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116화 (116/185)

116화

처음에 인도에서 이탈리아로 오는 길에 호세가 했던 얘기 하나가 떠올랐다.

바로 해적선을 알아보기 힘들다는 것.

해적선이라고 깃발을 달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배의 디자인이 어선과 다르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다를 수도 없었다.

어선을 몰던 어부들이 약탈하기 시작한 게 해적질의 시초였으니까.

그래서 배가 됐든, 배에 타고 있는 사람이든, 어부와 해적을 구분하는 건 불가능했다.

해적이 노리는 바도 같다고 했었다.

무기를 각종 비닐이나 그물로 덮어서 안 보이게 해서 상대의 방심을 유도하고, 또한 해군의 경계와 감시를 피하며, 그럼에도 검문을 당할 시에는 무기를 그대로 바다에 던져 버린다고.

처음에 아라비아해와 아덴만을 지나오면서 본 광경도 그랬다.

해적선인지, 어선인지 구분하기 힘든 모터보트들이 멀찍이서 간을 보듯 어슬렁거렸기 때문이었다.

그때마다 호세가 해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었고, 나도 바로 수긍했었다.

그물질하기에도 바쁜 판에 매일 지나다니는 평범한 화물선을 구경하는 데다가, 어부 중 하나는 목에 망원경까지 걸고 있던 탓이었다.

그래서 결국에 해적인지, 어부인지 확인하려면 배를 향해 공격적으로 접근해 오는지, 무기를 들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냥 지나가던 어부를 공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나도 위협이 될지 모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무나 죽일 생각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적을 사살하고 싶을 뿐.

전투 스트레스가 없는 거지, 인간에 대한 감정까지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이번에는 해적의 공격이라는 걸 확신했다.

제이크가 공격이 예상된다는 언질을 줬고, 모선으로 추정되는 배가 있으며, 다른 방향에서 미식별 선박이 접근해 와서 그런 것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내 눈에 보이기 시작한 모터보트 때문이었다.

딱 봐도 전혀 어선 같지 않았다.

자동소총 같은 것을 치켜든 흑인 여러 명이 화물선 쪽으로 직행해 오고 있었다.

내 입이 반사적으로 열렸다.

“2시 방향에서 무장한 보트 접근 중, 거리는 약 3㎞.”

보고하면서도 곧장 옆으로 움직였다.

적습이 예상된다고 한 순간부터 내가 저번 휴가 기간 내내 수만 발을 쏴 대며 연습한 반자동 저격 소총인 MK.20을 세팅해 뒀기 때문이었다.

양각대를 펼쳐 놓고, 옆에는 7.62×51㎜ 탄약 박스도 쌓아 놓고, 엎드릴 자리에 깔개까지 깔아 뒀었다.

해리의 삼촌이 소유했던 약 4㎞에 달하는 사격장에서 연습했듯.

반복했던 그때가 떠올랐다.

들판이 아닌 배 위에서 하는 사격이고, 훈련이 아닌 실전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 내가 느끼는 건 거의 비슷했다.

이에 자세를 잡는 사이에 무전이 전파됐다.

- 즉시 제압하도록 해.

신속한 허가였고, 그 뒤로 각종 지시가 석인 말이 덧붙었다.

호세에게는 내 반대편을 맡아 저격하고, 레이첼과 마커스, 해리에게 각 초소를 배정하는 내용.

그 소리를 들으면서 스코프에 접안하고, 점차 가까워지는 거리를 확인했다.

습관적으로 방아쇠울에 올린 검지에서 염분과 습도로 인한 끈적거림이 느껴질 무렵.

호흡을 고르며 검지를 천천히 방아쇠울 안에 넣었다.

물론 그리 가깝진 않았다.

아직 멀었다.

MK.20의 사정거리인 1㎞를 2배 이상 훌쩍 넘는 거리.

정확히는 2.25㎞였다.

아직 감지 않은 왼쪽 눈으로, 총기에 달린 탄도 계산기 화면을 확인하면서 보트의 움직임을 바라봤다.

다가오고 있으면서도 파도로 인해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상황.

내가 누워 있는 화물선도 같았다.

차이가 있다면, 보트를 마주 향해 달리는 게 아니라는 사실.

거리가 표시되는 LCD 화면을 보며 숨을 골랐다.

“후…….”

어느새 적과의 거리 2㎞.

노려보는데, 근처에서 마찬가지로 시작부터 총을 들고 달려오는 모터보트 한 척이 더 보였다.

그러니까 총 2척.

“팀장! 방금 2시 방향에 무장 보트가 1척 더 추가됐습니다. 다 해서 2척 접근 중!”

- 확인했어, 둘 다 제압해.

역시나 빠른 대답을 듣는데, 헛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훈련하듯이 준비를 마치고 보니, 실전이 상상 이상으로 빡셌기 때문이었다.

물론 긴장이나 걱정이 되진 않았다.

강철 멘탈 덕분이 아니라, 내가 지난 휴가 내내 쏘아 댄 탄이 제법 많았기 때문이었다.

대략 수만 발.

그렇게 소비한 탄값이 대략 수천만 원이었다.

커스텀 한 총기보다 더 많이 들어갔는데, 그게 지금에 와서 내 마음을 가라앉게 해 주고 있었다.

바다를 닮았던 푸른 들판의 광경도 괜히 떠올랐기를 잠시.

[1,912M]

탄도 계산기에 적과의 거리가 표시된 순간.

왼쪽 눈을 감고, 지금껏 움직여 온 속도와 거리를 보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연달아 쏠 만했으나, 초탄이라 기다렸다.

이걸 기준으로 가늠하면서 다음 탄을 쏘려고 마음먹고 지켜보던 순간.

스코프 너머 적의 왼쪽 어깨가 터져 나갔다.

“…….”

그러나 내가 의도한 게 아니었다.

처음 조준했던 건 심장이 있을 가슴 한가운데였다.

저렇게 휘청하며 넘어가고 괴로워하는 걸 볼 생각은 없었다.

즉, 살짝 빗나간 셈.

‘약 20㎝ 우탄…….’

계산을 마치고 이어서 방아쇠를 당기려다가 주춤했다.

“…어?”

방금 피격된 해적이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놓쳤던 총을 주워 들고, 고함을 치듯이 입모양을 크게 벙긋거리는 모양새.

그것도 왼쪽 어깨가 날아가듯 박살 난 채 그러고 있었다.

미치광이 혹은 좀비처럼 보였다.

“니미…….”

욕이 절로 나왔다.

아마 호세가 말했던 까트(Khat: 마약류 식물)를 씹으면서 달려들거나 더 심한 마약을 처먹고 오는 것으로 보였다.

아니면 저렇게 덤빌 수가 없었다.

설령 제이크가 맞았더라도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수습하려 애쓰지,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다시 달려들 순 없었다.

물론 어깨가 박살 난 만큼 멀쩡하긴 힘들 것이었다.

결국에는 과다출혈로 죽을 게 분명했다.

문제는 저렇게 달려드는 거라면, 일이 상상 이상으로 번거로워진다는 점이었다.

본보기로 사살한 한두 명을 보고 도망가는 거라면 몰라도, 이런 식이면 어쩌면 살아 있는 사람을 모두 죽여야 할지도 몰랐다.

가져온 탄이 많긴 하나, 얼마나 소모해야 할지도 몰랐다.

모선이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까.

이내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저 접근하지 못하게, 뱃머리를 돌리든, 조정하지 못하게 만들든, 어쨌든 간에 오지 못하게 다 죽여야 했다.

물론 배에 올라와도 막아 낼 자신감은 있었으나, 그건 나만 해당됐다.

우리 팀 혹은 화물선의 선원들은 달랐다.

누군가 부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접근하는 모든 해적을 죽여야만 했다.

접근하지 않을 때까지.

타앙― 탕! 타앙─ 타아앙─! 탕! 탕! 타앙─ 타―앙!

근거리에서 속사하듯 쏘진 못했으나, 그래도 끊김없이 격발했다.

그리고 모든 탄이 다 박혔다.

수만 발을 쏴 대면서 훈련한 보람이 있었다. 반동도 그렇고, 손끝의 감각 역시 그때를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실전인 만큼 결과가 완벽하진 못했다.

대부분의 탄이 제대로 가슴 한가운데를 뚫긴 했으나, 한 발이 해적 한 명의 팔에 박힌 것이었다.

‘그냥 가면 좋겠는데… 쯧, 그러질 않네.’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팔을 잃은 한 명의 해적이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총 멜빵을 목에 걸고 모터보트를 직접 조종해 오고 있었다.

기괴한 장면이었다.

팔이 관통당한 게 아니라, 아예 뜯겨서 사라졌는데도 이 배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으니까.

‘진짜 좀빈가, 씨발 거…….’

끔찍한 광경이었으나, 더는 지켜볼 수 없었다.

약 1.9㎞였던 거리가 확 줄어서 1.5㎞가 됐기 때문이었다.

이것도 지상전에서는 상당히 멀다고 볼 만한 거리지만, 해상에서는 그렇게까지 멀어 보이지가 않았다.

오히려 가깝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수평선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먼 데다가 광할하게 펼쳐진 바다에는 아무런 장애물도 없고, 색깔마저 한 가지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거리야 어쨌든, 저 미친놈들을 더 접근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한 명이 남았더라도 사살해야 했다.

달려오는 보트에 무슨 폭발물이 실렸을지도 모르고, 또한 1대의 보트가 추가로 더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타앙─!

한 발을 더 쏘고, 키를 잡았던 해적이 무너졌다.

동시에 보트가 옆으로 돌았다.

쓰러지면서까지 키를 쥐고 있던 모양이었는데, 이제 거기서 신경을 써야 했다.

보트가 하나 더 있었다.

‘여긴 7명.’

아까 8명이었으니, 이번에는 사정이 좀 나았다.

거리도 마찬가지로 좀 더 좁았다.

[1,820M]

총기 옆에 부착한 탄도 계산기에 뜬 숫자와 풍향, 풍속을 마저 살피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이미 실전 개시를 한 만큼, 한 발만 쏠 필요는 없었다.

여섯 발을 내리 갈겼다.

탕! 탕! 타앙! 타앙―! 타―앙!

중간에 텀을 주지 않았고, 명사수 특성이 반동을 잡는 순간 바로바로 쐈다.

괜히 중간에 상황 본다고 멈춰 봤자, 풍향과 풍속이 바뀌어서 빗나갈 가능성만 커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6발이 전부 명중했다.

“돼쓰.”

가슴팍을 맞고도 꿈틀대며 자리를 잡는 놈이 있었으나, 조준하는 사이에 알아서 쓰러졌다.

그렇게 해적 15명을 전원 사살한 순간.

- 리, 측면 저격 끝냈으면 선미(船尾) 델타 초소로 와.

“선미로요?”

배의 뒤쪽인 선미는 대개 안전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해적들이 따라올 여지는 있으나, 터빈의 물보라로 인해 대개 측면에서 들러붙는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한데 이어지는 말에 흠칫하고 말았다.

- 놈들이 RPG를 들고 있어.

“미친……!”

급하게 갑판을 짚고 일어나면서, MK.20을 챙겨 들고 뛰었다.

“거리는 얼마나 됩니까?!”

- 이제 1마일(1.6㎞) 정도.

“뒤는 팀장이 직접 보는 겁니까? 누가 있어요?”

- 레이첼.

“레이첼? 멀미는요?”

- 아직 괜찮아. 다만, 총기도 그렇고, 저격할 수준은 아니야. 일반 교전은 가능하겠지만, 그때가 되면 RPG도 발사할 만큼 가까워질 거야.

이 정도면 아직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레이첼도 괜찮지마는, 거리 역시 꽤 멀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가까운 느낌이지만, RPG-7의 통상 유효사거리가 500M 정도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이상의 사거리에서도 충분한 효력이 있으나 맞히기가 쉽지 않았다.

조준도 쉽지 않고, 풍속과 풍향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었다. 아마 내가 연습하듯 쏴 대야 그 감각을 익힐 수 있을 텐데, 해적들이 그럴 리가 없었다.

대충 가까워지면 갈겼을 터.

즉, 지금 달려가서 막으면 막을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 내가 측면을 맡지, 빌어먹을 새끼들이 또 오는군.

“측면에서… 아, 씹.”

욕이 절로 나왔다.

한창 달리다가 바다를 바라보니, 수평선 끄트머리에서 점 같은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망원경으로 봐야 알겠으나, 제이크가 오고 있다고 했으니 해적일 터.

‘염병, 아주 작정했네.’

내 몸이 하나라는 사실이 아쉬워질 즈음, 제이크의 음성이 닿았다.

- 직전에 구조 요청했고, 최소 30분에서 1시간 사이에 지원군이 도착할 거야.

그 말에 호세가 먼저 반응했다.

- 30분?! 엄청 가까이 있던 모양이군요, 다행입니다. 미 해군? 아니면 인근 해군에서 보내 주는 겁니까?

- 전부 올 거야.

- 아무래도 다 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쪽… 9시 방향에서 추가로 오거든요. 이거, 아주 작정한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급하게 뛰던 끝에 가까스로 모래 포대를 쌓아 만든, 델타로 명명한 초소에 도달했다.

“리, 왔어요?”

거리를 가늠하며 단발성으로 격발하던 레이첼이 나를 봤다.

“너무 멀어서 도저히 안 맞네요.

그녀가 말과 함께 HK416을 들어 보이기에, MK.20을 재장전하고 세팅하며 답했다.

“내가 하죠, 특이 사항은?”

“해적선 3척, RPG 2정 이상, 인원은 최소 20명 정도. 개인적으로는 아마도 서로 다른 무리가 모인 것으로 추측돼요.”

“연합이나 동맹 같은 거요?”

“공격 타깃이나 작전 일시까지 공유한 것으로 보이니, 아마 비슷한 거겠죠. 그리고 트리에스테의 작전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크구요.”

내가 대략적으로 짐작했던, 나뉘어 있던 생각들이 정리된 것처럼 들렸다.

이어서 스코프를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하… 벌써 RPG 탄까지 장전했네요. 진짜 침몰시키려는 건가, 하여튼 격발하겠습니다.”

짧게 말하면서, 방아쇠울에 있던 검지를 천천히 움직였다.

이제 적과의 거리는 약 1.2㎞.

측면에서 했던 저격과 비교하면 택도 없이 가까운 거리였는데, 쏘는 건 몇 배는 더 쉬워 보였다.

전과 달리 적이 똑바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마치 표적지처럼.

휴가 내내 했던, 해리네 삼촌 사격장에서 했던 사격이 떠오를 지경이었다.

전신에 사격 감각이 아주 충만할 즈음.

방아쇠를 당겼다.

다만, 이번 표적은 아까와 달랐다.

사람이 아니라, 탄을 장전한 RPG-7이었다.

그것도 충격 신관이 있을 탄두를 조준하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탕! 타─앙!

혹시라도 놓치게 되면, RPG-7을 완전하게 망가뜨릴 목적으로 빠르게 속사로 격발한 것이었다.

한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스코프 속에서 RPG-7이 확 터지면서 폭발한 것이었다.

선명한 화염이 보이면서, 동시에 옅은 폭음도 들려왔다.

퍼엉─

남은 배는 두 척.

그것도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 이상으로, 온갖 방향에서 해적선이 접근해 온다는 게 문제였을 뿐.

스윽, 총구를 살짝 돌려서 다시 격발했다.

이번에는 선박 모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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