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자정 무렵의 독일, 바이에른주, 데겐도르프(Deggendorf) 외곽에 위치한 마을.
이곳에 들어온 이후로 온종일 방에서 대기했었다.
정확히는 침투할 건물의 대각선 방향으로 약 30M가량 떨어진, 2층짜리 에어비앤비용 임대 숙소의 침실.
거기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무려 13시간 가까이 내내 처박혀 있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큰 덩치로 이목을 끄는 제이크와 유색인종인 마커스, 호세까지 총 4인은 방에서 조용히 기다려야만 했다.
오직 레이첼과 해리만이 정찰 목적으로 단 2회의 외출이 허용됐다.
그것도 단순 외출이 아니었다.
트래킹 관광객으로 변장하고, 인근 트래킹 경로를 한 바퀴 돌아보고 오는 긴 여정이었다.
그리고 저녁 전에 인근 마트에 들러서 장까지 봤었고.
다소 과하지만, 그럴 만했다.
이미 추적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고, 또한 이동 중에도 경계하라고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안내자 역할이자 CIA 정보원인 루이스 역시 나가지 않고 기다렸었다.
심지어 우리 중에서 그는 가장 초조한 모습으로.
“이봐, 겁먹었나?”
마커스가 주의를 주듯 루이스를 부르자, 옆에 있던 호세도 마지막으로 장비를 점검하면서 말했다.
“콜롬비아에서 경찰특공대 노릇을 하고, 불법 용병질까지 했으면서 왜 이렇게 떨어? 이중 스파이 같은 건 아니겠지?”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전 계약 기간을 다 지키고 반드시 미국인이 될 겁니다.”
루이스가 급하게 반응하자, 마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미국인. 그게 조건이었나 보군.”
“그렇습니다. 미국 국적을 준다고 했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콜롬비아에 있는 제 가족도 모두 미국으로 데려오게 해 준다고 했었습니다. 특히 제 아이는 학교까지…….”
“그만, 우리한테 다 떠들 필요 없어. 취조하는 것도 아니고.”
호세가 말을 잘랐다.
중간에 제지하려는 듯 쳐다보던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였고, 나도 내 장비를 마저 점검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루이스의 말을 굳이 더 들을 필요가 없었다.
그를 무시하는 게 아니었다.
앞으로 계속 함께할 동료라면 몰라도, 한번 보고 헤어질 사이라면 통성명만 하는 게 편하기 때문이었다.
부상을 입거나 사망할 경우, 그게 아니면 배신하더라도 덜 동요하도록,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끔 애초에 관계를 만들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에 CIA와 관련됐다는 것만 확인한 이후로 구체적으로 묻지 않았고, 속사정을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었다.
그저 임무에 집중하려 애썼다.
물론 당장 하는 거라고는 온종일 기다렸던 게 전부였지만, 그렇다고 불만을 품지도 않았다.
원래 훈련과 작전의 대부분은 인내였다.
충북 속리산, 인천 계양산, 강원도 평창의 황병산 할 것 없이 훈련하면서 죽치고 대기한 적이 수두룩하게 많아서 잘 알았다.
시키면 하는 스타일이라 답답하거나 지루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기다리고 나면 지안드로나 피칼에게 한 걸음 불쑥 다가가게 될 예정이라 오히려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게 잠깐의 생각을 덮어 두면서 찌뿌둥한 몸을 풀 때였다.
“작전 실행 5분 전, 다들 모여.”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제이크가 말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나도 따라 일어난 뒤.
움직이기 편하게 몸을 풀자, 제이크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작전 내용과 교전 수칙 재전파한다, 집중해.”
“알겠습니다.”
루이스를 제외한 팀 전원이 모였고, 동시에 간결하고 핵심적인 내용만 언급됐다.
무성 무기 사용이나 화기 제한, 증거 인멸 등등 여러 용어가 적잖게 나왔으나, 핵심은 간단했다.
작전과 관련된 모든 것을 최소화하라는 것.
예컨데 소음, 흔적, 시간까지 작전에 연관된 모든 것을 줄여야 했다.
더욱 상세하게는 발사하는 탄환의 개수도 고려해야 했고, 내딛는 걸음 수, 소리 내어 말하는 글자 수까지 모두 신경 써야만 했다.
말 그대로 절대 발각되어서 안 되기 때문이었다.
여행객 같은 두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 인원이 13시간 넘게 나가지 않은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추가로 느려서도 안 됐다.
시간을 줄이라는 말처럼, 속전속결로 치고 나와야 했다.
작전이 지연될수록 노출될 확률이 점점 높아지는 탓이었다. 아마 여기서 노출됐다가는 정말 계약서대로 버려질지도 몰랐다.
여긴 분쟁 지역이 아닌, 선진국으로 유명한 그리고 열강 중 한 곳인 독일이었으니까.
그렇게 생각을 갈무리할 때였다.
“위치로.”
제이크의 목소리가 다시금 묵직하게 깔리듯 들려오기에 바로 맨 앞자리로 나아갔다.
내 뒤로는 제이크, 해리, 레이첼, 호세, 마커스 순서로 나란히 섰다.
루이스는 거실에 어정쩡하게 섰을 거고.
문만 쳐다보고 있음에도 보는 것처럼 알 수 있었다.
13시간을 방 안에 처박힌 채로 손가락만 빨면서 기다린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빡세게 작전을 수립하고 암기했었다.
이동할 때의 대열 순서부터 각자의 위치, 해야 할 임무, 작전 건물의 구조, 적이 숙박 중인 방과 침대의 위치 등등.
온갖 것들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시뮬레이션을 돌렸었다.
지금은 그걸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었고.
이내 기다렸던 명령이 떨어졌다.
“출발.”
그와 동시에 문을 열고, 헬멧 마운트에 걸려 있던 야투경을 내렸다.
그래야만 했다.
자정의 시골답게 모든 불이 다 꺼졌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암흑이었다.
달빛이 연하게 깔려 있긴 했으나, 육안으로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야투경에 도움이 될 정도였다.
근처에 가로등이 몇 개 있었는데, 켜진 건 없었다.
켜져 있었어도 꺼놨을 것이었다.
CIA 외에도 대외협력국의 현지 위장 요원이 이미 이곳에 와서 우릴 돕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작전 건물 투숙객으로 위장한 채로.
그가 누군지도 대충은 알았다.
실제로 얼굴을 보지도 못했고 이름도 모르는 인물이지만, 게임에서 몇 번인가 봐서 기억이 난 덕분이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으나, 내 추측이 맞다는 것도 금세 알았다.
작전 건물의 문을 그가 열어 줬기 때문이었다.
덜컥, 스윽─
문을 열어 준 현지 요원은 엑스트라 같은 인물이어서 크게 반갑진 않았는데, 그게 아니어도 반가워할 틈은 없었다.
빠르게 움직여야 했고, 현지 요원도 곧장 안내자의 역할부터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발소리가 좀 울리네…….’
카펫 하나 없는 나무 복도가 워커의 발소리를 고스란히 각 방으로 퍼뜨리고 있었다.
조용히 걸어도 자정이라 그런지 더더욱 시끄러웠다.
물론 다른 방법은 없었다.
창문은 잠겨 있고, 들어갈 문은 복도에 난 방 문이 전부였으니까.
곧이어 가벼운 수신호가 이어졌다.
스스슥.
신호에 맞춰 급습한다는 뜻이었고, 다들 제자리에 서 있었다.
정확히는 나와 호세가 방문 하나, 제이크와 해리가 하나를 각각 맡아서 대기 중이었고, 마커스와 레이첼이 바깥에서 창문을 경계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완전하게 포위한 셈.
이윽고 현지 요원에게 방문 키까지 전달받아, 천천히 열쇠 구멍에 맞춰 넣고 돌렸다.
트드득.
문고리 돌아가는 소음이 유난히 거슬리게 난 뒤, 신호에 맞춰 천천히 밀었다.
한 손에는 대검을 든 채.
투숙객으로 위장한 용병들이 그대로 잠들어 있길, 깨어나지 않길, 또한 그 어떤 변수도 없길 바라면서 들어섰을 때였다.
‘…염병.’
욕설이 목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침대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내게 달려드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 오른손이 반사적으로 대검을 내던졌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자동적으로 적용된 ‘명사수’ 특성의 보조를 받아서.
던지는 순간에 알 수 있었다.
휙─!
설명란에 있던 에임 보정이 총만이 아니라, 투척 무기에도 적용된다는 걸 새삼 깨닫는 순간.
푹! 쿠당탕─
대검을 맞은 이가 2층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고꾸라졌다. 동시에 1층에서도 인기척이 일었다.
아니, 이미 반 정도 상체를 일으켜 세운 채 움직이고 있었다.
심지어 야투경을 안 썼는데도, 눈이 어둠에 적응을 한 건지 내쪽을 정확히 노리고 있었다.
그것도 제법 신속하게.
동시에 한 놈의 손에서 들려 나오는 게 보였다.
소음기가 달린 권총.
내가 플레이트 캐리어의 우측 갈비뼈 쪽에서 대검을 막 꺼냈을 때였다.
“……!”
이에 보자마자 남은 대검을 내던졌고, 그것이 울대에 박히는 모습을 확인했다.
휙─ 푹!
순식간이었다.
기껏해야 거리도 2M 남짓하기 때문인지, 오히려 던지기 쉬웠다.
특전사 시절에 무성 무기 투척을 훈련할 때하고는 천지 차이였다. 가늠하고 조준할 필요가 없이, 손끝이 향하는 대로 던지면 그만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중요한 건 다음이었다.
아직 셋이 더 살아 있었고, 그들도 권총이나 대검 같은 걸 꺼내든 탓이었다.
다행인 건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휙─ 푹!
어느새 호세가 던진 대검 하나가 가까이 오던 놈의 가슴팍에 박혔고, 동시에 내가 뛰어들면서 그 대검을 뽑았다.
촤악!
그리고 재차 던졌다.
마찬가지로 예비 동작 따위는 필요 없는, 아주 가벼운 손놀림으로.
휙! 푸욱─!
이제 남은 건 한 명.
그는 대검으로 미처 처리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글록19를 꺼내어 격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먼저 격발했고, 소리까지 지르려 하던 탓이었다.
퉁!
묵직한 총소리 뒤로, 고함 같은 소리가 막 터져 나오려던 무렵.
빠르게 지향 사격을 했다.
투두둥! 철퍼덕─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였다.
호세도 글록19를 꺼내어 겨누고 있었으나, 그보다는 내가 한발 빨랐다.
‘안 쐈으면 했는데…….’
아쉬움을 삼키면서, 사체를 확인하려던 무렵.
급히 뛰어나갔다.
그래야만 했다. 호세가 남은 이들을 알아서 처리할 거라고 믿고, 우선은 몸을 날렸다.
옆방에서 총성이 들린 탓이었다.
퉁─! 투둥!
복도를 날듯이 뛰어서 옆방으로 들어간 순간.
아주 불편한 광경을 마주했다.
제이크와 해리를 포함한 총 6명의 사람들.
전부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개중 제이크가 등과 허리춤에 각각 한 명씩 매단 채 사람 하나를 처리하는 듯했고, 해리도 한 명의 용병과 격투를 벌이는 것 같은 모습…….
아니, 해리는 당하고 있었다.
해리가 빈손이었고, 상대가 권총을 쥔 채 싸우고 있었으니까.
이 모든 걸 단 한순간에 목격했다.
그와 동시에 급히 들어온 발이 멈추고, 글록19를 쥔 손은 올라가고 있었다.
본능이었다.
다 죽여야 했다. 총칼 가릴 게 없었다.
까딱 잘못하면 해리가 총에 맞게 생겼는데, 제이크 역시 셋을 상대하느라 버거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총을 겨누는 사이, 짐작까지 했다.
임기응변처럼 만든 급한 역매복일 가능성이 크다고.
아니면 제이크에게 매달리긴 어려웠다.
바로 목을 꺾었을 테니까.
그사이 격발했다.
투두두둥!
딱 네 발을 쐈다.
동시에 좁은 도미토리 룸에 섞여 있던 이들이 그대로 추락하듯 떨어졌다.
물론 다 죽은 건 아니었다. 죽일 수도 없었다.
잘못하면 관통한 탄이 가까이 붙은 해리나 제이크의 몸속에 박힐 수도 있었으니까.
안전하게 그나마 멀리 떨어진 부위를 맞혔다.
“으윽…….”
누군가의 신음이 나오고, 한쪽에서는 더듬대며 움직이기에 탄을 마저 소모했다.
투둥! 투두두둥!
그렇게 사체 4구를 만드는 사이, 제이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로미오 50, 의료 지원 좀 해 주게. 지금 칼이 박혀 있어, 2개 정도.
“아…….”
야투경으로는 미처 안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까 튀어나온 칼 손잡이 같은 게 보였다.
등과 옆구리쪽.
그래서 용병 셋을 채 처리하지 못했을 터.
해리와 함께 다가가는 사이, 제이크가 선수치듯 말했다.
“괜찮아, 깊게는 안 들어왔어. 아마도 근육에 칼날이 물린 것 같아.”
“예? 근육에……?”
주춤하며 되묻자,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찔릴 때 힘을 줬어. 그러니까 SSE부터 진행해, 어서.”
주사 바늘도 아니고, 칼에 찔리면서 힘을 주는 게 말이 되나 싶었으나 일단 움직였다.
빨리 마무리하고 이 좁고 복잡하고 어지러운 현장을 떠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