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113화 (113/185)

113화

사격장에서 시도해 봤던 한 손 사격이 실전에서도 먹혔다.

그것도 총기가 동일한 쌍권총이 아닌, 전혀 다른 글록19와 기관단총인 MP7 결합이었는데도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오히려 성공적이었으나, 그렇다고 결과를 다시 돌아보고 감탄할 틈은 없었다.

2층으로 진입한 마커스와 호세가 아직 교전 중이기 때문이었다.

총성이 연이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투두두두두두―

타다다당! 타다다당!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비롯해 건물의 천장과 벽을 타고 소음이 끊임없이 전달되고 있었다.

다행히 피격됐다거나 부상당했다는 무전이 오진 않았으나, 그렇다고 마냥 마음을 놓고 두 사람에게 맡길 수만은 없었다.

두 사람이 못 미더운 게 아니었다.

마커스든, 호세든 누가 됐든 우리 팀은 제 몫 이상을 충분히 해낼 만큼 능력 있는 실력자들이었다.

특히 마커스와 호세는 미국 1, 2티어 특수부대 출신에 호흡도 잘 맞는 관계였고.

문제는 용병들도 쉽게 떨어져 나갈 약체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험한 훈련을 받은 정규군 출신이거나 제대로 된 특수부대 출신으로 실력이 제법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마냥 센 건 아니었다.

헬멧은 한 명도 안 썼고, 야투경은 물론이고 열화상 조준경도 없는 놈들이 태반인데다가, 호흡도 맞지 않아서 우리보다 한 수 아래였다.

수십 명이 내 손에 죽은 것도 같은 이유였다.

명사수 특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만약 상대가 간간이 모여서 훈련을 겸한, 레크리에이션을 즐기는 델타포스 출신이었다면 나도 특성만 믿고 이렇게까지 빠르고 과감하게 나아가기 힘들 것 같았다.

설령 죄다 이겼다고 해도 몸 어딘가에 탄이 박혔을 터.

“후…….”

짧은 한숨을 뱉어서 상념을 흘려 보낸 뒤.

어느새 제이크의 손짓에 따라 1층에 마지막으로 남은 문 좌우로 각각 나뉘어 섰다.

제이크가 문 개방, 내가 섬광탄 투척 후 최초 진입, 이어서 사주 경계하던 해리가 두 번째 이동 그리고 장비 수거를 마친 제이크가 마지막 진입.

말 한마디 없이도 총구의 움직임과 고갯짓으로 계획 논의를 마쳤다.

그것도 고작 2~3초 만에 이뤄졌다.

척하면 척이어서 주춤하거나 되물을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제이크의 손에 문 개방을 위한 소형 빠루가 다시 들려 나오고, MP7의 재장전을 마칠 무렵.

시체들이 널브러진 바닥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일종의 무전 잡음.

치지지직―

해리의 총구가 그쪽으로 돌아가는데, 제이크의 야투경 렌즈가 짧게 흔들렸다.

들어가겠다는 신호.

그렇게 치직거리는 소음이 끝나기 전에 제이크의 빠루가 움직였다.

꽈지직!

거친 소리와 함께 문짝이 박살 났다.

경첩이 휜 게 아니라, 나사못과 함께 문의 나무까지 뜯어 내듯 딸려 나왔다.

그것도 한순간에, 딱 한 번 빠루를 젖힌 효과.

놀라거나 감탄할 틈도 없이 미리 준비했던 섬광탄부터 냅다 집어 넣었다.

탱! 데구르르― 퍼어엉―!

떨어지고 굴러가고 나서 시원하게 폭발한 뒤, 바로 문짝을 걷어차며 들어갔다.

쾅! 이어서 빠르게 MP7부터 들이밀었다.

방향은 정면.

그다음에 쭉 둘러서 구석까지 육안으로 확인하는 게 격실 수색 방법 중 하나였다.

때에 따라 구석부터 먼저 보고 총구를 쭈욱 돌리기도 하지만, 그건 방 구조나 진입 방법에 따라 달라지고는 했다.

그리고 지금은 내부 구조도 정확히 모르는 상황.

외부에서 보이는 문의 위치, 문짝이 열리는 방향, 거실과 복도, 다른 방의 위치와 크기에 따라서 방 내부를 짐작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에 따라서 내 총구 역시 전방부터 향한 것이었다.

물론 보다 안전하기 위해서 일단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섬광탄부터 집어넣고 본 거였고.

그러나 예상과는 다른 게 눈앞에 있었다.

‘…방패?’

경찰특공대에서나 쓸 법한 커다란 방탄용 방패가 정면에 있었다.

그것도 사람을 다 가리는 어마어마하게 큰 사이즈인데, 눈구멍은 연필 두 자루 굵기밖에 안 될 정도로 좁아서 흡사 벽처럼 보이는 방패였다.

욕이 나올 시간도 없었다.

어느새 방패 옆으로는 바싹 붙인 권총이, 위로는 AK 시리즈를 든 적이 물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듯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니까 두 사람이 방패 뒤에 숨은 셈.

야투경 속 초록색 이미지가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게 보일 무렵, 뒤에서 진입해 오는 인기척도 느껴졌다.

해리일 것이다. 그가 약속했던 것처럼 들어오자마자 빠르게 측면부터 겨눌 터.

끝으로 제이크가 합류해서 부족한 걸 지원해 줄 것이었다.

그러나 방패가 있으면 말이 달랐다.

자칫 잘못하면 몰살이고, 아니어도 누군가는 죽게 될 것이다.

1층에서는 한 발의 탄도 맞히지 않겠다고 각오한 나로서는 결코 용인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런 면에서는 다행이었다.

방패가 벽처럼 보인다고 해도, 방패에 눈구멍도 있고, 그 위로 머리를 드러내는 놈도 있었으니까.

안 보이는 표적이었으면 명사수 특성을 발휘할 수 없겠지마는, 보이면 불리할 건 없었다.

있다면 머릿수나 화력, 시간의 차이 정도.

그러나 그것도 감내할 수 있었다.

거리가 너무나도 가까워서, 탄이 빗나갈 확률이 없었으니까.

설령 멀었으면 바람이나 중력의 영향을 받아 달라지겠지만, 고작 몇 미터 앞에 있는 지금은 달랐다.

이 거리면 내가 못 맞힐 건 없었다.

야투경을 썼어도 마찬가지.

투두두두―!

MP7이 소음기를 거쳐 탄을 쏴 냈다.

마치 속사처럼.

그러나 전부 한곳을 향해 발포한 건 아니었다.

첫 2발은 눈구멍.

이어진 2발은 방패 뒤쪽에서 올라오던 머리를 맞혔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쿵, 철퍼덕―

자빠지는 소리가 나는 가운데, 거의 동시에 해리의 목소리도 울려 퍼졌다.

“총 버려!”

해리가 바로 조준했을 측면을 돌아보면서 무슨 상황인지 깨달았다.

인질극이었다.

그것도 타깃이 외부인을 총으로 겨눈 모양새.

24STS(24th Special Tactics Squadron), ISA(Intelligence Support Activity)와 함께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미국인 기자를 구했던 때가 문뜩 떠올랐다.

물론 그때는 아주 조심스럽고도 정석 같았던 인질극이었다면, 지금은 많이 달랐다.

우리가 잡을 타깃이 인질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인질은 접촉하기로 한 외부인이었고.

두 사람 중에 타깃이 단안 야투경을 끼고 있으나, 사진을 너무 봐서 그런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다만, 지금의 인질극은 아무리 봐도 준비된 게 아니었다.

내가 쏠 곳이 너무 많았다.

저번처럼 인질의 어깨와 목 사이로 눈만 내민 게 아니라, 대충 붙잡은 채로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수부대 출신이나 피칼이나 지안드로 밑에 있는 부하 같지 않은 행태.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문앞에서 대기 중이던 거대한 방패 2인조가 한 발도 못 쏘고 쓰러졌기 때문일 거였다.

나 같아도 놀랄 터.

물론 나까지 멈칫하진 않았다.

여유가 없을 만큼 바빴고, 또한 할 일은 너무나도 명확했다.

가능하면 생포, 불가능하면 사살.

‘존나게 가능하지.’

쏠 타이밍을 노리는 순간, 때마침 타깃의 입이 열렸고, 이탈리아식 억양이 섞인 영어가 튀어나왔다.

“너, 너희는 도대체 누구…….”

말이 더 이어지기 전.

기다렸다는 듯 방아쇠를 당겼다.

투두두두두두!

표적은 명확했다.

총을 든 오른쪽 손목 그리고 인질을 붙잡고 있던 반대편 팔뚝.

일부러 몇 발 보태서 격발했다.

머리나 심장 같은 치명상을 입힐 만한 부위가 아니라서, 확실하게 멈추고자 쏜 것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효과가 있었다.

“아아악!”

타깃이 비명을 지르면서 넘어갔고, 품에서 뭔가를 꺼내려 했으나 더듬거리다가 넘어졌다.

아니, 제이크가 미식축구를 하듯 덮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해리가 타깃이 접촉하려던 그리고 죽이려고 했던 인질에게로 갔다가 멈칫했다.

“선배님, 아시안입니다.”

“아시안?”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안 보였는데, 해리에게 턱을 잡힌 그는 누가 봐도 아시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약 4, 50대 즈음 된 아저씨.

낯선 외모였다.

어디서 볼 법하긴 했는데, 그게 라레플에서 봤던 사람이라는 건 아니었다.

흔한 동네 아저씨 같은 이미지일 뿐.

더구나 이 바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여서 정체를 물으려던 때였다.

벌벌 떨던 그가 입을 열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저는 군인이 아닙니다. 과학자입니다, 과학자…….”

말 속에 중국어 느낌이 섞여 있어서 더 물어보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그와 얘기를 나눌 만한 시간은 없었다.

투두두두두!

2층에서의 총성이 여전한 탓이었다.

지원 요청은 오지 않았으나, 마커스와 호세가 고전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팀장, 저 2층 올라갑니다.”

제이크에게 말하자, 그도 어느새 플라스틱 수갑을 채우고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나도 함께 간다, 폭스트롯 5 외부 상황 파악해서 폭스트롯 6에게 전달하도록.”

- 폭스트롯 5 수신 양호. 외부 이상 없음.

순식간에 상황 정리와 지시를 마친 제이크가 내게 눈짓했다.

“앞장 서, 내가 뒤를 커버하지.”

“좋습니다.”

* * *

“저걸 어떻게… 아니,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이지……?”

서류 가방의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던 지안드로가 눈을 껌뻑이면서 혼잣말을 되뇌었다.

트리에스테 별장에 설치한 무선 카메라 속의 영상 때문이었다.

실시간으로 송출되는 거라서 이미 영상은 지나갔지만, 지안드로의 뇌리에는 너무나도 강렬하게 남아 계속해서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방패를 든 2인조 용병이 한 발도 못 쏘고 죽어 나간 상황.

심지어 그 둘은 그냥 용병 중의 일부가 아니었다.

그 안에서도 실력 좋기로 유명한, 러시아 알파 출신의 용병들이었다.

저 방패 역시 그들의 물건이었고.

한데 선두에 섰던, 청바지에 셔츠를 입은 강태가 그들을 찰나의 순간에 몰락시켰다.

당황해서 주춤한 부하 역시 마찬가지였고.

심지어 들어오자마자 몇 초 만에 싹다 정리하고, 팀장인 제이크와 함께 방을 빠져나갔다.

남은 건 해리 한 명뿐.

다소 휑해진 화면을 쳐다보면서, 지안드로가 놀란 감정을 추스르던 때였다.

- 아, 카메라? 이런, 아직 작동하는 게 있었어? 젠장, 다 지켜봤겠네.

음성이 증폭되듯 노트북 스피커를 통해 튀어나왔고, 화면 역시 가까이 다가온 4안 야간 투시경을 쓴 해리의 모습을 담았다.

- 이봐, 카메라 뒤에 숨은 겁쟁이. 아직도 지켜보나? 카메라 박살 내기 전에 한마디 하자면… 최대한 빨리 자수해. 아니면 너도 저렇게 될 거거든.

그 말과 함께 해리가 뒤편에 방패와 함께 쓰러진 용병들을 고갯짓으로 가리킨 뒤.

- 그럼 이만.

짧은 말과 함께 화면이 꺼졌다.

삐이, 하는 의미 없는 기계음도 울릴 무렵.

지안드로의 이가 갈렸다.

까드드득.

그리고 옅은 한숨 뒤로 욕설이 깔려 나왔다.

“씨발… 내가 크게 오판했군…….”

세르게이가 죽은 건 상황을 가리지 않고 전면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자신은 안 그러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필요에 따라 전화로, 메일로, 카메라를 통해 원격으로 즉각 지시할 수 있었으니까.

더불어 상대가 누구든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판도 짜 놨었다.

트리에스테의 별장과 도합 40명의 용병.

이걸 처리하려면 대테러 부대 1개 중대 이상은 투입해야만 했다.

당연히 그만한 움직임이 있다면은 부대는 물론이고, 배후마저 알아낼 자신이 있었다.

유도한 것도 그거였다.

아니면 상대를 말살해도 그만이었고.

지안드로 역시 장교 출신이라 잘 알았고, 또한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한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이탈리아에 입국했다는 용병들이 교장으로 준비해 둔 별장을 개박살 내고 있었다.

심지어 섭외하려던 요인도 빼앗겼다.

그 생각에 지안드로가 다시금 인상을 찌푸렸다.

‘마지막에 인질극이 아니라, 바로 중국놈을 죽이고 자살했어야 했는데… 제기랄…….’

일이 점점 틀어지고 있었다.

이전까지는 따라오는 거였다면, 어느새 따라잡힌 탓이었다.

그것도 보통 놈들이 아니었다.

일그러진 얼굴로 고뇌하던 지안드로가 결단한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돌아가는 길에서 다 죽여 버려야 되겠어…….”

설령 발각되는 한이 있더라도 무리해야만 했으나, 지안드로가 그건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다.

보스인 피칼의 대업을 이루려면 아직 멀었으니까.

발각되어서도 안 되고, 살아남아 피칼의 곁에서 소임을 다해야만 했다.

이내 지안드로의 결심이 점점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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