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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126화 (126/185)

126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핼리팩스(Halifax) 카운티 외곽.

집에서부터 약 3시간 정도 운전했을 때, 내가 갖게 될 땅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생긴 건 다 비슷했다.

에이커 단위로 불러야 하는 커다란 밭, 혹은 황무지 같은 땅들.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목적지도 그런 곳들과 비슷했는데, 전체적인 모습이 조금은 달랐다.

새로 정비한 듯 잘 서 있는 울타리, 틈을 막듯 선 빽빽한 나무까지.

‘역시… 국무부가 세팅했다, 이거지?’

내심 감탄하며 접근했는데, 진입로로 들어가면서는 입이 절로 열렸다.

“이야, 이거 봐라……?”

“와우, 예상보다 더 훌륭한데요?”

조수석의 해리도 조잘대듯 말했는데, 그 말이 딱 들어맞았다.

구체적으로 예상한 건 없지만, 어쨌든 내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사격장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높낮이가 살짝 있는 구릉, 그리 높지 않은 수풀, 중간중간에 박혀 있는 나무 그리고 사람 상체 모양을 본떠서 만든 강철로 된 표적지까지.

그렇게 잘 포장된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자 지붕 같은 게 보이기 시작했고, 그게 뭔지도 금세 알아차렸다.

“…뭐야, 집이야?”

아마 해리 삼촌네 있던 휴게실과 비슷한 기능을 할 것 같았는데, 외관은 그 조그만 오두막과 천지 차이로 달랐다.

단층이긴 하나, 40평대가 족히 넘는 원목 별장으로 보였다.

심지어 주차장과 헬기장까지 따로 있었다.

나무와 장식용 수풀로 헬기가 조금 가려져서 그쪽으로 차를 가까이 주차하려던 무렵.

별장에서 나온 누군가 차량으로 다가왔다.

소매를 접은 체크무늬 셔츠와 면 바지를 입은 보통 키에 평범한 외모를 가진 백인이었다.

나이는 30대 중반, 마커스나 호세 또래.

관리인인가 싶었는데, 예상대로 그가 차 문을 열자마자 짐작했던 소개를 해 왔다.

“반갑습니다, 미스터 리. 당신의 시설 관리를 맡게 된 맥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기다렸다는 듯 서류철을 하나 내밀었는데, 안에는 내 담당 직원인 릴리 모건이 미리 말해 줬던 내용이 담겨 있었다.

관리 직원의 업무와 지급할 임금 등에 대한 사항.

물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마주 서 있는 관리인 맥이 평범한 일꾼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바로 시크릿 서비스(United States Secret Service: 비밀경호국) 소속.

구체적으로는 나처럼 바지춤 안에 고정되는 권총 홀스터를 착용하고, 발목에는 대검을 꽂아 둔 전직 군인이자 헬기 면허까지 가진 인물이었다.

그중 총과 칼이 있다는 건 눈치로 알았으나, 헬기 면허나 소속은 미리 얘기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대외협력국 소속이면 좀 더 편하련만,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각자 할 일만 잘하면 되니까.

그렇게 악수도 하고, 다시금 제대로 인사를 나눴을 때였다.

“헬기부터 보시겠습니까?”

맥이 알고 있었다는 듯 묻기에,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다 보니 모든 걸 국무부에 맡기게 됐지만, 그래도 내가 소유할 자가용 헬기가 궁금해서 그랬다.

어련히 잘해 주겠거니 하면서도 고개를 빼고 쳐다볼 즈음.

드디어 헬기의 모습이 드러났다.

“MD 500?”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정작 타 본 적은 없지만, 군 생활 하면서 여러 번 봤던 헬기여서 바로 알 수 있었다.

맥의 입에서도 관련된 설명이 흘러나왔다.

“네, 가장 무난하고 익숙할 것으로 예상되어 준비한 민수용 버전 헬리콥터입니다.”

“저는 입문용으로 많이 타는 R22를 예상했는데, 500C라면 선배님을 좀 신경 쓰는 티가 나네요.”

R22가 뭔진 몰라도 그러려니 했다.

익숙한 MD500이라 놀라진 않았으나, 어쨌든 자가용 헬기라서 기분은 좋았다.

사격장 내에서의 이동도 이동이지만, 앞으로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크게 줄어들 거고, 비상시에도 요긴하게 탈 수 있을 터.

‘이게 시속 이백 얼마 나갈 텐데…….’

생각하는 사이, 맥이 어느새 준비한 팸플릿과 두툼한 파일철 따위를 내밀었다.

“앞으로 암기해야 하는 헬기 자료입니다. 확실하게 암기해야 하고, 이후로 비행 시간도 꾸준히 채워야 합니다. 원하신다면 지금 시운전도 가능한데, 비행은 잠깐 동안만 가능합니다. 별장으로 들어가서 매매 서류와 입출금 내역, 휴가 기간 동안의 일정을 설명해야 하는데, 시간이 늦을 것 같아서…….”

맥의 말이 길어지기에,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시운전은 나중에 하고, 준비한 것부터 들을게요.”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저녁이 다 된 시각이었다.

여름이라 해가 아직 지지 않았을 뿐, 곧 노을이 내리고 어두운 밤이 될 터.

얼른 들어가자마자, 별장과 땅이 관련된 자금 설명이 이어졌다.

말은 길었는데, 결론은 간단했다.

“그러니까… 거래하고 세금 때문에 일단 제 돈으로 지출했고, 지출했던 금액은 이달 말에 회사 보너스로 들어온다는 거잖습니까? 페이백 같은 거죠?”

“페이백은 아니지만, 비슷합니다.”

“근데 잔액은 남았답니까? 이거 다 하려면 모자랐을 것 같은데.”

“남았습니다. 잔액도 서류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어디… 아…….”

하마터면 감탄을 흘릴 뻔했다.

이 땅과 집, 헬기를 다 사고도 무려 50만 달러에 달하는 돈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화로 대략 6~7억 원 되는 금액.

원래 갖고 있던 것도 수백만 달러긴 했지마는, 그걸로 이 모든 걸 다 해결할 수 있을 줄은 몰랐었다.

천만 달러 이상은 나갈 줄 알았으니까.

“그냥 내가 샀어도 뭐…….”

한국말로 중얼거렸으나, 눈앞의 맥을 보는 순간 그게 어렵다는 걸 바로 깨달았다.

말이 관리인이지, 시크릿 서비스 소속의 경호원 겸 조종사였다.

물론 감시용으로 붙여 둔 건지,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로서는 나쁘지 않았다.

돈 준다고 그냥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이 집도 마찬가지였다.

버지니아 주택처럼 웬만한 대구경 기관총을 방호할 만큼 튼튼했고, 지하에도 IED나 RPG-7에도 끄떡없는 벙커가 따로 있었다.

심지어 내가 개조 요청했던 것보다 퀄리티가 좋아 보였다.

이에 속으로 감탄할 무렵

“그리고 미스터 리가 휴가 기간 동안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의 리스트입니다.”

맥이 쌓여 있던 종이 뭉치 중 몇 장을 꺼내어 내밀었다.

“시설?”

이런 별장이나 헬기장을 말하는 건가 싶을 무렵.

들여다보다가 주춤하고 말았다.

그런 게 아니었다.

[…노스캐롤라이나, 포트 브래그(Fort Bragg)…….]

여러 개의 단어 중에 이것 하나만 보였다.

마침 같은 주에 위치해서 거리상 아주 가까운 곳이지만, 그것 때문에 시선이 쏠린 건 아니었다.

군사시설이라 그랬다.

그것도 미 육군 공수부대와 특수부대의 작전기지.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있는 포트 잭슨(Fort Jackson)도 리스트에 있으나, 거긴 기초 군사 훈련소라서 관심이 덜했다.

물론 그곳도 갈 기회가 있었다면 들렀겠지마는, 우선은 포트 브래그였다.

들은 게 있었다.

포트 브래그를 나온 그린베레가 한미 연합 훈련 때 했던 얘기가 특히 그랬다.

‘시설부터 퍼킹 어쩌고 하면서 비교 했었지…….’

거긴 모든 시설이 거의 완벽하다고 했었다.

엎드려쏴 같은 기본 자세부터 이동 중 사격에 대비한 사격장은 물론이고, CQB 백병전에 대비한 맵과 장비까지.

심지어 베테랑 특수부대 출신의 감사를 받아 가며 전문가들이 만들었다고 했었다.

강가의 모래를 몰래 퍼 오고, 그걸로 시멘트 반죽을 만들어 일일이 벽돌을 쌓는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윽고 입이 바로 열렸다.

“저기, 맥? 이거 이용할 수 있는 건 맞습니까? 내가 원하는 건 다 되는 겁니까?”

“…오, 포트 브래그?!”

해리까지 반응하는 사이, 맥의 답변이 이어졌다.

“국방부에서 조건이 하나 있다고 했습니다.”

“국방부에서? 국무부가 아니고요?”

“네, 국방부입니다.”

그 대답에 고개가 슬쩍 기울어졌다.

전에 대외협력국장인 로버트에게 요청했던 거라서 그랬다.

각종 군사시설의 이용.

그러나 내 바람과 다르게 제한이 심하고, 원하는 건 이용하기 힘들어서 딱히 가 본 곳이 없었다.

나도 그거 외에 할 게 많아서 그러려니 하기도 했고.

이에 쳐다보는 사이, 짧은 답이 나왔다.

“안내인이 동행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요?”

“그게 전부입니다.”

“그게 전부라고요? 왜…….”

답하다가 멈칫했다.

왜 그런 조건이 달렸는지 알 만했다.

‘아… 뭘 봤구나.’

CIA가 그동안 내게 명함을 줬듯, 국방부에서도 비슷한 수작을 부리는 것이었다.

날 꼬드길 수도 있고, 혹은 감시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염려되는 건 없었다.

시설을 이용하면서 내 특성이 조금씩 발휘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기 때문이었다.

대외협력국에서 진행한 모든 검사에서도 마찬가지.

물론 체력 수준이 상위 1%라고 나오긴 했지만, 그건 웬만한 특수부대원들이라면 다들 나오는 거라 신기할 것도 없었다.

따지자면 1%의 1%도 안 되겠지만, 어쨌든 내가 할 대답도 하나였다.

“포트 브래그부터 가시죠.”

“지금은 어렵고, 내일 갈 수 있게 조치해 드릴까요?”

“예, 부탁 좀 드립니다.”

“알겠습니다. 포트 브래그로 가면서 헬기 탑승도 하면 되겠군요.”

그 말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더할 나위가 없네요.”

* * *

어느새 7월 중순, 미국, 버지니아주, 펜타곤.

미 국방부 장관은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 일본 방위성 대신과 영상 회의를 통해 한미일 연합 훈련 및 대북 군사태세 등을 한참이나 논의하고 대북 기조도 수정하고 올바로 잡았다.

그리고 의례적인 인사와 함께 회의를 마친 뒤.

스크린 속 영상이 종료되자, 국방부 장관이 정리하던 비서를 불렀다.

“포트 브래그에서 연락 온 거 있나?”

정말 연락 온 게 있냐는 듯한 말이었으나, 비서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아주 잘 알았다.

약 2주간 포트 브래그에 꾸준히 방문 중인 강태를 말한다는 것을.

“정보 업데이트 지시해 놓겠습니다.”

“아냐, 이번에는 얘기를 들어 보고 싶어서 말이야. 전화 연결이나 해 봐.”

“네, 알겠습니다.”

대답한 비서가 재빨리 자리를 뜬 뒤.

1분도 채 안 돼서 그의 업무용 전화기 벨이 울렸고, 비서가 유선상으로 포트 브래그와 연결됐음을 알렸다.

그리고 국방부 장관은 며칠 전에도 그랬듯, 이번에도 용건부터 물었다.

“손님은 좀 어떤가?”

- 특이 사항 없었습니다. 현재 사격 중인데, 실시간으로 영상 확인하시겠습니까?

“아, 그래. 바로 보지.”

국방부 장관이 담담하게 대답했으나, 눈에는 이채가 돌고 있었다.

강태의 존재가 그랬다.

처음에는 총알 4발에 놀랐으나, 각종 자료 조사를 마친 지금은 무엇하나 믿기 힘든 이가 바로 그였다.

데이터가 쌓일수록 믿기 힘들었다.

‘사신… 사신이라고 했었지.’

아프리카에서 임무를 수행한 특수부대원의 증언이 떠올랐다.

콩고민주공화국을 중심으로 아프리카 중부에 사신이 다녀갔다는 얘기가 여기저기 퍼져 있다고 했었다.

그 정도면 약물 실험이나 생체 개조를 당했을 것 같은데, 그런 기미도 전혀 없었다.

강태가 처음 포트 브래그에 방문한 날, 감염성 질환을 검사하겠다는 목적으로 정밀 신체 검사를 진행해서 잘 알고 있었다.

불필요한 모든 걸 진행했는데도, 강태는 아주 깨끗했다.

그냥 일반인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윽고 국방부 장관이 먼 곳을 내다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저런 실력이라면 돼지 같은 킴의 출렁대는 뱃살에 총알을 박아 넣을 수도 있지 않을까…….”

가볍게 하는 상상이 아니었다.

마침 북한도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수면 위로 흔적이 남는 연한 파동까지 만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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