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제기랄, 호세! 상태는?!”
마커스가 짧고 굵게 소리쳤다.
복도를 두고 좌우로 갈라지게 된 호세가 방금 피격됐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호세가 총에 맞았다고 욕설을 섞어 가면서 직접 말했다는 사실이었다.
적어도 머리나 심장에 맞아 즉사하진 않았고, 말할 만큼 정신도 멀쩡하다는 뜻.
마커스의 짐작과 함께 답이 돌아왔다.
“으으, 시발! 방탄판에 맞았는데, 갈비뼈에 금이 간 것 같아. 젠장!”
예상보다 나았다.
호세가 착용한 건 성능 검사도 못 한 싸구려 중국제 방탄판이 아니라, 정부로부터 인증받은 미국산 방탄판이었기 때문이다.
말대로 갈비뼈에 금이 갈 순 있으나, 그 이상의 심각한 부상은 없을 터.
물론 호세의 방탄판도 저격 총을 맞으면 간단하게 뚫리겠지만, 여기에 그런 총은 없었다.
AK로 시작하거나 AR-15 계열 혹은 기관단총이 전부.
곧이어 악에 받친 듯한 말이 이어졌다.
“이 개같은 새끼들! 더럽게 아픈데… 마커스 뭐 해?! 얼른 죽여 버리자고!”
독이 오른 듯한 음성이 들려온 뒤.
마커스가 수신호로 타이밍을 맞췄고, 빠르게 문틀 너머의 복도를 쳐다보던 때였다.
피융─! 투다다당!
탄이 귓가를 스쳐 가면서 쏟아졌다.
동시에 벽의 파편 같은 게 얼굴과 목덜미를 할퀴며 날아갔다.
파바박!
“윽, 젠장…….”
급하게 얼굴을 확인한 제이크가 한숨을 삼켰다.
적이 너무 많았다.
약 7~8명.
그것도 기습과 섬광탄 따위를 사용하여 머릿수를 줄인 결과였다.
최초에 마주한 건 열 명이 훌쩍 넘은 탓이었다.
개중 몇 명을 사살한 건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수적 열세도 열세지만, 자거나 쉬는 사람 한 명 없는 적을 기습했기 때문이었다.
다들 깨어 있었다.
반격 역시 늦기 않게 이뤄졌고, 그 와중에 마커스와 호세가 가까스로 적 여럿을 제거한 것이었다.
그들의 무장 상태나 기합, 팀과의 호흡 등이 나빠서 좀 나았다.
그마저도 준수했다면, 진즉에 전사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 와중에 호세가 피격당하긴 했지만, 위축되는 대신에 오히려 근성 있게 싸우는 상황이었다.
그것도 이제 한계에 다다른 듯했으나, 쉽게 죽진 않으리라 다짐한 마커스가 다시금 건너편의 호세를 보며 수신호를 보냈다.
“후… 한 번 더 해 보자고.”
벅차긴 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원 요청은 최대한 미뤄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약한 소리를 하기 싫은 것만이 아니라, 이번 작전의 핵심이 그랬다.
중요한 건 2층이 아니라, 1층이라고.
즉, 아래층이 다 해결될 때까지 적을 붙잡아야만 하는 것이었다.
가능하면 사살이나 생포해야 하지만,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렇게나마 견디는 상황이었고.
그리고 1층이 더 어렵다는 것도 잘 알았다.
당장 정원에 포진했던 적만 해도 2층에 남아 있는 7~8명보다 더 많았었다.
게다가 1층이 훨씬 넓고 크므로, 상주한 적 역시 더 많을 터.
마커스로서는 일의 난이도가 어쨌든 간에, 제 임무를 최대한 해내야만 했다.
“들어가자고.”
마커스가 말을 중얼거리면서 수신호를 마치고, 다시 복도를 향해 견제사를 하며 머리를 내밀었다.
다친 볼과 목에서 핏물이 흐르는 듯했으나, 무시하고 교전했다.
찰과상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눈앞의 적뿐.
마커스는 델타포스 출신으로서 그리고 대외협력국 소속으로서 사명감을 갖고 복도 끄트머리의 적들과 교전했다.
호세도 마찬가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였지만, 최선을 다해서 수행하고 있었다.
이어서 방에서 나와 더 가까이 접근하려던 순간.
치직─
무전 잡음과 함께 헤드셋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러나 미처 부르지 못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폭스트롯 2, 여기는 폭스트롯 3. 폭스트롯 1과 함께 2층으로 올라가겠음. 교차 사격 주의 바람.
“아……!”
마커스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탄식을 흘렸다.
음성의 주인공이 강태였기 때문이었다.
동료인만큼 그의 실력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탄약도 많이 소비해서 교전할 만한 여유도 부족했고.
마커스가 호세를 향해 빠르게 무전했다.
- 폭스트롯 4, 대기.
그와 동시에 호세 역시 갈비뼈의 통증을 참아가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마커스든, 호세든 둘 다 내로라하는 특수부대 출신답게 함부로 주저앉거나 총을 놓으며 긴장을 풀진 않았다.
당장이라도 교전할 수 있게끔 사격 준비 자세로 안심한 것이었다.
그리고 곧 총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투두두두! 타다당─! 투다다다다!
소음기를 낀 MP7과 여러 돌격 소총이 섞이는 난잡한 총소리가 날 무렵.
중간중간에 다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쿵─ 철퍼덕.
누군가가 쓰러지고, 헉하고 내뱉는 단말마 같은 숨소리.
금세 총소리에 섞여서 듣기 어려웠으나, 그것도 오래지 않아서 선명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총소리가 현저하게 줄어든 탓이었다.
정확히는 MP7을 제외한 돌격 소총의 총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이윽고 그의 귀로 호세의 혼잣말까지 선명하게 들려왔다.
“…알고 있지만, 겪을 때마다 경이롭군. 간신히 대치한 걸 이렇게 금세 뚫고 올라오다니.”
그 말에 반사적으로 손목시계를 들여다본 마커스의 입가에 헛웃음이 고였다.
정확히는 몰라도, 대략 1~2분이 흘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곧 총성이 멎었다.
확인 사살을 하는 단발성 총격음이 잠깐 들릴 뿐.
이를 들은 마커스의 입이 절로 열렸다.
“리의 실력은 원래도 말이 안 되는데… 거기서 더 성장이라도 하는 모양이군…….”
알 자마쉬에서도 믿기 힘든, 괴물 같은 모습을 보였는데, 매번 놀라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냥 괴물 같다고 하기에도 부족한 수준.
감히 범접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강태와 함께 올라온 제이크마저 평범한 용병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어? 마커스?! 출혈이… 괜찮아?!”
어느새 다가온 강태가 피가 줄줄 흐르는 마커스를 지혈했고, 제이크가 호세를 부축하듯 일으켜 세웠다.
“으윽, 팀장 좀 조심히… 아, 해리는 어딨습니까?”
“인질과 인질범을 잡고 있어.”
“네? 인질이 있었어요?”
“그래… 우리가 손님이라고 생각했던 외부인한테 총을 겨누더군.”
“허, 완전 병신 같은 놈들이군요. 인질을 잡으려면 제대로 잡아야지, 손님을 데려다가 갑자기 그런 이상한 인질극을 벌이다니…….”
호세가 갈비뼈에서 오는 통증에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하자, 제이크가 야투경을 쓴 채로 내려다보며 답했다.
“그렇진 않아. 놈들이 병신이었다면… 너와 마커스가 2층을 정리하고 내려왔겠지. 리가 놈들을 병신으로 만든 거야.”
“아… 무슨 소린지 알았습니다. 리가 업적을 하나 더 세웠군요.”
“그래, 내려가서 보면 알 게 될 거야.”
“그럼 얼른 내려가서 봅시다. 아, 좀 살살 부축해 주세요. 키 좀 맞춰 주고…….”
“어깨에 메줄까?”
“아닙니다. 팀장은 키가 크니까 아주 든든한 버팀목 같네요.”
호세가 싱거운 소리를 하고, 지혈을 마친 마커스가 함께 1층으로 내려간 뒤.
곧 두 사람의 입이 동시에 열렸다.
“오, 미친… 이게 뭡니까? 방패? 이 새끼들이 무슨 대테러 진압이라도 나온 겁니까? 이걸 어떻게 처리한 겁니까?”
제이크가 어깨를 으쓱했다.
강태와 해리를 따라 들어와서 제대로 보지 못한 탓이었다.
그저 강태의 등에 일부 가려져 있던 거대한 방패와 함께 적들이 넘어가는 장면만 봤을 뿐.
“아마 눈 구멍 같던데… 내 말이 맞나?”
제이크가 어느새 강태를 향해 물었고, 강태가 인질 쪽으로 다가가며 답했다.
“네, 그 안으로 안광이 보이더라고요.”
“…와, 팀장의 델타 모임을 리가 개박살 냈을 텐데, 한번 가 볼 걸 그랬네요.”
마커스가 그 말에 반응할 무렵.
강태는 짧은 대답을 뒤로하고, 해리가 잡아 둔 두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살피다가 고개를 저었다.
‘다시 봐도 둘 다 처음 보는 얼굴이고…….’
혹여 힌트라도 될 게 있나 보던 강태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크게 아쉬운 건 아니었다.
게임 속에서 본 얼굴은 아니었으나, 둘 다 누군지 충분히 알았기 때문이었다.
한쪽은 지안드로의 부하로 PDA를 통해 얼굴과 신상 정보가 공유됐고, 다른 한쪽은 그를 돕는 과학자로서 핵미사일 개발과 관련되어 있을 터.
‘대외협력국이나 미국에서도 알겠지. 이 미친 새끼들이 핵미사일을 만드는 걸…….’
어쩌면 내부에서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우라늄 광산까지 점거하고 우라늄 일부를 반출한 정황까지 있었으니까.
나름의 정리를 마친 강태가 제이크를 쳐다봤다.
“위에서는 뭐랍니까? 연락됐습니까?”
“그래, 방금 했어. 업무 협조하러 온다더군. SSE(Sensitive Site Exploitation: 정보 수집) 마치고, 현장 이탈해서 정보만 인계하면 돼.”
“알겠습니다.”
“호세, 넌 여길 맡고, 이렇게 둘씩 찢어져서 움직이도록 하지.”
제이크가 빠르고 간결하게 지시했고, 강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재빠르게 움직였다.
이제 수습만 마치면, 미국의 움직임도 조금은 달라지게 될 것이었다.
* * *
같은 시각, 워싱턴 D.C, 해리 S. 트루먼 빌딩, 국무부 대외협력국.
국장 로버트에게 추가 보고서가 올라왔다.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서 벌어진 침투 및 생포 작전의 성공 여부와 사상자 유무, 특이 사항 따위를 담은 아주 간결한 연락이었다.
힘이 들어가서 눈꺼풀에 주름이 잡혔던 그가 활자를 읽어 내려가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후…….”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여태 G&G Corp 팀이 거쳐 왔던 분쟁 지역이면 총성이나 폭발음 따위가 좀 들려도 상관없겠지마는, 이번에 간 곳은 이탈리아였기 때문이었다.
발각되면 그야말로 큰일이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연루된 모두를 단순 용병으로 취급하고 손을 떼야만 했다.
뼈아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게 대외협력국의 존재 이유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CIA 산하나 특수부대 소속으로 조직을 만들어도 됐다.
공식적인 신분을 주면 되니까.
그렇게 짧은 상념과 함께 보고서를 읽어 내린 로버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역시… 성공했군.’
강태가 있었음에도 우려했었다.
적이 몇 명 더 많은 거면 몰라도, 최소 수십 명이 더 많은 것으로 짐작됐기 때문이었다.
물론 진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야외라면 몰라도, 엄폐 가능한 구조물이 충분한 실내 CQB였기 때문이었다.
강태가 이길 순 있었다.
다만, 이기긴 해도 어느 정도 손해가 있을 거라고 예측했었다.
교전 시간이 늘어지면서 그 와중에 적이 도망가거나 이탈리아 군경이 올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한데 우려했던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일어날 수가 없었다.
강태가 수십 명을 쓸어버리는데, 고작 5분 남짓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임무도 적절히 해냈고.
로버트가 다음으로 도착할, SSE 결과물을 들뜬 마음으로 기다렸다.
어마어마한 성과가 있을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