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보트 후미에 달린 모터는 상당히 작은 편이었다.
정확히는 탑승한 해적들이나 키를 잡은 조종수의 손과 팔 따위에 가려져서 드러난 부분이 별로 없었다.
스코프에 보이는 모터 부분을 따져 보면 대략 사람 머리보다도 한참이나 작은 수준.
장거리 저격이 쉽지 않은 타깃이었다.
측면에서 접근해 오는 해적들을 일일이 맞힌 것도 그런 이유였다.
불분명한 모터를 맞히기 위해 탄을 소모하는 것보다, 확실하게 적을 무력화하는 게 합리적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적이 대각선 방향에서 접근하는 게 아니라, 후미를 직선으로 따라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즉, 좌우의 움직임이 측면에 비해서 아주 적다는 뜻.
당연히 조준하기도 그만큼 쉬웠다.
측면이라면 맞히는 게 불가능한, 1.2㎞ 바깥에서 준비 중인 RPG-7 탄두를 터뜨린 것도 그런 이유였다.
또한 측면에서 저격할 때와 다르게 거리도 훨씬 더 가까웠다.
[1,260M]
총기에 부착한 탄도 계산기 모니터를 확인하고서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아주 좋은 거리였다.
물론 1.2㎞라는 단위마저 MK.20의 사거리인 1㎞를 넘어갔으나, 나로서는 별로 어려울 게 없었다.
휴가 가서 훈련했던 기본 거리가 무려 1마일인 1.6㎞인 덕이었다.
오히려 난이도가 내려간 셈.
타앙─ 타앙― 타―앙!
연달아 세 발을 쏘고 나서 보트의 모터가 해적에게 가려져서 검지를 뺐다.
결과가 금세 나왔다.
명중.
스코프 너머 모터보트의 속력이 눈에 보일 정도로 확 줄어든 것이었다.
해적들이 당황한 듯 아우성을 칠 무렵.
마지막 보트를 바라봤다.
‘저것도…….’
스코프의 배율을 조절하면서, 모터를 맞힐까 궁리할 때였다.
“…진심?”
중얼거리면서 렌즈 너머의 광경을 바라봤다.
해적 한 명이 제대로 된 조준도 없이, 갑자기 RPG-7을 쏘고 있었다.
그것도 방금 죽어 나간 해적과 다르게 아주 엉성한 자세를 취하고 있던 터라, 뒤에 있던 해적 한 명이 후폭풍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쏘아졌던 RPG-7 탄두는 배에 닿지도 못하고 그대로 바닷속으로 빠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자세도 문제고, 거리도 너무 멀었다.
RPG-7을 들고 왔어도, 어느 정도 거리를 좁혀서 격발했어야 했다.
아니면 아예 곡사로 쏴야 하는데, 그건 해적들이 감당할 만한 게 아니었다. 각도 계산이든, 조준이든.
그렇게 바다로 맥없이 퐁당 떨어진 탄두를 확인하고, 스코프를 다시 들여다봤다.
재차 장전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격발할 의도가 분명한, 다소 급한 모습.
왜 그러고 있는지도 금세 깨달았다.
“아주 지랄을 하는구나…….”
해적들이 근처에 있던, 박살 나서 가라앉고 정지된 2척의 배를 가리키며 소리치고 있었다.
표정까지 상세히 보이진 않으나, 움직이나 행위나 다소 흥분한 듯 보였다.
충분히 알 만했다.
순식간에 보트 2척을 잃었으니, 나름대로 반응한 것이었다.
그게 겁을 먹은 건지, 놀란 건지, 분노한 것인지 알 순 없겠지마는, 어쨌든 다소 비정상적인 건 분명했다.
‘해적 원 데이 투 데이 한 건 아닐 텐데… 약 기운에 맛이 갔나?’
판단하면서도 스코프로 조준하고, 검지를 방아쇠 위에 올렸다.
어쨌든 더 이상의 접근은 막아야 했다.
벌써 적과의 거리가 1㎞에 불과한 탓이었다.
타앙─!
RPG-7을 들고 있던 해적의 가슴을 뚫었고, 한 발, 두 발, 세 발, 네 발을 연이어 쐈다.
옆에 있던 해적이 RPG-7을 줍던 와중에 쏜 것이었다.
표적은 모터.
탕! 탕! 탕! 타―앙!
전부 적중하면서 보트의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졌다.
돌아가려면 손으로 한참 저어야 할 터.
그때였다.
투다다다다다다다다다―
난사가 벌어졌다.
흥분한 놈들이 제대로 된 조준도 없이 먼 거리에서 마구잡이로 갈겨 댄 것이었다.
물론 닿을 만한 건 없었으나, 그렇다고 놔두진 않았다.
쏘는 놈은 못 쏘게 해야 했다.
눈먼 총알이라도 어딘가에 박히거나 스치면 상처가 될 테니까.
유독 난리치는 놈부터 조준하고 쐈다.
탕! 탕! 탕! 탕! 탕! 타앙! 타―앙!
다해서 7발.
방아쇠를 누른 횟수만큼, 해적들이 휘청대고 크게 넘어가며 나자빠졌다.
서넛은 바다에, 나머지는 보트에 널브러진 것이었다.
동시에 꽁무니의 총성도 멈췄고.
나도 7발의 사격을 끝으로 20발들이 탄창도 비웠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무전이 들려왔다.
- 리, 선미 정리 끝났으면 위로 올라가. 가까운 적부터 우선 제압해.
“알겠습니다.”
단순히 위라고 했지만, 어디를 지칭하는 건지 잘 알았다.
승선해서 배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감시하기 좋다고 얘기했던 곳으로, 제이크가 여태 머물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옥상.
항해실 지붕 위에 마련된, 여러 사람이 누울 만큼 넓은 공간이었다.
거기서는 한눈에 전방과 측면이 다 들어왔다.
후방은 구조물을 돌아가야 하지만, 그것도 몇 발자국만 움직이면 확인이 가능했고.
이에 빠르게 올라가자, 갑판 난간에서 봤던 것과는 조금은 다른 풍경이 드러났다.
물론 보이는 게 바다라는 건 변함없었으나, 배의 웬만한 부분이 다 보였다.
항해실이 있을 만한, 배 전체를 조망할 만한 위치.
단점으로는 화물선 가까운 곳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게 있었는데, 나한테 문제 되는 건 아니었다.
오지 못하게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었다.
해적들이 수중으로 잠수해 올 게 아니라면, 접근하기 전에 사살하면 될 일.
그렇게 자리를 세팅하며 상황을 둘러봤다.
“…이래서 올라오라고 했구나.”
한두 곳에서 공격해 오는 게 아니라, 정말 사방팔방에서 모터보트가 접근해 오고 있었다.
다해서 무려 10척.
방금 쏜 걸 포함해서 내 손에 멈춘 보트가 5대였으니, 총 15척이 덤비는 셈이었다.
거기다 점 같은 크기로, 상당히 멀리서 오는 것들도 있었다.
심지어 멀찍이 있던 모선까지 뱃머리를 이쪽으로 돌리는 것처럼 보였다.
사활이라도 걸린 듯한 광경.
약 기운일 수도 있겠지만, 사주했을 지안드로가 해적질 은퇴할 만큼 거금을 약속했을지도 몰랐다.
그 배후에 있을 피칼이 돈이 많은 탓이었다.
중세 유럽 왕족 출신으로 억만장자 어쩌고 하는 게 게임상 캐릭터 설정이었고.
어쨌든 해적 나름대로 전력을 다하는 것 같았는데, 숫자만 많을 뿐 그리 무섭지는 않았다.
아프리카의 해적들답게, 그냥 막무가내로 오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순서대로 사살하면 문제 될 건 없었다.
중간에 누군가 다치거나 배가 손상되어 항해하지 못하는 게 우려될 뿐.
어쨌든 간에 결론은 간단했다.
‘접근 금지.’
말 그대로 못 오게 하면 됐다.
십여 대의 모터보트든, 그보다 훨씬 큰 모선이든, 뭐든.
철커덕─
노리쇠를 후퇴 장전하고서 가장 가까운 곳부터 쳐다봤다.
“자… 드루와.”
* * *
소말리아 북부 근해를 순찰하던 상륙수송선거함(Landing Platform Dock) 샌디에이고함에 해적 출몰과 함께 구조 요청이 들어왔다.
전파된 적의 규모는 해적 모선 1척, 모터보트는 15척 이상.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대략적인 해적의 머릿수도 최소 100~150명이라는 소식이었다.
“…….”
소식을 들은 샌디에이고함 함장의 인상이 굳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화물선에 해상 보안을 이유로 용병들이 있다고는 하나, 해 봐야 6명에 불과해서 방어에 불리했다.
반면에 해적은 수십 배에 달하는 규모.
이는 유래가 없는 일이었다.
보통은 보트 1~2척, 많아야 3~4척에 해적 십여 명이나 수십 명을 태워서 습격을 가하기 때문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대형 화물선을 공격하는 경우도 이례적인 편이었다.
물론 10년 전까지만 해도 종종 있긴 했으나, 이후로는 해상 보안을 이유로 화물 회사에서 용병을 고용하고, 소말리아 해적 퇴치가 활발해져서 대형 화물선을 공격하는 경우가 크게 감소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중소형 사이즈의 화물선 혹은 타 도시나 타국에서 온 어선을 공격하는 경우가 잦았는데, 그나마도 해군에 걸리는 게 많아서 해적질 자체가 크게 줄어들었고.
그런 면에서 작금의 구조 요청은 아주 이상했다.
해적들이 표적으로 삼은 선박이 용병 6명이 탄 대형 화물선이라는 사실도 그렇고, 그 화물선을 공격하는 해적의 머릿수가 상당하다는 점도 마찬가지.
그나마 다행인 건 거리가 가까워서 헬기로 30분이면 도착한다는 건데, 이는 행운 같은 게 아니었다.
이미 첩보를 받아 순찰 중이기 때문이었다.
해적이 준동한다는 소식이 제5함대 상부로 들어왔었고, 명령에 따라 함정 여러 척이 아덴만에 배치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30분 거리에 있는 건 당연한 일.
함장을 비롯한 장교와 부사관들, 수병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동요 없이 신속하게 움직이는 것도 같은 이유였다.
훈련과 실전을 겪어서 숙련되기도 했으나, 정보의 유무가 주는 안정감이 큰 것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해적의 머릿수가 너무 많다는 게 문제였으나, 다행히도 항공 부대와 해병 원정대를 포함함 샌디에이고함한테는 별문제가 안 됐다.
해적이 수백 명일지라도 제압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도 없을 것이었다.
헬기에 거치된 기관총만 해도 충분할 테니까.
이내 준비를 마친 헬기가 이륙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프로펠러가 맹렬하게 회전하면서 샌디에이고함에서 떠올랐고, 구조 요청 지점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근해에서는 조금 먼 아덴만 안쪽을 향해.
“통신 상태 확인, 적 무장 상태 어떤지 전파 바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헬기 조종사가 통신하기를 잠시.
어느새 가까이 있던 소말리아 북부 지역이 멀어지면서 완전한 망망대해로 접어들었다.
“어? 저거 뭐야? 선박 잔해인가?”
조종사가 내려다보이는 수면 위로 이질적인 게 보여서 중얼거렸고, 뒤에 탑승 중이던 이들도 비슷하게 대꾸했다.
- 그런 것 같습니다, 뭐가 박살 난 모양인데… 조그만 모터보트처럼 보이는군요.
모터보트 절반 정도가 박살 나서 뒤집어졌다고 생각될 무렵.
“어……?”
조종사는 물론이고 탑승자들도 모두 주춤했다.
예상치 못한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해적선임이 명백한 보트 한 척이 표류 중이었다.
정확히는 탑승자들이 손으로 바닷물을 젓는 모양새였고, 그들 중 일부는 살려 달라는 듯 손까지 흔들고 있었다.
동시에 혹시 모를 피격을 방지하기 위해 헬기가 고도를 높이는 순간.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조종사의 입이 절로 열렸다.
비슷한 것들이 바다 위 이곳저곳에 퍼져 있었다.
노를 젓거나 반파되어서 떠다니는 모터보트 그리고 까만 피부를 가진 수많은 해적의 시신까지.
동시에 모선으로 보이는 커다란 동력선도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불이 붙은 듯 한 줄기의 연기까지 내뿜으면서.
“해전이라도 벌어진 꼴이군…….”
이미 전투기나 공격 헬기 혹은 해군 함정 따위가 쑥대밭으로 만든 듯한 광경이었다.
이를 껌뻑거리며 바라보는 사이.
그제야 조종사의 눈에 대형 화물선이 보였다.
어떤 전투 흔적도 없는 멀쩡한 모습으로, 마치 이 사태와는 무관하다는 듯 고고하게 나아가고 있었다.
보고 있던 조종사는 다른 곳을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고작 용병 6명이 탄 화물선이 해적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 리는 없을 테니까.
그러나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화물선만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