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그래… 내 판단이 옳았어. 선배님은 역시 범접할 수 없는 사람이었어…….’
진입을 앞둔 해리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상념을 정리했다.
강태 한 명을 잡겠다고, 13명이나 모여서 계획을 수립하고 작전을 준비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보통 사람들이 아니었다.
1티어 특수부대인 델타포스 12명과 2티어 특수부대인 제160특수작전항공연대 출신인 해리 자신까지.
심지어 분위기마저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했다.
날고 긴다는 특수부대원들 사이에 긴장이 서려 있었는데, 마치 예리한 칼처럼 날이 벼려져 있었다.
중요하고 위험한 전투를 앞둬서 그런 것만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맞이한 허탈감과 좌절감이 기저에 깔려 있어서 더욱 민감한 것이었다.
7 대 7부터 시작되어 9 대 5, 11 대 3의 모의 전투를 치러 오면서 쌓인 감정에 오기와 분노까지 얽혀 있었다.
해리도 눈치껏 알았다.
‘실의에 빠질 만한데, 안 그런 게 대단하네…….’
지금처럼 견디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던 영역을 보면, 보통은 좌절 내지 체념하기 때문이었다.
해리 역시 비슷한 과정을 겪어 봐서 잘 알았다.
그게 어느샌가 확고한 믿음이 되어 강태를 더더욱 신뢰하는 방식으로 변했을 뿐.
시작은 델타와 다를 게 없었다.
그 자신도 델타포스만큼은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패배를 모르고 살아온 엘리트 특수부대 출신이었으니까.
그렇게 잠깐을 서서 준비하는 무렵, 신호가 떨어졌다.
램프가 발광했고, 버저가 울린 것이었다.
“전원 진입!”
짧은 말과 함께 사전에 짜 놓은 루트와 방향으로 13명의 인원이 번개같이 흩어졌다.
마치 그물처럼 복잡하고 세밀한 진형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아주 분명하고 직관적이었다.
바로 포위 섬멸.
강태를 몰아가듯 감싸 죽이는 게 목적이었다.
심지어 팀 전원은 아군끼리의 교차 사격 위험까지 내다보고 감수할 예정이었다.
사격 각도를 확인하고 진입 방향까지 정한 거라 서로 맞히게 될 확률은 상당히 낮지만, 혹시 모를 상황까지 예상한 것이었다.
상대가 그럴 만한 적이었으니까.
바로 델타포스 13명을 상대로 맞붙는 인간, 이강태.
그 존재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가능성이기 때문에, 이번 작전은 모든 최악의 수를 다 고려해서 이뤄지고 있었다.
그것도 단순한 의지가 아니었다.
치직.
무전의 잡음과 함께 빠르고 낮게 목소리가 전파됐다.
-팀 5, 유니폼 포인트에 도착했는지?
-여기는 팀 5, 유니폼에 도착했고, 현재까지 이상 없음.
-팀 3, 여기는 팀 1. 방금 포인트 리마 도착했고, 현재까지 이상 무.
투입 전에 임의로 정해 둔 통신 음어가 빠르고 간결하게 오갔다.
전과 달리 치밀해진, 흡사 실 작전 같은 광경.
곧 중요한 무전 하나가 도착했다.
-여기는 팀 3, 현재 인디아 이상 없으며, 정찰 위해 전방으로 추가 이동하겠음.
그렇게 팀 하나가 실내처럼 꾸며진 모의 CQB 교장을 나올 때였다.
탕! 타앙─!
돌연 총성이 울려 퍼졌다.
뒤편에서 따라 움직이던 제이크의 고개가 확 들렸다.
‘실내에 있을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여기서 나오는 순간을 노렸군.’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다.
실내에서 야외로 바뀌는 찰나의 순간에는 동공이 축소하면서, 일시적으로 시야를 잃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장점만 있진 않았다.
실내보다 야외가 더 많이 트여 있어서 방어하기가 그만큼 까다로운 탓이었다.
13명의 블루 팀도 3인 팀 3개와 2인 팀 2개로 이뤄진 5개의 조로 나뉘어 접근 중이었고.
개중 3인 팀 2개가 실내 교장이 아닌, 바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즉, 맵 전체를 그물로 쓸 듯 감싸는 모양새.
정말 천천히 조여 가고 있는 거였는데, 그것도 금세 틀어졌다.
-팀 2! 1명 다운! 1명 다운!
당황할 법했으나, 그 뒤로 후속 보고가 빠르게 덧붙었다.
-적 1시 방향, 모래 포대에 엄폐 중, 거리 약 30미터 이상. 팀 1에서 접근 가능할 것으로 보임!
벌써 한 명을 잃었으나, 제이크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그가 짐작한 것처럼 11 대 3도 결국에 패배했지만, 13 대 1은 이길 가능성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었다.
물론 강태의 실력이 독보적이라 동료가 덜 중요하나, 아예 없는 것과는 차이가 컸다.
물론 동료가 무능하다면 없는 게 낫겠지만, 여기 있는 이들은 미국 내에서도 내로라할 만한 유능한 인간 병기들이었다.
측후방 경계와 백업, 그 외의 보조도 알아서 해 줄 사람들.
그들을 빼고 혼자 한다는 건, 아무리 강태라도 적잖은 페널티를 짊어지는 셈이었다.
반면에 제이크의 블루 팀은 오히려 인원이 늘었으니, 제압 역시 수월하진 않더라도 아예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었다.
그때였다.
타당! 탕!
재차 총성이 울리면서, 전투 손실이 전파됐다.
-여기는 팀 1, 상황 파악 및 추가 정찰 시도했으나, 피격되어 한 명 다운된 것으로 보임.
그 말에 제이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쓰러진 이들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은 잘하고 있었다.
앞선 전투보다 더 긴장하고 경계하면서 진행하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강태였다.
‘팀 2를 경계 중일 텐데… 팀 1까지 바로 커버한다고……?’
새삼 강태와 자신의 격차가 느껴졌다.
팀 2와 팀 1의 간격은 최소 10~20M로 한눈에 경계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물론 먼 거리에서 교전 중이라면 모르겠지만, 이건 일종의 CQB 상황이었다.
강태와의 거리도 기껏해야 30M 내외였고.
확인하려면 총구를 빙 돌려야만 했다.
‘벌써 둘이라…….’
당연하게도 방금 들어온 소식은 우려했던, 벌어지지 말았어야 했을 일이었다.
정찰 과정에서 손실을 예견하긴 했지만, 그것도 가급적 벌어지지 않길 바라고 있었고, 많아 봐야 1명이었다.
여기서 2명이나 제거됐으니, 벌써 11명만 남은 상황.
‘정찰 시도했다가는 더 죽어 나갈지도 모르겠군, 머리만 내밀어도 사살되니까…….’
짧은 가늠 끝에 제이크가 새 명령을 하달하려던 순간.
타다당!
재차 총성이 울렸다.
제이크의 미간에 확 주름이 잡혔고, 동시에 무전이 전파됐다.
-여기는 팀 5, 적습으로 한 명 다운되었으며, 후퇴해서 엄폐 중.
“적습?!”
-적이 이동한 것으로 보임. 팀 5 기준으로 12시 방향에 위치했고, 모래 포대가 아닌 드럼통에서 총격 확인됨.
제이크의 눈에서 이채가 돌았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강태가 생각보다 과감하고 빨랐기 때문이었다.
물론 예상치 못한 것도 아니었다.
지금의 행위가 변칙적으로 보이긴 해도, 결과적으로는 정석에 가까운 전술이었으니까.
바로 일종의 유격전.
소수가 다수를 상대로 활약할 수 있는 가장 무난한 전략이었다.
물론 마냥 당해 줄 순 없었다.
보통의 적이라면 이대로 대응해도 되겠지만, 상대는 불가사의하다고 볼 만한 강태였으니까.
이러다가는 앞선 결과처럼 무력하게 사망할지도 몰랐다.
의지나 실력과는 별개였다.
같은 자리에 제이크가 있었다면, 그 역시 사망 처리 됐을 것이었다.
머리만 내밀어도 순식간에 피격되는 판이고, 심지어 그간 선제 공격을 피하던 강태가 먼저 움직인 탓이었다.
그렇다면 더 지체해서는 안 됐다.
짧은 순간에 제이크가 판단을 마쳤고, 나직하게 새 지시를 하달했다.
“현 시간부로 전원 공격에 돌입하며, 교차 사격 주의하되, 필요시 현장 판단에 따라 선조치하도록.”
그리고 제이크 역시 팀과 함께 발을 내딛을 무렵, 총성이 야외 교장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다당! 타다당!
탕! 탕! 타당!
직후에 무전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다운되었고, 팀이 궤멸됐다는 소식들.
제이크가 머릿속으로 전선을 그리면서, 예정된 침투로를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그래야만 했다.
머릿속 지도에 따르면, 강태가 주로 측면을 방비 중이기 때문이었다.
‘이 틈에 들어가야 해.’
그래야 더 접근해서 우회하든, 교란하든, 뭐든 할 수 있었다.
파바박!
흙을 차듯 나아가던 제이크의 눈에 어느새 총구의 화염도 설핏 보였다.
무전으로 들었던 그 드럼통.
여러 개의 드럼통 틈에서 발포되고 있었다.
물론 그 위로 온갖 견제사격이 집중포화되며 쏟아지고 있었는데, 그사이에서도 강태가 정확하게 응사하는 상황.
이윽고 제이크의 머리가 바삐 돌았다.
‘이 상태라면 기습도 가능하겠어.’
고작 몇 미터만 더 가면 됐다.
제이크뿐만 아니라, 팀원들도 앞서서 함께 달리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제이크가 마저 힘을 주며 달릴 때였다.
타당! 탕!
섬찟한 총성과 함께, 앞서 달리던 두 사람이 주춤했다.
피격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목격한 제이크는 거의 반사적으로, 진행 방향을 급하게 틀었다.
상황 파악이나 응사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목적은 단 하나.
이어질 사격을 피하는 것이었다.
총구 방향이나 강태의 모습을 보진 못했지만, 제이크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다음 타깃은 자신이라고.
이에 직감적으로 지면을 찼고, 아예 몸을 날렸다.
목적지는 모래 포대 뒤.
아쉽게도 거리가 좀 멀긴 했으나, 그 자리에서 허튼짓을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절묘한 차이로 훈련탄이 모래 포대를 때렸기 때문이었다.
퍼석! 퍼석!
자못 섬찟한 마찰음이 귓가를 스칠 무렵.
방아쇠를 당겼던 강태는 드럼통 뒤로 몸을 감추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와, 이걸 피하네.’
경험이 만든 통찰력인지,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제이크가 갑자기 몸을 내던졌었다.
총구가 급히 따라갔으나, 의도했던 머리는 맞히지도 못했고.
새삼 제이크를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힘과 스피도 모두 괴물 같은 작자인데, 직감까지 따라 준다니?
전장에서 큰 상처 없이 살아남은 이유를 알 만했다.
강태가 새삼 깨닫다가 눈을 빛냈다.
‘이제 좀 위험하겠는데…….’
방금도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거의 반사적으로 쏜 상황이었다.
강태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위치한, 탄이 쏟아지는 드럼통은 선제공격을 감행하면서 확보한 임시 진지 같은 엄폐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느 한쪽은 공격하려면 상체를 반 이상 드러내야만 했다.
‘옮길 필요가 있겠어.’
생각 끝에 시선을 돌리던 강태가 적합한 담벼락을 쳐다봤다.
적당한 높이와 좌우 모두 비스듬하게 막혀 있고, 그렇게 크거나 작지 않은 적합한 사이즈.
바로 탄창 교체하고, 뛸 자세까지 잡은 강태가 빠르게 튀어나갔다.
그리고 바로 눈에 보이는 적을 향해 일단 발포하고 봤다.
타당! 탕탕탕─!
타다다당! 타다다다당!
드럼통을 향하던 총성이 강태를 향했고, 동시에 강태 역시 격발해 대던 적들을 향해 총을 쏴 댔다.
순식간에 몇몇이 훈련탄에 피격되어 움찔하며 물러났다.
강태는 그 뒤로 더욱 빨리 내달렸고, 몸까지 내던졌다.
“읍!”
이를 꽉 깨물며 도약했고, 곧 바닥을 굴렀다.
먼저 피격될 뻔한 탓이었다.
귓가로 훈련탄이 스쳐 갔고, 담벼락에도 아슬아슬하게 몇 발 박혔다.
덤벼드는 이들을 쓰러뜨리겠다고 좀 더 버텼다면, 그래서 몇 발 늦었으면, 몸 어딘가에 페인트 흔적이 남았을지도 몰랐다.
턱.
상체를 낮춘 채, 담벼락에 기대어 바쁘게 탄을 갈려던 순간.
부스럭―
인기척이 일었다.
담벽을 우회하여 돌아오는 길목.
‘씨발.’
갑작스러운 상황에 욕설이 목 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사이, 탄창을 갈던 두 손은 반사적으로 글록19를 뽑아들었다.
HK416의 탄창을 마저 갈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판단이었고, 그게 맞아떨어졌다.
지근거리에 적이 있었다.
다급하게 뛰어왔는지, 지향 사격 자세를 취한 모습.
강태가 먼저 격발했다.
타당! 타앙―!
그리고 글록19를 원래 자리인 홀스터에 넣고, 아직 새 탄창을 끼우지 못한 HK416을 잡아야 할 터.
하나, 그러지 못했다.
강태의 뒤쪽이자, 담벽의 반대쪽 측면에서도 예상치 못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돌 알갱이와 흙을 즈려밟는 워커 소리.
휙.
강태가 급하게 반바퀴를 회전했다.
몸의 중심이 무너지면서 균형을 잃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일단 보여야 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밀고 들어오는 총구와 그 뒤로 딸린 레이저 지시기, ‘C’커브로 총열을 쥔 두꺼운 손까지 보였다.
아까보다 더 가까웠다.
역시나 지향 사격 자세로 급하게 뛰어온 듯 보였으나, 이 거리에서는 구분할 필요가 없는 거였다.
지향 사격으로 쏴도 웬만하면 다 맞을 만큼 가까웠으니까.
주저앉던 강태가 다급하게 격발했다.
타다당!
세 발이 팔뚝과 얼굴, 머리를 차례로 쏜 다음.
“……!”
강태의 시선이 급히 움직였다.
방향은 담벼락 너머.
그쪽에서도 적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미 둥그스름한 헬멧 윗부분까지 보였다.
턱.
바닥에 누운 강태의 총구가 헬멧 쪽으로 향했고, 마찬가지로 들어오는 총구를 보며 격발했다.
탕! 타당―!
탄흔이 짖게 남는 사이, 비로소 강태가 자세를 바로 잡을 수 있었다.
동시에 열린 입에서는 탄식이 나왔다.
“와아…….”
강철 멘탈의 효과를 비집고 나오는 옅은 긴장이었다.
구분 지어서 셋을 제거하긴 했으나, 그 간격이 소수점 이하의 초 단위라서 사실상 일시에 상대한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었다.
시간으로 따지면 다해 봐야 1~2초.
그사이에 3명을 처리했으니, 사격 자세를 잡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주저앉아서 그리고 누워서 쏠 수밖에 없었다.
‘이번 건 찐으로 빡셌네…….’
그러면서 HK416을 들면서 탄창을 갈 무렵.
삐이― 삐이―
버저가 울리더니, 어느새 모의 교장 중간에 있던 램프가 빨간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시작할 때 빛나는 것이지만, 끝날 때도 나오는 신호였다.
“뭐야? 리는 아직 멀쩡한데?”
“설마, 정말… 블루 팀이 다 뒈졌다고?”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제이크는 어디 있어? 제이크?!”
피격되어 옆으로 빠져 있던 이들이 중얼거리며 나섰다.
중간부터 다운된 타깃을 세지 못했던 강태도 몇 명이나 남았는지 몰라서 아직 담벽 뒤에 숨어 있을 때였다.
“그래, 우리가 졌어.”
걸걸한 목소리의 제이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HK416을 준비 자세로 들고 있던 강태가 담 너머를 내다보다가 멈칫했다.
장애물을 돌아 나오는 제이크의 몸에 훈련탄의 페인트가 터지면서 발생하는 파란 탄흔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앞쪽이 아닌 뒤.
“나중에 알았어, 통증이 있길래 봤더니… 빌어먹을 등에 맞았더군.”
“아…….”
강태도 온전히 일어서자, 제이크가 강태를 보며 말했다.
“리, 네가 이겼어.”