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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121화 (121/185)

121화

독일, 바이에른주, 데겐도르프(Deggendorf) 외곽의 한 마을.

손바닥 크기의 자잘한 돌이 깔린 골목길 안으로 노후된 푸조 세단과 구형 폭스바겐 골프 한 대가 천천히 굴러 들어왔다.

드르르륵─ 덜커덩.

울퉁불퉁한 돌길을 따라 타이어가 크게 흔들리는 사이.

두 대의 차량에 타고 있던 총 14개의 눈알은 바깥을 아주 예민하게 살피고 있었다.

“…사진이나 자료보다는 좀 한적해 보이긴 하는데, 그래도 쉽진 않겠어.”

마커스의 말이었다.

그가 차 문 아래로 글록19의 손잡이를 쥔 채 말했고, 옆자리에서 반대편을 내다보던 호세도 중얼거리듯 답했다.

“그러게 말이야. 건물들이 여유 있게 떨어져 있긴 하지만… 이래서야 섬광탄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어. 노인네들이 깜짝 놀라서 죄다 일어날 것 같단 말이지.”

그리고 곧 해리도 입을 열었다.

“저기, 저 건물이네요.”

한 손으로 핸들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차창을 가리켰다.

동시에 마커스와 해리도 전면 차창을 내다보면서 가까워지는 2층짜리 건물을 바라봤다.

이미 사진으로 봤던 그리고 지나오면서 본 건물과 같은 외관이었다.

1층에는 숙박 시설임을 알리는 조그만 간판이 붙어 있고, 내부는 개조해서 도미토리 같은 다인실로 쓴다는 차이만 있을 뿐.

그리고 곧 마커스의 입이 열렸다.

“…제기랄, 이번에도 리의 뒤에 있어야 하나…….”

“왜? 미안해서 그래?”

“미안한 게 전부겠어? 스스로도 부끄럽고 안타까워서 엿같다고. 그의 활약이 대단할수록 말이야. 리에게 뭘 배우면 좋겠는데, 그건… 배울 수도 없는 능력이잖아? 그냥 조준해서 쏘는 거라는데, 하…….”

울컥하듯 말을 뱉어 낸 마커스가 한숨을 흘려 냈다.

이는 지난 10개월간 느낀 진심이었다.

미 육군 1티어 특수부대인 델타포스 출신으로서 갖고 있던 자부심도 많이 희석되어 있었다.

물론 강태를 미워하거나 시기하는 건 아니었다.

늘 올려다봤었다.

너무나도 대단하고 훌륭해서.

그러나 한편으로는 강태를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을 내심 책망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자 한쪽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흐흐흐흐, 리하고 함께 다닌 지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그런 소리가 나와?”

호세였다.

그가 여전히 미소를 띤 채 말을 이었다.

“이제 그런 미련을 버려, 그냥 받아들이라고. 리는 진짜 괴물이야, 괴물. 우리가 하지 못하는 걸 당연하게 하는… 음?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내가 10년 넘게 한 저격수를, 그가 한 달 만에 따라잡았을 때도 그러려니 했었어. 그는 괴물이니까.”

“알지만, 리도 결국에는 사람이잖아? 방탄판이 터져서 피멍이 들고, 노출된 피부에 탄이 맞는……. 그래서 걱정이 되는 거야, 미안하고. 그가 나설수록 죽을 위험도 커지니까.”

마커스가 그러면서 다쳤던 강태를 떠올렸다.

상처가 나고, 피가 났었다.

괴물이라고는 해도, 치료가 필요한 사람인 건 분명했다.

이에 호세가 진절머리 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넌 가끔 보면 내 아내보다 더 하다니까? 생각이 왜 이리 복잡해? 너나 나나, 해리나… 다들 그냥 맡은 임무만 최선을 다하면 될 뿐이야. 그리고 생각해 봐, 너라면… 네가 만약 그런 괴물이었다면, 어떻게 할래? 리가 했던 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몸을 사리겠어? 안 그래?”

“그건… 네 말이 맞군.”

마커스가 짧게 대꾸하고 말았다.

동시에 알 자마쉬에서 루크 밀러가 사망하고, 배신자였던 스캇 에반스가 잡혀 갔던 날을 떠올렸다.

당시에도 강태가 비슷한 말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사이, 호세가 운전석으로 말을 돌렸다.

“아! 참… 해리, 마커스는 몰라도 네가 오해할까 봐 말하는데…….”

“네?”

“내가 그렇다고 해서 리의 활약을 당연하게 여기는 건 아니야. 항상 미안해하고, 고마워하고 있어. 무슨 소린지 알지? 어쨌든 선두에 서는 만큼 위험한 건 사실이니까.”

해리도 천천히 차량을 멈추며 답했다.

“아… 네,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선배님이 종종 두 분 칭찬도 하거든요.”

“오, 리가?”

“네, 배울 점이 많다고… 용병 생활하면서 많이 깨달은 게 있다고도 했었습니다.”

“하하하, 역시 리. 정말 완벽한 사내야, 내 친동생이었으면 좋겠군.”

호세의 감탄에 마커스가 글록19를 감추면서 대답했다.

“다 왔어, 이제 내리자고.”

그 말과 함께 마커스의 눈이 빛났다.

침투할 작전 건물의 맞은편에 위치한 에어비앤비 임대 숙박 시설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 * *

늦은 저녁, 워싱턴 D.C, 백악관 웨스트윙의 지하 회의실.

기다란 타원형 테이블의 말석을 차지한 대외협력국 국장 로버트가 다소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대통령과 비서실장, 국방부 장관, 국무부 장관과 차관, 거기에 CIA 국장까지.

로버트가 대면하기도 힘든, 이 나라를 이끄는 최고위직이 모두 다 모여 있는 자리였다.

‘일이 너무 커졌어…….’

그의 미간에 한차례 주름이 잡혔다.

국무부 차관을 상대하면서도 적잖이 신경을 써야 하는 판인지라, 경력이 많은 로버트로서도 다소 긴장되는 탓이었다.

애초에 원하던 일도 아니어서, 스트레스가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염려되는 게 많았다.

단순 오차, 잘못으로 인한 실수, 극단적으로는 작전의 실패까지.

거기서 인명 피해도 우려됐다.

물론 그 책임을 로버트가 모두 떠안지는 않겠으나, 여러 조직과 기관이 많이 엮인 만큼 그 무게가 가볍지는 않을 거였다.

심지어 대통령까지 자리하고 있었다.

자신이 잘못되는 건 물론이고, 조직인 대외협력국까지 타격을 입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진행 중인 대외협력국의 각종 임무가 어그러질 터.

개중 가장 중요한 전략적 자원인 강태 역시 앞으로의 임무뿐만이 아니라, 거취도 달라질 확률이 높았다.

‘그를 CIA에서 데려가려는 건가… 아니면 국방부에서……?’

여러 가능성을 점쳤으나, 일이 이렇게 된 건 내부자 탓이 아니었다.

따지자면, 적인 지안드로가 원인이었다.

그가 접촉하고 불러들인 음지의 용병들이 유럽 전역에 깔렸는데, 그 숫자가 너무 많았다.

대략 수백 명.

환각성 마약을 먹고 달려드는 어부 출신의 해적 수백 명과 다른 어마어마한 무력 집단이었다.

최소 특수부대, 혹은 실전 경험을 갖춘 군인 출신들이었으니까.

심지어 나라 역시 파악한 것보다 더 많았다.

대략 10여 개국.

그래서 일이 커졌다.

CIA뿐만 아니라, 국방부에서도 흑색 작전을 전담하는 1티어 특수부대 대원들을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관련 사실을 인지하고 있던 유럽 국가 몇 군데와는 협상도 해야 했다.

즉, 대통령을 비롯한 요인들이 모여 있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사이, 대통령의 시선을 받은 국무부 산하 군비 통제 및 세계 안보 차관(Under Secretary for Arms Control and International Security Affairs)이 로버트를 바라봤다.

“로버트 엔더슨 국장, 준비한 브리핑 시작하세요.”

“알겠습니다.”

대답한 로버트가 앞에 놓인 마이크 버튼을 켰고, 화면에 등장하는 자료에 따라 간결하게 작전 개요 등을 발표했다.

다해 봐야 5분 남짓한 시간.

그 끝에 로버트가 숨을 고르면서 자리에 앉았다.

현지와 통신을 전담하던 장교 한 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작전 실행까지 한 시간 남았습니다.”

한 시간 뒤에 수백 명의 용병을 동시에 처리한다는 뜻이었다.

로버트가 숨을 흘려 냈다.

긴장하기도 했으나, 일이 예상외로 흘러가서 내심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이런 자리가 아니라, 보고하면서 만나고 싶었는데…….’

좋은 성과를 갖고 당당하게 보고해서, 대외협력국에 필요한 지원을 더 받아 낼 요량이었다.

사람이든, 돈이든.

그리고 미국의 안보를 위해 더 견고한 힘을 갖추고, 활발하게 작전을 펼치고 싶었다.

그러나 일은 이미 크게 틀어지고 있었다.

고개를 저은 로버트가 잡념을 정리했다.

대신 이번 작전에서 나올 부산물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증거 같은 것들.

‘여기서 지안드로를 잡을… 뭐라도 나오면 좋겠군. 아니면 배후에 있을 피칼이라는 놈이라던가…….’

아니어도 그래야만 했다.

이번 작전에서 가장 힘들고 위태로운 일을 대외협력국이 맡았기 때문이었다.

독일 동쪽 도시의 숙박 시설 침투.

민가와 너무 가깝고, 제거할 적 역시 적은 편이 아니라서 조용히 처리하기가 어려운 작전이었다.

심지어 독일 몰래 진행해야 하는 만큼 더 어려웠고.

그런 이유로 모두가 꺼린 독일의 작전지에 강태가 소속된 G&G Corp의 TF가 배정됐었다.

물론 강태는 결국에 해낼 터.

로버트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그의 귓속으로 묵직한 목소리가 찔러 들어왔다.

“거기, 엔더슨 국장이라고 했습니까?”

국방부 장관의 목소리였다.

그가 기밀 처리된 서류를 스륵 넘기면서 말을 이었다.

“개별 작전의 난이도가 다 다르고, 쉬운 게 없다지만…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여기 당신네 팀이 맡았다던 독일은 어떻게 감당할 생각입니까? 얼마 없다는 그쪽 요원들이 꽤 많이 투입된 거로 보이는데… 그냥 발각되는 걸 염두에 두기라도 한 겁니까? 나중에 독일과 협상하라고 부탁할 생각입니까?”

쏘아붙이는 말투였다.

국방부 장관으로서는 아무리 봐도 버거운 작전으로 보인 탓이었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작전이 있긴 하나, 그곳은 독일이 아닌 CIA 힘으로 찍어 누르면 그만인 동유럽 국가들이었다.

독일은 달랐다.

아무리 CIA나 미국이라고 해도, 쉽게 찍어 누르기가 어려웠다.

물론 우위에 있긴 하겠지만, 작전이 발각될 경우에는 명분과 실익을 독일이 모두 갖게 될 터.

그러나 로버트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럴 일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왜 없는지, 그걸 설명해야 할 것 아니오?”

“저희 팀은 단 한 번의 작전도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작전 결과는 보안 때문에 보여 드릴 수 없으나, 대통령께 허가받으신다면 당장 가져오도록 하죠.”

국방부 장관의 눈이 바로 대통령에게 향했다.

동시에 대통령이 고개를 저었다.

“이미 승인한 작전이고, 실행까지 한 시간도 안 남았습니다. 지켜봅시다.”

허가나 불가라는 단어를 입에 담진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대통령 역시 로버트의 손을 들어 주고 있었다.

그도 얼마 전에 관련된 작전 결과 하나를 보고 받았었기 때문이었다.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만한 성과였다.

그래서 국무부 장관에게 각별히 신경 쓰고, 따로 치하하라고 지시했었다.

‘보상으로 달라던 게 2마일이 넘는 크기의 사격장과 헬리콥터라고 했었나…….’

그 생각과 함께 최근에 있었던 5함대를 움직였던 결과도 짤막하게 떠올렸다.

구체적인 내용을 일일이 파악하진 않았으나, 당시 현장에 나갔던 장교의 보고서 중에서 단어 하나는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었다.

초능력자.

물론 비유에 불과한 표현이나, 이뤄 낸 결과를 보면 그 말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군사 경험이 없는 대통령조차 신기하다고 생각했었으니까.

물론 당사자인 강태는 병원에서 실시한 정밀 진단 결과, 초능력자가 아닌 체력이 아주 우수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일개 개인인 그의 활약이 더 기억에 남는 것이었고.

그사이, 까맣던 스크린이 켜졌다.

전 세계 10여 개국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대규모의 작전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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