하려던 입도 닫혔다.
대외협력국에도 마침 북한과 관련된 정보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지안드로와 관련된 내용.
아직 구체적으로 파악하진 못했으나, 시간만 좀 더 있으면 알아낼 수 있었다.
마침 강태의 휴가가 끝날 즈음에 맞춰서.
곧 국방부 장관의 말이 이어졌다.
“최근 테러범들의 핵미사일 접근에 따라, 관련 정보 취득의 범위를 넓힌 결과로, 한국에서도 이미 관련 정보를 확보해서 공유 중에 있습니다.”
그러면서 중위 한 명이 서류철을 건넸고, 로버트가 받아서 읽었다.
몇 줄 읽던 그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아…….”
그가 쫓던 것과 같았다.
지안드로와 관련된 내용이었고, 그게 국방부의 손에도 있었다.
그사이, 지그시 바라보던 국방부 장관이 입을 열었다.
“이미 알고 있던 겁니까?”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걸 왜 보여 주는 겁니까?”
로버트가 화두를 돌리듯 묻자, 빠른 답이 돌아왔다.
“우리가 계획 중인 작전에 엔더슨 국장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 도움이……?”
이내 설마하던 것이 사실이 되어 나왔다.
“미스터 리.”
‘리’라는 성씨는 많았으나, 두 사람 사이에서 언급되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강태.
로버트가 멈칫하길 잠시.
늦지 않게 숨을 고르듯 대답했다.
“일단… 계획부터 들어 보겠습니다.”
마땅히 거절하고 싶으나, 막무가내로 떼쓰듯이 안 된다고 할 순 없었다.
세부적인 내용을 들어 보지 못하기도 했거니와 대외협력국에서 추적 중인 지안드로의 흔적이 서류 안에 담겨 있었으며, 무엇보다 국방부 장관도 미국의 안보를 위해 일하는 연방 기관의 수장이기 때문이었다.
“현재 두 가지 작전을 수립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라면…….”
“하나는 북한 영토에 직접 침투하여 적의 계획을 무력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해상이나 무인도에서 공격하여 섬멸 및 체포하는 것입니다.”
“…….”
로버트의 표정이 굳었다.
이번에도 예상했던 그리고 검토했던 것들이 나온 탓이었다.
특히나 북한 침투는 임무 수행의 가능성이 너무 낮아서 1차에서 폐기됐을 정도.
한데 그게 국방부 장관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아직 시행 단계에 이르진 못했으나, 어떤 작전이든 미스터 리가 함께했으면 합니다. 솔직히 북한에 침투해서 킴을 사살하는 거라도… 미스터 리라면 훌륭하게 해낼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면서 장관이 여태 조용히 있던 중위를 쳐다봤다.
“안 그래요, 애드먼 중위?”
“맞습니다.”
여태 조용히 있던 필립 애드먼이 힘껏 대답했다.
그 뒤로 로버트도 입을 열었다.
“명찰이 잘 안 보였는데… 당신이었군요.”
자리가 비스듬한 대각선이라 이름이 보이지 않았는데, ‘애드먼’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안 것이었다.
이내 로버트의 시선이 한쪽으로 옮겨 갔다.
“그럼 이쪽은 누구십니까?”
소령 계급장을 단, 이름을 모르는 30대 초중반의 장교.
국방부 장관이 그를 보며 말했다.
“이번 작전 팀의 지휘관입니다.”
그 말에 로버트가 다시 눈을 마주쳤는데, 소령 역시 시선만 교환할 뿐 말을 하진 않았다.
그럴 만했다.
최소 1티어 특수부대나 흑색 작전 전문 특작 요원의 지휘관일 테니까.
두 사람 모두 허드렛일이나 할 것 같은, 펜타곤의 하급 장교가 아니었다.
강태를 섭외하기 위한, 필수적인 인력들이었다.
곧이어 로버트가 우려한 국방부 장관의 본심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번 작전 중에 미스터 리가 우리 지휘관의 아래 배정되어 움직였으면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그건 어렵습니다.”
“어렵더라도 진행하는 게 낫지 않습니까?”
“그의 소속은…….”
“압니다, 국방부가 아니죠. 그러나 지휘 일원화로 작전을 수월하게 진행할 필요는 있습니다. 거기다 국방부의 지원도 충분히 받게 될 텐데, 이걸 지휘관 문제로 거부할 생각입니까?”
국방부 장관이 느긋한 시선을 담아 말을 이었다.
“아니면 그를 억지로 잡아 두고 퇴보시키려는 겁니까? 분명 그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건, 엔더슨 국장이 가장 잘 아는 사실 아닙니까?”
“…….”
“분명 미스터 리가 만족할 겁니다. 그의 의향이라도 물어보는 게 어떻습니까?”
로버트가 답하지 못하자, 국방부 장관은 만족스럽다는 듯 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강태에게 로비하기 위해 준비한 게 많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작전은 작전대로 진행하겠지만, 그 가운데 강태에게 미 국방부의 지원을 맛보게 해 주려고 단단히 준비하고 있었다.
아마 내민 손을 뿌리치진 못할 것이었다.
세계 최고, 최대의 정보기관인 CIA가 로비에 실패했다는 정보를 듣긴 했지만, 그곳과 국방부는 뿌리부터 다르기 때문이었다.
바로 군 기관.
정보 요원하고는 비교할 게 되지 못했다.
특히 천생 군인이나 다름없는 강태에게는 CIA보다 국방부가 더 매력적일 게 분명할 터.
포트 브래그에 먼저 온 것도 그 증거였다.
초대가 아닌, 방문 허가만 했음에도 헬리콥터를 타고 날아왔었다.
장비와 시설, 병력을 보고 감탄했었고, 이후로는 꾸준히 주 3회씩 와서 직접 훈련을 하고 갔었다.
그것도 무려 한나절이 넘도록.
이 역시 로버트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걱정하고 있었다.
국방부에서 깔아 둔 판에 강태가 올라가게 될 것을 우려했었다.
그러다가 소속이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많은 요원이 그렇게 변했었다.
CIA의 제안도 거절한 강태가 그러지 않을 것 같긴 했으나, 천생 군인이므로 혹시 모를 일이었다.
이에 대답을 못 할 무렵.
국방부 장관이 옆에 있던 필립에게 손짓했다.
“여기서 전화해 보는 게 좋겠는데… 애드먼 중위가 연락해 보십시오.”
“하지만 보안 회선이…….”
필립이 핸드폰을 꺼내다가도 장교답게 멈추자, 국방부 장관이 고개를 저었다.
“작전 내용을 다 전달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음 작전에서 우리 지휘관 아래서, 미 국방부의 지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전달하면 됩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필립이 얼른 저장된 강태의 연락처를 찾아 누른 뒤.
제법 길게 통화 연결음이 지속됐다.
‘오늘 이 시간이면… MMA 체육관에 있겠군.’
로버트가 짐작하면서, 차라리 받지 않고 넘어가길 바라던 순간.
- 아, 필립, 무슨 일이에요?
강태가 전화를 받았다.
그것도 아주 친근하고 가까운 듯이 이름을 부르면서.
‘이렇게나 친했다고……?’
로버트가 자못 긴장하며 기다리는 사이, 필립이 빠르게 전달 사항을 알렸다.
다음 작전에서 미 특수전 부대와 함께, 지휘관 아래 배속되어 통제되고, 또한 미 국방부의 지원을 받게 될 거라고.
그러자 곧장 강태의 답이 돌아왔다.
- 무슨 소립니까? 우리 팀은?
“그러니까 리, 당신만…….”
- 아뇨, 그건 안 됩니다. 나는 우리 팀을 신뢰해요. 물론 현역 델타나 데브그루도 좋지만… 그건 어렵습니다.
“…아니, 리?”
필립이 당황해서 불렀다.
고대했던 것과 달리, 너무나도 쉽게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로버트의 얼굴이 펴지는 사이.
- 그리고 나는 아직 내 소속을 바꿀 생각도 없습니다.
“아직? 그럼 언제 되는 겁니까?”
- 그건 모릅니다. 나중에 원한다면, 내가 그때 부탁하도록 할게요. 참, 그리고…….
마음대로 말을 매듭짓던 강태가 차분하게 뒷말을 덧붙였다.
- 앞으로도 이 시간에 전화는 좀 피해 줬으면 좋겠어요. 운동 중이거든요.
“아… 미안합니다, 리. 그럼 마저 운동하세요.”
뚝.
그렇게 통화를 마친 후.
국방부 장관의 미간이 깊게 구겨져 있었다.
‘아니… 보고서에는 분명…….’
강태는 미 국방부에 많은 호감을 갖고 있었다.
어마어마했었다.
그뿐만 아니라, 군인을 좋아했고, 존경했으며, 군인이었던 자부심까지 있었다.
그야말로 천생 군인.
그것도 필립의 보고서만이 아니라, 영상으로 확보한 대화를 통해 교차 검증을 마친 내용이었다.
한데, 안중에도 없다는 듯 거절했다.
심지어 팀에 대한 애착뿐만 아니라, 소속을 바꾸지도 않겠다고 단언했다.
이에 주춤했으나,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접근해야겠지, 계속해서…….’
CIA도 물밑에서 계속해서 강태에게 로비를 시도하고 있었다.
보거나 들은 게 없어도 확신할 수 있었다.
CIA가 그렇게 물렁한 조직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강태는 거절한다고 해서 놔줄 만한 인재가 아니었다.
소속 기관과 기관의 수장까지 모두 덕을 보게 할 수 있는, 글자 그대로 원 맨 아미 같은 존재였다.
그사이, 로버트가 여유롭게 말했다.
“그럼 남은 얘기를 마저 하시죠.”
국방부 장관을 놀리려는 게 아니었다.
이제 강태의 거취가 확실하게 정해졌으니, 일 얘기를 하자는 거였다.
그들에게는 공동의 적이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