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강태가 MK.20의 양각대를 접었다.
방금 제이크가 해적선의 모선을 AT4(대전차 화기)로 명중시키면서, 주변의 위험이 전부 해소됐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화물선 근처로 접근해 오는 미식별의 선박이 하나도 없었다.
오던 보트까지 되돌아갔다.
뒤늦게 덤벼들려던 것인데, 자진해서 총까지 바닷속에 수장시키고서 도망가는 것이었다.
“쟤들은 약을 덜 먹었나…….”
강태가 중얼거리면서 휘이 주변을 둘러볼 무렵.
두두두두두두―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가 퍼졌다.
강태 역시 이 소리를 처음 듣는 건 아니었다.
총격전을 벌이던 중간 즈음부터 간간이 들려왔는데, 총성이 멎으면서 소리가 더 선명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곧장 무전도 도착했다.
- 리, 정리하고 갑판으로 내려와. 해병들을 맞이해야겠어.
“해병이요? 상황 다 끝났는데 말입니까?”
- 그래, 이런 상황이 끝났으니 누구라도 신기해하지 않겠나?
강태가 주춤하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그렇겠네요.”
왜 오나 했다가도, 자신이 벌인 일을 곧장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당장 보이는 것들만 해도 보통이 아니었다.
사방이 초토화되듯 어질러진 가운데, 화물선만 유유히 나아가고 있는 상황.
‘헬기에서 보면 가관이겠네…….’
상공에서는 아주 너저분한 바다 위의 상황이 더욱 선명하게 보일 게 분명했다.
이는 당연하게도 소총 종류의 무장만 허용되는 용병 6명이 저지를 만한 사이즈의 일이 아니었다.
당사자인 강태가 가장 잘 알았다.
볼트 액션식이 아닌, 반자동 저격총으로 1마일(1.6㎞) 이상의 해상 저격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군말 없이 잔탄과 총기를 챙겨 옥상을 내려갈 무렵.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어느새 헬기가 선박 가까이 다가왔고, 상공에서 레펠 하강이 이뤄졌다.
안에서 내린 사람은 단 두 명.
강태가 그들을 보며 갑판으로 나아가는 사이, 미 해병 장교가 착지하고서는 화물이 쌓인 넓은 갑판을 둘러봤다.
근처의 커다란 컨테이너부터 모래 포대가 쌓인 난간에 만들어진 초소와 주변에 떨어진 탄피, 그리고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거구의 제이크까지.
이를 천천히 확인한 장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가 있었군.’
흔적만이 아니라, 분위기도 그랬다.
방금 교전이 있었던 것처럼 묘한 긴장과 열기를 느낀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마주한 제이크를 올려다보며 악수와 함께 관등성명을 밝히며 인사했는데, 다른 곳에서 반가워하는 음성이 터져 나왔다.
“오오! 해병이 왔어! 이제야 바다에 어울리는 사내를 만나게 됐어.”
호세였다.
저격 소총을 수거하고 다가오던 그가 장교에게 환하게 웃어 보일 때였다.
“저쪽은 호세 페레즈, 네이비씰 출신이오.”
제이크가 대신 소개하면서 말을 이었다.
“나는 제이크 러셀, 델타에서 근무했었고.”
“아, 델타……!”
해병이 즉각 반응했다.
3티어 특수 부대 출신이거나 운 좋은 2티어 출신으로 생각했는데, 그 이상인 델타 포스였기 때문이었다.
해적 격퇴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그 과정을 보지 못해서 확신할 순 없었지만, 어쨌든 이들은 양성 비용이 수백만 달러가 넘는 인간 병기였기 때문이었다.
곧 장교의 입이 열렸다.
“그럼… 귀하의 팀이 적들을 모두 격퇴한 겁니까?”
“보다시피.”
“근데 저 동력선은 어떻게…….”
장교가 아직도 기울고 있는, 동시에 회전하듯 나아가는 해적 모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체에서 한 줄기 검은 연기를 흘리면서 패퇴하는 듯한 모습.
제이크 역시 그쪽을 잠깐 보다가 답했다.
“우리 대화 내용이 상부에 보고됩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모르겠습니다.”
제이크가 어깨를 으쓱하자, 장교가 멈칫했다가도 고개를 끄덕였다.
답하지 않았으나, 짐작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비허가 무기를 썼겠지. 로켓포 같은 대전차 화기…….’
그렇게 짐작하는 사이.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호세가 장교에게 손을 내밀었다.
“방금 당신이 레펠을 타고 내려오는 장면은 잘 봤습니다, 근사하더군요. 해병 원정대 소속이겠군요, 내 씰 동료 한 명도 해병 원정대 중사로 있었는데, 혹시 아는 사이일 수도 있겠군요. 그 친구의 정확한 출신이…….”
“자, 잠시만.”
장교가 호세의 길어지려던 말을 끊고서 물었다.
“페레즈 씨, 저격수십니까?”
호세가 큼직한 하드 케이스를 챙겨 들었기 때문에 묻는 거였다.
동시에 해상에서는 저격수가 할 만한 일이 많았고, 오면서 봤던 광경도 저격수가 처리할 만한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모터의 기능을 상실한 듯 표류하는 보트들.
대개 손이나 노로 저어서 현장을 이탈하고 있었는데, 한두 척이 아닌 여러 척이라서 단순 고장으로 보기가 어려웠다.
저격으로 고장 냈을 가능성이 크고, 마침 호세가 그런 저격수로 보였다.
돌아오는 답도 장교의 예상과 같았다.
“하하! 역시 알아보는군, 맞습니다. 내가 씰의 저격수였습니다. 은퇴한 지 좀 되긴 했지만, 해적들 몇몇은 충분히 처리할 수 있죠.”
“보트는 어떻게 한 겁니까? 설마 모터를 맞힌 겁니까?”
“보트? 모터? 무슨…….”
되묻던 호세가 잠깐 입을 벌리더니 피식 웃고 말았다.
“그게 뭔지는 몰라도, 아마 리가 했을 겁니다.”
보트와 모터 얘기가 뭔지 전혀 알진 못했으나, 묻는 뉘앙스를 보고 짐작한 것이었다.
뭐가 됐든 간에 해병 원정대 장교가 당황하고 놀랄 만한 일은 전부 강태가 했을 테니까.
동시에 장교가 눈을 껌뻑였다.
“네? 리? 그도 용병입니까?”
“저기 오는군요. 인사라도 하세요.”
그 말에 장교가 시선을 돌렸고, 다가오는 강태를 바라봤다.
제법 큰 키에 보통 체중, 단단해 보이는 몸부터 헬멧과 플레이트 캐리어 같은 장비, 이어서 앞으로 매고 있는 HK416과 허리춤의 글록19, 마지막으로는 손에 들린 커다란 하드 케이스까지 살핀 것이었다.
‘장비나 체격 모두 훈련을 받은 것 같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악수를 나누며 통성명을 마친 장교가 곧장 말을 이었다.
“표류하던 모터보트… 당신이 한 겁니까?”
“아, 그거. 예.”
“…어떻게 한 겁니까? 한두 척이 아니던데. 설마 모터라도 조준하고 쏜 겁니까?”
“아시네요, 맞습니다.”
태연한 답 뒤로 장교가 주춤했다.
“오… 그럼 그 보트들은 전부 당신이 망가뜨린 겁니까? 출신은 어딥니까? 네이비씰입니까? 아니면 델타?”
호세와 제이크의 출신 부대를 차례로 언급하자, 강태가 손을 내저었다.
“아, 그렇습니다. 군대는 한국에서 전역했고요.”
“한국? 북파 특공대 같은 겁니까? 그… 참수 부대? 뭐, 그런 걸 들어 봤는데, 혹시 그런 비밀 부대입니까?”
“전시에 그런 역할도 할 순 있겠지만, 비밀 첩보 부대 같은 건 아니었습니다. 특수전 사령부 소속입니다.”
“…아, 그렇군요.”
장교가 멈칫했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럼 어느 정도 거리에서 맞힌 겁니까? 탄흔도 없고, 주변 파편 같은 걸 봐서는 근거리에 접근한 보트가 없는 것으로 보이던데…….”
장교가 추측한 것들을 토대로 물었다.
배에서 내려올 때부터 진즉에 다 파악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화물선에서 해적을 제압했다면 원거리에서 교전했을 것이고, 아니면 주변에서 도와줬을 거라고.
한데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헬기가 도착한 이후로 뒤늦게 온 인도와 소말리아, 한국 국기를 단 중소형 함정 몇 척이 전부.
그리고 지금은 돌아가고 있었다.
강태 역시 바다 멀리 보이던 청해부대 함정을 보면서 답했다.
“좀 멀리서 쐈어요.”
“멀리서? 멀리라면 어느 정도입니까? 아니, 그 전에 하나만 묻죠. 우리가 오는 30분 안에 이걸 이렇게 만든 건 맞습니까? 다른 지원은 없는 게 맞습니까?”
놀라고도 흥분해서 질문이 연이어 튀어나왔다.
동시에 강태가 담담하게 답했다.
“저희가 했습니다.”
“그럼 사격은 어디서 한 겁니까? 사방이 모두 적이었던 걸로 보이는데.”
“저기 위쪽에서 저격했고요, 저기 그런데 …….”
강태가 분위기를 자르듯 질문을 이었다.
“가는 길에 호위 좀 받을 수 있습니까? 탄약을 좀 소진해서 좀 불안하거든요.”
“아, 확인해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좀 부탁드립니다.”
강태가 그렇게 대화를 잘라 내듯 말하고서 돌아섰다.
1~2㎞ 거리에서 보트의 모터나 RPG-7 탄두, 그 외의 해적들을, 그것도 혼자서 거의 다 살상했다고 하면 쉽게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예전에는 어느 정도 말했으나, 이제는 대충 말하고 돌려보내는 게 나았다.
그의 실력이 처음보다 훨씬 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특성의 효과가 말도 안 될 정도로 대단하긴 했으나, 지금은 거기서 몇 걸음은 더 나아가 있었다.
한마디로 초인에 이른 수준.
강태도 당사자로서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함께해 오던 G&G Corp 팀이나 자료를 수집한 대외 협력국에서만 이해할 뿐, 외부인이 받아들일 만한 게 아니었다.
물론 함께 작전한 이들이라면 전에 그랬듯 얘기도 나누고, 연락처도 주겠지만, 이 사람은 달랐다.
그냥 결과만 본 상태.
설명하거나 납득시키는 것보다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게 이로웠다.
‘우릴 노리는 놈들도 이 지경인데… 이 장교가 뭐라고 생각할지…….’
이어서 주춤대는 해병 장교를 놔둔 채, 강태가 돌아섰다.
만약 강태의 수준을 적이 온전히 알았다면, 이 정도의 규모로 공격해서는 안 됐다.
소말리아 북부의 해적을 깡그리 끌어오든지, 아니면 소말리아나 예멘의 해군 함정을 매수해서 미사일이나 기관포 같은 걸 오인 사격 하게 만들어야 했다.
물론 사람 하나 죽이기에 너무 과한 조치지만, 이는 강태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동료인 제이크나 호세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강태는 그런 수단이 아니면 전장에서는 결코 막을 수 없을 거라고.
이윽고 제이크도 해병 장교를 돌려보냈다.
“자, 그럼… 고생 많았습니다.”
“…난 당신과 좀 더 얘기하고 싶었지만, 분위기를 봐서 돌아가는 게 나을 것 같군요. 다음에 인연이 되면, 그때 또 봅시다.”
호세까지 어쩔 수 없다는 듯 인사하자, 해군 장교가 떠밀리듯 다시 레펠을 타고 상승했다.
그리고 헬기에 탑승하자마자, 쏟아지는 물음에 주춤하며 답했다.
“저격을 한 것 같긴 한데… 그 외에는 잘 모르겠어.”
- 그게 무슨 말입니까? 모른다고요? 그거 알아보러 내려갔던 거 아닙니까? 설명을 안 해 주던가요?
“하긴 했는데…….”
장교가 주춤하자, 물음이 여기저기서 급하게 쫓아 나왔다.
- 그럼 그걸 말해 주십시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랍니까? 답답해서 못 기다리겠습니다.
그 소리에 장교도 멈칫하다가, 들었던 것을 되새기듯 천천히 끄집어냈다.
“아시안, 아… 한국계 미국인인 ‘리’라는 사람이 이렇게 했다는데…….”
- 그래서요?
“그게 다야.”
- 무슨 소립니까? 이걸 한 사람이 했다는 겁니까?
“아, 물론 델타와 씰도 한 명씩 만나긴 했는데… 두 사람 모두 그에게 공을 돌렸어. 심지어 씰은 보트에 관해서는 전혀 모르는 듯 보였고…….”
- 델타와 씰? 그래도 이번 일은 몇 명이 하기에 많이 힘든 일 아닙니까? 혹시 중기관총 같은 거 숨겨 온 게 아닐까요?
1, 2티어 특수 부대가 언급되자, 병사들이 반 정도는 납득하면서 물었다.
그게 아니고서는 바다 위에 떠 있는 100여 구에 가까운 해적 시신과 반파되고 박살 난 십여 대의 보트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장교가 고개를 저었다.
“기관총 같은 건 없었어. 모선은 아마 대전차 화기 같은 거로 파괴한 것 같긴 한데… 해적들은 아니야. 갑판의 탄피만 봐도 소총이 전부였거든.”
- 그럼 저걸 어떻게 했다는 겁니까?
도돌이표 같은 질문에 장교가 헬기 아래의 화물선을 내려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마치 그가 혼자 한 일 같았는데…….”
도저히 믿기지 않지만, 그가 받은 느낌이 그랬다.
이걸 보고서에 적긴 어렵겠지만, 해병 원정대의 장교는 군 생활 처음으로 불가사의한 일을 겪고 있었다.
‘만약 추측이 맞는다면… 초능력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