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웨스트윙의 지하 회의실.
전면부에 설치된 커다란 스크린에 주요 작전 현장 수십 곳이 떠 있었다.
적외선 센서 카메라가 달린 바디캠이 촬영 중인 영상이었고, 개중 하나는 독일의 대외협력국 작전을 보여 주고 있었다.
국방부 장관의 눈이 영상 번호를 찾아 이를 노려볼 무렵.
“……!”
놀라면서 주춤하고 말았다.
각도상 모든 게 보이진 않았으나, 여러 명으로부터 갑작스러운 습격을 당한 탓이었다.
다행히 개중 한 명은 목이 부러져 죽었는데, 다음이 문제였다. 여전히 몇 명이 한 명에게 매달렸고, 심지어 그 과정에서 격발도 이뤄졌다.
그리고 몸싸움 소리와 꽉 깨문 입에서 나오는 신음이 섞인 순간.
누군가 방에 들어서면서, 권총을 격발했다.
눈 깜짝할 새였다.
투두두둥!
흡사 연발 같은, 조금의 틈도 없는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국방부 장관은 움찔하고 말았다.
뒤이어서 전혀 생각도 못 한 광경이 연녹색의 적외선 영상을 통해 고스란히 송출됐기 때문이었다.
털썩, 철퍼덕! 쿵, 쿠웅─
습격한 네 사람이 그대로 쓰러진 것이었다.
물론 총을 쐈으니, 맞은 사람이 쓰러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는 무조건 이뤄지는 절대적 진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일이고, 심지어 영상 속 상황은 상당히 어렵고 힘든 축에 속했다.
애초에 한 발로 한 명을 쓰러트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특히 권총에 담긴 9㎜ 탄은 잘못 맞으면 아프다는 말이 있을 만큼 위력이 적은 총기였다.
미 경찰들이 용의자를 벌집으로 만드는 것도 같은 이유였다.
무력화하려면 최대한 많이 쏴야 하니까.
그런 점에서 고작 네 발의 탄환으로 사람을 떨어트린 게 참으로 절묘했는데, 그보다 중요한 건 그 사격이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이뤄졌다는 점이었다.
‘순발력 있게 조준해서 레이저 표적 지시기로 적을 겨눴다고 해도… 연사는 말도 안 돼.’
눈으로 레이저를 인지하고, 방아쇠를 당기는 데는 시간이 소모됐다.
물론 길지 않은 소수점 이하의 초 단위겠지만, 그래도 그걸 4회나 반복하면 1초는 당연하고, 2~3초 이상의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었다.
물론 거리가 최대 5미터에 불과할 정도로 가깝긴 했지만, 그 외의 장애물이 더 많았다.
야간이라는 점, 아군과 적군이 섞여 있다는 사실, 그걸 쏴야 한다는 심리적인 부담감 등등.
물론 웬만한 특수부대원이라면 이 모든 걸 이기고 냅다 달려와서 총을 쏠 수 있고, 또한 다 명중시킬 수 있었다.
다만, 가장 큰 고비가 남아 있었다.
1초 안에 네 발을 정확하게 쏴서 네 명을 다 쓰러트리는 것.
국방장관인 그가 장담하건데, 그걸 해낼 수 있는 대원은 아무도 없었다.
‘분명 불가능한 건데… 어떻게 가능한 건지…….’
국방부 장관으로서 수많은 1티어급 특수부대원들의 사격을 봐 왔던 그리고 그 역시 권총 사격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국방장관은 그 영상에서 도저히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영화라면 코웃음 치면서 보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실전이었으니까.
이어서 영상 속에서 네 발의 추가 사격으로 확인 사살이 이뤄지고, 근육에 칼이 박혔다는 말소리 따위가 나오며, 다른 작전 현장의 상황도 마무리가 될 무렵이었다.
국방부 장관의 머릿속에 대충 들어 넘겼던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그가 방금 들었던 말이었다.
‘저희 팀은 단 한 번의 작전도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로버트의 음성이 다시 들리는 듯했다.
당당하기에 자부심 따위가 섞여 있는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니었다.
진실이라 떳떳한 것이었다.
정말 한 번의 실패도 한 적이 없다는 소리였고, 충분히 그럴 만했다.
동시에 의문도 떠올랐다.
그가 누구인지, 저런 사격이 어떻게 가능한 건지, 여태 해 왔던 작전은 뭐가 있는지 등등.
그렇게 갖은 생각이 절로 떠오르고, 동시에 송출대는 수십 개의 영상 대부분이 마무리와 뒤처리로 이어지는 사이, 국방부 장관의 입이 열렸다.
“…엔더슨 국장,”
말석에서 강태와 제이크를 비롯해, 다른 팀의 영상까지 살피던 로버트가 반박자 늦게 대답했다.
“아, 네. 장관님.”
“독일에 있는 당신의 팀 말인데, 어디 출신이오? 아니, 아까 적을 사살한 이가 누구요?”
“그건 대통령님의 재가가 필요한 사안입니다.”
로버트가 담담하게 대답했고, 동시에 국방부 장관의 눈은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물론 재가를 내려 달라는 말을 하진 못했다.
국방부 장관의 소임은 나라를 지키는 거지, 대외협력국 같은 첩보기관의 정보를 알아내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대통령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마저 영상을 볼 뿐.
“…….”
결국 국방부 장관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닫았으나, 이어 오던 생각까지 멈추진 않았다.
그리고 아주 진지하게 기밀 프로젝트 같은 단어를 떠올렸다.
‘혹시 비밀리에 만든 슈퍼 솔져인가? 아니면 CIA에서 하던 초능력 실험이 성공한 건가……? 그게 아니라면…….’
그가 다소 허황되다고 할 만한 단어들을 여러 번 떠올렸다.
물론 실제로 알거나 본 건 아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말도 안 되는 소리였는데, 이는 과거에 전부 미국이 해 왔던 그리고 지금도 진행할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들이었다.
특히나 미국은 세계를 압도할 군사력을 갖고 있는 만큼, 다른 방향의 연구도 진행 중이었다.
공상과학영화에 종종 나오는 레이저도 그중 하나였고.
사람도 연구 대상으로 삼았었다.
이에 여러 가능성을 점쳐 두고, 리를 확보하거나 최소한 접촉하기 위한 여러 수단을 떠올렸다.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에는 국방부에서 활용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을 테니까.
그가 고심하는 사이, 영상이 끝났다.
띡.
짧은 기계음 뒤로 어두워졌던 회의실의 조도가 올라갔고, 곧 최종 보고가 올라왔다.
작전의 성공 여부, 발생한 사상자나 생포한 인원 그리고 몇 가지 사고와 수습한 결과 등등.
이윽고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장관들이나 내가 할 일이 없었군요.”
그 말대로였다.
대통령이나 장관이 여기 앉아 있는 건 구경이 아니라, 혹시라도 모를 사고, 분쟁 따위를 지체 없이 수습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일어나자는 얘기를 안 했다.
비서를 불러서 무언가 짧게 지시를 내렸고, 이어서 앉은 이들의 면면을 바라봤다.
국방부 장관도 뭐가 더 있나 바라볼 때.
비서에게 귓속말 같은 보고를 받은 대통령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이제 전부 들어오라고 하세요.”
“……?”
로버트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쳐다보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회의실 문이 열리면서, 여러 명의 사람이 들어왔다.
그들의 면면을 보던 로버트가 주춤했다.
들어선 이들이 상당한 고위직 인사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국토안전부 장관, 국가정보국 국장, 국가안보보좌관, 국가대테러센터장, 대통령 특별 보좌관 등등.
그들이 들어오면서 가벼운 눈인사와 고갯짓으로 조용히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는 사이, 대통령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소개나 인사는 나중으로 미루고, 여러분을 소집한 이유부터 말하겠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바로 모이자, 금세 말이 이어졌다.
“근래 새롭게 올라온 보고를 다각도로 검토한 결과… 핵무기의 개발이나 수입을 시도하는 개인 혹은 세력이 등장했음을 확인했습니다.”
“……?!”
몇몇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핵무기라는 단어도 단어지만, 개발과 수입을 시도하는 작자가 있다는 사실이 크게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제법 많았다.
핵무기는 전쟁의 판도를 바꿀 만큼 강력한 무기고, 그만큼 분쟁의 요소가 다분하기 때문이었다.
만드니, 포기하니 떠드는 나라도 많았고.
문제는 대통령이 관련 인사들을 불러모았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정보에는 신빙성이 있을 것이고, 또한 심각하다고 볼 정도로 위험할 것이었다.
대통령이 곧 비서 한 명에게 지시했다.
“관련 자료 나눠 주도록 하세요.”
테이블 위로 자료가 빠르게 깔리기 시작할 즈음.
대통령의 시선이 로버트에게 향했다.
“엔더슨 국장.”
“네, 대통령님.”
로버트가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이 안에서 핵무기와 관련된 사안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관련된 보고서를 결재해서 올린 사람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집한 이유를 바로 깨닫기도 했었고.
뒤이어 대통령의 음성이 덧붙었다.
“국장이 그 건을 최초로 보고했던 사람인 만큼, 이 브리핑도 가능하겠습니까? 내용도 국장이 취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물론입니다.”
“그럼 간략하게 브리핑하고 나서, 개인 의견이 있으면 덧붙여 보세요.”
“의견이라면…….”
어떤 걸 바라는지 구체적으로 물으려하자, 기대 이상의 말이 돌아왔다.
“과거에 현장 일을 겸했던 조직의 지휘관으로서, 가감없이 무엇이든 말해도 좋습니다. 해야 할 일이든, 필요한 것이든, 원하는 것이든.”
“……!”
그 말에 로버트의 눈이 반짝였다.
대통령이 예시로 든 해야 할 일, 필요한 것, 원하는 것에 대해 할 말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특별히 할 말이 더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야 하기도 하고, 필요하면서, 동시에 원하는 것.
예컨대 팀, 사람, 돈, 무기 따위였다.
정확히는 강태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을 구비해 두려는 것이었다.
양성이나 대체도 불가능한 비대칭 전력과도 다름없는 전략 자원인 만큼, 그가 활약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밀어주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기회가 온 셈.
물론 다른 이들이 있는 만큼 강태를 입에 담을 순 없지만, 대통령이 짐작하게끔 돌려 말하면 됐다.
그에게도 어느 정도 보고가 됐을 테니까.
중요한 건 그간 하지 못해서 쌓여 있는 할 말을 고르는 거였다.
로버트가 제아무리 기밀 기관을 지휘하는 고위 공무원이라고 하지만, 미합중국의 대통령을 만나는 기회는 살면서 몇 번 없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그의 입이 늦지 않게 입을 열렸다.
“그럼 브리핑부터 하겠습니다.”
* * *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Tunis) 근교, 특급 호텔 스위트룸.
테이블에 펼쳐 둔 2개의 노트북과 꺼내 둔 여러 대의 핸드폰을 보던 지안드로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준비하던 작전이 어그러진 탓이었다.
정확히는 인도에 갔다던 그 용병들을 잡아 죽이려고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는데, 그게 실패한 것이었다.
물론 아예 짐작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용병들의 머릿수가 너무 많고, 새어 나가는 말들이 많아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문제는 지안드로가 상정했던 최악의 경우가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전멸.
“하…….”
그가 한숨을 흘렸다.
그야말로 모든 팀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사살되거나 체포됐다.
심지어 코소보 같은 분쟁 지역이나 상대적으로 치안이 불안한 동유럽만이 아니라, 선진국인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아주 조용했다.
그 이유도 분명했다.
‘미국의 일개 기관이 아니라, 미국이 개입했다는 소리겠지. 그것도 대통령의 허락이 필요할 정도로…….’
이미 전송된 영상을 몇 개 파악해서 장담할 수 있었다.
적의 얼굴을 꼼꼼하게 분석해서 신원을 확보한 건 아니지만, 외관과 장비만 봐도 충분히 견적이 나왔다.
그게 아니어도 이만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건 미국이 유력했고.
또한 왜 이러는지도 알 만했다.
“빌어먹을 칭크(Chink: 중국인을 비하하는 표현)가 불었고, 미국이 철썩같이 믿는 모양이군.”
그리고 그 모든 건 용병 몇 명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개중에서도 특히 한 명이 걸렸다.
“리라고 했지. 세르게이를 죽였던…….”
그의 입술이 달싹거리며 소리 내어 발음했다.
돌아보면 세르게이가 죽었던 날부터 문제였다. 당시에는 모습을 드러내고 진두지휘했던 세르게이가 모자랐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럴 만했다.
물론 모습을 드러낸 건 여전히 할 짓이 아니지만, 직접 처리하려고 한 건 잘한 일이었다.
오히려 당해서 문제였을 뿐.
어쨌든 간에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의 능력을 가진 그를 반드시 죽여야 했다.
이내 각오가 섰다.
언젠가 처리할 인물이 아니라, 진심을 다해 죽이기로.
이탈리아의 특수부대 장교 출신답게 그리고 음지의 용병들을 고용해서 다뤄왔던 브로커답게, 지안드로의 머릿속에 괜찮은 작전이 떠오르고 있었다.
마치 사냥하듯 토끼몰이처럼 한곳으로 몰아 죽일 수 있는 계획.
이윽고 지안드로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